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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기도"
[느헤미야 1:1-1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페르시아로 끌려간
이민 3세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여기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특히 아닥사스다 왕은
자신의 아버지가 독살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과 의심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술 맡은 관원장이 되었다는 것은
왕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죠.
그런 그가 한 가지 소식을 듣습니다.
하나니를 비롯한 동료들이
예루살렘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느헤미야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들었던
화려했던 예루살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란 게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그 성문들은 불에 타서 재만 남았다는 겁니다.
기대했던 모습이 전혀 아님을 깨닫고
느헤미야는 충격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우리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느헤미야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죠.
그러나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그는 성이 무너진 것 때문에 슬퍼하긴 했지만,
마음이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적인 현실을 기도로 승화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려
아프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그러면 슬퍼합니다.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면에서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어떤 특징이 있고,
우리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요?
본문 중심으로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 5절을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지금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하나님에 대한 이름을 이렇게 길게 부르는 것은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 문화였습니다.
특히 그들의 신 ‘오르무즈드’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그들과 달리
철두철미한 여호와 신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입니까?
비록 몸은 페르시아에 있지만
그 정신은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문제를 만나면 세상을 의지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시나요?
예를 들어 가족 중 한 명이
대학 병원에서 수술해야할 만큼
큰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환자가 너무 밀려서 6개월 뒤에나
진료가 가능한 상황이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곧바로 모든 인맥을 동원하죠.
그래서 가장 빠른 시간에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세상은 돈이 먼저라고 속삭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우리 인생은 편리해집니다.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습니다.
돈이 많다고 불임의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사춘기 자녀들의 방황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느냐
아닌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상황 속에서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모세가 홍해바다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리죠.
뒤에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저곳에서 신세 한탄하며
불평과 불만의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죠.
그러자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이집트 군대에게 찾아가 협상을 벌이나요?
아니죠.
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높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
물을 벽처럼 세웁니다.
그로 인해 바다 한가운데 길이 열렸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길을 내는 일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인생의 문제를 만났습니까?
생각하면 눈물 밖에 나지 않는
상황 중에 계시나요?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대로
놀라운 반전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가 드렸던 고백 중에
두 번째 기도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6절과 7절을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6, 7
6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이 망하고,
성문이 불에 타버린 지금 이 상황이
자신의 죄라고 고백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느헤미야는 이민 3세입니다.
본인이 잘못한 게 뭐가 있나요?
태어나기도 전에 유다는 다 망했습니다.
성벽이 없으니 이방인들이 왔다갔다 하며
모든 걸 망가뜨렸습니다.
자기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걸 ‘거룩한 책임의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겐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요즘 한국 교회는 세상에서
더 이상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유는 우리들의 죄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을 손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깁니다.
왜요?
사랑하기 때문이죠.
여러분, 예전에 제가 봤던 영화 중에
<말죽거리 잔혹사>가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보면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쌍절봉으로 다 때려눕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떠납니다.
다음 날 병원에 입원한 친구들과
그의 부모님들 사이로
주인공과 그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며
사과를 하죠.
그토록 단단하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빕니다.
아버지가 아이들을 그렇게 때렸습니까?
아니죠.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거룩한 책임의식이 있습니까?
거룩한 책임 의식은 사랑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을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직 예수를 모르는 친척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책임의식으로 인해 기도하게 됩니다.
느헤미야처럼 거룩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축복합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거룩한 책임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함께 본문 8-9절을 읽겠습니다.
느헤미야 1:8, 9
8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지금 느헤미야가 고백 내용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씀을 잘 알았다는 것은
이방 땅에서도 말씀을 가까이 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직업은 술 맡은 관원장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여기까지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공부도 많이 했을 것이고,
언어와 문화를 비롯한 다방면에서
뛰어나야 했을 겁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이방 문화에 빠져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대로 산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현상황을 보며
말씀 안에서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말씀으로 기도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말씀이 없이 내 생각대로만 기도하면
응답이 와도 잘 모릅니다.
무엇보다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 얼마 기도하다가 포기하기 일수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약속하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돌아오게 하시리라!”
담임목사님께서 쓰신
<사랑제일교회 기도이야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매년 송구영신예배 때 말씀을 뽑는데
그 해 담임목사님 가정에 주신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신명기 28:7, 8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 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이 말씀대로 그해 성도들의 가정에
복이 임하였습니다.
