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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 하더라 13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1. 구원받은 무리
1). 이 일후에 요한이 본 구원받은 흰옷 입은 무리들
“이것들 후에 내가 보았다(μετα τουτο ειδον)”함 역시 계7:1~8의 인치는 사건을 본 후에 동일한 시간대에서 9~17절의 일들을 보았다 함인바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약 성도들의 이마에 인치는 동일한 시간에 인침 받은 자들이 흰 옷을 입고 나오는데 그 수를 셀 수 없다는 말씀이니,
인침 받은 사람은 곧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①. 이들은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다.
“자신을 위해 셀 능력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셀 수 없었다.(ον αριθμησαι αυτον ουδεις εδυνατο)”하였으니 이는 요한 자신은 유한한 존재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보혈로 구원받는 자들의 수효를 세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님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들은 구약시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되기에 능히 셀 수 없다는(εδυνατο = δυναμαι의 미완료 중간태 3인칭 단수) 뜻이며,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역 중에 복음의 증거가 우선되어야 하며 누구든지 교회의 구원받은 성도들이 늘어남의 수에 연연하고 살아가서는 안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②. 흰옷을 입은 무리
“광채나며 길게 끌리는 옷을 입힘 받았다(περιβεβλημενους στολας λευκας)”함은 흰옷을 구원받은 자가 스스로 입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심으로(6:11)보좌 앞에 서기전에 입힘 받았음을(3:5,6:11) 말합니다.
στολας λευκας는 계6:11의 옷으로서 이 옷은 아랫것을 위해서 사는 사람 곧 사단의회(계2:9)에 의하여 순교당한 자들, 곧 발람과, 니골라, 이세벨 등의 유혹을 이긴 자들에게 입혀주는 옷으로서 “동료 종들과 형제들 -예수그리스도께서 피 흘리심으로 말씀을 완성하기까지의 구약시대 모든 성도들- 도 너희처럼 죽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에 해당되는 수효의 사람들이 입는 옷인바,
계7:9절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 입는 옷은 계6:11의 제단아래에 있는 자들이 입은 옷과 동일한 종류의 옷.
제사장들이 자신의 사역을 마친 후 휴식을 취할 때 입는 옷을 말함으로 계7:9은 계6:11의 반복된 설명입니다.
③. 종려가지를 들었다.
이스라엘은 매년 추수를 마치고 7월1일은 나팔절로 10일은 속죄일로 15일부터 1주일간은 초막절로 지켰으며(레23:24-34, 민29:1-40)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무리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대대로 알리기 위하여 찬송하라 하였으며(레23:34-44), 예수께서 왕으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호산나 찬송(요12:13) 하였는데 지금 구원받은 144,000명이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에 있으니, 이는 구약시대의 추수가 종결되었음을 말씀함니다.
또한 슥14:1~21에서 말씀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생수가 흘러 이스라엘 전역에 충만 할 것과 이방인들도 이 생수를 마실 것과 초막절을 지킬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입니다.
초막절의 의미가 애굽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대대에 알리는 것이라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은 초막절 절기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인바, 구약시대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이 선포됨으로 완성되었다면 신약시대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이 선포됨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때문에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증거 함이 바로 초막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2). 보좌 앞에 있다 (계4:11 5:1-14 참조)
①. 구원을 찬송 (계5:9-10 참조)
2. 흰 옷 입은 무리
1). 나오는 곳
①. 세계 도처에서 나온다.
구원받은 이들은 각 나라(παντος εθνους-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와 족속(φυλων-지파 곧 씨족사회)과 백성(λαων-무리들)과 방언들 가운데서 나온다(계7:9)하였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12지파에 속한 구원받은 무리들이 지구상 구석구석에서 나옴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으로 구약시대의 모든 자들이 구원함을 받았는데 그들은 이스라엘사람들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 중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이며, 욥 같은 이방인이라도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았다면 그들도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②. 큰 환란에서 나온다
“이들은 큰 환란에서 나옴을 당하는 자들이다(ουτοι εισιν οι ερχομενοι εκ της θλιψεως της μεγαλης)”하였으니 이는 어린양의 피로 옷을 씻어 희게 하였기에 환란을 당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 환란을 통해 승리자 되어 지속적으로 나오는(ερχομενοι=ερχομαι의 현재 수동태 분사 이며 그 주동사는 εισιν으로서 이는 ειμι의 현재 능동태 3인칭 복수) 상태를 말합이다.
