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일기]*.
ㅡ장유유서ㅡ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이어진 네 사람.
각각 1살씩의 터울로 동갑나기가 없다. 나는 세 번 째다. 출신 지역도 각기 다르다. 이들과 함께 오늘 남한산성 인근 지역으로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다. 다른 해보다 외출을 망설였던 봄이다.
세계 각국에서 바이러스 전염으로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오늘까지 전세계의 바이러스 확진자 1백만 명이 넘어섰고, 사망자가 5만명을 육박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60대 이상 고령자들은 거리에 못 나오게 한다. 필리핀에서는 확진자가 경찰의 지시를 거부할 시 총살 명령까지 내렸다고 한다. 연일 신문 방송에 '코로나19'에 관련된 기사로 장식한다. 이런 상황에 봄을 즐긴다는 것은 무리다. 봄이 무섭다.
ㅡ눈빛으로ㅡ
광나루역에서 만난 네 사람은 김도연의 승용차에 올랐다. 평소와 달리 서로 악수도 못하고 눈인사로 대신했다. 눈으로 말하고 무언의 가르침을 전하는 김경희,박노홍 선배는 바이러스 퇴치 홍보대사로 적격이다.
평일 미사리 맞은편 팔당 길은 차량 행렬이 줄을 이었다. 봄꽃 구경을 '드라이브 스루'로 하기 위해 떠나는 자가용족들이 대부분이다.
대중교통을 기피하는 현상이다. 평소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 은고개 만두집. 빈 자리가 많아 기다림없이 점심상을 받았다.
환자 수용 공간이 모자라 병원들이 제때 치료를 못해 안타까운 일이 생기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마스크 대란으로 새벽부터 약국 앞에 긴 줄을 서야 한다. 자가 격리 환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쿄 올림픽 개최가 1년 연기되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등 내가 태어난 후 처음 겪는 재앙이다.
ㅡ전령사ㅡ
지천에 핀 봄 전령사들은 그리 행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봄이 아닌 듯 아직은 찬기운이 남아 있어 벌과 나비가 눈에 띄지 않는다. 환자나 마음 아픈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대신하는 꽃들도 위축되어 보인다.
남한산성 자락의 기와집들, 조선시대에 온 듯 근사하다. 위베이크 빵집에서 계곡으로 흘러드는 커피 향과 빵 냄새는 옛사람들이 군침을 삼킬만하다.
구름 속에 묻힐 듯한 절벽 위에서 굽어보는 망월사. 현실에 처한 세상사 자업자득, 자승자박이라고 무언의 메세지를 받은 느낌이다.
결자해지로 돌리는 듯 부도탑을 지키는 선지식은 묵묵부답이다.
올 사월 초파일 행사도 윤사월로 한 달을 미뤘다는 전국의 사찰들, 망월사도 예외는 아니다.
햇살만 창으로 스미는 종무소(지천료智泉療)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교회나 사찰에도 지각 변동이 생겼다.
문전성시ㆍ야단법석이란 단어는 전설이 되었다.
절을 지탱하는 높다란 담벼락 아래에 붙어 있는 미국제비꽃, 수선화가 꽃잎이 열렸지만 웃음을 잃은 모습으로 보인다. 유일하게 홍일점으로 틈새에 끼어 있는 백옥 천사 히야신스는 잠깐 비치는 햇빛에 몸을 그을리고 있다.
일부 지방 관광지에선 유채꽃밭을 갈아엎었다.
관광객이 너무 몰려와서 물리적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고 한다. 애꿋은 꽃들이 씨앗을 맺지도 못하고 재앙을 맞았다.
망월사望月寺 입구 현판의 자항문慈航門,
부처가 자비심으로 중생 제도를 배航에 비유한 말이다. 배가 파도에 밀려가듯 가파른 내리막길을 빠져나왔다.
돌담이 길게 이어진 성벽 모퉁이의 장경사長慶사.
한낮에 졸음을 삼킨다.
신도들이 쉬는 공간인 무심카페도 코로나로 인해 문이 닫혔다.
ㅡ자존심ㅡ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산 둘레를 감싼 성벽은 지킴이 문화유산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물자와 장비가 미비한 시대였다. 자신을 희생해 후대를 지키려는 옛사람들의 노고가 컸음을 생각하니 감동이 복받친다. 남한산성 둘레길을 걸으며 옛사람들의 생각에 잠시 잠겼었다.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치욕적인 사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 재위14년, 병자호란을 맞아 청淸의 군을 피해 신하들과 45일간 머물었던 남한산성이다.
부휴자의 말이다.
스승이나 벗같은 신하, 손님같거나 관리로서의 신하, 하인으로서의 신하가 있다고 한다.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현명하다고 했다. 덕망이 있는 왕이였다면 치욕을 당했을까!
약소국 진秦에 가서 강대국으로 만든 상앙.
"천 명의 아첨꾼보다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 더 낫다." 깊이 새겨볼 명언이다. 무심히 바람을 맞는 고목들 사잇길로 다시 빠져나와 광주길을 달렸다.
산 그림자를 키운 해는 힘이 빠졌다. 목현동의 '해와 달' 한정식집으로 달렸다. 예약이 없는 음식점이다. 번호표 없이는 밥상을 못 받았던 요리집이 텅 비어 있다.
단촐하게 밥을 먹은 식탁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듯했다.
살얼음판 같은 하루의 시간을 무사히 보내야하는 봄. 불현듯 지난 해의 봄을 그려본다.
2020.04.02.
첫댓글 은고개 만두집을 들리시고
망월사 장경사를 마음으로
담으신 발길을 목현리에서
맛있는 식사로 좋은 걸음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