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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인사 나눕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날이 갑자기 봄날이 됐어요. 그렇죠 지난주만 해도 또 엄청 춥다가 이제 좀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 여러분들 영육이 강건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제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다루면서 여호수아라고 하는 한 인물 그의 고백과 또 그 결단을 함께 이 시간 나누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땅에서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예로 살아온 민족입니다. 노예이기 때문에 뭔가를 배우는 것도 또 함께 뭔가를 이렇게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전혀 이루어지지 못한 오합지졸과 같은 그러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노예로 살던 사람들이니 무슨 희망이 있고 무슨 능력이 있었을까요?
그런데 그러던 사람들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구원해내셨고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을 이끌어 주시며 훈련하셨습니다. 이제 40년의 광야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이제 들어가는 그 상황 속에서 모세를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세워지게 되죠.
그런데 워낙 앞에서 했던 모세라고 하는 인물이 너무 능력 있었고 또 놀라운 일들을 일으킨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그 뒤를 이어서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그러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수아는 그 리더십을 잘 이어받아서 그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이끌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나안 정복을 거의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온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오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여호수아라고는 한 인물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원하고요.
이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이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기 전의 모습을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를 이어서 이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몇 살 정도의 리더가 되었을까요?
아마 계산을 해보면 대략 80에서 85세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의 부름을 받았고, 모세도 80세의 부름을 받았으니까 이 여호수아의 나이가 결코 작지 않은 나이에 지금 부름을 받았다. 지도자로 세워졌다고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이 7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냈고, 또 그 점령한 땅들을 안정화시키는 과정이 17년 정도. 그래서 여호수아 나이 110세에 이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약 25년에서 30년 정도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어쩌면 여호수아의 110년의 인생 가운데 마지막 지도자로서 25년에서 30년 정도의 시간을 위해서 그전의 과정은 준비되는 과정이었다고 하는 것이죠. 먼저 여호수아는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을까요? 여호수아는 모세보다 후세대이기 때문에 이집트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종으로 태어난 사람이죠. 노예입니다. 애굽 사람으로부터 무시와 수모를 당하고 노예로서 육체적인 어려움도 겪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던 그의 그 어린 시절이 오히려 나중에 가난한 땅에서의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는 또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온실에서 화초라는 말을 사용하잖아요. 정말 평안하게 자란 사람은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잡초 같은 사람은 짓밟아도 춥고 덥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눈 깜짝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엄청나게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도자가 된 이후에 수없이 많은 역경을 지나가는 과정에서도 그는 그 일들을 든든히 이겨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특별히 여기에 계시는 우리 청소년, 또 청년, 우리 다음 세대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삶이 평탄하고 탄탄대로가 있기를 구하는 그런 신앙인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제가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어떤 어려움도 허락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허락해 주세요라고 하는 그 기도가 오히려 더 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거예요.
우리 대부분은 안전한 삶, 평안한 삶을 너무나도 원합니다. 근데 여러분 요즘 우리 주변을 이렇게 둘러보십시오.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평안합니까?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그 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얼마 전에 일어났었죠. 또 뭐 번개 맞을 확률보다 더 낮다고 하는 비행기의 추락과 비행기의 폭파 사건이 얼마 전에 우리 앞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그러한 곳은 그런 어떤 장소는 그러한 또 어떠한 운송 수단은 안전하다. 나름대로 우리는 생각했지만 그러한 일들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수없이 발견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안전한 곳 평안한 곳 그곳을 찾기에 갈급해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인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안전과 평안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여호수아는 모세 시종 역할을 했습니다. 40년의 그 광야 생활 속에서 모세를 철저하게 모세의 순종하는 삶을 살았어요. 모세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는 모세를 정말 따라다니며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그런 순종의 자세를 가진 이 여호수아가 때가 되었을 때에 리더로 발탁되게 된 거예요.
여러분 순종과 인내가 없는 그 과정 속에 우리가 리더가 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큰 차이가 뭘까요? 두 명 다 왕이었던 사람들이죠.
그런데 사울은 순종과 섬김, 인내와 연단의 기간이 전혀 없이 갑자기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는 왕이 되자마자 바로 타락해버려요.
