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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는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가 끝난 후 서울 방학동의 허름한 한 옥탑방 앞에서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로 집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 칸 짜리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에 신문지가 덮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현우가 태어날 무렵부터 파출부 일을 하고 계셨
다. 그로 인해 현우는 밤 9시에나 들어오시는 어머니와 얼굴 볼 시간이 적었다. 아버지는 현우가
두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아무 것도 없는 현우는 아버지
가 아기였던 자신을 안고 어머니와 함께 찍었던 가족 사진을 언제나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현
우는 이제 갓 대정 공업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학교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들로 부터도 별다
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하던 현우는 학교 성적도 평범했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 그저 그
런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자 존재였
다. 비록 사진으로 밖에 만날 수 없지만 아버지의 음성이나 품행이 상상으로서 현우에게 힘이 되
어 주었다. 현우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오면서 공원에 놀러가거나 음식을 먹으러 가는 외식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파출부라는 직업이 사춘기였던 현우에게는 굉장히 창피하고 부
끄러운 일이었고 어쩌다가 길에서 어머니와 마주치게 되면 다른 길로 가거나 고개를 숙이고 어머
니를 피해다니는 일이 잦았다. 아니 그렇게 모른척 지나갔다. 현우는 태어나서 지금껏 한 번도
단칸방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낡고 다 쓰러져가는 다세대 주택의 맨 꼭대기 옥탑방이 그가 생
활해온 집이었다. 초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친구들을 집으
로 데려올 수 없었고 방과후에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거나 어디를 놀러갈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아버지 없는 현우를 놀려대며 따돌렸고 현우는 외로움에 못 이겨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늦
은 밤에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왜 이렇게 우리 집은 가난한 거냐며 대들었고 어머니
는 그런 현우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아들 몰래 가슴앓이를 했다. 현우가 성장하여 고등학생이 되
자 입학식 날에 아들의 모습을 보기위해 잠시 짬을 내서 학교로 달려온 어머니를 외면한 것은 현
우였다. 현우는 낡고 오래된 갈색 바지와 부분 부분이 뜯겨져 꿰맨 꽃무늬 셔츠를 아무렇지 않게
입고 온 어머니가 자신을 찾자 어머니 몰래 다른 곳으로 숨었다. 결국 입학식 날 찾아온 어머니
를 만나지 않고 현우는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현우의 속도 모르고 그 날 밤 자신이 아
들을 못찾았다며 현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현우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
상 위에 덮인 신문지를 걷어내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현우는 옥탑방의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이 것은 현우의 유일한 취미였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달과 별들이 반짝일 때 까
지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집으로 오기위해 계단을 하
나씩 밟으며 오고 있었다.
현우가 잠에서 깨자 벽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도시락을 싸서 현우
의 잠자는 머리 맡에 놓아두고 일하러 나가신 뒤였다. 현우는 이불을 개고 집 밖의 수도꼭지를
틀어서 세수를 한 뒤에 회색 바지와 흰색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남색마의를 입은 후 학교에
등교했다. 현우가 학교 교문에 이르자 머리와 교복이 불량한 학생들을 단속하는 학생주임 선생님
이 몇 몇 학생들을 교문 앞에 꿇어 앉히고 머리를 나무 매로 쥐어 밖아 때리고 있었다. 현우가
교문 앞을 지나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자리인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의 창가가 있는 자리
에 앉았다. 교실 안에는 8시가 가까워지자 학생들이 점점 들어차고 있었다. 잠시 후 8시가 되고
담임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 학생들 앞에 섰다. 그리고 출석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김가람"
“예."
“윤윤석"
“예.."
출석체크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1교시는 수학이었다. 책상에 누워자는 학생들과 수업을
집중해서 듣는 학생들이 보인다. 현우는 창 밖에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삼삼오오로 모여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현우는 플라스틱 도시
락을 꺼내 혼자서 먹기 시작했다. 반찬이라곤 김치가 전부였다. 그 때 도시락 반찬을 뺏어먹는
3명의 아이들이 현우에게 다가와 반찬이 이게 뭐냐며 한마디씩 던졌다. 현우는 자신을 놀리며 웃
고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양손을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때 한 아이가 도시락이
쓰레기 같다며 말하자 현우는 참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세명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순식
간에 아수라장이 된 교실에서 다른 반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현우는 아이들이 둘러싼 공간 안에서
세명의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그 때 몰려든 학생들 틈을 비집고 교실 안으로 들어온
학생 주임 선생님이 맞아서 쓰러져 있는 세 명의 학생들을 보고 현우에게 다가가서 뺨을 세차게
때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내일 아침 모시고 오라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는 학교로 불려
왔고 교무실 안에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연신 죄송하다고 빌었다. 다 낡아빠진 옷으로 선
생님께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어머니를 현우는 매우 창피해했다.
현우의 싸움 소문이 다른 반에까지 퍼졌고 싸움 집단인 일진회에서 몇 명이 현우의 교실로 찾아
왔다. 그들은 현우에게 일진회 가입을 명령했다. 현우는 일진회에 가입하면 누구도 자신을 깔보
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의를 따랐다. 점심시간이 되자 학교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일진회의
한 아이의 말을 듣고 현우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는 고등학 교3학년 선배들과 2학년 아
ss이들 그리고 1학년 후배들까지 서른명 가량이 모여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일진회의 리더가 현
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김현우라고 했냐? 오늘부터 너희 반은 니가 맡아. 있는대로 걷어와."
“뭘 말입니까?"
현우가 묻자 리더가 현우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야, 이자식 유머있는데? 알아서 걷어. 중간에 돈 빼돌리지 말고."
리더가 현우의 주위를 건들 건들 걸으며 말했다.
“오늘 방과 후에 옆 학교와 싸움이 있다. 10대 10이야. 전쟁이지. 3학년들은 피곤하니까 빠지
고 일,이 학년 위주로 뽑는다."
말을 하고 난 뒤에 리더는 건들거리며 한명씩 이름을 호명했다.
“김길수, 이대준, 김형배..."
이름을 부르던 리더가 마지막으로 현우를 호명했다.
“김현우,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주먹이 맵다더군. 학교 끝나고 학교 옆의 다리 밑으로 와라."
“알겠습니다."
현우가 말하자 리더가 계단을 따라 옥상을 내려갔다.
“야, 모두 해산. 내려가."
일진회 중의 3학년 한 명이 말하자 모두 교실로 돌아갔다. 현우 역시 교실로 돌아왔다.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바라본다. 체육복을 입고 축구를 하는 아이
들이 보였다. 수업이 끝나자 검은색 옆가방을 들고 일진회인 아이들과 함께 다리 밑으로 갔다.
다리 밑에는 옆 학교 학생들이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학교 학생들은 한명씩을 내보
내 일대일의 맨 주먹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현우의 학교 일진회가 옆학교의 일진회에게 밀리자
지켜보고 있던 3학년 리더가 다음에 싸울 사람으로 현우를 지목했다. 옆 학교의 180센티미터가
넘는 다부진 몸을 가진 2학년인 아이에게 현우의 학교 일진들 이 4차례나 연속으로 지고 있었다.
