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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나눔’의 뜻을 어디에 두었을까요. 그는 그것을 한마디로 ‘나눔의 평등공동체’에서 찾았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포도원 품꾼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고 말하면서, 그의 하느님나라가 지닌 경제적 의미 곧 “나눔의 평등공동체”를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뚜렷이 밝히고 있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품꾼을 고용하려고 아침 일찍이 일감을 기다리고 있는 저자거리(인간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는 품꾼들과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홉 시쯤 나가서 일감이 없어 서성이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했습니다. 주인은 열두 시쯤 나가서 그렇게 하고, 오후 세 시쯤에도, 또 오후 다섯 시쯤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맨 나중에 온 품꾼부터 차례로 불러서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침 일찍부터 와서 일한 사람은 더 받을 줄 알았다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주인에게 항의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찌는 더위 속에서 땀 흘려 일했는데 어째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주는 것입니까?” 이 항의는 정당합니다. 일꾼이 일한 만큼 품삯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경제이론에서 보면 경제정의에 속합니다.
그런데 성서에는 포도원 주인이 ‘불공평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포도원 주인이 준 한 데나리온은 실은 단순한 ‘품삯’(임금)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를 살 수 있는 ‘생계비’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한 데나리온은 하루를 살 수 있는 생계비[아니 생존비]였습니다.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아니 병이 나거나 일감이 없어서 일을 못하든, 사람은 적어도 하루를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날 사회주의경제학에서는 임금을 ‘생계비’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제「포도원 품꾼의 이야기」에서 드러난 경제원리를 한마디로 간추려 정리하면, “힘닿는 대로 일하고 필요(수요)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경제제도입니다. 이러한 경제 질서를 시쳇말로는 ‘공산주의’라고 부릅니다.
힘닿는 대로 일하고 수요에 따라 분배하는 경제 질서를 공산주의라고 한다면, 그 원리의 기원은 역사의 예수에게 있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그리스도교공동체에서 잠시나마 실천되었습니다. 처음그리스도교공동체를 ‘원시공산주의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지내면서 모든 물건을공동으로소유하고…모든사람에게필요한대로나누어주었습니다.”(사도 2:44-45). “믿는 무리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했습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사도 4:32-35)
다음으로 예수가 내놓은 하느님나라의 경제 질서는 ‘땅의 공개념’(公槪念)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땅의 공개념’이란, 히브리인들의 성서에서는 ‘땅의 공유화’(公有化)를 뜻하는 말인데, 이것은 땅의 사유화에 대한 철저한 거부를 전제합니다. 땅의 공유화사상은 이스라엘의 전통개념이었습니다. ‘땅은 야훼[하느님]의 것’이라는 그들의 통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땅은 야훼 하느님의 것이라는 말은, 땅은 모두의 것이므로 개인은 혼자 땅을 가질 수 없다는, 곧 사유권의 부정을 뜻합니다. 예수가 내놓은 땅의 공개념은 사람들을 소유[물질]의 예속에서 해방시키려는 데 그 본뜻이 있습니다. 소유는 사람의 사람다운 삶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경우에는 사실 땅뿐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대한 ‘무소유’가 예수의 기본 정신입니다. 그는 제자들을 보낼 때, 아무것도 갖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두벌 옷도 가지지 말고, 지팡이나 신발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돈주머니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철저한 무소유를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무소유는 저절로 가진 사람에 대한 비판과 저주로 나타났습니다. “너희 부유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루가 6:24-25). 예수가 말한 하느님의 나라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섞여 사는 세계가 아닙니다. 예수는 그리스도교에서 지향하려고 하는 ‘보편성’ 따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는 철저하게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이들의 해방을 겨냥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예수의 민중편향성이며 민중당파성입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느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다”(마태 5:1).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새롭게 열리는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말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일체의 소외계층을 가리킵니다. 정치 쪽에서 주변화하고 이데올로기 쪽에서 예속화한 계층인데, 우리는 이 계층을 ‘밑바닥사람’ 곧 ‘민중’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민중이 하느님의 나라 곧 새 세계를 이룩할 역사의 주인(주체)이라는 것이 예수의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소유할 하느님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해방되는 세계일 뿐더러, 그 해방을 이루어낼 주체가 바로 가난한 사람들 곧 ‘민중’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저절로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는 말했습니다. “부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생태로 보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진 사람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가진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 곧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는 그것을「부자 젊은이와 나눈 대화」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영생[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고 묻는 부자 젊은이에게 예수는 말했습니다. “그대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하느님나라를 실현하는 데 나와 함께 나섭시다.” 이 말을 들은 젊은이는 그의 소유가 아까워 그냥 돌아갔습니다.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을 위해 투신하라는 예수의 이 요청을 남미 해방신학자들은, ‘마음의 가난’(마태 5:1)이라는 말의 해석으로 삼습니다. 가진 사람들이 이러한 ‘마음의 가난’을 가질 때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가난의 의식화’라고 부릅니다.
