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태극 식구님들 우기에도 휴일 잘 보내시는지요~
참역사 열공에는 끝이 없는데 가끔은 자신이 공부한 참역사의 단계가 어느정도인지?
또 궁금해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나 않는지요?
인터넷 공간에서 아님 사서나 관심 저자의 저서 등을 통해 여러 경로로 공부하고 있지요.
내가 그간 노력해서 아는 역사적 진실이 실체와 거리가 멀다면 얼마나 허무할까요?
가령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릴 정거장을 한두개 놓치면 내려서 다시 가게 되지만
만일 시간도 훨 지나고 방향도 엉뚱하다면 여러 생각이 들면서 다시 목적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봅니다.
우리가 하는 조상님 찾아가기 참역사 공부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가는지 혹시 길을 가다 잃어버려 헤매는건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서 제생각엔 삼태극 정모를 비롯한 역사단체 모임에 나와 각자가 갖고 있는 역사적 지식과 입장을 접하며 공유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자신의 공부 정도를 따져보는 것이고 다음으로 역사단체에서 하는 강좌를 들어보며
자신의 이해와 비교해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강의를 들으러 갈 때 강좌의 내용이나 강사의 자질도 고려 대상이지만 자신의 역사공부 수준을
비교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인 만남의 장 다시 말해 정모의 참석이나 강좌 참여는 나름대로 많은 의미가 있답니다~
또 더한 의미는 그곳에서 귀한 삼태극 식구들인 한중일님, 성헌식선생님과 지인 2분, 그리고 고려박물관 황희면 관장님을
만나뵌게 무척 반가웠고 강의후 뒷풀이를 가져 참역사 발전에 대한 공감대 확인과 발전에 대한 실체적인 방안 등으로
유익한 이야기를 나눔에 그날 무척 보람있었습니다^^
지난 단기 4335년 7월 10일에 국학원 주최의 제 108회 국민강좌 "고려 말 행촌 이암의 역사적 역할" (강사:손환일)가 있었습니다.
평일이라 참석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한단고기 중 단군조선 47세 역사를 서술한 <단군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고리(려)말 1297(충렬왕 23)~1364(공민왕 13))선생님을 다룬다 하니 한단고기 위서 논쟁으로 인한 불편한 심정을
달래고 또 부족한 내용을 채워 한단고기에 대한 이해를 더 마련하고자 강의를 듣게 된것이지요.
이강의를 맡아 수고해주신 손환일 박사는 단대 사학과 문학박사로 한국서예사를 전공하고 현재 경기대 연구교수와
서화문화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합니다.
강의에 대한 기대는 행촌 이암선생님의 단군세기를 저술한 시대적 배경과 단군세기의 실제 내용
그리고 한단고기내 단군세기의 현대적 의의를 듣고자 했었는데 서예를 전공한 그분의 이력 관계로
행촌 이암선생님의 서체인 조맹부체를 설명하고 그 의의(아름답게만 쓰려 한 조맹부체보다 획에 더 힘을 실어 서체의 고유성과
창의성으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함, 참고로 이조 6백여년간 서체라는게 조맹부체를 흉내냈다고 하니 여기서 이조의 소중화
주의를 확인하게 된건 나름 소득입니다)만을 다루며 단군세기에 대해서는 일체 내용을 다루지 않으니 그점 많이 아쉬웠고
강의제목을 "고려말 행촌 이암의 역사적 역할"로 해 나름대로 기대가 있었는데 서체를 설명한 강의로 동떨어지니
좀 씁쓸했습니다 ㅠㅠ
준비된 자료에 행촌 이암 선생님의 역사적 역할을 다룬 부분이 있어 그걸로 위안을 삼고 울식구님들 참고하시라고 소개드립니다.
고리(려) 말 행촌 이암(1297(충렬왕 23)~1364(공민왕 13))은 고리 혼란기에 역사적 역할이 지대한 조상님입니다.
첫째, 원의 세조가 원과 고려의 통합을 원했을 때 이암은 종족의 개별성을 존중한다는 정책을 주장하여
원과의 통합을 반대하였다.
충숙왕 10년(1323) 27세 때에는 심양왕, 도첨의 정승 유청신, 첨의 찬성사 오잠 등이 원 황제에게 청한
"국호폐지입성책동"을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천제의 아들로 제천을 행함으로 현재 분봉 받은 제후와는 근본이 서로 같지 않다.
국계(國界)를 허물지 말고 고유민속을 섞지 말라.
이미 고유의 기혼과 혈육이 있어서 한 근원의 조상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곧 신시개천(神市開天)으로부터
이를 삼한관경(三韓管境)으로 하고, 크고 이름난 나라를 하늘 아래 만세에 만들었기 때문에...
군신이 자주*자강의 정책을 세우고 있는 이유이다"
둘째, 환단고기(이유립공개), 단군세기(단군고기/삼성기. 단군세기(이암). 북부여기. 태백일사(이맥)) 등의 저술을 통하여
한민족의 역사적 원류를 밝히려 노력하였다.
"나라를 위하는 길은 사기(士氣)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고, 사학(史學)보다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못하면 사기를 진작시킬 수 없고, 사기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며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분열됨이라."
