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담 역과 말죽거리의 추억,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만,
형승도 변하고 이름도 변한다.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에 관리들이 말을 바꾸어 타던 갈담역葛覃驛이 있었고,
이곳을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글을 남겼다.
그중 한 사람이 고려 말의 문장가인 이규보였다.
석양에 돌아가는 깃발 나무 그늘 가운데 남쪽으로 건너오니,
산천이 모두 한 모양이로세.
늘어진 버들은 사람을 근심하게 하여 가는 곳마다 푸르고,
깊숙한 꽃은 주인이 없는데 누구를 위해 붉었는고,
우정(郵程)은 경유하는 객(客)을 모두 겪었고,
야성은 누가 방달(放達)한 노옹 같을까,
분주히 역마 타고 달리는 모양을 하지 않고,
옷을 벗고 한가로운 마루에 가득한 바람에 누웠네.
고려 말의 문신 설장수도 글 한 편을 남겼다.
지세가 깊숙하고 수림은 깊은데,
새소리 화합하고 푸른 시내에 봄이 깊어 칡덩굴이 뻗치었네.
우연히 산가(山家)를 향하여 말 먹이를 구하니
역리의 말소리 알아들을 수 없구나.
그러나 지금은 갈담이 아닌 강진이라 부르고,
갈담역 옆에 마방이 있던 자리는 새마을 금고가 들어섰고,
떡방앗간 이름만 옛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어디 갈담역만 그럴까?
서울의 말죽거리에는 양재역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대가
나라 안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 중의 하나가 되었으니,
”강남과 서초동 일대의 사람들은 지금도 역삼동이나 양재동이란 지명보다 말죽거리에 익숙하다.
이름 그대로 제주도에서 올려 보낸 말을 한양으로 보내기 전에
이곳에서 최종 손질하고 마방에서 말죽을 쑤어먹였다는 유래를 갖고 있으며, 영남대로를 따라 온 길손이 한양에 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쉬어간 곳이기도 하다.
한양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영남대로 상의 첫 번째 역인 양재역(良才驛)은
한강도(漢江渡) 10리 남쪽 즉 현재의 한남대교 남쪽
약 4키로 미터 지점에 자리 잡은 서초구 양재동에 있었다.
70년 대 초 까지만 해도 역촌(驛村). 말죽거리. 역삼리 등의 마을들로 남아 있다가
지금은 언주초등학교가 그 부근에 들어섰다.
역 주변은 말죽거리로 불리던 주막 촌이었다. 주막 촌이 여섯 군데가 있었으며,
이 근처에는 말을 먹이던 마방(馬房)도 있었다.“
신정일의 <영남대로> 중에서
세월 저편에 말죽거리를, 갈담을 오갔던 사람들은 그 어디메 있는지?
2020년 1월 15일 금요일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