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의 세계사-26】
북미삼 재배가 한창 상승세를 타던 20세기 초 미국의 재배업자들은 동아시아에서 인삼 종자를 들여와 실험과 재배를 시작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큰 인삼 농장이 위스콘신의 Hsu’s ginseng company에서도 한국에서 가져온 고려인삼 종자를 재배하고 있다.
화기삼 생산업체가 고려인삼까지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인삼 재배업자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경쟁 상대는 캐나다이다.
캐나다는 비교적 늦게 인삼 재배에 뛰어들었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화기삼 재배가 대규모로 시작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중국 본토나 타이완 사람들의 투자와 지원에 크게 힘입었다.
캐나다 인삼업의 특징은 미국과 달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인삼 재배를 지원하고 독려한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에는 담배를 심던 땅에 인삼을 재배하는 사업에 매우 적극적인데, 미국과 캐나다의 담배 소비가 줄면서 담배 농가가 파산에 직면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고안된 것이다.
두 작물 모두 토양의 조건이 비슷하고 기대이익 또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최적의 대체재로 선택되었다.
아주 오랫동안 고려인삼 애호국이었던 중국이 화기삼을 재배하게 된 데는 인삼의 약성을 둘러싸고 인식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70년대부터 고려인삼은 열을 올리고 서양 인삼을 열을 내린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유럽에서도 열이 많거나 젊은 사람은 인삼을 적게 사용해야 한다는 인삼 담론이 17세기부터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 ‘고려인삼의 승열작용’이 갑자기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인삼 담론의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 프레임은 경쟁국의 마케팅 전략으로 탄생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런데 이 프레임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고려인삼이 열을 올린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홍콩 및 중국 남부 지방 등 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서양 인삼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고려인삼의 입지가 좁아진 것은 물론이며, 고려인삼이 과연 체온을 높이는가 하는 문제가 의약학계의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내에서 서양 인삼의 수요가 늘자, 중국은 자체적으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화기삼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화기삼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중국에서 재배한 화기삼을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역전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최근에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프랑스, 스페인, 덴마크, 벨기에 등의 유럽 국가에서도 북미삼과 고려인삼을 인공재배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남반구에서도 인삼 재배에 성공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칠레에서도 비교적 소규모로 실험 재배가 이루어진 데 비해 뉴질랜드에서는 더 큰 규모로 재배지를 무섭게 확장했다.
뉴질랜드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화기삼과 고려인삼이 재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곳곳을 인삼이 이식되어 재배되는 과정에서 오늘날 인삼은 국적을 잃어가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재배되는 고려인삼은 뉴질랜드 인삼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재배되는 화기삼은 길림성 인삼으로 불리면서 본래의 이름을 잃어간다.
현재 한국에서는 고려인삼의 우수한 종자가 매해 수백 톤씩 불법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인삼 종자를 수출할 때는 농식품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단 한 건의 승인 사례도 없었다.
그런데 고려인삼의 불법 유출을 고발하는 언론의 보도나 그 대책에 대한 논의에서는 불법 유출된 고려인삼의 종자가 향하는 곳으로 중국 동북부 지역만 지목한다.
고려인삼이 100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해서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서 재배되었고, 오늘날에는 남반구 뉴질랜드에서도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다.
설혜심의 저서 '인삼의 세계사'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