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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선말기부터 안성유기가 유명해지게 되면서 유기 제작이 활성화 되었어요.
안성의 주물(鑄物) 유기는 제작 기교가 매우 발달되어 기형이 아름답고 정교하며
합금(合金)이 우수하여 '안성마춤'이란 속담까지 나오게 되었죠.
제짝이 아니었던 것을 갖다 맞출 때 매우 잘 맞음을 비유하여
'안성맞춤'이란 말을 우리가 쓰고 있는데
이게 바로 안성유기가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이렇게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안성유기는 한동안 그대로 잘 유지되어 오던 것이 일제침략으로 인해
1941년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전국에 있는 유기를 거두어들임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일시에 안성유기가 없어지는 큰 수난을 겪게 되었어요.
전쟁중 안성 유기는 5~6곳정도만 남았고
그나마도 뜻있는 유기공들이 일제의 눈을 피하여 산속 등지에서 숨어 제작하게 돼요..
그러다 해방과 더불어 안성 유기는 급속도로 성행하여 안성시내 곳곳에서 유기업이 번성했어요.
이때는 식기류인 반상기를 중심으로 하여 수저,젓가락, 담뱃대 등을 비롯하여
해방의 감격으로 급격히 성행한 농악기구까지 만들게 되었죠.
본래 농악기구는 방짜(놋쇠를 달군 후 두들겨 만드는 방법)식으로 제품을 만드는데
안성 유기의 특징은 주물제작법이었으므로 이때부터 안성유기에도 방짜 제작법이 성행하여
이쯤 안성유기의 절정을 이루게 되었어요.
그러나 안성유기도 반짝 성황을 이룬후
광복후 급변화하는 생활 변화에 밀려 쇠퇴의 기로에 서게 돼요.
바로 우리나라 생활연료의 변화가 왔기 때문이죠.
본래 우리나라의 일반적 연료는 나무장작 위주였으나
6.25가 지나고 대도시의 연료가 연탄으로 바뀌게 되면서
주로 부엌에서 사용됐던 놋식기는 연탄가스와 상극이기에
시뻘겋게 녹이 슬거나 누렇게 변해버려 식기로 사용할 수 없게 된거에요.
이렇게 되자 유기 대신에 알루미늄 그릇이나 스텐레스 그릇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었고
아울러 유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거죠.
지금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은 관리도 어렵고 무거운 유기그릇보다
가벼운 알루미늄그릇이나 스텐레스 그릇을 동경하게 되면서
이때 집집마다 있던 유기그릇들은 뒷방 신세가 되거나
심지어 유기그릇위에 스텐레스 도금을 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도금후 더 무거워지는 함정 ㅎㅎ)
이렇듯 6.25를 전후해서 안성의 유기는 절정을 이루어 그 공장의 수만도 37개나 되었지만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계보를 잇고있는 정도에요.
(유기장으로 우리나라에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신분들은
방짜에 이봉주옹,주물 김근수옹,반반짜 한상춘옹 이렇게 세분뿐이라고 알고 있고요,
각 지방에서 지정하는 무형문화재분들은 몇분 더 계세요.
아래에서 지역 공방별로 언급할께요)
안타까운게 예술적인 전통 문화는 문하생들이 레슨비를 들여가면서도 배우려고 줄을 서는 반면,
육체적으로 힘들고 비전이 없어 보이는 기술 분야의 문화는 선뜻 전수자로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점이에요.
문화재 전수자가 이수자가 되기 위해서는 2년이라는 세월이 소요되는데
2년의 세월 동안 정부가 전수자에게 지원하는 보조금은 한 달에 고작 십만원이 전부다 보니
전수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문화재 기능보유자가 제품을 생산해
판매 이익금의 일부로 조금이라도 급여를 지급해 줘야 하는 생활이 되는거에요.
이처럼 선생이 제자에게 돈이 지급해야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오히려 레슨비를 내고 배우는 예능 분야는 사제지간이 성립되는 반면
기능 분야는 급여가 오가는 노사관계가 성립돼서
문화재 기능 분야의 사제 관계는 스승과 제자가 아닌 급여를 주고 받는 사장과 종업원이라는
웃지 못할 관계가 되는거죠.
