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의 방위산업
2026 5.30
(인사말씀)
5월 23일 지난주 토요칼럼을 원고가 준비되지 않아 못 보내드렸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목 : 박정희의 방위산업의 모든 것 ---
박정희가 손수 돌한국의 방위 산업 육성
(제1장 ) 박정희의 안보철학은 부국강병 유비무환이다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열전 또는 휴전과 냉전의 형태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쟁에는 승자만이 살아남는다.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1945년 8월 15일 815에 일제 식민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한반도는 38선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데올로기가 다른 국가가 남북에 각각 형성되어 이데올로기상 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로서 건국 80년이 지나는 동안 오늘날 남쪽의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선진대국이 되어 있는 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등으로 온갖 전쟁물자를 개발하여 세계적 전쟁 강대국이 된 반면 국민은 최빈국이 되어 국민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이 되고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국가로 행세하려면 국가의 안 보면에서 혼자 지가 잘났다고 독불장군이 되어 존립할 수 없는 이상 하나의 독립국가 국가 다운 행세를 하고 존립하려면 첫째로 자주적인 국가의 안보가 확립되어 있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을 비롯하여 연합국과 동맹을 맺어 군사 동맹관계를 유지하여야 하는 것이다.
일개 국가가 경제 동맹이든 군사동맹이든 간에 동맹이 될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에 따라 동맹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국은 1953년 10월 1일 이래 한미간에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오늘날까지 정치, 군사, 경제 모든 면에서 세계 G1 국가인 미국과 한미상호 방어 조약을 맺고 치경제 안 보면에서 마국과 동맹을 맺는 천운을 보유하고 있다. 천운에서 벗어 나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미동맹의 초기에는 순탄치가 않았다.
1951년 1월 애치슨 국무 장관이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방어선을 일본의 Okinawa에서 출발하여 한반도와 Taiwan을 빼고 필리핀으로 연결한 방어 라인을 그어 발표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북쪽의 김일성이 주체사상 1호인 1950년 6.25에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69년 닉슨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괌선언을 하고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절반인 1개 사단을 아무런 사전통고 없이 철수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다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러한 난관들을 극복하고 대망의 70년대를 맞아 방산육성을 지시하였다.
70년대 중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박정희의 방산과 핵개발 그리고 미사일 개발을 미국의 반대를 듣지 않고 계속한다고 한국이 강행하여 온 대가로 미군 철수를 하겠다고 협박하여 온 역사가 있다
카터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국빈 초청으로 방한 시 김포공항으로 입국하지 않고 오산 미군기자로 입국하여 철군 협박을 한 경우도 있다.
박정희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끝까지 지키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 국가를 유지하였다.
제2장 박정희 대통령의 방위산업 육성 지발
박정희는 71년 국군의 날 유시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
이러기 위하여는 " 강력하고 건전한 방위산업욱성이 절실하다" 하다고 하면서 박정희 책임하에 부국강병의 국가 건설에 에 의한 방위산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제3장 북한의 도발과
박정희의 한국식 방위산업 육성지시
북쪽의 남한의 침범을 노린 도발은 휴전 후 60년대에도 계속 이어져 왔으며 70년 전후에 도를 높여 왔다.
이중 큰 사건으로는 울진 삼척에서의 2개소대의 공비 침투사건과 1.21일 대낮 청와대 침입시도 사건 그리고 미국의 비무장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전술한 바와 같이 월남전 종식을 슬로 간으로 한 미국의 새로 당선된 닉슨 대통령은 69년 소위 아시아 "각국의 안보의 책임은 지국에 있다"는 괌선언을 했다
그러고는 이무런 사전통고도 없이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 사단을 철수 시 컸다.
북쪽의 남한의 침범을 노린 도발은 휴전 후 60년대에도 계속 이어져 왔으며 70년 전후에 도를 높여 왔다.
이중 큰 사건으로는 울진 삼척에서의 공비 침투사건과 1.21일 청와대 침입시도 사건 그리고 미국의 비무장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 건등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전술한 월남전 종식을 슬로 간으로 하여 미국의 새로 당선된 닉슨 대통령은 69년 소위 "괌 독트린이 선언되고 주한미군 절반을 철수시켰다.
한국은 김일성의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전쟁물자를 개발하여 온 북한에 대처할 수 없어 미국만을 믿고 경제개발만 하여 왔는데 난데없이 미국은 한국에서 발 빼겠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긴 하지만 닉슨이 우리에게 통고한 바와 같이 자체 방어능력은 있어야 된다고 결심했다.
박정희는 70년 국방부 초도순시와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서 방위산업 육성을 역설했다.