반면 현우는 172센티미터의 키로 10센티가량 차이가 나는 상대를 맞아 부담을 가지고 싸우게 되
었다. 싸움이 시작되고 키가 큰 상대편이 현우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마구 날리기 시작했다. 현우
는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면서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주먹을 피했다. 상대편 일진이 오른쪽
주먹을 현우에게 내리꽃자 현우는 상대의 품 안으로 바짝 다가가서 그 주먹을 무용지물로 만들었
다. 현우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상대편의 일진의 복부를 가격했다. 여러차례 복부를 때리고 상대
방의 일진이 두 팔을 복부로 방어하기위해 내리자 현우는 오른손으로 턱을 세게 올려쳤다. 그러
자 상대방 일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옆 학교의 리더가 그 모
습을 보고 있다가 손을 흔들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 다음 상대가 나오자 현우는 물만난 물고기처럼 쉽게 쉽게 꺾어나갔다. 현우는 결국 혼자 8명
이나 이기는 괴력을 발휘하며 리더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게 되었다. 체력적인 부담으로 옆 학교
의 일진을 한 명 남겨두고 싸움을 포기한 현우를 대신해서 남은 5명이 상대방 일진과 싸웠고 현
우의 학교는 싸움을 이기게 되었다. 리더는 현우에게 수고했다며 돈 2만원을 주며 뭐라도 사먹으
라고 말하며 패거리들과 함께 사라졌다. 멍하게 서 있는 현우에게 같은 학년의 일진이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 학교 짱이 뻑 갔나보네. 주먹 좀 쓰더라."
같은 학년의 일진이 말하고 난 뒤 계단을 따라 다리 위로 올라가자 현우도 계단을 올라가 집으
로 향해 걸어갔다. 현우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돼지고기 삼겹살을 두근 샀다. 그리
고 집에 가서 냉장고에 삼겹살을 넣어두었다. 창문을 열어 담배를 꺼내 피우자 어느새 어둠이 깔
리기 시작했다. 오늘도 어머니는 높은 계단을 오르며 집으로 오고 있었다. 현우는 담배를 꺼서
창문 밖으로 던진 후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낮은 책상 앞에 좌식으로 앉아서 책을 읽기 시작
했다. 어머니가 나무로 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들 왔니? 공부하는구나?"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 문을 열며 놀라서 현우에게 물었다.
“어머나 이게 뭐야? 웬 고기가 냉장고에 있네?"
어머니는 고기가 든 봉지를 꺼내며 현우에게 말했다."
“현우야 이거 니가 사온거니?"
“고기 반찬 좀 싸줘요. 나도 고기 좀 먹어보게."
현우가 말하자 어머니가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니가 돈이 어디있다고? 너 이거 무슨 돈으로 산거니? 훔친거니? 말해 어서!"
“훔친거면 어떻고 뺏은거면 어때? 이 콩알만한 집구석에서!"
현우가 말하자 어머니가 현우의 뺨을 때렸다. 그러자 현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집 밖을 뛰쳐
나갔다.
“현우야!"
어머니는 현우를 붙잡기 위해 말렸지만 자신의 가슴이 먹먹해져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현우는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뛰었다. 힘들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속이 후련해지도록
동네를 뛰고 또 뛰었다. 다음날 아침 현우는 학교에 등교했다.
교실에서는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현우와 같은 일진회 학생들은
클럽이나 술집을 관리하는 조직에 가입하면 잘 된 일이라며 떠들어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직
에 가입하기 위해 학교의 3학년 리더의 눈에 들도록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각 학년의 반을 돌
면서 돈을 잔뜩 걷어 바쳤고 싸움이나 사소한 지시에도 열심히 움직였다. 리더가 조직과 깊은 관
련이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그런 소문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건달이나
조직에 관여하여 사는 삶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공부를 하여 선생님이나 학자가 되는
길과도 거리가 멀었고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예술계통의 일을 하는 것과도 상관이 없었다. 회사
원도 아니요 사업가도 아닌 현우가 진정 바라는 꿈은 제일 자신있는 두 주먹으로 사는 복싱선수
였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되자 현우는 복싱을 배우기 위한 적절한 체육관을 찾아 다녔
다. 시장 상인들에게 위치를 물어 어렵게 찾은 곳은 시장 안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제일 복싱
장이었다. 현우는 복싱장의 낡은 외관을 기웃거리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안에는 삐쩍 말라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샌드백을 치고 있는 젊어 보이는 남자와 줄넘기를 하고
있는 학생 두명과 잽을 내지르는 연습을 하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얼마후에 운동 중이던 삐쩍마
른 남자가 현우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학생, 어떻게 왔어요?"
현우가 머리를 한 손으로 끄적이며 말했다.
“여기 관장님 좀 뵈러 왔는데요?"
그러자 삐쩍 마른 남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복싱 배우려고?"
“예, 배우고 싶은데 관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잠시 기다려봐, 곧 오실거야. 일 보러 가셨거든. 거기 의자에 앉아."
삐쩍 마른 남자가 링 근처의 접이식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현우는 의자에 앉아서 체육관 내
부를 이 곳 저 곳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는 링이 있었고 리듬을 타기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
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얼마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흰색 점퍼에 노란 줄무늬 티셔츠와
갈색 면바지 차림의 중년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운동하던 사람들은 그를 향해 인사를 하기 시
작했다. 그 인사말을 듣고나서 현우는 그가 관장임을 알 수 있었다.
삐쩍마른 남자가 운동을 멈추고 관장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관장님 저 학생이 복싱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삐쩍 마른 남자가 현우를 가르키며 말했다. 그러자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관장님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현우라고 합니다."
“복싱을 하고 싶다고?"
관장이 물어오자 현우가 대답했다.
“네, 배우고 싶습니다. 돈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아 나가겠습니다."
“연습해."
“네?"
“연습하라구. 줄넘기부터 시작해."
관장이 우물쭈물 거리고 있는 현우에게 말하자 삐쩍마른 남자가 다가와서 반팔 티셔츠와 반바
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운동복과 글러브 복싱화를 사야돼. 기억하고 있어. 난 김종남이야. 스물 두 살이고 중국집 배
달원이야.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배달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복싱을 배워. 앞으로 형이라고 불
러."
“알겠습니다."
종남이 현우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하고는 샌드백을 치러 갔다. 현우는 샤워실에서 교복을 벗고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현우는 벽 한켠에 마련된 큼직한 사물함에 교복을 넣고 체
육관 중앙으로 가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체육관의 중앙에는 큼직한 거울이 있어서 자세가 흐트러
질 경우에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줄넘기를 하는 것을 보던 관장이 현우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어깨에 힘을 빼. 힘을 모두 다 빼고 손목으로 줄넘기를 하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현우는 어깨에 힘을 빼고 손목을 이용해서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해. 체육관에 오면 줄넘기부터 잡고 하는거야. 그리고 나서 벽에 붙은 거울
을 보면서 잽을 연습하는거야. 이리와봐."
관장이 현우를 불러 세웠다.
“이렇게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뒤에는 오른발로 지탱하는거야. 그리고 턱을 끌어당기 고 앞으
로 뛰고 뒤로 뛰고를 반복 하는거야.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왼손을 가볍게 말아쥐고 앞으로
계속 뻗는다.알겠지?"
