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 박선애
“바쁘다 바뻐 선애 바뻐, 닭 다리 잡고 은아 뜯어.” “바쁘다 바뻐 은아 바뻐, 닭 다리 잡고 수경이 뜯어.” 학창 시절 친구들과 무릎을 맞대고 둥글게 앉아서 하던 놀이다. 운율이 맞아 입에 착착 달라붙는 데다 박자에 맞춰 무릎과 손뼉까지 치면서 하는 것이 재밌었다. 틀리는 친구가 있으면 더 신이 났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이 나올까 봐, 박자를 놓칠까 봐 신경 쓰느라 바빴다. 그것이 뭐라고 틀리지 않으려고 마음 졸이며 최선을 다했다. 올해 나는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일의 처리 시기를 놓치거나 제대로 못 할까 봐 조바심을 내기도 했다. 닭 다리를 줘도 뜯을 틈이 없을 만큼 정신없는 날도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학생도 몇 명 되지 않는 조그마한 학교에서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엄살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이럴 줄 몰랐다. 새로 옮긴 학교였지만 학생은 착하고, 선생님들과는 뜻이 잘 맞아 따로 적응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체험 중심의 교육 과정 운영도 맘에 들었다.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좋았다. 밖에 나가 온종일 같이 지내다 보면 금방 가까워졌다. 교실 밖에서 더 빛이 나는 애들을 보면서 뿌듯했다.
그런데 몸이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내 수업 시간 외에는 쉴 수도 있는데, 체험 학습에서는 그러기가 힘들었다. 국제 교육원에서 한 영어 캠프에서는 원어민 교사의 수업에 인솔 교사가 같이 들어가서 보조해야 했다. 영광에 있는 안전 체험 학습장에서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활동했다. 5월에 학생 교육원으로 간 진로 직업 체험에서 내가 맡은 곳은 드론 체험장이었다. 실내에서는 아이들이 딴짓하지 않게 지키고, 야외에서 체험할 때는 사진 찍으러 쫓아다니느라 지쳤다. 다음 날 “체험 학습 다니다 과로사하게 생겼다.”는 농담 같은 불평이 절로 나왔다.
이후로도 야영 수련 활동, 우리 마을 숲 체험, 물놀이, 독서 캠프, 뒤뜰 야영, 야구 경기 관람, 순천만 정원 박람회, 진로 박람회, 영산강 자전거 도전 활동 등 체험 학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루로 끝나는 것도 있었지만 영어 캠프와 야영 수련 활동은 2박 3일간 했다. 뒤뜰 야영과 독서 캠프, 방학 중 1박 2일 책 읽기는 학교에서 잤다. 가까운 곳에서 한 것도 있고, 버스를 빌려서 멀리 가는 것도 여러 개 있었다. 다른 선생님이 계획하고 추진해서 우리 반 학생들만 지도하면 되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맡아서 진행해야 하는 것도 몇 개 있었다. 그럴 때는 더 바쁘고 마칠 때까지 긴장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날이 많으니 1년 내내 교과 진도 맞추려고 허덕였다. 수업 외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교과서가 전 학교와 달라 틈을 내 학습지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아침과 점심시간 독서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거웠지만 시험 출제 기간이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이 시간도 아쉬워 마음이 흔들렸다. 독서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한 작은 책방 순례, 우리 반끼리 한 문화 체험 활동은 토요일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몇 주째 입술에 물집이 자리 잡고 있다. 연고를 열심히 발라도 시간이 걸린다. 보는 사람마다 힘든가 보다고 걱정한다. 시험 문제 만드느라 그런 것 같다. 올해는 자유학기제로 바뀌어서 2학기부터는 세 개 학년이 모두 시험을 본다. 100문제 가까이 내고 나면 다시 보기 싫어 검토하는 일이 고역이다.
이번 주에 시험이 무사히 끝났다. 채점도 마치고 수행평가 점수도 다 매겼다. 가을 농사처럼 일을 하나씩 거두면 마음도 가벼워진다. 다음 주부터는 진짜 활동 중심으로 교육 과정이 운영된다. 작가 초청 강연회, 영화('서울의 봄') 관람, 역사 기행, 학교 축제, 2박 3일 스키 캠프가 줄줄이 잡혀 있다. 거기에 우리 3학년은 1박 2일 서울 여행도 갈 계획이다. 성적 처리해서 일반계고 원서를 보내는 일도 매우 긴장되는 일이다. 졸업 준비도 해야 하고, 생활기록부도 써야 한다. 책으로 펴낼 애들 글도 아직 내 손에 있다. 일할 시간을 계산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믿는 것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1월 5일 졸업식과 함께 다 마무리되어 있을 거라는 것이다. 올 한 해도 아이들 곁에서 열심히 잘 살았다고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 또 바쁜 중에도 낑낑대며 글쓰기를 놓지 않은 내가 대견하다.
첫댓글 아이고 제가 다 숨가쁘네요. 그래도 글쓰기도 놓지 않고 대단합니다.
언제나 같이 놀까요? 시간 나기만 손꼽아 기다리는데요. 하하하!
올해도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선생님 존경합니다.
선생님 고생하셨네요. 진짜 바쁘죠. 특히 작은 학교는 더 바쁘고요. 학교 밖 사람들은 잘 몰라요. 백조가 물 속에서 얼마나 부지런하게 발헤엄을 치고 있는지.
그 바쁜 와중에 한 글 쓰기 , 선생님 존경합니다.
뭔 행사가 그리도 많단가요? 정말 바쁜 한 해를 보내셨네요. 내년 1월 5일까지 더 건강하게 지내세요.
읽기만 하는 저도 숨찹니다.
올해 선생님 알게 되서 좋았습니다.
신세도 많이 졌고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선생님의 글 보면서 몰랐던 선생님들의 업무와 자리에 따른 책임감을 알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교육과정과 관련지어 보면 닿지 않는 내용이 없겠지만 진짜 필요한 체험학습인지, 아니면 교육계획에 잡혀 있어 하는지, 일회성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활동은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알맹이가 없는 가성비 낮은 활동도 있을 테니까요. 예전에 그런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마 문우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학습으로 이어지는 활동이 많을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제목부터 숨가쁘게 읽었답니다. 아이들한테는 인자한 선생님이실 것 같아요. 스스로 칭찬하고 싶다는 마음에 제 마음도 보탤게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작은 학교는 해내야 할 일감이 많아 힘들지요?
성실한 선생님은 어느 것 하나 놓치려 하지 않으니 더 그러겠어요.
경중을 따져 쉬어가며 하셔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우와, 바쁘다고 투덜댔는데 선생님 글 읽으며 반성합니다. 꼼꼼한 성격이 글에서, 하시는 일에서도 보이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