박정희는 1970년 수출 10억 불을 겨우 달성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00불 밖에 되지 않은 소국이 선진국의 전유물인 방위산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리하여 박정희는 70년 10월 겅제기획원(EPB)에 1년의 기간을 줄 테니 전국가를 동원해서 방위산업 육성계획을 작성 보고 할 것을 지시했다.
이것이 한국의 위대한 방위산업의 역사적 착수의 깃발을 꽂은 셈이다
EPB는 (김학렬부총리, 황병태 기획차관보 담당) KIST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하여 71년 10월 중순 방위산업 육성계획을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보고 드렸다.
내용은 4대 핵공장을 말하는
(1) 대단위 기계 가공공장
(2) 특수강공장
(3) 주물선 공장
(4) 조선소를 건설하여 방위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박정희는 수천만 불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요하며 제품도 5년 후에나 나오는 방산 육성계획은 박정희는 수락 불가능을 퇴청으로 표시하고 브리핑 장을 나가셨다.
이때 오원철 상공부 광공 전 차관보가 별도로 김정렴 비서실장의 기치로 실망 속에 빠져계신 대동령께 말씀드려 비서실장 입회하에 다음과 같은 보고를 드렸다
이것이야 말로 허약하지만 돈 없이 착수가 가능한 기계공학 원리였다
"모든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입니다. 따라서 부품공장만 지으면 됩니다. 그리고 국과연(ADD)을 강화하고 1/100mm 정밀가공사가 필요합니다.
돈 한 푼 필요 없고 연내에 시제품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박정희는 오원철 안에 대 만족하여 오원철 상공부 광공 전 차관보를 즉각 청와대 경제 2 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고 방산육성의 전권을 부여하였다.
이것이 원대한 비전을 가진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인 것이다
박정희는 이로서 방산을 대통령자신이 책임지는 사업으로 하여 방산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말하자면 박정희의 親政親觀 정책으로 출발된 것이다.
기천만 불을 드려서 4대 핵공장을 5개년 계획으로 건설하여 방산을 육성하는 계획을 보고한 EPB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계획을 만들어 놓고도 이 부품조립 안은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고 반대했을 뿐만 아니고 오원철 안은 절대로 방산제품이 생산할 수 없는 안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국산병기로는 적과 싸울 수 없고 꼭 해야 한다면 국방부가 병기별로 조병창을 지어야 된다고 했다.
이리하여 71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마저 반대한 모든 것을 달래며 청와대에 오원철 수석 비서관을 팀장으로 하여 방위산업과 긴급명령 추진의 특공대 (TF)로 발족하였다.
(필자가 이때 최초 청와대 비서관의 일원으로 대통령 각하 서거 시까지 만 8년간을 근무하였다. 이로서 필자가. 최초 최후 비서관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과학연구소 (ADD)에 제1차로 71년 11월 17일 다음과 같은 실물 병기를 시제 할 것을 지시하였다
칼빈 1정, M1 12정, 기관총
M1929A 45정, 박격포 60mm 4문, 81mm 2문, 수류탄 30발, 대인지뢰 2발, 대전차 지뢰 20 발이었다.
11 윌 17일에 시작하여 연내인 45일 이내에 성취하는 것이어서 ADD의 시제를 작전 명령으로 번개 사업이라 불렀다
이것이 한국의 방산을 기계공학 원리로 시작한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란 원리가 병기를 생산하는 것을 증명하는 성스러운 것이었다.
많은 돈 쓰지 않고 방산을 실제 존재하는 프로젝트로 만들어 성공시킨 역사적 방산 스토리이다. 이것이 방산을 추진시킨 전설이며 빛나는 작품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집무실 옆에 국산병기 시제 전시실을 만들어 출입하는 각료들에게 자랑하였다.
한국의 방산은 50여 년간을 지나면서 ADD의 시제를 시작으로 율곡 사업 5인위원회와 방산의 중화학의 기계공업이 창원 기계단지에서 상호 협조하였다
여기서 국가관이 높은 민간 대기업의 방산 참여의 열의를 한국의 방산 성공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한국의 기계, 전자, 조선, 화공기술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가세하여 우리의 오늘날의 선진 방산대국을 건설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과 SETEC 정기 방산 박람회나 국영기업의 방산특집에서 한국의 현재의 기적의 방위산업을 칭찬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한국의 방위산업을 박정희 대통령만이 착수시킨 위대한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사람 아무도 없음은 유감천만이다 끝
( 병기시지 율곡사업 방위산업과 중학선언으로 계속)
2026.5.30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