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며칠전 한 방송사에서 가요대전이란 이름으로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젊은 가수들을 무대로 끌어내면서 소개를 하더군요.
거의 모두가 외국어 같은 이름이고 노랫말에도 절반은 영어같더군요.^*^
영어와 한국어의 구조적 차이 중 하나는 be 동사의 유무입니다.
be 동사는 ‘있다’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주어와 형용사를 연결하는 기능이 중요한데요.
영어는 문장구조 자체에서 형용사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I am happy’와 ‘I walk’라는 문장에서 시제와 인칭에 따라 변하는 것은
be 동사든 일반 동사든 동사이고, 형용사 happy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웃기다'라고 표현합니다.
한국어 ‘나는 행복하다’와 ‘나는 걷다’에서는 주어와 형용사, 주어와 동사가 모두 직접 연결됩니다.
‘행복하다’라는 형용사도, ‘걷다’라는 동사도 시제에 따라 어미가 변하기 때문에
문장구조 자체에서 형용사인지 동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
동사는 사물의 동작이나 작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내용적으로 구별하지만
언제나 타당한 것은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늙다’를 동사로 분류했습니다.
‘늙다’는 사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늙다’는 ‘예쁘게 늙자’ ‘예쁘게 늙어라’와 같은 청유형과 명령형이 가능하지요.
반면 형용사 ‘예쁘다’는 ‘예쁘자’ ‘예뻐라’로 변화시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늙다’를 동사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해 보임에도
‘늙다’는 동사이고 ‘젊다’는 형용사라는 건 해명이 쉽지 않은 비대칭성입니다.
국립국어원은 ‘잘생기다/못생기다’ ‘잘나다/못나다’도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동사로 분류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잘’ ‘못’이라는 부사와 ‘생기다’ ‘나다’라는 동사가 합쳐진 말로
일부 동사에서처럼 과거형으로 쓰고 현재로 읽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령 ‘그 녀석 잘생겼다’라고 하지 ‘그 녀석 잘생기다’라고 하지 않잖아요?
현재형으로 쓰고 현재로 읽는 형용사 ‘예쁘다’와 다릅니다.
그럼에도 ‘잘생기자’ ‘잘생겨라’ 같은 활용은 없어 완전한 동사라고 하기도 어색하지요.
이들 단어를 형용사로 분류할지 동사로 분류할지는 오랜 논란거리입니다.
be 동사가 없어 형용사와 동사를 선험적으로 구별하지 않는 언어이다 보니
그 틈새에서 이런 경계선상의 단어들이 생겨나지 싶네요.
개그맨들의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은 관중을 웃기는 것이어서
그걸 보는 우리는 '웃긴다'고 말해야지 '웃기다'라고 하면 누가 주체인지 헷갈리거든요.
하기야 세상이 워낙 복잡미묘하다보니 헷갈리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네요.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