근데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 젊은 나이에 황금기의 시기를 도망자로 살아갑니다. 정말 억울하게. 그런데 이 다윗은 어디를 가든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 어려움의 시간, 죽음의 위협 속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 역경을 다 이겨낸 과정 이후에 왕이 되었을 때에 다윗은 물론 왕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잘못들이 있긴 했지만 이스라엘에서 가장 이상적인 왕, 가장 사람들이 존경하는 그런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아무런 고통 없이 인내의 시간 없이 순종의 시간 없이 그냥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모세 밑에서 철저하게 순종하고 훈련받고 나아가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도 리더들이 있는데요. 여러분 리더들이 이러한 리더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이제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소그룹원들, 부서원들을 잘 세워주셔야 돼요. 내가 리더니까 내 말에 무조건 순종해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겸손하게 순종하며 섬김의 모습을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본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호수아가 모세를 이어 다음 지도자가 된다고 했을 때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우리가 모세를 따랐던 것처럼 여호수아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고 반응합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가 된 이후에 정말 그 가나안 정복이라고 하는 정말 너무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이루어냈어요.
그런데 이 여호수아가 그런 가나안 정복 전쟁을 정말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그리고 그 리더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여호수아라는 사람 자체가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이게 여호수아의 삶의 핵심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여러분들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 그리고 그 사건이 이제 처리되고 난 이후 여호수아의 행동을 보면 여호수아는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이걸 해야 될까요? 안 해야 될까요?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고 나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거예요. 늘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여호수아가 누구에게 배운 걸까요? 바로 그 전대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배운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들 가운데 나는 좀 신앙이 연약해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동력자들 가운데 저분은 좀 믿음이 정말 좋은 분 같아 저분 같이 나도 믿었으면 좋겠어라고 하는 생각하는 그런 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그분들과 함께 신앙생활하면서 배워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는 그러한 애쓰는 모습, 그 모습들을 여러분들이 배워간다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그 사람처럼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죠. 내가 보고 배우며 또 나도 그런 사람이 될 때, 또 내 이후에 내 믿음의 후배들이나 내 자녀들이 나를 보며 배워가는 그것이 바로 믿음의 선순환입니다.
저는 우리 소그룹 안에 그러한 믿음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또 우리 부모와 자녀 간에 믿음의 선순환이 일어나는 가정들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저는 요즘 TV를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기독교도 지금 이렇게 갈라져 버렸습니다. 기독교 단체 중에 어떤 단체는 탄핵을 어떤 단체는 이제 풀어놓으라고 불복하는 이 두 개를 지금 주도하는 세력 중에 주축 세력이 기독교 단체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요. 뭘 지금 드러내기 위해서 저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할까 오히려 지금 그런 행동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오는 걸림돌이 되는 걸 왜 모를까라고 하는 그 마음에 안타까움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여러분 여러분들 가운데도 혹시 나는 사람 저 사람처럼 믿으려면 안 믿을 거야. 나는 저 사람 때문에 교회 못 나가겠어 이런 사람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엄마 아빠 같이 믿는다면 나는 안 믿고 싶어 이건 악순환인 거예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 공동체나 우리 가정에는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공동체와 가정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모세를 이어서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그 모세를 따라서 그가 하나님 앞에 먼저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뜻을 붙들어 그 사명을 감당했어요. 물론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늘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실제적으로 가나안 정복 전쟁은요 말도 안 되는 전쟁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거예요. 전투 경험도 없고요. 그들은 무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지금 놓여져 있는 것은 강력한 가난한 군대이고 또 철옹성과 같은 요새 같은 그런 성벽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호전적이고 잔인한 그런 군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과 싸워야 했다는 것이 가나안 정복 전쟁이에요. 근데 이 전쟁에서 그들이 싸웠고 승리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어요? 그 전쟁은 이 사람들의 힘으로 이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크고 강하고 무지막지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절대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시니까요. 하나님이 싸우시니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데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 어떤 환경 가운데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게 더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 그 어떠한 문제라도 커 보이지 않게 되는 은혜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그 어떠한 문제도 커 보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염려와 근심과 불안이 우리를 짓누르고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게 합니다. 혹시라도 여러분들 삶 가운데 나 어떡하지 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마음으로 짓눌리는 그런 분들 계시다면 먼저 그 문제를 걱정하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우리라면 어떠한 불안과 걱정과 염려가 다가올 때 그때 사람을 찾아가고 또 어떠한 장소를 찾아가고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찾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모든 문제는 해결될 줄 믿습니다.
