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서관 - 네팔 국립문서실 히말라야의 보물[ Rāṣṭriya Abhilekhāla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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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25. 20:35조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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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네팔 국립문서실
히말라야의 보물
[ Rāṣṭriya Abhilekhālaya ]
네팔 여행자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 그러나 네팔의 보물들이 먼지처럼 쌓여 있는 카트만두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국립문서실. 네팔 전역에 흩어져 있던 힌두교와 불교 관련 필사본과 마이크로필름이 모여 있는 곳이다.
카트만두, 네팔의 보물들이 역사의 먼지처럼 쌓여 있는 곳
네팔 여행자 대부분은 가능한 빨리 수도 카트만두(kathmandu)를 벗어나 히말라야 설산에 닿기를 바란다. 진한 향 냄새와 골목의 흙먼지,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 사람들의 온갖 흥정이 흥겹지 않을 뿐더러 네팔 사람들의 역사와 종교문화 역시 이방인에게 친밀감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네팔에 도착한 이방인들은 하루 이틀 정도를 여행자의 거리 타멜(Thamel)에서 보낸 뒤에 서둘러 산을 찾아 나선다.
그렇지만 네팔의 거의 모든 보물들이 역사의 먼지처럼 쌓여 있는 곳이 바로 카트만두다. 대부분의 네팔 방문객들은 이곳 카트만두 계곡 내의 유산들에 대해서는 웬만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여러 세계문화유산을 순식간에 돌아보고 카트만두를 떠났겠지만, 네팔의 보물들은 바로 그 자리에 있다.
타멜에서 차를 타고 파탄 방향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람 샤(Ram Shah) 거리 끝 쪽에 늘어서 있는 정부청사들을 보게 된다. 대법원을 지나면 곧 국립문서실(Rāṣṭriya Abhilekhālaya)인데, 택시 기사에게 ‘라슈뜨리야 아비레칼라야’로 가자고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 그냥 대법원이나 람 샤 거리로 가자고 하는 편이 낫다.
도로를 보고 정면으로 서 있는 이층 건물은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가감해 넣은 시멘트 건물이다. 현관 정면에 국립문서실이라고 씌어져 있지만, 정작 그 건물은 문서보관실이 아니라 네팔의 유물과 관련된 업무를 취급하는 고고학 관련 행정실로 쓰고 있다. 필사본의 복사본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사용료를 내는 일 등은 이 건물에서 진행되지만, 정작 네팔 전역에서 수집된 필사본들과 이들을 촬영한 마이크로필름은 뒷건물에 보관되어 있다. ‘마이크로필름 하우스’로 불리는 뒷건물은 필사본과 마이크로필름을 보관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인데, 1992년 독일 정부의 후원으로 건립된 것이다. 이 건물의 좌측은 주로 마이크로필름을, 그리고 오른쪽은 필사본과 촬영실 등을 갖추고 있다.
붉은 천으로 감싼 귀한 필사본들
필사본실의 담당사무관 라주 리말(Raju Rimal).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필사본들을 붉은색이나 주황색의 천으로 감싸서 보관한다.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이렇게 천으로 싼 필사본을 부엌의 아궁이 위쪽에 보관하곤 했다.
마이크로필름 하우스에 들어서면 일층 오른쪽에 필사본 보관실이 늘어서 있다. 각 방마다 4~5층으로 이루어진 철제 수납 칸에 필사본들이 천에 감싸인 채 빼곡히 쌓여 있다. 보통 ‘뽀띠(Pothi)’ 형태라고 부르는, 가로가 긴 형태의 남아시아의 필사본들은 붉은색이나 황색 천으로 감싸서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통적으로 이 색깔의 천들이 불길한 기운이나 필사본을 갉아먹는 벌레들을 쫓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습에 따라 실제로 필사본을 감싸는 천을 강황 등으로 염색하거나 필사본 가장자리에 직접 바르기도 한다. 강황은 벌레들을 쫓는 천연 방충효과가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네팔과 인도의 많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사본들은 자연적인 습기와 곤충 등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다. 습기와 온도가 제어되고 방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사본실을 만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필사본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네팔 종이에 기록되어 있다. 네팔 전통지는 한국의 한지 제작 방법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만드는데, 한지보다는 훨씬 두껍고 다소 거칠다. 이러한 전통지에 쓴 것이 아니라면 야자 잎에 먹물로 쓴 것으로, 이 경우 그 수는 적지만 오래되었거나 귀중본일 가능성이 크다.