현우가 포즈를 취하자 코치는 발을 사선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현우가 자세를 잡자 "좋아!"라고
말하며 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현우는 줄넘기를 잡고 뛰기 시작했다. 땀이 비오듯 티셔츠를 흥
건히 물들이고 있었다. 현우는 저녁 8시가되자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현우는 책가방을 내려놓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허겁지겁 비웠다.
다음날 부터 현우는 학교가 끝나는 4시면 체육관에 들러서 저녁8시까지 늦도록 복싱 연습을 했
다. 땀에 젖은 티셔츠와 속옷을 갈아입을 옷을 미리가져 와서 운동이 끝나고 샤워를 하고 난 뒤
에 갈아입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날 무렵에 복싱장으로 현우의 학교에 다니는 3학년 일진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관장님과 연습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현우를 향해 말했다.
“학교 끝나면 모이지도 않고 어디를 그렇게 급히가나 했더니, 복싱을 배우고 있었구만."
3학년인 리더가 체육관 내부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다가 현우의 앞에 다가섰다.
“너 복싱 선수 하려고 그러냐? 지독한 가난뱅이가 더 지독하게 살고 싶은가보네. 돈벌이가 되
는 일을 해야지. 내 밑으로 와. 그럼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내일부터 복싱은 하지 않
는다. 알겠냐?"
그러나 현우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일은 다른 학교와 볼일이 있어. 학교 끝나고 남아라."
리더가 현우에게 말하고는 일진회 일원들과 함께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
던 종남이 현우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야, 쟤네들 누구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현우가 대답하자 관장이 현우를 따로 관장실로 불렀다. 24인치 컬러티비와 비디오 그리고 길다
란 나무로 된 상과 쇼파가 놓여져 있는 방에는 각종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관장이 소파에 앉으며 현우에게도 앉으라고 말했다. 현우가 소파에 앉자 관장이 말했다.
“너 오늘부터 깡패 짓 그만둬. 복싱하고 싶다면 깨끗이 포기해. 난 깡패새끼 안키워. 그런 놈
만들려고 복싱 가르치는 거 아니야. 알아들어?"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현우가 말하자 관장이 대답했다.
“복싱에 미치란 말이야. 어느 것도 들어올 수 없게 끔 복싱 하나만 생각해. 그러러면 자세가
되어야지. 불량한 애들하고 몰려 다닐 시간이 어디있어?"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가 할 말은 그 것 뿐이야. 가 봐."
관장이 말하자 현우는 연습을 다시 재개했다.
잽 연습만 3시간 동안 하면서 땀이 비오듯 흘러 내렸다. 자세가 흔들리면 안된다는 관장의 말에
현우는 자신만의 자세를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체육관 내에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우는 댄스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지켜
보던 관장이 리듬을 타는 현우의 스텝을 보고 경쾌하다고 말하며 다가갔다. 관장은 잽에 이어서
원투 펀치를 가르쳐 주었다.
“왼손 잽에 이어서 왼손 펀치와 오른손 펀치를 내지르는 거야. 펀치를 빨리 때리고 다시 끌어
당긴다는 느낌으로 치는거야. 빨리 주먹을 회수해야해."
현우는 관장의 지시대로 열심히 연습했다. 저녁 9시가 되자 체육관에서 연습하던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현우만 홀로 남게 되었다. 관장은 현우에게 열쇠를 던져주며 연습하고 난 뒤에
체육관 문을 잠그고 가라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우는 아무도 없는 체육관 내에 사각링 위
로 올라갔다. 그리고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소리와 티비 중계를 하는 해설자들을 상상하며 링 안
을 경쾌하게 돌면서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홍코너 한국 프로복싱 라이트급 랭킹 2위 아무개!"
진행자가 선수를 소개하자 관중들은 야유를 퍼붓는다.
“청코너 한국 프로복싱 라이트급 챔피언 김현우!"
관중들의 환호소리에 현우는 팔을 흔들며 링을 한바퀴 돌아서 관중들에게 인사한다. 현우는 자
신이 최고가 된 것 같았다. 언젠가 한국 복싱 챔피언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로프에 팔을 올려 기
댔다. 다음 날 학교 점심시간이 되자 점심을 먹고 있는 현우에게 일진회에 속한 한 학생이 옥상
으로 올라오라고 말했다. 현우는 도시락 뚜껑을 덮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모든 일진회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현우가 도착하자 3학년 리더가 말하기 시작했다.
“오늘 방과 후에 다른 학교하고 전쟁이 있다. 승자는 상대 학교를 지배하게 된다. 큰 싸움이다.
김현우! 넌 오늘도 앞으로도 복싱을 하러 가지 않는다. 알아 들었냐?"
리더가 현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현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리더는 현우의 앞으
로 가서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쭈 이새끼 봐라. 야, 넌 어디에도 못가. 수업이 끝나면 저 번 싸움 때 처럼 다리 밑으로 나
와라. 그러지 않으면 학교 생활을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너의 선택에 달렸어."
리더가 말을 마치고 옥상을 내려가자 다른 일원들도 교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현우는 창 밖만 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자 현우는 다리 밑으로 갔다. 그 곳에서는 두 학교가 10명씩 인원을 뽑아 싸움을 시작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우의 학교가 열세에 몰리게 되었고 3학년 리더는 다음에 싸울
상대로 현우를 지목했다. 그러나 현우는 싸우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상대 학교의 일진이 현우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면서 때려 댔지만 현우는 쓰러진 채 계속
맞기만 할 뿐 손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에 멍이 들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입안에서 피
를 뱉어내며 현우는 괴로워 뒹굴었다. 그러자 3학년 리더는 현우를 빼고 다른 일진을 싸움에 내
보냈다. 싸움은 계속되었고 결과는 다른 학교의 승리로 돌아갔다. 3학년 리더는 싸움이 끝난 후
현우를 불러 세웠다. 현우의 주위를 같은 학교 일진회 멤버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서 있기 조
차 힘든 현우를 3학년 리더가 가까이 다가가 복부와 얼굴을 때렸다. 휘청이는 현우를 다른 일진
들이 돌아가면서 때리고 허벅다리를 각목으로 세게 때려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현우는 피와 침
을 질질 흘리며 쓰러져 기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몸이 망가
져 있었다. 쓰러진 현우의 얼굴을 발로 짓이기던 3학년 리더가 말했다.
“그래. 너하고 싶은대로 해. 복싱을 하던 앵벌이를 하던 네 자유다."
그러자 일진들이 웃기 시작했다.
“저 녀석 버려. 이제 우리와는 관계없어."
3학년 리더가 말하고 난 뒤 계단을 올라갔다. 다른 일진회 멤버들도 무리지어 계단을 올라가서
곧 사라졌다. 현우는 그대로 두 팔과 다리를 쭉 뻗어 대자로 누웠다. 파란하늘에 뭉개 구름이 떠
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현우는 몸을 일으켜서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힘들게 체육관 문을 열자 몸에 힘이 없어 휘청이며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종남이 줄넘기를
하던 것을 멈추고 현우에게 다가가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관장님이 계시는 관장실에
소파에 앉혔다. 관장님은 놀란 모습으로 현우에게 다가갔다.
