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생태길
한글날이 일요일과 겹친 새벽녘 근교 산자락에서 가을 정취를 느껴 보고자 날이 덜 밝아온 미명에 길을 나섰다. 배낭에는 도시락을 챙기고 스틱은 짚지 않았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의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어 원이대로 창원수영장 앞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757번 직행버스를 탔다. 시내와 안민터널을 관통해 대발령을 넘어 동진해로 달려가 마천공단 입구에서 내렸다.
마천공단 입구 웅동 소사마을 들머리에는 기미년 진해 웅동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기리는 빗돌이 세워져 있었다. 당시 우리 지역에서도 대규모 만세 운동은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주로 그 지역의 5일 장날을 기해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리하여 일본 경찰의 총칼에 희생자가 난 곳만도 진동과 영산과 장유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함안 군북과 진해 웅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웅동 삼일운동 기념탑 가까운 곳에 진해 드림로드 종점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드림로드 비탈을 따라 올라가니 중년 아낙이 뭔가에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 내려왔다. 매일 같이 아침이면 체육 기구가 있는 곳에서 운동하고 오는데 오늘은 멧돼지가 무리 지어 길을 막고 있어 되돌아온다고 했다. 나는 그 녀석들은 어디론가 사라지도록 멀리 떨어져 지켜봐 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 아낙은 용기를 내어 나를 따라와 멧돼지가 머문 현장을 가리켰다. 알밤이 떨어진 밤나무 그루터기는 멧돼지가 주둥이로 파헤친 흔적이 역력했는데 숲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낙을 앞서 가게 하고 나는 뒤를 따르며 벌개미취꽃이 저문 곁에 피어난 쑥부쟁이꽃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여름에 벌개미취와 함께 핀 등골나물꽃은 아직 저물지 않은 꽃잎이 타래실처럼 엉켜 있기도 했다.
먼저 간 아낙은 숲속 쉼터 체육 기구에 매달려 몸을 풀고 있었다. 나는 산등선을 비스듬히 오르는 길고 긴 숲길을 따라 걸었다. 진해 드림로드는 장복산 조각공원에서 안민고갯길을 거치는 장복 하늘마루길 구간과 대발령에서 백일마을에 이르는 백일 고요 아침길 구간에 이어 백일마을에서 웅동 소사까지 소사 생태길 구간으로 나뉘었다. 내가 걷는 구간은 소사 생태길에 해당했다.
숲길을 걸어가니 노란 꽃잎을 화사하게 달고 나온 미역취꽃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얀 꽃잎을 펼쳐 단 구절초는 언제 봐도 순결하고 청초해 보였다. 당국에서 길섶의 풀을 자를 때 예초기 칼날을 용케 피한 산박하는 보라색 꽃잎을 달고 있었다. 산박하꽃은 밭둑에 키우는 방아풀과 비슷해 보였다. 방아풀은 배초향이라고도 하는데 추어탕이나 매운탕에 제피가루와 함께 넣는 향신료다.
산모롱이를 돌아가는 즈음 정자 쉼터에 앉아 때가 이르긴 했지만 배낭의 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앞으로 나아갈 여정에 마땅히 쉴만한 정자가 없을 듯했다. 도시락을 다 비워갈 즈음 예닐곱 명 젊은이들이 휴일을 맞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잠시 멈춰 쉬었다.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를 들어보니 웅동 지리를 잘 아는 그들은 백일마을에서 그다음 고요 아침길 따라 대발령으로 갈 듯했다.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떠난 뒤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소사 생태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불모산 정상 송신소에서 웅산으로 뻗친 산등선에 솟은 시루봉이 우뚝하게 보였다. 암반을 따라 물이 흘러온 계곡에는 궁궁이가 하얀 꽃을 피워 덤불을 이루었다. 산형과의 궁궁이는 내가 여항산 옥방골에서는 봄날에 잎줄기를 뜯어와 산나물로도 먹은 바 있었다. 길섶에서는 기름나물꽃도 만났다.
생태길이 끝난 곳에서 개가 요란스럽게 짖어대 무슨 연유인가 궁금했다. 주인장이 비운 산중 농막 근처 참나무 숲에는 중년 부부가 도토리를 줍고 있어 짖어댄 소리였다. 내가 비탈을 내려서는 도중에도 도토리는 여기저기서 툭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백일마을에서 고요 아침길로 오르지 않고 동구 밖으로 나가 관정마을의 주자 영당을 둘러보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