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숭은 어디 사람인지 자세하지 않다. 어려서 도에 들어와 계율로써 절도를 지켜 칭찬을 받았다. 게다가 민첩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뜻을 경전의 기억에 두텁게 두었다. 더욱이 법화 일승의 가르침[法華一敎]에 뛰어났다.
일찍이 상주(湘州)의 녹산(麓山)을 노닐 때에, 산의 정령[山精]이 부인으로 나타났다. 법숭을 찾아와 수계(受戒)를 청하고는, 머물던 산을 희사하여 절로 사용하게 하였다. 법숭이 머물러 조금 지나자, 교화가 상주 땅을 두루 적셨다.
그 후 섬현(剡縣)의 갈현산(葛峴山)으로 돌아왔다. 초가집 암자에서 개울물을 마시며, 선정(禪定)의 지혜로 기쁨을 취하였다. 동구(東甌)의 학자들이 다투어 찾아와 모여들었다.
노국(魯國)의 은둔하는 선비 공순지(孔淳之)와 만나, 해가 다하도록 즐거이 노닐었다. 문득 이틀 밤을 묵으면 다시 돌아갈 것을 잊었다. 마음을 열어 몰록 들어맞으면 스스로 마음에 꼭 맞는 사귐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법숭은 한탄하였다.
생각을 인간 세상 밖으로 멀리한 지
30여 년이건만
일산을 기울여 머리를 맞댈 벗을 만나다니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는구나.
그 후 공순지와 이별하여 떠돌았다. 법숭이 시를 읊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아직도 마음과 눈에 남아 있거늘
산림의 선비는
가더니 돌아오지 않누나.
이 시는 이와 같은 사람(공순지)을 일컬은 것이다.
법숭은 후에 산중에서 세상을 마쳤다. 『법화의소(法華義疏)』 네 권을 지었다고 한다.
∙석도보(釋道寶)
당시 섬현의 동쪽 앙산에 석도보가 있었다. 성은 왕(王)씨이며, 낭야 사람이다. 진(晋)의 재상인 왕도(王導)의 아우이다. 어린 나이에 불법을 믿고 깨달아, 세상을 피해서 영화를 마다하였다. 친구들이 충고하며 말렸으나 제지할 수 없었다. 향기로운 탕에서 목욕하고, 곧 나아가 머리카락을 깎으려 하였다. 이때 시를 지어 읊었다.
만 리의 강물이 처음에는 술잔에 넘치는
작은 물에서 시작된 것임을 어찌 알랴?
후에 그는 배움의 행실로 세상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