“현우야, 괜찮아? 너 왜이래? 누가 그랬어?"
관장님이 묻자 현우가 말했다.
“깡패 짓 때려 치웠어요."
나즈막히 현우가 말하자 관장이 무거운 눈 빛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다음날에 학교 수업이 끝나고 현우는 링 위에서 관장님과 펀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관장은 손
에 글러브를 끼고 12온스 연습용 글러브를 낀 현우의 펀치를 유도하며 받아내고 있었다.
“원,투 치고 몸을 좌우로 숙여서 흔들고 다시 원,투 치고 파고 들었다가 여의치 않으면 빠져
나오는거야."
그러자 현우는 관장님의 말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원,투 스트레이트를 치고 몸을 좌,우로 숙여
서 흔드는 뎀프시롤을 한 후에 다시 원,투 스트레이트를 치고 파고든 후에 라이트 훅과 레프트
훅을 날렸다. 관장은 그 모습을 본 후에 글러브를 낀 손을 박수치듯 툭툭치며 말했다.
“잠시 휴식."
현우가 헉헉 거리며 숨이 차서 로프를 잡고 고개를 숙이자 관장님이 다가와 말했다.
“많이 늘었어. 이 페이스 대로라면 프로 입문 테스트 받고 한달 뒤에 신인왕전에 출전해도 되
겠어."
관장이 생수병을 건네주자 현우가 물을 마시며 말했다.
“관장님 출전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관장이 말했다.
“앞으로는 코치라고 불러."
코치의 지도 아래 현우는 강훈련을 계속했다. 윗몸일으키기 200회와 역기들기 100회, 아침마다
동네를 뛰며 계단 오르내리기 100회를 해서 하체를 강화시켰고 팔굽혀펴기를 하며 상체를 만들었
다. 그렇게 두 달이 금세 지나가고 현우는 2라운드를 뛰는 프로 입문 테스트에서 상대를 1라운드
에서 가볍게 K.O 시키며 자격증을 따냈다. 그 여세를 몰아 한 달 뒤에는 신인왕전 예선전을 통과
하였고 현우와 코치는 준결승전이 열리는 신라 호텔로 향했다. 현우의 4강전 상대는 같은 서울의
강남구에서 온 김유동이었다. 대기실에서 다음 시합을 기다리고 있는 현우에게 코치가 다가와 머
리를 수건으로 감아 문지르며 말했다.
“아웃복싱이야. 그런데 굉장히 빨라. 쫓아가기만 하다가 판정으로 끝날지도 몰라. 정확한 한
방 한 방이 필요해. 그 걸 노려야돼."
“알겠어요."
현우가 말하자 앞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경기가 시작될 차례가 되었다. 현우는 코치와 함께 링
에 올라갔다. 선수소개가 간단히 이어지고 공이 울리자 두 선수는 두 주먹을 마주치며 선전을 기
원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김유동은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잽을 던졌다. 현
우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빠르게 다가갔지만 김유동은 잽으로 미리 차단하며 현우의 스타일을 제
대로 펼쳐보이지 못하게 봉쇄했다. 김유동의 잽에 이은 원. 투 스트레이트가 안면에 적중하자 현
우가 휘청거렸다. 현우는 글러브를 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김유
동이 잽을 날리고 현우가 파고 들어오자 원, 투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현우는 물러서지 않고 펀
치를 맞으며 김유동의 품으로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깊이 파고 들었다. 그리고 훅을 대비해서
얼굴에 가드를 하고 있는 김유동의 양 옆구리를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연속 가격에 이은 김유동
이 가드를 복부로 급히 내린 틈을 절묘하게 이용한 오른손을 품에 바싹 밀착시켜서 뻗어올린 어
퍼컷 한 방이 턱에 깨끗이 명중되며 김유동을 침몰시켰다. 김유동은 심판이 카운터를 세자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서 다시 풀썩 주저 앉고 말았다. 현우는 4강에서 껄끄러운 상대인
김유동을 꺾고 결승전에 안착했다.
현우와 함께 결승전에 오른 상대는 강덕구라는 이름의 인파이터로 뛰어난 체력을 중심으로 쉴
새 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스타일이었다. 또한 178이라는 큰 키와 리치로 결승전까지 모든 경기를
K.O로 이겨서 여기까지 올라온 선수였다. 신인왕전 결승전이 열리기 전부터 비디오를 보며 분석
하던 현우와 코치는 강덕구의 약점을 잡기위해 노력했으나 특별한 해법은 없었다. 5센티미터 이
상 큰 키와 긴 리치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접근전에서의 연타였다. 상대가 거리를 떨어뜨리
려 할 수록 더욱 상대에게 파고들어 현우의 장기인 좌,우 훅을 적중시키는 작전으로 맞서야 했다.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 되자 신라호텔에 마련된 특설링의 주위에는 500명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파괴력 넘치는 주먹을 가진 김현우와 엄청난 맷집을 가진 강덕구의 경기는 많은
복싱 매니아들로 부터 빅카드로 꼽혔다. 두 사람의 소개가 이어지고 장내가 시끌벅쩍하고 요란한
가운데 드디어 공이 울렸다. 두 사람은 한 팔을 들어 서로 맞 부딫히며 파이팅과 페어플레이를
다짐했다. 경기 초반에 현우가 강덕구에게 달려들자 강덕구는 긴 팔을 쭉쭉 뻗어 잽을 날리며
거리를 유지했다. 적정거리를 유지하던 강덕구는 잽에 이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깨끗히 현우의
안면에 적중시켰다. 현우는 곧바로 좌,우로 몸을 흔들며 훅을 날렸으나 강덕구의 오른손 카운터
에 걸려서 개인으로서 처음으로 다운을 당했다. 주저 앉은 현우는 심판이 카운터를 세자 숨을
고르며 카운터 8에서 일어섰다. 장내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 후 2라운드까지 경기를 끌려가던
현우는 체력이 자신보다 더 좋은 강덕구에게 완전히 당하고 있었다. 공이 울리고 3라운드가 되자
현우의 코너에서 정확한 한 방을 요구했다. 현우는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무서운 기세로 강덕구
를 코너로 몰아 붙였다. 강덕구는 잽을 뻗어서 거리를 유지하려 했지만 현우는 좌,우로 몸을 적
절히 흔들며 잽을 피한 후에 강덕구의 복부를 노려 훅을 날렸다. 수차례 반복해서 날리던 회심의
오른손 훅 한방이 강덕구의 옆구리에 꽃혔고 강덕구는 통증에 가드를 내렸지만 이를 놓치지 않고
왼손의 큰 포물선을 그린 훅이 강덕구의 관자놀이를 적중시켰다. 그러나 강덕구는 오히려 괜찮다
는 듯이 노 가드로 현우에게 다가갔다. 현우의 파괴력 넘치는 펀치를 맞고도 버티고 있는 강덕구
의 엄청난 맷집을 부수기 위해 현우는 쉬지 않고 양손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강덕구는 자신
의 장기인 뎀프시롤로 펀치를 피한 후 오른손 훅을 현우에게 날렸다. 현우는 그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박자 빠르게 왼손 스트레이트를 얼굴에 적중시키며 카운터를 날렸다. 승부수를 날린 강
덕구를 맞아 지능적으로 맞받아친 현우의 카운터 펀치가 강덕구를 쓰러뜨렸다. 강덕구는 다리에
힘이 풀렸고 이를 놓치지 않고 현우는 좌,우 훅으로 강덕구의 비어있는 복부를 때렸다. 강덕구는
앞으로 쓰러지며 완전히 대자로 누워버렸다. 심판은 양 손을 흔들며 경기 끝을 선언했다.
