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제사에는 상번제라는 것이 있었다. 메일 드리는 번제라고 해서 상번제라고 부른다. 번제는 burnt offering, 불에 태우는 제사를 번제라고 한다. 번제는 여러 이유로 드려졌는데 개인적인 감사와 서원을 목적으로 드려지기도 했지만 매일 성소에서 제사장들이 아침과 저녁에 두 마리의 흠 없는 숫양을 번제로 드렸다.
(민 28:3)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민 28:4)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 어린 양 한 마리는 해 질 때에 드릴 것이요
이렇게 성소에서 죽어 나가는 짐승의 수는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일 년에 상번제로 도살된 숫자만 730마리인데 거기에다 안식일에는 특별한 안식일 번제가 추가되었고 월삭에는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들이 첨가되었다. 거기에 절기에 드려지는 번제까지 더해지면 공적으로 드리는 번제만도 어마어마했다. 그러니 각 개인이 각종 이유를 따라서 번제를 드릴 경우 성소는 늘 분비고 바쁜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짐승을 도살해야 하는 피비린내 나는 일들의 반복은 제사장들에게도 얼마나 고역스러운 사역이었겠는가?
그런데 이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제물의 신체를 불에 태운다. 그래서 번제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원래 번제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올라간다는 의미를 가진 “올라 olah”라는 단어다. 공교롭게 우리말과 히브리 말의 발음이 비슷한데 태운다는 의미 보다는 불에 태워서 전부를 바칠 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뜻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제사의 기본이 되는 이 번제는 우리의 번제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다. 그분은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의 번제 단에서 번제물이 되셨다. 마지막 당신의 겉옷마저 벗겨지시고 속옷도 제비뽑아 나누이시고 벌거숭이가 된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렇게 우리의 영원한 번제물이 되신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여셨다.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히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피 냄새가 진동하고 날마다 태워지는 번제물의 화제로 말미암아 연기가 자욱한 매스꺼운 현장을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시고 “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라고 묘사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역차가 흰 연기를 뿜고 지나갈 때 우리는 그 연기 나는 방역차 뒤를 쫓아다녔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 연기 속으로 뛰어들어서 기름내 나는 방역차의 매연을 마시는 것이, 뭐가 그리 좋았겠는가?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그 연기가 향기로웠다. 하나님은 번제물이 태워지는 연기를 향기롭다고 하셨다. 그것은 죄인들의 죄들이 태워지는 것이요 헌신한 마음들이 올라가는 것이기에 향기로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향기가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날 번제를 위하여 양을 잡지 않아도 된다. 그 모든 번제의 제물로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단지 그분의 희생을 힘입어 조석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을 다 드려서 기도의 심령으로 우리 전부를 그분께 상번제로 드릴 수 있다. 그러면 그분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그 희생의 결과인 의의 가죽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신다. 그분은 벌거벗고 우리는 입혀 주신다. 죄로 인해 세상에서 떨고 있는 우리를 위해 주님이 가죽옷을 친히 입혀주신다.
하나님 아버지! 참 죄 많은 인간이 오늘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섭니다. 주께서 입혀주지 않으시면, 영원히 세상의 변방에서 자기 죄로 떨고 있어야 할 우리이기에 염치 불고하고 십자가의 번제단 앞에 섭니다. 죄악으로 얼룩진 우리 옷을 벗기시고 주님의 그 순결한 의의 옷을 입혀주소서. 미움과 원한, 원망과 질시,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하는 교만의 죄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단장하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한없는 사랑에 감격합니다. 다 태우고 마지막 그 겉옷마저 우리에게 입혀주고 떠나신 십자가의 사랑 잊지 않고 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