미국 대통령 링컨이 남북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그때 아주 중요한 전투가 벌어지는 과정 속에서 장관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대통령님 이제 우리가 드디어 전투를 벌이는데 과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실까요?
그때 링컨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복에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해 주신다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느냐의 문제지
예 맞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늘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걸 우리가 모르고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신앙생활하면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는 삶,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 왜 이런 걸 강조할까요? 여러분들에게 뭔가 책임감을 부여하고 그걸로 짓누르려고 여러분들 말씀으로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제대로 살아가려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는데 그냥 믿습니다 하고 믿는 게 아니라고요. 알아야지 믿죠. 하나님을 붙들어야죠. 그래야지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염려와 불안과 걱정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도 아는데도 알기만 하고 여전히 붙들지 않는 그런 우리가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길 원해요.
여호수아는 그러한 본을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호수아가 이제 인생에 마감하는 시점에 와서 그 백성들을 모아놓고 지금 선포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인데요. 이때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금까지 놀랍게 인도하셨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를 토대로 그들에게 도전합니다. 그게 바로 오늘 읽은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여호와만 섬겨야 된다. 너희들 앞에 많은 신들 너희들이 지금 보고 있는데 그 신들 가운데 여호와만 섬겨야 된다.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 이게 바로 여호수아의 그런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어쩌면 이 14절과 15절이 여호수아서 전체의 핵심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엄청난 인도하심 놀라운 역사 가운데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반응하여서 이제는 결단하고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 이게 지금 여호수아가 마지막으로 하는 선포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섬겼던 강 저쪽에서 섬겼던 신들, 또 이집트에서 섬겼던 신들, 그리고 지금 가난한 민족들이 섬겼던 신들, 그런 신들을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이게 바로 여호수아가 결단을 요청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16절부터 18절입니다. 반응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대답합니다.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겠다. 그러면서 그들도 지금 다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걸 인정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서 지금 우리가 이곳에 왔고 또 가나안에 정복하는 그 모든 전쟁에서도 하나님이 이 모든 일들을 해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단합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볼 때 이 이야기를 들으면 흡족해야 될 것 같죠 그렇죠 그래 너희들이 나처럼 영원만 섬기겠다고 결단했으니 흡족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뒤에 이야기를 듣고 나면 여호수아가 만족하지 못한 채 또 다시 그들에게 강력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19절 말씀 이후에 보면 한번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의 생명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이라 만일 너희가 발을 벌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너희에게 돈을 내리신 으로 불러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아멘 지금 이 19절과 20절의 분위기를 지금 우리 말로 좀 이야기를 해보면 이런 분위기입니다. 이제 하나님만 섬깁시다고 하니까 성도들이 아멘 할렐루야 막 하는 거예요.
근데 여호수아가 그럽니다. 아니 니들은 못해 니들이 지금 말은 한다고 하는데 니네들은 그렇게 못해 굉장히 뭔가 분위기가 고조되고 뭔가 이렇게 다들 아멘 할렐루야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을 향해서 아니 너희들은 못해 여호수아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실이 된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고 그들이 선포하고 있지만 그래 한번 해봐.
