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4년에 발행된 상원군수공 위동전의 초료장이 5월 2일 인사동 고문서 경매시장에 나왔다. 희귀한 초료장이라서 가치가 높게 평가돼 예상 외로 응찰자들의 경쟁이 붙으며, 고가에 낙찰되었다.
본 문서는 1704년 상번 영리의 구체건, 구척 2인과 출사 군관 위동전의 편의를 제공되도록 발행된 초료장(草料狀)이다. 통상 병조에서 본인에게 교부했다. 관청으로서도 이 증서를 가지고 있는 왕래인이 오면 초료를 제공해야 한다. 일종의 명령서이다.
"康熙四十三年二月日 光山縣去 ㅇ月朔持 草料 往來人 成冊/
巡營 草料 上番 營吏 具體建 具惕/
從馬幷以 正月十二日 行過 本縣
巡營 草料 出使軍官 前 郡守 魏東筌/
負袱人一名 軍牢一名/
從馬幷以 正月二十九日 行過本"
주) 巡營 : 팔도에 파견된 감사가 직무를 보던 관아.
주) 上番 : ①지방의 군인이 일정한 기간 동안 서울로 번(番)을 들기 위하여 올라감. ②군인이 번(番)을 들 차례가 되어 영문(營門)으로 들어가는 것.
주) 營吏 : 조선 시대에 감영(監營)이나 군영(軍營) 등의 본영(本營)에 딸린 이속(吏屬).
주) 草料 : 조선 시대, 공무로 출장 가는 관리에게 숙식 등을 제공할 것을 명하는 명령서.
주) 光山縣 : 조선시대 광주 지역[현 광주광역시 일대]의 별칭.
주) 從馬 : 관아에서 귀한 분을 모시기 위해 보내는 말
¤ 풀이
1704년 강희 43년 2월 광산현 순영(巡營) 초료장(草料狀)
조선시대 병조에서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에게 종인(從人), 마필, 숙식 등의 제공을 명하는 문서. 증명서.
조선시대 100리 이상 여행하는 군·관·민에 대해서는 노인(路引)이라는 여행허가증을 병조에서 발급하였다. 여기에는 신분·연령·적관(籍貫), 휴대품의 물목(物目)과 수량 등을 기 재하였다.
초료(草料)란 말에게 먹이는 꼴과 관원이 먹는 곡식을 의미하지만 더불어 숙식과 종인, 역마 등의 제공까지도 포함한다. 여행하는 관원은 병조 또는 소속 관의 장으로부터 초료 문서를 받아 여행하는 각지의 역 및 관에서 자신의 신원과 각종 편의 제공에 대한 증명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겸임한 순찰사의 군영인 순영의 공무를 위해 근무 교대차 당직이 있어 상번인 영리 구체건과 구척이 본 광산현을 1월 13일 지날때 마필을 제공하라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가 겸임한 순찰사의 군영인 순영의 공무를 위해 출사한 군관 전 군수 위동전이 1704년 1월 29일 본 광산현을 지날때 역에 소속된 짐꾼인 부보인 1명과 옥졸 1명을 마필과 같이 제공하라 [문서에(從馬)라고 표시되어 있다]
관아에서 귀한 분을 모시기 위하여 보내는 말을 '종마(從馬)'라고 한다.
¤ 상원군수공 위동전(魏東峑, 1649~1713, 장흥위씨 23세, 판서공파) :
父는 후금 회답사를 사행한 병조참판공 정철(廷喆)이며, 祖는 임진왜란 때 언양현감을 지내고 호성·선무공신으로 호조판서에 추증된 덕화(德和)이다. 1676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1684년 함경도관찰사 취몽헌(醉夢軒) 이수언(李秀彦)을 보좌하였다. 1688년 12월 정략장군행의흥위우부장(종4품 상), 1689년 2월 소위장군행용양위우부장(정4품 하), 1689년 12월 진위장군행용양위우부장(정4품 상), 1690년 2월 보공장군행용양위우부장(종3품 하)을 거쳤다. 이후 1693년 6월 23일 정3품 하의 통훈대부행거제현령(巨濟縣令)에 임명되었다. 그후 1696년 병조판서에 봉직(奉職)하던 민진장(閔鎭長)의 추천으로 그 휘하에서 근무하다가 1697년 충청감사 민진후(閔鎭厚)를 수행하고, 1698년 충청도감진어사 민진원(閔鎭遠)을 수행해 섬 지방 주민들을 진휼(賑恤)하였다. 이때의 公의 공로를 숙종(肅宗) 임금에게 알리자 조정에서는 통훈대부행상원군수(祥原郡守)로 제수되어 주민을 크게 교화시켰다. 1699년 사헌부감찰을 지낸 후 1702년(숙종 28) 4월 16일 통훈대부행진도군수(珍島郡守)로 임명되어 9월 28일까지 제158대 진도군수로 재임하다가 문충공(閔鎭遠)이 전라도관찰사 임무를 맡게 되자 진도군수 직을 포기하고 그를 수행했다. 1710년 4월 28일 통훈대부행남해현령(南海縣令)으로 임명되었다. 다수의 사람 목숨을 구하고 선정을 베풀어 그 功으로 1713년 1월 16일 절충장군(折衝將軍 정3품 上)에 승계했다. 1713년(숙종 39) 4월 절충장군행 용양위부호군에 제수되어 그해 7월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