장내는 엄청난 환호성이 울려 퍼지며 체력과 키가 작은 현우의 승리가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술렁였다. 코치는 현우와 부등켜 안고 등을 토닥이며 신인왕전 라이트급의 타이틀을 획득한 것을
축하했다. 오랜만에 보는 명승부에 방송관계자와 기자들의 사진 촬영이 이어졌고 신문에서는 쓸
만한 재목의 발견이라는 기사로 현우의 경기들과 신인왕 전 우승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경기가
끝나자 현우는 코치와 매경기 마다 도움을 준 종남이 형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코치는 내년에 있을 프로무대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좋은 경기를 펼친 현우에게 가능성이 보인다
고 칭찬했다. 현우는 코치와 종남이 형의 소주잔을 채운 후 잔을 부딫히며 승리를 축하했다. 복
싱을 처음 시작할 때 부터 돈 한 푼 받지 않고 자신을 조련해준 코치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이 미
어졌다. 현우는 코치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뭐가?"
“저를 키워주셨잖아요."
코치가 피식 웃으며 현우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알고 계시냐? 아들이 신인왕전에 우승한 것 말이야. 연락 안드렸어?"
그러자 현우가 소주를 마시며 말했다.
“모르시는게 나아요. 주먹질하고 몸상하는 일을 왜하냐고 하시는데요."
“그래도 그렇지. 신인왕전이 쉬운 일도 아니고."
코치가 말하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현우에게 내밀었다.
“어머니 옷한벌 사드려."
“괜찮아요."
현우가 거절하려하자 코치는 현우의 점퍼 주머니 속으로 돈을 넣으며 말했다.
“받아."
세사람의 술자리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다음날 현우는 파출부를 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30
만원 상당의 브라우스와 바지와 코트를 사드렸다. 그러나 현우의 어머니는 그런 좋은 옷은 필요
없다며 기어이 다시 돈으로 바꿔오고야 말았다. 현우는 고등학교 3학년의 졸업을 마치게 되었다.
그는 대학 진학을 포하고 곧 바로 프로복싱에 뛰어 들었다. 체육관에는 현우를 동경하는 어린 학
생들이 복싱을 배우기 위해 찾아왔다. 현우는 아침과 오후에는 복싱을 했고 저녁 시간에는 동네
의 큰 마트에서 물건을 나르며 일했다. 마트에서 번 돈에 자신의 어머니가 일하시며 번 돈을 더
해서 생활했고 그 돈은 다달이 내는 월세와 통장의 저축으로 이어졌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보약
을 해먹였고 현우는 차근 차근히 6라운드와 8라운드 선수를 힘겹게 거쳐서 10라운드 선수로 도약
하게 되었다. 현우는 한 달 뒤로 다가온 한국 라이트급 랭킹 8위와의 경기를 앞두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몸을 만들었다.
코치는 샌드백을 치고 있는 현우를 불러 비디오 테이프를 비디오에 넣고 TV를 보았다. 코치가
의자에 앉아 현우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랭킹 8위인 전정남이야. 네 다음 상대다."
잠시 후 전정남의 경기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집중해서 TV를 보았다.
“전정남은 너와 키도 비슷하고 리치도 같아. 전형적인 아웃복싱을 구사하며 철저히 포인트 위
주의 경기를 펼쳐. 한국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코너에 몰려도 어렵지 않게
빠져나와서 상대를 초조하고 급박하게 만들지."
현우가 코치에게 말했다.
“코너에 몰아넣고 좌,우로 흔들면 어떨까요? 왼쪽으로 계속 치다가 오른쪽으로 치고 전정남의
움직임을 미리 읽는다면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생각이야. 움직임을 미리 읽고 경기를 지배해 나가려면 체력이 관건이다. 지금의 체력을
더 끌어 올려야해."
코치는 현우를 쳐다보고 말하며 비디오를 주시했다. 그리고 현우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
다. 잘 봐 잽을 위주로 공격하는데 저 잽이 굉장히 무거워. 왠만한 선수의 스트레이트 같아. 경
기의 대부분을 잽으로 사용해. 저 잽을 계속 맞으면서 공격해서는 안돼. 신인왕전과는 차원이 틀
려. 철저히 방어하면서 빠르게 반격해야해."
코치가 말하자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합이 3주 앞으로 다가오자 현우는 매일 아침 7시 마
다 동네를 돌려 계단을 100번 오르내려서 하체를 강화시켰고 코치의 지도아래 링 취에서 날렵한
움직임과 하드펀치를 연습했다. 현우의 주특기인 뎀프시롤과 좌,우 훅 연타를 더욱 날카롭게 연
마했고 복근 강화 훈련을 위해 윗몸일으키기 훈련을 했다. 다양한 훈련을 하는동안 경기 날짜가
점점 가까워지자 현우는 성공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체력을 끌어올려 놓았다. 두 선수의 경기 하
루 전날의 계체량 검사가 무사히 끝나고 현우는 코치와 함께 갈비집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워낙
운동량이 많아서 별다른 감량없이도 몸무게를 라이트급에 맞게 유지한 현우는 돼지갈비 2인분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갈비를 먹는 현우에게 코치가 말했다.
“상대는 경력 8년의 베테랑이야.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어가도 절대 현혹되선 안돼. 넌 상대를
꿰뚫어 보는 좋은 눈과 강한 펀치를 가졌어. 체력훈련을 한 것은 그 장점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오래 유지시키기 위해서야. 자신감을 가져."
코치가 현우의 밥그릇에 익은 갈비를 한 점 얹어주며 말하자 현우가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운명의 시합날이 되었다. 현우는 대기실에서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화끈한 경기를 펼치며
신인왕전을 모두 KO로 승리해 우승한 현우를 보기 위해 많은 복싱 매니아들이 신라호텔 특설링에
모여들고 있었다.
“연습해 온대로 해. 노력은 널 배신하지 않아."
코치가 말하며 현우와 함께 경기장내에 들어섰다. 현우의 경기는 세번째 경기였다. 사회자가 링
의 정 중앙에서 두 선수를 소개하고 난 뒤에 공이 울렸다. 현우는 전정남을 경기 초반부터 코너
에 몰아세웠으나 전정남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쉽게 빠져나오며 오히려 현우를 코너에 몰아세워
잽을 날려댔다. 현우의 안면에 3방의 잽이 그대로 명중했고 현우는 가드를 올려서 경계를 하며
시합을 풀어나갔다. 경기는 전정남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 6라운드가 될 때까지 현우는 전정남
에게 점수를 뒤지고 있었다. 이렇다할 공격이 없이 빠른 발을 가진 전정남에 의해 공격이 모두
무산되자 현우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6라운드의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리고 두 선수 모두 코너
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잽을 너무 많이 허용해서 왼쪽 눈 두덩이가 부어오른 현우에게 물을 먹
이며 코치가 말했다.