이런 어려운 현실 때문인지 우리 나라 무형문화재의 전수자와 이수자 관계는
대부분 직계가족(자녀) 아니면 혈육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해요.
이러다 후대로 갈수록 기능자들이 없어지는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개인적으로 세계에 유일무이한 식기 ...우리의 유기가
디자인과 실용성을 다양하게 연구해서
유기산업이 좀더 객관적이고,체계적으로 세계화되고 대중화가 되었음 하는 바램이에요.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에서 있어 큰획이 되는 안성유기에 대해서는
아래서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할께요.
두울) 유기제작 기법의 종류와 합금의 종류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 전해진 유기 제작 기법은 크게
안성(安城)의 주물유기와
납청(納淸)의 방짜유기와
순천(順天)의 반방짜 유기가 있어요.
이렇게 유기의 종류는 각각 제작방법에 따라 분류돼요.
(1) 주물유기 제작법
쇳물을 녹여서 그릇의 형태를 이루는 안성의 주물유기(통쇠),
주물유기는 불에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서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이때에 녹여서 붓는 쇳물의 성분이나 배합비율에 따라
자유로운 합금이 가능하고 이 방법은 같은 모양, 동일규격의 제품을
다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요.
합금한 재료의 배합 비율과 성분에 따라 색깔, 품질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며
장인의 기술에 따라서 섬세하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요즘은 다른지역 유기들도 대량생산에 따라
거의 이 방식들을 취하고 있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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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짜(자)유기 제작법
평안북도 정주군 납청(納淸)에서 전해진 방자(方字),
방짜유기란 정확하게 78%의 구리(Cu와 22%의 주석(Sn)
또는 75%의 구리(Cu)와 25%의 주석(Sn) 합금한 우리나라 특유의 금속비법이에요.
정확히 합금된 놋쇠를 불에 달구어 메질(망치질)을 되풀이해서 얇게 늘여 가며 형태를 잡아가는 기법으로
이 기법은 휘거나 잘 깨지지 않으며 비교적 변색되지 않을 뿐 아니라 쓸수록 윤기가 나는 장점이 있어요.
특히 성형할 때 두드린 메자국(울퉁불퉁한 자국)은 수공예품으로서의 은근한 멋과 품위를 풍겨 그 격이 한층 더하죠.
전통 방짜에서 중요한 작업은 용광로에서 꺼낸 합금을 용도에 맞게 오려낸 뒤
적당히 다시 가열을 해서 두들겨 성형을 하는 과정으로 바로 메질이에요,
망치질 3명, 집게 1명, 풍구질 1명, 쇠달구는 사람 1명이 호흡을 맞추어
정신을 집중해서 쉬지 않고 최소 3시간 이상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두드리는 리듬과 강약에 따라 그릇과 악기의 질이 미세하게 달라져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작은 싸이즈의 식기류들은 거의 반방짜방식으로 제작되었고
그나마도 요즘은 대를 넘어가며 대량생산에 따라 대부분 주물+기계방짜로 만들고 있는거 같아요.
안양 방짜유기(납청유기)의 이봉주(李鳳周 : 방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 군포시 김문익 (金文益: 방짜)
(3) 반방짜유기 제작법
주물과 방자를 병행하는 순천의 반방짜유기.
반반짜유기는 궁그름 옥성 기법이라 부르는데 오목한 형태의 식기를 만드는 기법이에요.
궁그름이란 공구의 이름으로 옥성기란 그릇의 위부분이 옥은(오무라든)모양의 그릇이라는 뜻이에요.
먼저 주물유기 기법으로 그릇을 U자 모양으로 만든 다음 여러차례 불에 달구어 가면서
오목하게 패어진 곱돌 위에 놓고 궁그름대라는 공구로 옥은(오무라든)부분을
방짜식으로 늘여 가면서 만드는 방법이니 주소기법과 방짜기법을 절충한 방법인거죠.
그런데 실상 요즘 우리가 접하게 되는 유기들은 납청도 안성도 이 반방짜방식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실상 현재에 와서는 제작기법이 평준화되면서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손방짜가 많이 사라지고
주물로 찍고 마무리는 기계가 하는 두드리는 반방짜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는거 같아요.(작품급들은 제외)
순천 반방짜유기의 윤재덕(尹在德 : 반방짜, 1994 해제)
(4) 합금의 종류
향동은 무독성의 재료이기 때문에 식기의 재료로 널리 애용되어 왔어요.