예수의 경제원리가 “힘닿는 대로 일하고, 필요[수요]에 따라 나누어 가지는” 데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예수의 경제 질서가 철저한 소유의 평등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에게는 그의「달란트 비유이야기」나「열 므나 비유이야기」가 가리키듯이,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쓰더라도 남의 소유를 마음대로 착취하고 수탈해서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낳게 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시장경제원리’ 따위는 결코 용납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가 바라던 하느님나라는 ‘적어도 사람들[민중]이 밥을 먹고 살만한 사회’라는 데 본뜻이 있습니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바랐던 ‘샤오깡사회’(小康社會)와 상통합니다. “그래서 “주기도”에는 “일용할 먹을거리를 주소서.”를 첫 바람으로 일러주고 있습니다.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의 복됨은 소유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하느님나라를 가지는 데 있으며, 가진 사람[부자]들의 구원은 그들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예수는 소유의 평등이념이 실천되도록 가르쳤을 뿐 아니라, 아예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예수는 집을 떠난 뒤에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농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하늘나라의 도래를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와 그의 무리들을 ‘떠돌이선포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는 그의 방랑살이에서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데나 쓰러져 자고 닥치는 대로 먹었을 것입니다. 너무 배가 고플 적에는 남의 밀밭에 들어가 안식일인데도 밀을 잘라먹었습니다. 성경에는 제자들만 먹었다고 했지만, 예수도 함께 먹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예수도 배가 고프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니까요.
예수는 ‘떠돌이’로서 지팡이도, 배낭도, 돈[주머니]도 없이 다녔으며 심지어 신발조차 신지 않았습니다. 맨발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종선생도 맨발로 다녔지 않았습니까. 예수는 두 벌 옷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울려 다니는 무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타일렀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둥지가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는 예수의 고백은 그의 무소유의 삶을 잘 드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유의 나눔을 강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세종이 집을 떠나서 움막에서 홀로 지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전도를 했다는 것도, 예수의 ‘떠돌이살이’와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이것은 예수처럼, 선생의 ‘무소유의 삶’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거지와 옷을 바꿔 입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엄두섭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거지가 되려고 했다.” “이공의 행색은 거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육식을 하지 않았고, 생선도 먹지 않았다.” “그의 주식은 쑥범벅이었다.” “그는 헌 누더기 옷으로 만족했다.” “겉치레(外飾)는 하느님을 능멸하는 일이다.” “그는 지나치게 검소했다.”는 것입니다.
이세종의 거지꼴을 보고 아이들까지 놀렸습니다. 심지어 ‘비렁뱅이’니 ‘문둥이’니 하고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어른들은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때 이공이 했던 말이 감동스럽습니다. “내 몸은 문둥이가 아니지만 내 마음 속에는 문둥이가 있으니, 하느님께서 아이들을 통해서 이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비렁뱅이는 아니지만, 하느님께 맨날 빌어먹고 살고 있으니 아이들의 말은 옳은 것이 아니냐.” 그 무렵 교회에서는 ‘아단’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먹어야 산다. 예수가 나의 힘이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요한복음서(6 : 52-59)에는 예수의 말로서 “너희가 내 살을 먹지 않고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 세종은 그 말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의 힘은 예수의 살을 먹는데서 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순하지만 놀라운 해석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세종은 예수의 떠돌이 면모를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세종의 자기 믿음과 생각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행동일 가능성이 큽니다. 선생은 ‘역사의 예수’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