셋째, 1349년 원으로 부터 비서인 <농상집요農桑輯要>를 구해다가 보급시켜 고려의 농업기술발달에 공헌하여
농업생산혁명을 가져왔다.
넷째, 국교인 불교의 퇴폐성을 지적하고 새로운 국가통치이념인 주자성리학에 바탕을 둔 정치실현이었다.
다섯째, 조맹부체의 일가를 통하여 서체문화의 변혁을 가져왔다.
조맹부체의 유행은 조선 500년의 서사(書寫)문화의 맥을 형성하였다.
이상 이암선생님의 업적을 대략적으로 볼 수 있고 행적과 사상을 통해 단군세기를 저술한 배경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암은 고성(?강원도 고성?)사람으로 판밀직사사로 감찰대부와 세자원빈을 겸한 이존비(1233~1287)의 손자이며,
판삼사사 이우와 박지량의 여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인 이존비의 초명은 인성인데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그의 외삼촌 백문절에게 배웠다.
글을 잘 지었고,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예서를 잘 썼다.
이암의 초명은 군해, 초자는 익지, 자는 고운, 호는 행촌(杏村)이라고 자호하였다.
우왕때 충정왕의 묘정에 배향,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313년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충선왕은 칠성군 이군해에게 국무를 총리할 것을 명령하였다.
충숙왕의 총애를 받아서 1314년(18세) 부인(符印)을 맡아 관리하였으며, 비서교감,낭(郎)과 주부(主簿),단양부좌도관을 거쳐
정랑이 되었다.
충숙왕 10년(1323,27세)에는 심양왕, 도첨의 정승유청신, 첨의 찬성사 오잠 등이 원 황제에게 청한
"국호폐지입성책동"을 반대하는 소를 올렸는데 그의 소략에서 행촌의 자주,자립,자강의 기백과 포부와 의지를 알 수 있다.
내시통직랑도관정랑 이암은 1327년(31세)에 왕명으로 <문수원장경비>를 썼다.
1332년(37세) 2월부터 1336년(40세)에 이르는 4년간의 귀양살이에서 많은 서적을 탐구하였고,
사면 후에도 강화도(?)를 돌아보고 천보산 태소암에 머물면서 고대사를 연구하였다.
그는 불교나 성리학적인 측면과 자주.자강적인 철학을 갖고 실천하였으며 도가적 성향이 짙게 행동하였다.
1332년(37세)에 충숙왕이 복위하자 충혜왕의 총애를 받았다 하여 윤석,손기,김진경,이군해 등 28명이 옥에 갇혔다.
3월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1336년 3월 40세에 4년간의 귀양살이에서 풀려났다.
1340년 48세에 충혜왕이 복위하자 지신사,동지추원밀사,정당문학,첨의평리 등을 역임하고,
충목왕때 찬성사로서 환관 고용보가 인사행정을 그르치자 이를 비판하다가 밀성(?)에 다시 유배되었다.
1348년 충목왕이 죽자 충정왕을 받들기 위해 원에 다녀와서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이 되고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이 되었는데,
충선왕이 철성군 이군해에게 국무를 총리한 것도 이때이다.
9월 왕위계승사로 이암은 원나라에 가서 왕위 계승을 하례하였고, 10월 좌정승에 올랐다.
1352년 8월 이암은 이제현.백문보와 함께 날마다 교대로 공민왕을 모시고 학문을 강의하였고
1353년 57세로 자원하여 사직하고 청평산 춘성의 왕이 내려준 사전(賜田) 농상집요를 실험 재배하는 등 이론을 실천에 옮겼다.
1359년 63세로 문하시중으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어 홍건적의 침입에 잇으경을 내세워 대적하였고,
1361년 65세에 왕과 공주가 대비(덕영공주)를 모시고 홍언박과 함께 시중하였다.
1362년 3월 66세로 시중을 사직하고, 1363년 2월 강화도 선원사 해운당에 머물면서 태갑편을 써
왕에게 바쳐 임금의 도리를 지적해 주었다.
1364년 5월 사망하기까지 1년여를 해운당에서 머물지 않았나 이암전문가(?)인 강의 선생은 추측합니다.
이와같이 한단고기내 단군세기의 이암선생님의 행적과 사상을 통해 본 결과 학자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연구에 전력하는 학자의 길을 걷다 과거에 급제 후 좌정승까지 오르는 관료의 삶
그리고 강직함으로 귀양살이로 많은 책을 섭렵하며 고대사 연구에 이른 과정 참 파란만장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귀양살이하는 과정에서 단군세기라는 한민족 참역사 대작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런 선현들의 위대한 삶을 두고도 한단고기를 위서라 하는 이들은 정신차려 그 얼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암선생님에 대한 삶의 여정을 보니 걸출한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다산 정약용보다는 더 큰 조상님으로
숭앙받아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한겨레참역사'방은 삼태극님의 전용 참역사 발굴 연구 게시방입니다. 이 점 양해해 주세요. ^^*
그렇네요~그럼 다른 방으로 옮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민족정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학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하는 강의인데, 그것도 이암선생에 대한 강의에서 단군세기를 언급하지않았다하니 실망감이 생깁니다. 손환일선생도 사학에 조예가 있으신 분인데 재야쪽은 아닌걸로 보이네요. 큰 비용 들여하는 행사일턴데 강사섭외나 강의내용에 내실을 기하면 더좋을텐데요. 참역사계에도 인재가 많은데 아쉽습니다.
