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신 17:15)
2024년을 지나는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혼돈의 위기 가운데 옳고 그름은 희미해지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태로 인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의미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2024년 추수감사주일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겸손한 믿음을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세 절기(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가운데 초막절은 마지막 절기로 한해 농사를 마치고,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수확의 풍요로움과 더불어 농사의 마무리를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어떤 한 해를 보냈는가 돌아볼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삶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시기보다 힘들고 고된 시기가 기억에 오래 남는 경험이 종종 있습니다. 좌절과 낙심하는 우리를 등에 업고 걸어오신 예수님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너와 네 자녀와 노비,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14절)’와 함께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이 더불어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는 가운데 소외되는 이가 없어야 했습니다.
명절은 민족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타국에서 한국의 명절을 지내는 시기에는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땅이지만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이 명령한 법도를 행하며 구별된 삶을 살기를 요구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지키는 가운데 이스라엘 공동체 구성원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혈통적 유대인의 구분뿐만 아니라 성중에 공존하고 있는 객과 고아, 과부까지 함께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혈연에 의해 구별된 유대인의 정체성은 현대 사회에서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투에서 드러나는 혈연을 강조하는 독선이 무차별한 민간인의 희생까지 야기하고 있습니다. 혈연에 바탕한 민족적 제한을 두지 않는 구약의 전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에게서 시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민족적 정체성에 제한되어서는 안됩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민족에게(마 28:19) 예수님이 부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하는 선교적 과제가 절기를 지키는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곳에서 하나님 ‘앞에서’ 이레 동안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15절). 하나님 앞에 선다는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단어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직과 공의가 펼쳐지고 선포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왕)의 역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상의 산당을 세우고 우상 숭배를 하고, 백성을 지켜야 할 힘을 가지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는 악행이 성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과 공의가 세워지는 이스라엘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출과 그들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다(15절)’고 약속하셨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을 하면서 삶의 양태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농업은 삶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입니다. 농사가 여전히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농사가 힘든 이유는 수고한 만큼 수확해야 하는 일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수고한 대로 먹는다(시 128:2)’고 노래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겸손한 믿음의 삶을 축복합니다.
2024년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되고 즐거운 시간을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고달픈 삶의 무게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우리의 현실은 무겁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고 풀무불 속에 던져지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대하지만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단 3:18)’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 앞에 선 자라도 여전히 삶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바다교회 가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