이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준하여 그 전시대 사람들로서 환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니, 큰 환란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순간에 세상 사람들에 의하여 세상에 주소를 두지 못하도록 밀어냄을 당하는 고통(θλιψεως - θλιβω“밀어낸다, 압박한다.”)당함을 말합니다.
“사람이란 세상에 안주하려고 하는 자들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을 동원하여 세상에 미련을 두지 못하도록 밀어내시는 것”이니, 환란을 당할 때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승리해야 하며 이런 자들만 흰옷을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 큰 환란에 관한 성경말씀
ολεθρον = 파멸, 즉음, 굴복, 파괴
삼상5:9 그것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גדולה: 가돌H1419 큰, 큰 목소리) 환난을(מהומה 메후마H4103 소동, 혼란, 당혹 ολεθρον μεγαν)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αναγκη = 불행, 고통
눅21: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αναγκη μεγαλη)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θλιψει = 억압, 고통, 환란
느1:3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גדולה: 가돌H1419 큰, 큰 목소리) 환난을(ובחרפה 헤르파H2781 모욕적인, 치욕, 외음부, 참소 θλιψει μεγαλη)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마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θλιψις μεγαλη)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막13:19 이는 그날들은 환난(θλιψις)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행7: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θλιψις μεγαλη) 있을쌔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고후2:4 내가 큰 환난과(πολλης θλιψεως)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계2:22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θλιψιν μεγαλην) 가운데 던지고
계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της θλιψεως της μεγαλης)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2). 예수의 피로 깨 끗게 한다.
(1:5, 4:9~10 참조)
3. 부족함이 없는 삶
구원받은 사람들이 세상사는 동안 모든 것들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 찌라도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1).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자
흰 옷 입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긴다.”하였는데 이때 하나님의 성전(του ναου)은 모두 단수로 기록하였으니(계11:2 14:15, 15:6,8) 곧 유일한 성전을 말씀하며, 이 유일의 성전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전인바 세상에 존재하는 예루살렘 성을 말함이 아닙니다.
①. 하나님이 계신 곳이 성전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의 성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곳이 사람들에게 인정된 성전일 찌라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곳은 성전이 아니니, 성전(ναου)이란 거주한다(ναιω)는 의미를 가지며, 하나님이 계신 곳이 진정한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르쳐서 성전(요2:19, 계21:22)이라 하셨으며, 성도들의 몸을 성전이라(고전3:16 6:19) 하였고, 교회가 성전(고후6:16 엡2:21)이라 하였는바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 흰옷을 입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하였으니 이는 흰옷을 입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전이되며 하나님께서 거주하심을 말씀합니다.
②. 성도들은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완성됩니다.
성도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성전(엡2:21)을 완성합니다.
하나님은 흰 옷 입은 무리들이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됨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144,000명의 인 받은 자들의 수를 완성하신 후에서야 완성된 하나님의 성전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③. 섬기는 자
“그에게 예배한다.(λατρευουσιν αυτω)”하였으니 이는 세상에서 예배함이, 하나님을 존귀케 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임을 말합니다.
이 땅의 각 지 교회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함은 무형교회가 되어 하나의 성전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2) 장막을 치신다.
“그들에게 진 친다.(σκηνωσει επ αυτους)”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흰옷입고 예배하는 자들을 성전삼아(고후5:1-4)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진쳐주심으로 보호하신 것같이 보호하심을 말씀합니다.
①. 함께하심을 말씀합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②. 삶과 함께 하심을 말씀합니다.
벧후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③. 하늘에 속한 자임을 확인시키는 증표입니다.
계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3). 주림이 없다
이는 이들이 흰옷을 입기 전에는 주림을 당하였음을 말씀하는바 이 주림은 물질적인 주림, 외적인 주림보다는 내적인 주림이요 영적인 주림을 말하며, 세상에서 진정한 주림은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함으로 찾아오는 영적인 갈급함을 말함입니다.
①. 목마름이 없다
(2:17 참조)
4). 해 받지 아니함
세상에 보이는 것으로 해를 끼친다 할 찌라도 그들 안에 있는 예수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2:11)
4. 어린양의 사랑
1). 목자가 되어 주신다.