“상대는 이제 체력이 떨어질거야. 곧 네 페이스대로 풀릴거야. 연습하던대로 해. 네 체력은 상
대보다 강하다."
공이 울리고 7회가 시작되었다. 현우는 초반의 모습 그대로 경기를 풀어갔다. 전정남은 조금 지
친듯 몸놀림이 무뎌지고 스텝이 느려졌다. 현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전정남이 잽을 날리는 순간
가드를 올리고 그에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서 잽에 이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전정남은
가드로 주먹을 막으려했지만 현우의 무거운 펀치에 가드가 밀려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현우는
상대의 가드를 부수자 곧바로 좌,우 훅을 날려 전정남의 관자놀이에 명중시켰다. 전정남이 비틀
거리자 현우는 연타로 복부와 얼굴을 훅으로 때렸다. 쉴 새 없이 연타를 날리자 전정남은 마우스
피스를 뱉어내며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 다운을 당했다. 심판은 카운터를 세다가 여의치 않자
바로 게임 끝을 선언했다.현우는 코치와 부등켜 안고 기뻐했다. 그리고 4개월 뒤 랭킹 5위의 김
석제와의 시합 날이 되었다. 7라운드가 끝난 무렵 두 선수는 모두 얼굴이 붓고 입술이 터지고 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똑같은 인파이터 끼리의 시합을 하던 두 선수는 8라운드가 시작되자 링중앙
에서 펀치를 날리며 난타전을 벌였다. 김석제는 모험을 걸어 노가드로 필사적으로 현우에게 달려
들어 훅을 날렸다. 현우는 이에 냉정을 잃지 않고 뎀프시롤을 쓰며 몸을 좌우로 숙여 움직이며
김석제의 펀치를 피했다. 그리고 장기인 좌,우 훅을 날리지않고 변칙된 스타일로 오른손 훅을 계
속 연달아 날리며 상대의 왼쪽을 허물었다. 상대는 오른 훅이 계속 날아오자 당황해하며 가드를
올리려 했으나 노가드 상태에서 오른 훅이 얼굴에 계속 맞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다시 가
드를 올린 김석제는 현우에게 달려들었으나 현우는 반박자 빠르게 왼손 스트레이트를 뻗어 상대
의 턱에 깨끗이 명중 시키며 경기를 KO로 승리했다. 불 꽃 같이 뜨거운 경기를 펼치며 랭킹 5위
를 꺾은 현우는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4개월 뒤 랭킹 3위와의 경기를 잡았다.
현우는 집으로 돌아와 멍든 얼굴과 터진 입술에 연고를 바르며 책상 앞에 앉았다. 어머니는 밥
상을 차려놓고 일하러 나가셔서 아직 들어오시지 않았다. 현우는 경기를 치른 후에 받는 파이트
머니를 흰봉투에 넣어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한참을 흰 봉투만 바라보던 현우는 얼마 뒤에 어
머니가 집에 돌아 오시자 말했다.
"오셨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놀라서 말했다.
"아이구, 너 얼굴이 그게 뭐야? 앞으로 복싱 같은 거 하지 말아. 성한 구석이 없이 몸이 만신창
이가 됐는데 왜 복싱을 한다 그래?"
"자, 이거 돈이예요."
현우가 책상 위에 올려논 흰 봉투를 어머니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화난 목소리로 말
했다.
“누가 그 까짓 돈 바라는 줄 알아? 이 놈아 사람이 이렇게 다쳐서 오는데 내가 왜 널 복싱을
시키겠니?"
그러자 현우가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가진 것이라곤 두 주먹 밖에 없어. 누구는 잘 한다고 격려하고 정작 어머니란 사람은 하지 말
라고 매달리고 내 생각은 있을 틈이나 있어?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관심도 없으면서!"
현우는 집 밖을 뛰쳐 나왔다. 그리고 어둑해진 동네를 뛰며 답답한 가슴을 후련하게 풀어냈다.
까만 밤 하늘에는 달과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날 현우는 체육관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체육관 내에는 현우를 동경하여 복싱을 배우
기 시작한 학생들이 여럿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를 하며 연습하고 있었다. 현우는 동네의 유명인
사가 되었다.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어린 아이들이 쫓아오면서 응원해
주었고 사람들은 현우에게 인사하며 힘을 건네주었다. 4개월간의 훈련이 끝나고 현우는 신라 호
텔의 특설링 위에 섰다. 힘이 넘치는 경기를 기대하며 모여든 관중들은 어느새 빼곡히 들어찼다.
한국 타이틀 매치 시합의 세번째 경기로 나서는 랭킹 3위인 이인제와 5위인 현우가 소개되고 곧
시합이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은 탐색전이 벌어졌다. 두 선수 모두 가벼운 잽을 날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랭킹 3위인 이인제는 인파이터도 아웃복서도 아닌 그 중간의 복서였다. 변칙적인
복싱을 구사하며 한 방을 노려 역습하는 스타일이었고 현우는 카운터를 의식해서 쉽게 공격하지
못했다. 이인제는 현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잽을 위주로 경기했다. 이인제의 잽은 파괴력은 없
으나 엄청난 빠르기로 공격해와서 현우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현우는 3라운드가 되자 잽을
맞으면서도 이인제에게 다가가서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이인제는 허리를 뒤로 젖혀 간신히
공격을 피한 후에 갑자기 레프트 훅을 날리는 변칙 공격으로 현우의 안면을 강타했다. 현우가 휘
청이자 이인제는 그 것을 놓치지 않고 원,투 스트레이트 연타를 계속 날려댔다. 현우는 이인제를
클린치하며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심판이 두 선수를 갈라놓자 이인제가 현우에게 잽을 날리며
공격했지만 정상적으로 돌아온 현우는 가드를 올려 잽을 막아내며 몸을 좌,우로 흔들며 이인제의
빈틈을 노렸다. 4라운드가 지났다. 포인트는 현우가 뒤지고 있었고 이대로 간다면 판정패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코치는 물을 적신 스폰지로 현우의 머리 위에 올려놓고 뿌리며 말했다.
“뎀프시롤을 사용해서 빈틈을 노려. 네 페이스대로 끌고가야돼. 체력은 네가 위야. 정상적으로
훈련 한대로만 한다면 기회는 온다."