전자를 주물유기,후자를 방짜유기라고 하며
두가지는 합금뿐 아니라 제작기법도 위에서 설명했듯 차이점이 있어요.
세엣) 방짜유기의 종류
방짜유기는 안성지방을 중심으로 납청과 함양 등지에서 크게 번성했던 대표적인 유기제작기법으로
구리(Cu)78%와 주석(Sn)22%을 합금한 것과
구리(Cu)75%와 주석(Sn)25%을 합금하여 만드는 것 두가지가 있어요.
구리와 주석의 합금 비율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달라서
각 공방별로 조금씩 유기의 빛깔과 느낌이 틀린거에요.
이것도 뭐가 더 좋다 할수 없는게 개인의 취향차이가 있어
진한 골드빛깔을 좋아할수도 있고
저처럼 은은히 차분한 은빛도는 골드빛을 좋아할수도 있으니
그건 직접 눈으로 보고 선택하는게 좋아요.
방짜유기는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납청 마을에서 발달하여
여기에서 만들어진 유기를 납청 양대유기(良大鍮器)라고 불렀는데.
이곳의 유기장들이 6·25전쟁 때 월남하여 경기도 안양시에 자리잡고
계속 생산을 했어요.
방짜로는 주로 징·꽹과리 같은 타악기를 만드는데
독성이 없으므로 식기류도 이것으로 만들어요.
특히 악기는 방짜 기술만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기물로 손꼽히는데
모양새보다 소리를 생명으로 하는 악기의 음색은
만드는 사람과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이는 합금 비율과 두드림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요.
각 공방의 기능장들에 따라, 만드는 유기의 종류에 따라
때론 소량의 금,은을 섞기도 했다고 해요.
그릇종류와 주둥이가 몸체보다 좁아 주물 제작이 어려운 주전자와 같은 것들은
네엣) 안성유기에 대해
'안성맞춤'이란 말이 널리 쓰일정도로 안성유기의 인기는 대단했는데요,
특히 안성 유기가 다른 지방의 것보다 유명한 것은
서울 양반가들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안성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유기를 만들어 판매했는데
하나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그릇으로 이것을 '장내기'라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관청이나 양반가의 주문을 받아 특별히 품질과 모양을 좋게 만들어는데
이를 모춤(마춤)이라하여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난거에요.
안성유기는 사용 용도에 따라 제기 용품, 생활 용품, 반상기 용품, 혼수 용품,
절에서 사용하는 용품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기용품에는 제사 지낼 때 제물을 담는 그릇으로
대접, 제줏잔과 제잔대, 접시, 적틀, 퇴줏그릇, 촛대, 향로 등이 있어요.
또한 생활 용품으로는 수저를 비롯하여 주발, 보시기, 종지, 주걱, 담뱃대, 놋대야, 화로 등이 있어요.
오늘날 유기로 만든 학, 사슴, 황소, 재떨이 , 마패, 범종 등이
안성 유기로 만들어져 장식품이나 관광용품으로 팔리고 있어요.
실제로 작품급의 유기제품을 구하고 싶다면 공방을 직접 방문하시길 권해드려요.
일반 판매처들엔 주로 생활자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공방에 가보면
시중에선 잘 볼수 없는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멋진 작품들이 많아요.
다만 가격이 후덜덜 하지요 ㅎㅎ
다섯) 유기공방들 소개
1) 방짜유기(납청유기)
방짜유기장 이봉주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납청유기는 수년전 부시 미대통령 방한때등등 청와대 만찬용으로도 쓰이며
몇몇 대기업에서 외국인 행사용으로 쓰는등 대내외적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어요.
1926 평북 정주군 덕언면 납청마을 출생
1948 양대(방짜)공장입사
1983 방짜유기부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지정
2003 납청유기촌 전수회관 운영
현재 이봉주옹은 은퇴하시고 장남인 이형근 유기장이 활동중.
이봉주옹이 전통의 미를 살렸다면 이형근 유기장은 좀더 현대적인 실용성을 살리는거 같아요.