고려말 "국호폐지입성책동"에 목숨걸고 반대상소를 올릴정도로 민족정신이 강하신 분이었네요.
제가 알기로는 행촌선생이 나라의 요직에 있으면서 보게된 비서들을 정리하여 쓴 것이 단군세기입니다.
서정님이 보신 대로 국학원의 강좌치곤 함량미달입니다~
국학원이 그런건지 아님 이번 강의가 그런건지 참 아쉽습니다!
강의선생은 재야사학 물론 아니고요 좌정승까지오르신 분이 귀양살이 등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펴내신게 단군세기더라구요^^
행촌 이암 선생님 전문가라면서 단군세기 내용을 일체 다루지 않음은 서체만 공부해온 그분의 공부 전력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태극이 빨리 커 국학원을 대신하는 국민강좌 참역사 강의를 시작하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삼태극이 주관하는 세미나라....생각만 해도 멋진 일입니다^^
그런날이 올것이고 우리의 삼태극의 장점은 참역사의 온라인 인적 인프라가 제일많은 단체이고
역사의 깊이가 깊고 방대하니 장점을 부각 시키고 많은 단체와의 융합하여
민족의 정기를 유지 발전 시킵시다
우리의 온라인 논객님들과 오프라인의 열혈전사들의
일당 백만의 역활을 하여야 하지요
지난번 국학원 서울국학원 개원식때 참여하였는데 단월드 산하 역사연구회인 국학원이 서울 각구에 하나씩 국학원 개설
계획을 확인하여 연구회 확산에 대하여 축하하는마음이 들었고
조금 아쉬운점은 참역사연구의 깊이가 부족한것이 아쉽지만
단월드의 인적 인프라를 존중하며
우리의 여러 재야 사학의 깊은 유대와 연립 연합으로
진실의 역사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확산 하는것이
우리시대의 우리가 하여야 할일이라 생각합니다
강단제도권이 똘똘 뭉쳐 있듯이 우리 재야 사학은 더 단단하게 똘똘 뭉쳐야 저들의 식민반도사관을 박살낸다 봅니다~ 모쪼록 국학원은 재야의 물적토대로서 더 기름진 토양을 제공하고 우리 삼태극은 이론적 토대로 더 충실한 이론과 논리 제공을 해내면 그야말로 찰떡 궁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자유인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역사학계의 기득권 세력에 비해 우리 재야 강단사학은 군소단체가 퍼져있다는 상황이 현실이고 그래도 가장 힘있는 단체가 국학원이니 우리 삼태극으로선 꾸준히 연대 노력을 하여 삼태극 참역사의 시원의 내공을 확대시켜야 함도 올바른 이해라 봅니다!
국학원은 국학원대로 또 한배달도 그렇고 우리 삼태극 나름대로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각 단체가 고민하고 그 고민을 공유하면 도도한 민족자주역사의 큰 물결을 만들어내리라 굳게 믿습니다!
초자유인님의 진정어린 의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좋은의견 잘듣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적을 두어서는 않되겠지만 우리의 거국적 거민족적 적은 현재의 서양 아니 미국 유럽사관이고
짧은과거는 일제 치하의 역사 문화 말살이고 장구한 역사외곡은 중화사상이고
그러나 가장 큰적은 자신과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부모 조상을 부정하는 (민족-국가의 조상)
정신나간 얼빠진 소수의 기득권인 정치세력 대한민국국가 (((역적의 왕조) (건국60년이라하는
1948년의 대한민국권국의 주역들)(이승만이하 친미 친일파 세력들 의 후예들의 현정권의 실세들)
(문화 역사를 스스로 외곡하는 얼빠진 통탄할 우리의 형제 강단사학 식민사학 그렇게 배워온 우리의
형제들)
이국가가 김구 신체호 안중근 윤봉길 이준열사들을 역사에 삭제하고 (왜 인정하고 부각시키면 지금의 정치세력들은
친미 친일의 후예이기에 자신들은 숙청 청산대상의 0순이 이기에 )
김구 이하 독립운동가들은 게릴라이고 테러리스트이고 빨갱이로 형상화 시키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인 자신들을 찬양 하여야 하니까 민족의 역적인 자신들의 권력과 부귀 영화를 위해
오호 통제라! 나의선친 목슴바처 우리의 민족미래(나와 우리 지금의 현재를 위해)을 위해
삶과목숨을 바친 우리의 조상님들 우리 또한 조상들이 못다이룬 민족의 대업을 위해
아니 미래의 나의 후배 후손들을 위해 뭔가를 위해 목숨자리를 찿야야 하는
나와 우리의 행동 실천 의 길을 나의 자아는 명령합니다
좋은견해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