5라운드 공이 울리고 두 선수가 한 팔을 뻗어 마주치며 파이팅을 다짐했다. 관중들은 함성을 지
르며 화끈한 경기를 요구했다. 시작하자 마자 현우는 뎀프시롤을 구사하며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이인제가 빠른 잽을 뻗으며 응수했지만 현우는 잽을 맞으며 강한 허리 회전이 걸린 라이트 훅을
날렸다. 이인제는 가드를 올려서 방어했지만 강한 펀치가 가드 틈으로 뚫고 들어와 얼굴에 적중
했다. 코너에 몰린 이인제에게 현우는 레프트 훅으로 왼쪽 하단의 옆구리를 연속으로 때렸다. 이
인제의 변칙 플레이를 현우가 그대로 따라하자 이인제는 타격을 크게 입고 필사적으로 현우를 클
린치 했지만 현우는 무서운 체력으로 이인제를 떼어내며 오른손 어퍼컷을 몸에 바짝 붙여서 밀어
올렸다. 어퍼컷이 이인제의 턱에 맞자 이인제는 다리가 풀어져 로프에 기댔다. 심판이 다운을 선
언하고 카운터를 세자 이인제는 앉아서 숨을 고르며 쉬다가 카운트 9에서 일어났다. 다시 경기가
재개되자 이인제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현우를 코너에 밀어 붙였다. 승부수를 띄운 이인제는 원,
투 스트레이트를 연타로 계속 뻗었다. 난타전의 양상이 되자 현우는 강한 가드를 하며 이인제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현우는 로프를 이용해 반동으로 앞으로 튕기며 다시 로프에 기대는 방
법으로 양손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이인제의 오른손 스트레이트와 현우의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동시에 서로의 안면을 때렸고 기회를 잡은 이인제가 스트레이트 연타를 날리며 현우의 안면을 쉴
새없이 가격하자 현우는 로프에 기댔다가 그 반동으로 앞으로 튕기며 오른손 어퍼컷을 이인제의
턱에 강하게 명중 시켰다. 이인제는 곧 바로 주저 앉아 버렸고 눈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현
우는 눈두덩이가 붓고 입 안에 출혈이 있었지만 승리했다는 기쁨에 한 손을 높이 치켜 들고 환호
성을 지르며 링 주위를 돌았다. 관중들은 열광했다. 프로로 데뷔한 후 현우는 3전 전승으로 모두
KO승을 거두며 한국 프로 복싱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시합이 끝나자 한국 프로복싱 라이트급 챔피언으로 부터 타이틀매치 제안이 들어왔다. 챔피언인
오광수는 기자회견을 갖고 다음 타이틀 방어전에는 랭킹 3위에 오른 김현우와 맞붙고 싶다는 의
견을 피력했다. 현우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코치는 아직 타이틀매치를 하기엔 이르다
며 의견 차를 보였다. 그러나 도전해 보겠다는 현우의 강한 의지에 코치는 4개월 뒤 챔피언과의
타이틀 매치를 성사시켰다. 일주일간 쉰 현우는 코치와 함께 다시 쉴 새 없는 연습의 길로 들어
섰다. 코치는 현우에게 다음 경기는 근성의 승부라고 말했다. 끊질긴 근성이 있는 자가 승리한다
는 뜻이었다. 현우는 아침마다 동네를 돌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훈련을 100회에서 150회로 늘려
하체 강화에 주력하였고 윗몸 일으키기와 누워서 역기를 들며 상체를 만들었다. 현우는 오전과
오후에는 고된 훈련을 했고 밤에는 슈퍼마켓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챔피언과
의 시합 날짜가 점점 다가왔고 현우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스파링 선수들을 구해서
실전감각을 익혔다. 시합 5일 전이 되었다. 현우는 줄넘기를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체육관으로
전화가 오자 코치는 관장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방학동 체육관 입니다."
“네, 여기는 병원인데요. 혹시 김현우 씨라고 아십니까?"
“네, 그런데요?"
“김현우씨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네, 뭐라구요?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현우씨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병원의 중환자 실에 있다구요. 김현우씨가 계시면.."
“거기가 어딥니까?"
코치가 전화를 끊고 현우에게 다가와서 침착하게 말했다.
“현우야, 침착해라.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인근 병원의 중환자 실에 계신다고 한다."
현우가 줄넘기를 멈추고 코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른가자. 태워다줄께."
현우는 코치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혹여나 잘못 되었을까봐 걱정이 밀려왔다.차가 병
원 주차장에 서고 코치와 현우는 중환자실로 달려갔다. 중환자 실에는 어머니가 산소호흡기를 끼
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현우는 어머니 옆에 있는 의사에게 다가가 물
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자 의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시다가 빠르게 달려오던 승용차에 치여 오셨어요. 현재는 의식을 잃으신 상태
입니다."
"식물인간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앞으로 좋아지실지 더 나빠지실지는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의사가 말을 마치고 돌아가자 현우는 어머니의 곁에 앉아서 손을 꼭 잡았다.
"왜, 여기 있는거야?"
현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보같이 고생만하고 길 건널 때 잘 보고 건넜어야지."
밤이 늦도록 현우는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
밤이 깊어지자 코치가 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 경기를 안 뛰어도 좋아. 어머니 간호를 해라."
그러자 현우가 코치에게 말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연습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치가 현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4일 남은 훈련기간을 의식하며 강훈련을 시작했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밤에 슈퍼마켓에서 하는 아르바이트는 잠시 쉬기로 했다. 코치는 자전
거를 타고 현우와 함께 동네를 돌며 뛰었다. 그리고 챔피언의 경기 비디오를 보며 약점을 찾으려
했다. 코치가 현우와 비디오를 보며 말했다.
“챔피언은 체력이 뛰어나. 주먹도 묵직하고 여러모로 너와 비슷해. 하지만 연타가 아니라 단발
성 주먹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그런대도 상대를 KO시키며 이기는 것을 보면 굉장한 펀치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하지만 연타를 퍼붓는 너와 비교 했을 때 네가 뒤지거나 못하지
않아. 막상막하의 경기가 될 거야. 승부는 정신력에서 판가름 날거다. 복싱에 대한 열정, 정복하
려는 의지가 있는 자만이 챔피언의 자격을 취득할거야."
현우가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듣다가 말했다.
“챔피언은 뎀프시롤을 사용하지 않아요. 움직임도 역동적이지 않구요. 상대에게 천천히 다가서
며 위압감을 주는 인파이터예요. 정면대결을 하면 승부가 빨리 지어질 거예요."
“경기 초반에는 링을 사용하며 경기해. 아웃복싱을 하라는게 아니야. 풋워크를 이용해서 넓게
보면서 해야해. 코너에 몰리면 위험해."
코치가 말한 뒤에 비디오를 껐다. 현우는 집으로 돌아가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이 오질
않았다. 현우는 불을 켠채 책상에 앉았다. 책상에는 아버지 사진이 있었다. 현우는 아버지 사진
을 서랍 속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서랍 안에 하얀 표지의 책이 눈에 띄었다. 표지에는 김현우라
고 검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현우는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 장에는 신인왕전을 치를 때
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신문기사가 오려져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 몰래 아들의 기사들을 스
크랩 해오고 있었던 것 이다. 아무 관심도 없을 것 같았던 어머니는 그토록 아들의 아주 작은 부
분마저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합날이 되었다. 챔피언과의 타이틀 매치인 만큼 경기는 전국
에 생중계되었다. 경기는 서울 올림픽 체육관에서 열렸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4000명의 관중들
은 시합 전부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챔피언이 링에 오르고 사회자가 선수를 소개했다.
“홍코너 키 170센티미터 몸무게 61키로그램 한국 라이트급 랭킹 3위 김현우!"
현우가 소개되자 관중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청코너 키 173센티미터 몸무게 61키로그램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 오광수!"
