아무것도 없습니다!
(송현 로마노 신부)
프로이센 태생 샤퍼의 작품 가운데 `넷째 왕의 전설`이 있습니다.
별을 따라 동방에서 출발한 세 왕들은 애당초 러시아 왕과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약속 시간에 늦어 함께 출발하지 못했습니다.
구세주를 만나 예물을 바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던 그는 혼자서 별을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만삭이 된 여자 거지의 신음에 예물 가운데 하나를 건넸습니다.
다음 날에는 매맞는 노예가 안쓰러워 그의 몸값을 치르고 그를 해방시켜주었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강도를 당한 장사꾼이 불쌍해서 나머지 보물을 다 내주었습니다.
어느 날 해변에 이르자 빚 때문에 아들을 노예로 보내는 노파의 울음에 노예를 자청했습니다.
그는 삼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한 끝에 나이가 들어 육지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잠시 기운을 회복한 후에 다시 별을 향해 길을 재촉했습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니 군중의 함성이 들려왔고
예언자들이 알려준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주님을 십자가 처형장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이제야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릴 예물을 죄다 남에게 줘버려 지금 제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제 마음만은 여기 있습니다.
넷째 왕인 러시아 왕은 예수님 앞에 바칠 예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물만을 바치고 떠나간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라도 주일 예물 봉헌으로 할도리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행여 내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을 바치지는 않습니까.
예물 봉헌은 진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은 물질적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보이지 않는 그분을 향한 믿음 없이는 보이는 세상 재물을 내놓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느님 앞에 소중한 것은 `올곧은 봉헌`입니다.
세상의 가치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만 향하는 `갈라짐 없는 봉헌` 이어야 합니다.
언제나 받을 궁리만 하지 말고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며
하느님 앞에 기꺼운 마음으로 봉헌해야 합니다.
결국에는 러시아 왕처럼 삶 전체를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 하느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보다 훨씬 귀한 선물.
곧 구원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안겨주실 것입니다.
은행에 나의 천국을 쌓아두는 것보다 천국에 나의 은행을 두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