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잇는 10의 제곱수
천문학과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우주에 대한 인식 범위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혀 왔다. 반면 입자 물리학은 그 대상을 더욱 미세하게 축소하는 쪽으로 인류의 인식 지평을 확대해 왔다. 우리가 파악하는 가장 먼 존재는 은하고,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핵 속의 쿼크라는 입자다. 은하와 쿼크, 또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 물질 크기의 상대적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10의 제곱수들>은 사람의 크기에 가까운 1m를 기준 +와 -로 10배씩 42단계까지 나눠 우주 물질의 크기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묘사한 대중과학서다. 미국 MIT 교수를 거쳐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과학칼럼을 기고해온 필립 모리슨 등 4명의 저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책이다. 국내에는 1996년 민음사를 통해 처음 번역돼 나왔고 2012년 사이언스북스에서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보강한 개정판이 재탄생했다.
은하에서 쿼크 사이의 모든 물질은 10의 26제곱m 거리에서 10의 -16제곱m 크기(42단계) 사이에 존재한다. 책은 '42번의 도약으로 본 우주 만물의 상대적 크기'라는 부제 그대로 10의 0제곱m(1m) 크기인 인간을 중심으로 은하에서 쿼크를 잇는 과학 여행서인 셈이다.
단계마다 전면 컬러 사진 한 장씩 모두 42장의 사진을 싣고 있으며 우리가 알아두면 유익한 과학 상식까지 설명하고 있다. 현대과학이 다루는 폭과 깊이가 느껴진다.
상대적 비교의 기준이 되는 10의 0제곱m를 설명하는 장에는 낮잠을 자는 1m 남짓의 남자를 담은 컬러 도판이 실려 있다. 평화스러운 이 남자의 모습은 여기서 두 단계만 멀어져도, 즉 100m만 올라가도 육안으로 겨우 확인될 정도로 작아진다. 인간이 만든 가공물도 대개 이 높이 수준이다. 로켓도 가장 큰 것이 110m이며 자유의 여신상도 93m 정도다.
다시 10의 4제곱m(10km)로 옮겨가면 공원, 항구 등의 윤곽만 잡히고 10의 6제곱m(1000km)로 멀어지면 미국의 미시간호 정도가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이 장에서는 거대한 얼음이 녹아내리는 한편으로 그 얼음이 밑바닥을 긁어내 거대한 호수가 이뤄졌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10의 7제곱m(1만km)에 이르면 지구도 푸른 하늘, 하얀 구름, 컴컴한 바다 등의 덩어리로 작게 보인다. 미터법 단위에 대한 설명과 아울러 우리가 높기만 한 것으로 여기는 하늘도 두께가 20~30km이며 땅의 평균 높이는 해발 1km 정도라는 상식이 보태진다.
10억km 떨어진 지점에는 목성이 자리잡고 있다. 1610년 갈릴레이가 최초로 관측한 목성의 활화산 폭발을 담은 사진이 소개된다. 용암과 재가 솟는 지구의 화산 폭발과는 달리 유황이 흐른다. 이렇게 해서 10의 25제곱m(10억 광년)에 이르면 먼지 같은 은하계에 닿는다. 이 정도의 우주여행으로도 누구나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인간 존재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는 겸허함을 얻게 된다. 같은 방법으로 1m를 -10배로 좁혀 나가면 손등, 피부 주름, 혈관, 혈구, 세포핵에 이어 바로 여섯 번째 단계에서 첨단 사진술로도 잡지 못하는 DNA에 닿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