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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한옥게스트하우스 셔블의 매력은 보름날 밤에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행복동 2층 난간에 서면 달빛을 머금고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대릉원의 능과 눈높이 대화가 가능하다. 요즘 마당 안으로 들어온 능을 품고 인문학적 사색을 해보려는 외국 여행가들이 셔블을 부쩍 많이 찾는다. |
한옥(韓屋).
초가의 서민에겐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한 채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부와 성공의 상징’이었다. 도편수와 대목수의 ‘예찬’을 들으면 한옥은 동화 속 궁전 같기도 하고 신선과 천사가 살아야 할 별천지인 것 같기도 했다.
광복 직후 서민형 기와집이 고품격 전통한옥의 대체품으로 전국에 보급되었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한옥은 급속히 퇴락했다. 대구도 다르지 않았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중구 남산동, 계산동, 진골목 근처 기와집에 살던 부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대명동으로 건너가 2층 양옥을 지었다. 나중에는 고급 빌라나 아파트로 옮겨갔다.
한옥은 ‘불편함’, 아파트는 ‘편함’의 상징이 되었다. 2000년대 후반쯤 기와집은 ‘도심의 흉물’로 전락했다.
한옥이 살아남으려면 달라진 시대와 ‘눈높이 대화’를 해야만 했다. 한옥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해도 그 의무를 지키는 것은 지난했다. 우리는 과거의 한옥과 미래의 한옥 사이를 거닐었다. ‘개량한옥’은 그 결과물이었다. 때맞춰 한옥은 한류의 주요 항목으로도 부각됐다. 유행은 돌고 돌았다. 도심의 흉물은 이제 ‘금덩어리’로 되살아나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서울 북촌·안국동·삼청동 등지의 기와집은 부동산 투자자의 매입 1순위가 되었다. 세련되게 리모델링된 한옥은 마치 농촌 처녀가 ‘뉴요커’로 변신한 것 같았다. 곧바로 서울에선 한옥레스토랑 신드롬이 일어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식 세계화의 흐름을 타면서 전국의 유명 고택과 전통한옥마을은 지자체의 관심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한국관광공사는 ‘한옥스테이’사업을 시작했다. 이젠 스마트폰으로 한옥스테이 모바일 웹페이지(hanokstay.modoo.at)로 들어가면 전국 123개 한옥마을의 숙박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옥관광의 축도 80년대 용인 민속촌에서 벗어나 점차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 전주 한옥마을, 영주 선비촌 등지로 확산되었다. 안동은 한국 고택의 메카로 농암종택, 칠계재 등 고택스테이로 각광받고 있다. 경주에는 ‘라궁’이란 한옥호텔도 생겼다. 한옥으로 다양한 부가가치를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한옥마케터’까지 등장했다.
대구시도 도심 한옥 살리기에 나섰다. 지난 3월부터 한옥을 수리하거나 신축할 때 공사비 일부를 지원해 주는 ‘한옥진흥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옥은 이제 곰팡내 나는, 흘러간 주거양식이 아니라 현대적 안식처로 거듭나고 있다. 한옥 진화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주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바로 옆 행복 한옥마을 한옥게스트하우스 ‘셔블’, 청도읍성 바로 옆 한옥카페 겸 야생화 식물원 ‘꽃자리’, 대구시 중구 삼덕동 한옥병원 임재양 외과를 차례로 둘러봤다. 한옥의 ‘삼색 변신’인 것 같았다. 이 세 공간은 기존 한옥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연장에서 자기 인생관에 맞게 신축했다. 한옥의 매력이 어느 곳보다 잘 구현되어 있다.
경주를 찾는 외국 여행객에게 선호도 1순위로 급부상한 셔블은 대릉원의 5기 능을 앞마당으로 끌어 들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밤의 운치가 빼어나다. 꽃자리는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 청도읍성을 품었고, 임재양 외과는 웰빙을 넘어 ‘힐링 메디하우스(Medihouse)’의 신지평을 열고 있다. W6·7면에 계속
출처 영남일보 글·사진=이춘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