그런데 너희들은 안 돼 지금 여호수아의 말이 이런 느낌이에요. 지금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그들이 입술로는 고백하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그들이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호수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지금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고백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가난한 민족들이 만들어 놓은 신들은 가짜이고 우상인 걸 그들은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좋아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인도해 주셨고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지만 옆에 보니 저 신도 뭔가 매력이 있는데 그러면 이 하나님도 섬기고 이 신도 섬기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 하나만 섬기는 것보다는 아니 두 개 섬기는 게 3개 섬기는 게 네 개 더 유익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에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그 괄호치고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은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다른 신도 섬기겠습니다고 하는 그 말들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여호수아는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안 된다. 너희들은 불가능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미 이방신들을 섬기는 종교 환경에 그들이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참된 하나님과 거짓신을 구별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백성들이 아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 이집트에서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에서 붙들어 주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셨던 하나님, 싸움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래서 그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하나님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입니다. 이러한 신앙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도하셨기에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정도로만 여기는 거예요. 마치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켜주셔야 할 그런 당연히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셔야 할 그런 하나님으로만 인식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어쩌면 우리의 신앙의 여정 가운데 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고백하지만 뭘 믿는다고 하는지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과거에 믿었던 다른 어떤 종교의 신 그 신과 지금 예수님을 믿는 것과 뭐가 다른가를 한번 점검해 보십시오. 저는 지금 저 밖에서 뭔가를 외치면서 지금 선포하는 그 신앙인들 가운데 말씀을 좀 점검해 봐야 되는데 뭘 놓치고 있냐면요. 그들이 지금 믿음으로 막 그들이 막 선포하거든요. 하나님이 우리 편인 줄 믿습니다. 막 선포해요. 서로 막 양쪽이 다 하나님이 자기 편이래 과연 어느 편을 들어주실지 궁금합니다.
근데 여러분 말씀을 기초해서 보면 그들이 지금 어떤 쪽으로 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냥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을 하나님을 갖다 놓은 겁니다. 근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일들이 너무 비일비재해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문제가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 정도로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뭔가 필요할 때만 도깨비 방망이처럼 만들어주실 수 있는 분으로 하나님을 우리가 취급해버려요.
하나님이 그저 여러분들의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분으로만 생각하십니까? 마치 내가 필요할 때 선물을 갖다 주는 산타클로스 같은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난 정복 전쟁 이후에 지금 10년 정도 좀 더 지난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좀 살 만해졌습니다. 좀 뭔가 평안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만해져 버린 거예요. 괴로울 때 그들이 정말 갈급할 때 위기의 순간에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좀 살 만해지니까 해이해진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려고 하는 생각들이 점점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지금 자기가 생명을 마감하는 그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다시금 그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붙들고자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너희들 원하는 너희들 뜻대로 원하는 대로 하는 자기 중심적인 신앙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길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여기서 다 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이 과연 우리 모두의 예배를 다 받으실까요?
가인과 아벨이 똑같이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를 받은 예배가 있고 그렇지 않은 예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두 가지 대표적인 성품을 언급하고 있죠. 19절에 보면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거룩하다.
여러분 이 거룩은 다른 신들과 구별하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 또한 이 거룩한 성품을 따라 우리도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거룩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냥 사람들 앞에서 뭔가 이렇게 목소리 굵게 내고 뭔가 거룩한 척하는 그런 모양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구별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면 지금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한다는 거죠.
두 번째로 그분은 질투하신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 외에 또 다른 것들을 섬기면서 따라가는 그것을 하나님은 바라보는 사람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누어진 마음으로는 절대 섬길 수 없는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우리가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긴 채 이곳에 앉아 있다면 지금 우리 그 마음을 먼저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도 쉽게 눈을 팔기 좋은 환경이었다는 거예요. 과거에 이집트에서 섬겼던 신들도 봤죠. 또 강 저편에서의 그런 우상들도 봤죠.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이 우상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에게 시선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말은 동일하게 선포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눈을 떠보면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신 강 저편의 신, 또 가난의 신 그런 것들이 좋아 보이는 것처럼 여러분들의 시선에 너무나도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 저걸 좀 하면 행복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들 참 많아 보일 수 있어요.
그리고 오히려 그런 것과 비교할 때 신앙생활은 뭔가 고리타분하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여러분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재미없는 곳일까요? 예전에 우리 아이가 하나님의 나라를 두려워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하나님 나라가 무섭대요. 그래서 왜 그랬더니 하나님의 나라 가면은 맨날 하나님만 찬양하고 있는 거예요. 맨날 그 하프 연주하면서 찬양만 하고 있고 맨날 예배만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서 영원히 살아야 돼.