챔피언이 소개되자 경기장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었다.
잠시 후 공이 울리고 운명의 시합이 시작 되었다. 당초 소극적인 탐색전이 될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챔피언은 초반부터 현우를 거세게 압박하며 잽을 던지고 있었다. 현우가 코너에 몰리자 챔
피언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렸으나 현우는 튼튼한 가드로 완벽히 막아내며 풋워크를 이용해 코
너에서 빠져나왔다. 챔피언은 한 발, 한 발씩 현우를 코너로 압박해서 몰아갔다. 현우는 코너에
몰리면 몸을 좌,우로 흔들며 속임동작을 해서 빠른 발로 빠져 나왔다. 챔피언은 현우를 코너에
몰고가서 양 훅을 날리며 현우의 복부를 공격했다. 묵직한 주먹에 통증을 느낀 현우는 챔피언을
끌어 안으며 위기를 넘겼다. 심판이 두 선수를 떼어놓자 챔피언은 현우에게 다가가 잽에 이은 원
,투 스트레이트를 깨끗이 얼굴에 명중시키며 첫 다운을 뺏어냈다. 하드펀치에 균형을 잃은 현우
는 심판이 카운트를 세는 동안 숨을 고르다가 카운트 8이 되자 일어났다. 현우가 일어나자 챔피
언은 현우를 다시 코너로 몰고가서 원,투 스트레이트를 날린 후 다시 원,투 스트레이트 콤비네이
션 공격을 하며 경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챔피언의 깨끗한 얼굴에 비해 현우는 오른쪽 눈
두덩이가 부어 올랐고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7회가 될 때 까지 현우는 챔피언의 맹공에 끌려가
며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오른쪽 눈이 많이 부어올라 눈이 감길 정도였고 체력이 많이 고
갈되어 있는 상태였다. 코치는 현우의 눈에 약을 바르며 말했다.
“챔피언도 너처럼 힘들어. 체력은 똑같아. 빠른 발을 이용해서 괴롭히란 말이야."
코치는 현우에게 지시하고 링 밖으로 나갔다. 8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챔피언이 현우를 코너로
몰아부치자 현우는 빠른 발을 이용해 오히려 챔피언을 코너에 몰아부치며 양손 스트레이트에 이
은 오른손 훅을 챔피언의 얼굴에 적중시켰다. 챔피언도 지지않고 원,투 스트레이트 콤비네이션
공격을 해왔고 현우는 몸을 숙여 뎀프시롤을 구사하며 펀치를 피한 후 허리에 강한 회전을 걸어
오른손 훅을 날렸다. 챔피언의 가드가 부서지자 오른쪽 얼굴의 빈 틈으로 현우의 오른손 훅이 다
시 한 번 꽃혔다. 챔피언은 현우를 끌어안으려 했지만 현우는 챔피언을 떼 내며 왼손 훅에 이은
원,투 스트레이트로 챔피언의 안면을 강타하며 다운을 뺏어냈다. 양 선수의 경기에 관중들은 열
광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이 데미지를 최소화 시키기 위해 쉬다가 카운트 9에 일어났다. 심판이
박스를 외치자 현우는 가드를 내리고 변칙공격을 펼쳤다. 챔피언이 가드가 없는 현우에게 잽을
날리며 다가가 양손 훅을 크게 휘두르자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반박자 빠르게 파고들어 왼손
스트레이트를 챔피언의 인중에 작렬시켰다. 챔피언이 휘청거리자 현우는 잽을 이용해 코너로 몰
고간 뒤 가드를 올리고 자신의 장기인 양손 훅을 연타로 날려 가드를 부수며 챔피언의 얼굴을 때
렸다. 챔피언이 다급한 나머지 현우를 끌어안자 공이 울려 현우의 공격이 살아난 8회가 끝나게
되었다.
9회가 시작되고 챔피언은 현우와 링 중앙에서 난타전을 벌였다. 승부수를 띄운 것 같았다. 챔피
언은 양손 스트레이트 연타를 계속 내질렀고 현우는 양손 훅으로 응수했다. 긴 난타전에서 현우
가 몸을 숙이고 좌,우로 흔들며 챔피언의 품으로 파고 들어가서 빗발치는 펀치를 맞으며 오른손
어퍼컷을 턱에 명중시켰다. 현우가 놀라운 체력으로 챔피언을 압도해 나가자 장내는 더욱 뜨거워
졌다. 챔피언이 가드를 올리고 수비를 굳히자 현우는 챔피언의 주위를 번개같이 돌며 잽에 이은
원,투 스트레이트를 얼굴에 명중 시켰다. 챔피언이 성큼성큼 걸어오자 현우는 왼손 훅을 복부에
명중시켰다. 뒷 걸음질 치는 챔피언에게 무섭게 달려든 현우는 오른손 훅으로 챔피언의 가드를
머리 위로 튕겨버린 후 왼손 훅을 관자놀이에 명중시키고 계속해서 훅을 연달아 날렸다. 훅을
여러차례 쏜살 같이 때리며 챔피언을 몰아부치자 챔피언은 로프에 기대서 몸을 흔들며 펀치를 피
하려했다. 공이 울리고 엄청난 공격을 맞으면서도 다운되지 않은 챔피언의 근성이 대단한 라운드
였다. 10회가 되자 관중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며 흥을 돋구었다. 마지막 라운드의
공이 울리고 챔피언이 현우에게 달려들며 잽을 날렸다. 현우는 뎀프시롤을 사용해 펀치를 피하면
서 챔피언에게 다가가서 라이트 훅을 날렸다. 이 과정에서 버팅이 일어나 현우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챔피언과 현우가 동시에 훅을 날렸고 현우의 주먹이 먼저 챔피언의 얼굴에 닿았다. 챔피
언이 턱에 충격을 받고 휘청거리자 현우는 왼손 어퍼컷에 이은 양손 훅을 놀라운 스피드로 얼굴
에 꽃아 넣었다. 챔피언이 앞으로 꼬꾸라지고 눈썹이 찢어져 출혈이 일어났다. 심판은 축 늘어진
챔피언을 보호하기 위해 게임 끝을 선언했다.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현우는 코치와 끌어안고
펄쩍 뛰며 표효했다. 얼마 후에 방송국 취재진과 기자가 현우에게 다가와 소감을 묻자 현우는 참
았던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엄마! 나 일등했어!
은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던 현우의 어머니는 병원 복도의 TV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감은 눈에서 눈물을 흘린다. 입으로 흐느끼는 소리를 내던 어머니를 병실에 들어온 간
호사가 발견하고 심장의 맥박이 너무 빠르게 뛰는 것을 보며 의사를 부른다. 의사와 간호사가 급
히 뛰어온 병실에서 현우의 어머니는 내 아들, 사랑하는 내 아들 현우야. 라고 나즈막이 말하고
숨을 거둔다.
현우는 어머니를 화장한 유골을 한강에 뿌리고 있다. 하얀 배 안에서 현우는 코치에게 말한다.
한번도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고. 코치는 말 없이 현우를 꼭 끌어 안아 주었다.
한강 근처에는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우의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도하고 있
다. 사람들은 촛불을 켠 양초를 손에 들고 계속 모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