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의사조력사망(자살)과 관련된 암시장의 활성화 가능성
교수님께서
제시해 주셨던 의사조력사망(자살)과 관련된 암시장의 활성화
가능성의 반박 근거에 대하여 말씀 드려보고자 합니다. 의사조력사망이 허용될 때 이것이 사업 아이템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국가 내 의사조력사망의 불법 여부를 막론하고, 암시장에서의 거래는 지금도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암시장의 규모는 의사조력사망이 허용되었을 때보다, 의사조력사망이 허용되지 않을 때 더 크리라 사료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음지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의사조력사망을 양지로 끌어올려 합법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고통에 잠긴 의식들을 더욱 위하는 길일 것이며 그들의 행복추구권, 웰다잉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마지막까지 보듬어줄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죽을 권리’도 돈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국병원협회의 켈라시 챈드 부회장은 돈을 가진 사람들은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가서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택하는 반면에 돈이 없는 다수는 영국에서 고통 속에서 살며 고생하다가 죽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판례와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하여 좁은 범위의 존엄사 내지 소극적 안락사만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조력사망을 허용하지 않으니 다른 나라로 떠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드러났습니다.
의사조력자살을
결심한 환자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엑시트 인터내셔널(Exit
International)’, ‘이터널 스피릿(Eternal Spirit)’ 단체들은 자국민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의사조력자살이 가능하도록 돕습니다. 실제로
2016년과 2018년에 한국인 2명이 공식적으로
‘디그니타스’ 단체를 통하여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 세 단체는 한국인 회원 107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회원의 숫자가 의미하는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아 보입니다.
제도가 불법으로
다루어지는 나라에서 더욱 암시장이 커집니다. 그것은 한 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시장입니다. 수요가 절실한 이들은 더 이상 의사조력사망,
마약, 성매매에 대한 수요를 국경 안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수요가 있다면 공급은 존재합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에서 스위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의사조력사망을 행할만큼 간절한 사람이 있으며, 또 스위스에서 공급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한 국가 내 입법화를 제지한다고 하여 억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볼 수 있는 양지로 끌어올려, 보여지는 곳에서 관리하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타당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의무에 합치하는
적절한 조치일 것입니다.
자아는 실재가
아닌 가상의 것임을 고려한다면, 앞서 언급한 마약, 성매매
행위는 이 토론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사조력사망은 이들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자아에 한정되지 않는 온통 하나의 투명한 의식으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자아가 아닌 의식입니다. 우리는 연극
전체 안에 존재하면서도 스스로 그 연극 안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망각해버리고 우리의 실체를 몸으로 한정 짓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몸과 세상 만물과 관계 없이, 의식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며 투명한 의식만이 유일한 진실입니다. 이미 우리의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습니다. 몸도, 자아도 우리도 죽거나 죽음을 체험할 수 없으므로 마침내 죽음은
없다는 진실에 도달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죽어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미 우리는
죽어있었고, 그 자리에 있던 의식 그대로 연극을 감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죽는 다는 것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음은
우리가 현재 있는 자리로 결국 돌아오는 게 만드는 것 뿐입니다.
다음은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유방암 말기 환자의 말입니다.
"나는 언니와 아버지 그리고 사위가 암으로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았다.
희망이 없는 그들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은 징벌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 세상 잘 살았고 오래
살았다. 이제 와서 죽음에 대해서
무서워하지 않는다. 다만 질환인 암이 주는 고통이 두려울 따름이다."
이미 남은 삶이
가져다줄 고통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사회적으로 건강한 영향을 주며 생활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스럽습니다. 안락사를 거부함으로써 늘어만 가는 자살률은 결국 사회에 더 큰 악영향으로 돌아올 것이며, 사실 이미 여러 사회 병리적 상황들이 보여주는 지표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또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육체적 고통은 차치하고서라도, 생활비, 의료비, 간병비에
허덕이는 상황 역시 고려하여야 합니다.
한국은 법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습니다. 문제 발생 시 각 사건별로 법원의 판단을 받는데, 처벌의 기준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의사조력사망이 합법화된다면 그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사각지대의 해소를 위하여, 점진적으로 환자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완벽히 제도를 취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법을 도입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합법화의 초기 단계로써, 영국의 사전결정(Advance decision) 제도를 우선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합니다. 영국의 경우,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미래에 본인이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하여 사전에 특정 치료를 거부하는 사전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물론 완벽한 조치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사를 피력하는 의사조력사망의 합법화의 초석 단계로 생각한다면, 천천히 시간을 갖고 법제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생각됩니다.
<참고자료>
이문호, “자유롭게 살고 유쾌하게 죽기”, 유원북스, 2020
이문호,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 허용 입법의 필요성”, 인권과 정의, 2019
서울신문, “한국인 2명
스위스서 안락사… ‘존엄한 죽음’ 화두를 던지다”, 2019
한겨레, “너의 ‘살 권리’만큼 나의 ‘죽을 권리’도
절실하다”, 2015
첫댓글 이미 우리의 목적은 모두 달성되었습니다. 몸도, 자아도 우리도 죽거나 죽음을 체험할 수 없으므로 마침내 죽음은 없다는 진실에 도달합니다.---좋은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