스깐다뿌라나, 네팔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필사본
네팔 국립문서실에 보관되어 있는 대부분 문서들은 힌두교와 불교 문헌들이며, 거의 다 필사본과 마이크로필름이다. 국립문서실이 20세기 초 왕실이 보관하던 문헌들을 관리하는 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이 때문에 이 국립문서실의 옛 명칭은 Durbar Library, 즉 ‘왕실도서관’이었고 간혹 이렇게도 부른다) 왕실의 역사적 문헌들도 있지만, 이 국립도서관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희귀본 필사본과 마이크로필름 때문이다. 네팔 전역에 흩어져 있는 힌두교와 불교 관련 필사본들의 마이크로필름들이 여기에 모여 있는데 대략 18만 건에 이른다. 이는 남아시아 기록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세계적으로 가장 큰 마이크로필름 보관소이기도 하다. 인도학이나 불교학 관련 문헌 중에는 필사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상당수이고, 특히 의학이나 탄트라 문헌에 관한 한 이 네팔 국립문서실을 거치지 않고는 아마도 연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그 중요도가 높다.
재단한 야자 잎 위에 먹물로 쓴 힌두문헌 스깐다뿌라나. 대략 기원후 81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네팔에서 작성된 필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 보관 중인 필사본 원본들과 마이크로필름 가운데는 가장 오래된 베다 문헌의 필사본이나 빨리어 필사본도 보관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물은 기원후 810년경 기록된 스깐다뿌라나(Skandapurāṇa, 힌두 신 스깐다(Skanda)와 관련된 방대한 역사·신화적 기록)일 것이다. 이 문헌의 발견은 대략 20여 년 전 세계 인도학계 내에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이 필사본의 발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원전”이라고 전해졌던 문헌이 과거의 원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필자가 이 문헌에 대한 연구를 위해 방문했을 때 마침 이 필사본은 사본실 가운데 놓인 윈도우 케이스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박물관의 유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도 운이 좋다면, 다른 방문객들도 필사본실에 들어가 그 질감을 손으로 직접 느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네팔-독일 필사본 보존 프로젝트
필사본 보관실 위층에 마련된 필사본 촬영실. 비교적 깔끔한 실내에 장비도 잘 갖추었다. 사본 촬영기사로 근무하는 라젠드라 쁘라사드 네우빠네(Rajendra Prasad Neupane) 씨는 사진기자 출신이며,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한다.
네팔 국립문서실이 1967년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문서의 양과 질은 비교적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축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네팔 국립문서실은 네팔-독일 필사본 보존 프로젝트(NGMPP: Nepal-German Manuscript Preservation Project)와 역사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네팔과 독일 정부 간의 합의하에 네팔 전역에 흩어져 있는 필사본들을 모두 마이크로필름으로 담아 보존하려는 사업이다. 1970년부터 시작해 2002년 종결되었으니 무려 30여 년 동안 진행되었다.
카트만두 계곡뿐만 아니라, 돌뽀(Dolpo)나 무스탕(Mustang), 누브리(Nubri), 랑탕(Langthang), 마낭(Manang), 좀솜(Jomsom) 등과 같이 요즘은 히말라야 트레킹으로 유명해진 지역을 샅샅이 누비면서 사원이나 개인들이 소장한 필사본들을 촬영하였다. 당시에는 요즘과 같은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에 마이크로필름 장비들을 당나귀에 싣고 학자들과 현지인으로 꾸린 탐험대를 설산의 계곡으로 파견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네팔의 특정 지역은 차가 들어가지 않아 수일 동안 걸어서 도착해야 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70년대 초 네팔에서 탐험대들이 겪었을 여정의 고난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러한 30여 년의 노력으로 네팔의 고문서들은 지금의 국립문서실에 보관될 수 있었다. 이 필사본이나 필름의 복사본들은 네팔과 독일에서 동시에 신청해서 볼 수 있다. 협약에 따라 독일 베를린 국립도서관에도 마이크로필름의 동일한 복사본을 한 부 보관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필사본 보존 프로젝트는 종결되었지만, 이 방대한 양의 문서에 대한 카탈로그 사업(NGMCP)은 독일 함부르크 대학의 지휘 아래 아직 진행되고 있다. 이 카탈로그 프로젝트 역시 2014년 봄쯤에 종결될 것으로 보이는데, 문서들에 대한 기본적인 서지정보는 인터넷(http://catalogue.ngmcp.uni-hamburg.de)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문서 보존의 주역, 네팔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