문경시에 작업장은 국내 최대 규모로 다양한 작품을 볼수 있고
대구 팔공산에 있는 방짜유기 박물관엔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2) 안성유기(주물유기)
주물유기장 김근수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안성맞춤”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유기의 최대생산지였던
안성지방의 질좋은 유기에서 유례.
따라서 옛 안성유기의 전통을 보호하고자
국가에서 1983년 주물유기부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
현재 선대 김근수옹께서 소천하시고 난뒤
아드님이신 김수영님이 안성유기에서 작업을 하고 계세요
3) 반방짜유기(한상춘공방)
반방짜유기장 한상춘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방짜와 주물의 공정을 절충한 반방짜유기의 제품은
선생님 본인께서 직접 쇠를 녹이는 것 부터
모든 공정을 손수하시고 계시다네요.
순천 반방짜유기의 윤재덕(尹在德)님이 1994년 문화재 지정 해제된후
1997년 한상춘님이 반방짜유기 중요무형 문화재로 지정 되셨어요.
4)거창유기
유기장 이기홍 2003전국공예대전 대통령상
거창유기는 3대 80여년동안 전통유기의 맥을 계승
5)거성유기(내성유기)
내성유기는 옛날 유기생산지로 유명했던 경상북도 봉화지방의
유기기술을 이어 받으신 주물유기
경상북도 무형 문화재 제22호 김선익옹의 믿을 수 있는 제품입니다.
김선익 유기장도 현재 아들 형순 씨(40)가 봉화유기 전수조교로서 가업을 계승
6)한국유기
여주지역에서 유일하게 전통 유기그릇을 생산하고 있는 김경수 여주유기공방.
김선익옹(무형문화재 22호 유기장)이 김경수 대표의 큰아버지다.
현대와 전통방식을 결합한 유기그릇,
7)김천유기
김천유기공방은 납청유기, 거창유기등등
여러 유명 공방에서 오랜시간 유기일을 해오신 장인의 제품
8)영일유기
40년간 수작업으로 방짜유기를 생산해온 김원수 선생의 유기
9)김천고려농악기사
경북무형문화재 제9호 김일웅 선생의 유기
10)오부자유기공방
경남 무형문화재 제 14호 이용구 선생의 차남이자 전수조교인 이점술 선생의 유기.
11) 국일유기
국일유기는 납청유기에서 오랫동안 작업하신 김문익 선생이 독립해서 만든 군포에 있는 유기공방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0호 군포시 김문익 (金文益: 방짜)
여섯) 나에게 맞는 유기그릇 선택하기
유기그릇은 보온·보냉 효과가 있어 조리 후의 온도를 그대로 유지해주므로
음식의 맛과 깊이를 더해주고
또 소량의 미네랄 성분을 방출할뿐더러,
살균기능으로 음식물의 부패를 막아주고 오랫동안 싱싱함을 유지시켜줘요.
이와 함께 농약성분 검출기능도 있지요.
시중에 판매되는 각종 조미료나 농약이 많이 함유된 채소를
장기간 유기에 담아둘 경우 그릇의 색깔이 변하는 실험을 티브이 방송에서 했어요.
(2003년 11월 KBS 수요기획을 통해 실험으로 소개된 내용)
유기의 또 하나의 장점은 견고함이에요.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견고함.
물리적으로는 반 영구적이어서 한번 장만하면 깨트리지 않는 이상
대를 물려가며 쓸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관리가 힘들고, 가격이 비싸고,올드한 디자인 세련되지 않았다,
합금에 따른 중금속 배출여부.열전도율이 높아 뜨거운 음식을 담음 손으로 잡기 쉽지않음,
전자렌지나 오븐에서 사용금지등 여러가지 단점들이
오랜시간 저로 하여금 유기 구입을 미루게 했어요.
그런데 요즘 나오는 유기들은 옛날것들에 비해 조금은 가볍고 디자인도 다양하고
관리가 쉽다더라구요.
그리고 도자기와 어우러지면 더 고급스런 상차림이 가능할거 같아서
그래? 그럼 한번 알아볼까 하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거 알면 알수록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어요.
오랜 고민끝에 어떤 제품을 구입하려고 했다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경제성과 실용성,디자인,작품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어요.