성전도 수리하게 되었고,
성도들의 질병도 고침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교육관 부지를 주셨고
아름다운 교육관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부지가 신도시 재건 때
귀한 요지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 모든 게 말씀을 의지한 결과였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말씀을 붙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이 말씀을 붙들고 시작해보십시오.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크고 은밀한 일을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는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절에
기슬르월이라고 나와있습니다.
이것은 11월 중순에서 12월 중순에
해당하는 달입니다.
그 때부터 기도하기 시작하여
그가 다음 해 니산 월에 왕을 만납니다.
니산월은 4~5월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4개월 이상
그는 기도에 매달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곧바로 응답되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복리와 같습니다.
처음엔 응답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복리 이자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때가 되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움이 2장에 등장합니다.
사실 13년 전에 에스라가 2차 포로귀환을 하며
성전을 보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많은 반대에 부딪혀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립니다.
“성전 재건을 멈춰라!”
그러니 이 사실을 모를리 없는 느헤미야는
걱정이 많았을 겁니다.
왕이 조서를 내린 걸 다시 바꾼다는 예를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왕이 자꾸 말을 바꾸면
그의 지도력에 권위가 서질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 재건은 아무리 측근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입밖에 꺼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로 때를 기다렸습니다.
4개월 넘는 시간을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랬더니 먼저 왕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묻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느헤미야를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보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당장에 응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인 문제가
로또를 맞는 것처럼 해결되지 않을 수 있어요.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차도가 없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때까지
계속 기도하십시오.
지금 당장 변화가 없어보여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역전되리라>
기도를 멈추지 마라
눈앞의 상황이 마음을 눌러도
원망치 마라 너의 입을 지켜라
저들은 너의 입을 보고 있다
마음을 뺏기지 마라
내가 널 도우지 않는단 소리에
너의 모든 게 모든 게 불리해도
너는 기도를 계속해라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너의 그 모든 상황을
바로 역전시키리니
너 기도를 멈추지 마라
내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니
바로 역전되리라
이전에 저희 어머니 이야기를 드렸죠.
사연 없는 집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22살 꽃다운 나이에 환영받지 못하는 결혼을 하고
해안가 마을로 홀로 내려오셨습니다.
친구나 지인이 전혀 없는
그 곳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했죠.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더불어
2명의 시동생들과
4명의 시누이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여러 사람 눈치 보느라
가슴을 졸이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3살 때,
임신한 몸을 이끌고 연고도 없는
봉천동 달동네로 올라오셨습니다.
이 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었고
재래식이었어요.
당연히 보일러도 연탄 보일러였죠.
서울 한복판에서 슬레이트 지붕에
주인집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 집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아이를 키우셨어요.
제가 유치원 땐 아버지와 함께 트럭으로
야채와 계란을 팔러 전국 팔도를 누비셨습니다.
이후로도 아버지의 직업이 몇 번 바뀌셨습니다.
정말 돈이 없어서
콩나물을 100원이라도 깎아가며
집안 살림을 해오셨어요.
한 번은 아버지께서 큰 사고를 당하셔서
입원 치료를 받으신 적이 있습니다.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이셨던
아버지께서 다치시니 돈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께서 카드를 썼는데
이게 나중에 도저히 갚을 방법이 없더랍니다.
결국 빚쟁이들을 피해
숨어 지내기도 하셨습니다.
지난 설에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며
과거의 이런 일들을 회상했습니다.
정말 거친 인생길을 사셨던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어머니, 어떻게 이걸 견뎠어요?”
엄마가 딱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기도했지. 힘들어서 기도했어.”
저희 어머니를 통해 제가 배운 게 있습니다.
가정이 어렵고,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나고,
자녀들이 속 썩일 때마다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사람을 찾는 것도 필요하죠.
그러나 그 이전에 하나님께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겁니다.
성경에 나온 수많은 기적들이
바로 내 말씀임을 믿고 부르짖는 거죠.
그랬을 때 닫혔던 문이 열리고,
새롭고 산 길이 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느헤미야를 왜 하필 그때
술 맡은 관원장으로 세우신 이유가 뭘까요?
무너진 성벽을 회복시키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미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뤄가시기 위해
그의 마음에 거룩한 책임의식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한국의 수많은 교회 중에
사랑제일교회로 부르신 것도
하나님의 크신 계획인 줄 믿습니다.
우리를 통해 교회를 살리고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그 가정에 보내신 것도,
회사에서 그 위치에 세우신 것도
우릴 통해 그 자리에
하나님 나라 임하게 하시려는
거룩한 계획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우리가 할 일은 눈물로 기도하는 일이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늘 보좌가 움직일 것입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180도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역사하시는
우리 교회, 우리 가정,
우리 직장, 개인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