여러분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 거기는 지옥일 겁니다. 맨날 그것만 하고 있으면 지옥이죠. 그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우리가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하나님과 누리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 가면 여러분 아무런 일도 안 하고 그냥 맨날 그냥 땡 하면 나오고 그런 식으로 살아갈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깨어짐 때문에 우리가 상처받고 아픈 그런 깨어짐들이 완전히 사라진 그 나라가 이제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상상이 잘 안 되죠. 하지만 분명한 건 그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 하나님과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 어떠한 근심도 걱정도 눈물도 없는 곳이에요.
근데 중요한 건 죽고 난 이후에 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로만 우리가 여기지 않고 이미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이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나라 됨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가 행복함과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죽은 이후에만 기쁘면 안 되잖아. 여호수아가 이렇게 강력하게 경고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에 이어서 또 반응하는 장면이 21절과 22절에 나옵니다. 다시 말하죠.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다. 여호수아가 계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말하는데도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 그렇게 할 거예요. 할 거예요. 할 거예요라고 말을 하니까 이제 여호수아가 그다음에 한 말이 이겁니다. 이제 이방신들을 치워버리고,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을 치워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해라. 이제 너희들 하나님 섬기겠다고 말했지 결단했지. 그럼 말로만 끝내지 말고 이제 첫 번째 너희 안에 있는 이방신들을 버려라. 그리고 두 번째로 너희의 마음을 주 하나님께로 바쳐라.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나님 헌신합니다고 우리가 결단하는 우리의 입술의 고백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원합니다. 섬기던 신을 버려놓지 않으면 내가 가지고 있으면 이건 언제든지 또 나를 유혹하는 거리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런 죄를 짓게 됩니다. 이방신을 버리지 않은 채 하나님을 섬기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죠.
여러분 지금 내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믿음으로 고백하는데 과연 내 삶에 하나님 외에 내가 의지하고 그것을 따라가는 버리지 못하는 잘못된 우상과도 같은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나를 자꾸 하나님께 멀어지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지 않은지를 여러분들 발견하고 그것들을 먼저 치워버리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난 이후에 이제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 뒤쪽에서 이제 여호수아가 이렇게 합니다. 율례와 법도를 제정해요. 그리고 또 바로 이어서 율법 책에 기록하고 큰 돌에다가 이 내용들을 기록하여서 이 돌을 증거가 되게 합니다. 그러니까 율법 책에 기록하고 또 큰 돌을 세워서 이제 그 돌을 보면서 이제 증거 삼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하는 결단을 명확하게 하는 약속을 한 거예요. 얼마나 철저하게 여호수아가 반복적으로 그들에게 결단을 요구했고 또 철저하게 이렇게 마무리를 했습니까?
근데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다 해놓고 각자의 기업으로 돌아갔는데 결국은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그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했습니다. 다 하겠다고 언약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바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뭐예요? 예배 생활하면서 여러분들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또 우리가 그 말씀 가운데 그 말씀을 실행하는 과정들 근데 그 과정에서 여러분들 하겠습니다. 아멘으로만 그치지 않고요. 행동으로 따라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움직여야 돼요. 버리라고 했으면 버리고 취하라고 했으면 취하고 따르라고 했으면 움직이고 행동이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11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우리도 결국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오겠지요. 한 번뿐인 인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건 과연 내가 내 삶을 마감할 때 내게 주신 사명,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면서 가지신 목적을 나는 과연 얼마나 이루면서 살았는가 그냥 그저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만, 하루하루 내 가족들 챙기는 일에만 나는 집중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믿음의 계보가 나에게서 끊어지지 않고 내 자녀에게 내 이웃들에게 확장되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도전하며 이야기합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미루지 말고 오늘 택하라. 누구를 섬기겠느냐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며 살아가겠느냐 하나님만 섬기겠느냐 대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백을 다시 한 번 기억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우리 한번 제목을 같이 읽고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작.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길 원하고 고백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살아감으로 여러분들의 삶을 통해서 귀한 은혜의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