처음엔 이봉주 납청유기로 구입을 결정했다가
풀세트 가격이 만만치 않고 내가 원하는 옥바리 식기들이
원하는 크기가 아니라 결국 옥바리는 다른 공방걸로 구입하고
접시와 국자,주걱등 몇가지 아이템 구입.
이형근 유기에서는
수저받침과 디저트 스푼,포크등 몇가지 아이템 구입,
그후 김수영 안성유기로 결정했다가 내가 원하는 옥바리가 뚜껑과 꼭지색깔이 달라서 패스;;;;
(요즘 나오는건 왜 색깔이 다른걸까요??)
딱 내가 원하는 빛깔은 안성이나 납청유기인데 식기의 디자인과 크기,
가격 경제성을 고민하다보니 머리에서 쥐가 나더라구요.
나중에 풀세트 구성할때도 어떤 아이템을 몇개씩 구입할지 고민.
결국 손과 발로 열심히 다니며 보고 공부하고
각 공방별로 단품 아이템들 구매해서 사용, 비교한후 구입했어요.
솔직히 요즘 시중에 방짜라고 하며 파는것들도 그릇 표면에
울퉁불퉁 매질의 자국이 없이 매끈하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손방짜가 아닌거에요.
게다가 요즘엔 손으로 두드리는게 아니고 기계가 두드리고 펼치는
기계 방짜니 사실 주물과 방짜의 차이가 무색한거죠.
어차피 주물유기도 나온후 연마 마무리 작업을 하거든요.
그리고 진정한 방짜에서는 굽이 달려나올수가 없어요.
굽달린것들은 주물방식이에요.
그런데 시중에선 그것도 방짜라며 판매를 하더라구요.;;
방짜는 특유의 합금의 비율을 정확히해서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건데
실제로 식기는 크기가 작아서 완전방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고
납청유기에서도 반방찌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해요.
알수록 공부할수록 미궁으로 빠져드는 이 기분 ㅠㅠ
그러면서 점점 의문점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징이나 괭과리같은 악기 만드는걸로 무형문화재 칭호 받으신분들이
무형문화재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그릇을 만들어 판매 하고 있다는점.
사실 그릇과 악기는 기술이 틀린데 그릇장인이 될거면 그릇으로 문화재 칭호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시스템으론 소비자인 우리는
누가 어떤 기술로 문화재 칭호를 받았는지 모르잖아요.
게다가 시중에 무형 문화재 작품이라며 팔리고 있는 방짜 유기들이
실상 알고보면 그 장인이 직접 두드려서 만든 유기가 아닌
많은 부분 기계방짜,하청 준 작품들을 파는건데 판매하면서
마치 무형문화재 장인이 직접 손으로 두드려 만든듯 말하면서 판매를 하고 있다는점.
가는곳마다 무형문화재 선생님의 작품이고
손으로 직접 두들겨 만든 방짜라고 하는걸 보면서 이 많은걸 혼자 다 생산해서
전국에 납품한다는게 이해가 안됐어요;;;
내가 공부한걸로는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는 작업인데
이걸 혼자서 다 수작업으로 그 수요를 감당한다?? 의문스럽더라구요.
실제로 한공방에서 모두 완전 방짜로 만들수 없고
그로 인해서 하청을 주고 많은 부분 방짜가 아닌 주물생산과
기계방짜 방식을 하고 있는데
방짜도 아닌 주물을 전부 방짜라고 판매하는건 분명 문제가 있고
심지어 판매상들도 정확한 정보를 모르더라구요.
(다들 본인들이 판매하는 제품이 최고라 하지요)
실제로 요즘 방짜라고 파는것들 대부분 주물로 찍어나오고 마무리도 기계 방짜인거 같아요.
그외 손매질 흔적이 확연하고 퀄러티 높은 작품들은 가격이 후덜덜하거든요.
손방짜는 표면에서도 그렇고 자태나 빛깔도 좀더 고급스럽구요.
실사를 보기전엔 사실 타이틀이 확실하면 고민없이 믿고 살수 있겠구나 했는데
실제로 보고 느껴보니 그것도 아니라 더 머리 아팠죠ㅠㅠ
[출처] 우리 유기 그릇 역사와 그 종류에 대한 고찰|작성자 하닷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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