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은 보고 싶은데 추운 건 싫고 산행은 더더욱 싫다.’ 이런 사람들은 주목하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따듯하게 차를 타고 올라가면 도착하는 겨울왕국이 있다. 차 문을 열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환상의 설국이 펼쳐진다. 새하얀 낙엽송들이 도열한 채 환영인사를 하고, 고산준령의 우람한 능선이 너울너울 펼쳐진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겨울왕국에 서다.
차로 올라가 만나는 황홀한 눈꽃세상
점심을 먹고 잠시 SNS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진 한 장에 눈길이 멈추었고,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하늘 향해 뻗은 낙엽송들이 하얀 눈꽃 옷을 입고 도열한 순백의 세상!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해시태그와 함께 ‘만항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검색에 들어갔다. 함백산 만항재! 포장도로가 된 가장 높은 고개. 차 문만 열면 바로 볼 수 있는 풍경이란다. 이거다, 무릎을 쳤다. 모든 눈부신 설경은 소백산, 태백산, 지리산 같은 높은 산에 올라야 하니 감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데 차로 올라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만나는 설경이라니. 바로 정선으로 향했다.
[왼쪽/오른쪽]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고개다. / 겨울이면 설국으로 가는 환상의 길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를 타고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도로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가장 높은 도로로 알려진 지리산 정령치나 태백과 고한을 잇는 싸리재보다 높다. 정령치는 해발 1172m, 싸리재는 해발 1268m, 만항재는 해발 1330m나 된다. 단연 최고다. 고한 상갈래교차로에서 태백 화방재(어평재)로 이어지는 414번 지방도에 속한다. 까마득히 높은 산길 구간인지라 겨울철 눈길 운전이 걱정스럽다면 안심해도 된다. 눈이 많은 강원도답게 제설작업이 어찌나 완벽한지 놀랄 지경이다. 고한읍을 지나자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꼭대기가 가까워질수록 창밖은 새하얀 풍경으로 변해가고, 심장도 조금씩 빨라진다. 드디어 목적지인 만항재야생화쉼터에 도착했다.
눈부신 겨울왕국
차에서 내리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순간 감탄사조차 뱉지 못했다. 으아! 와~! 뒤늦게 감탄사가 연달아 터져 나온다. 눈꽃 핀 나무들이 빼곡히 선 환상의 설국. 차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황홀한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 큰 수고도 없이 얻어진 풍경이 황송할 지경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조심스레 숲으로 들어섰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숲속에 가득 차고, 어린 날의 동심으로 데려다준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팻말과 벤치도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진정한 겨울왕국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자마자 하트가 쏟아진다.
차에서 내리면 만나는 하늘숲공원 입구
눈으로 뒤덮인 하늘숲공원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하트가 쏟아진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눈꽃산행을 즐겨도 좋다. 해발 1573m의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만항재와 고도차가 243m에 불과해 힘들이지 않고 눈꽃을 감상할 수 있다. 만항재에서 1시간이면 함백산 정상에 닿는다.
함백산 정상까지 1시간, 평지에 가까운 눈꽃산행
고원 드라이브 길 따라 삼탄아트마인에서 정암사까지 볼거리 풍성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하늘숲공원’이라는 팻말이 눈에 띈다. 만항재는 원래 눈꽃보다 ‘천상의 화원’으로 유명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로 뒤덮인다. 하늘과 맞닿은 고갯마루에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연이어 군락을 이룬다. 빼곡한 낙엽송 아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끝없이 이어지는 야생화를 즐기게 된다. 새벽이면 안개가 자주 몰려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야생화부터 눈꽃까지 사철 꽃이 만발하는 만항재로 오르는 고갯길은 고원 드라이브의 정수로 꼽힌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을 따라 난 길은 그야말로 구곡양장이다. 가끔 180도로 휘도는 구간에서는 탄성이 절로 난다. 낙엽송의 뾰족한 꼭대기가 눈높이에서 군락을 이룬 채 환호하고, 겹겹이 너울대는 산자락이 파도 타며 반긴다.
낙엽송 눈꽃군락과 고산준령들을 감상하는 고원 드라이브도 즐겁다.
만항재 눈꽃을 감상하려면 되도록 이른 시간이 좋다. 안개가 만들어 낸 상고대가 녹기 전에 가야 눈꽃을 볼 확률이 높기 때문. 내려오는 길에는 삼탄아트마인과 정암사 등 볼거리가 많다. 눈꽃을 보고도 시간이 넉넉하니,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함백산 자락의 삼척탄좌는 1970년대 탄광촌으로 전성기를 누리며 석탄산업의 메카로 군림하던 곳이다. 2001년 폐광된 후 2013년 복합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으로 재탄생했다. 갤러리와 역사관, 스튜디오, 예술체험관, 레스토랑 등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었다. 광부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문화를 캐는 탄광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예쁜 카페와 식당은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삼탄아트마인으로 내려가는 길에 정암사가 자리한다. 국내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신라 시대(64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문화재자료 제32호인 정암사적멸보궁과 보물 제410호인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을 둘러보며 고요한 산사의 풍경 소리에 고단했던 일상을 내려놓아 본다.
만항재야생화마을에는 곤드레밥과 토종닭백숙을 차려내는 맛집이 많다. 정선읍까지는 40분 거리다. 정선오일장에 가면 콧등치기국수, 메밀전병 등 정선의 먹거리가 지천이다.
[왼쪽/오른쪽]만항재 아래 자리한 삼탄아트마인 / 광부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삼탄아트마인
40분 거리의 정선오일장에 가면 먹거리가 지천이다.
여행정보
만항재 야생화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