“그들에게 양육자가 된다.(ποιμανει αυτους)”(계7:17)하였으니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승리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시어 철장을 가지고(계12:5) 흰 옷 입은 자들의 양육하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벌이 양육권을 가지고 지원받는 자들이 행복을 느낀다면,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양육권을 가지고 양육해 주신다면 이는 가장 큰 행복인 것입니다.
①.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신다.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사55:1 요7:38, 39)
②. 철장으로 다스립니다.
철장으로 다스리심은(계2:27, 12:5)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양육자가 되심을(계7:17)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ποιμανει)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ποιμανει)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ποιμαινειν)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2). 눈물을 씻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의 눈물을 씻어 주시며(레23:24-44 사1:18), 환란으로 인해 찾아오는 눈물을 씻어 주시며, 눈물을 흘릴만한 모든 근원을 제거하여 주심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환란이 와도,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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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재하 목사님은 헬라어 무리- οχλος- 는 단순한 무리라고 폄하합니다.
아람어로는 켄샤 - 모임, 집회, 군대의; 열병식- 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οχλος라는 단어는 군대라는 뜻도 있음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너무 헬라어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목사님이십니다
요한 계시록은 말입니다.
성전의 제도를 아셔야만 합니다.
레위기서를 이해아여야만
그때서야 요한계시록이 눈으로 마음으로 읽혀지는 것이랍니다.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무리나 군대나 같은 의미인데 해석이 달라지나요??
하나님의 백성인데.....
@여호와 삼마 이재하 목사님이
두 언어가 다르다고 하시며
헬라어를 깍아 내리던데요?
아람어가 최고다~~
그리고 이재하 목사님은 εθνους 에 대하여서도 오해를 하셨더군요
εθνους는 나라, 민족, 군대라는 뜻입니다.
어느 하나만 가지고 내가 아는 아람어 성경보다 못한 성경이라고 폄하하시는 자세를 가지셨네요!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왜 아람어로 얌만 나라이고 εθνους는 나라 혹은 군대로 번역하면 안된다는지
자만 아닌가 합니다
또 εθνους를 지파로 한정하고
아람어로는 슈르바타이며 이는 족속 혹은 세대라 하면서 이것이 옳바른 기록이라 하네요?
εθνους 는 지파,족속, 친족이라는 뜻입니다,
폄하하고 깍아내리기 위해 글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헬라어로 보면
나라로부터(ek)
족속으로부터(ek)
백성으로부터(ek)
언어로부터(ek)
로 되어 있어서 모두 에크라는 전치차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람어는 멘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하는데 이는 어디로부터 발원한다는 뜻 보다는
어디에 있다(in), 혹은 어디 중에 있다(among) 는 뜻을 가진다.
하나님의 종들이 온 세상에 예비되어 있다는 뜻으로 본다면 in, among을 뜻하는 멘이 더 맞고
이들 세상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존재한다는 뜻으로 본다면 (ek)이 더 맞는 표현이다.
그러면 지금 이 종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여 있는가?
세상에 처하여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고,
지금은 고난을 다 통과하고 세상으로부터 빠져 나와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큰환란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존전 앞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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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하 목사님은 헬라어 εκ 와 아람어 멘을 싸움 붙이십니다.
εκ는 어디로 부터
멘은 in, among이라고 주장하네요
아람아로 보면 인침 받은 자들은 환란중에 있다가 되어버리네요!
부름 받은 장소던
부름받은 장소에서 건져냄을 말하던 문제를 야기 시킴이 문제입니다
이재하 목사님은
두 증인의 복장은 세마포나 흰 옷이 아니라 ‘굵은 베옷’이었다(계 11:3).
그러나 모든 고난을 이기고 이제 더 이상 사역이나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영원히 예배하기 위하여 종려가지를 들고 서 있는 이들이 흰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흰옷은 예배의 복장이라는 것이다.
이 종들은 전투를 마치고 대환란에서 승리한 자들로서 이제는 전투의
베옷을 벗고 예배자의 흰 옷을 입고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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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예배자의 옷으로 착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하 목사님은 이옷이 예배자의 옷이 아니라
예배를 드린 후 제사장이 휴식하기 위해 입은 옷인것은 모르십니다.
착각이시지요!
144000은 구원을 완성한 자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는 자들을 말하는 것을 모르십니다.
이들이 입은 옷은 안식하는 자들이 입는 옷입니다
삼마님!
가셔서 이재하 목사님에게
꿈깨십시오
하십시오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
ㅎㅎㅎ
@여호와 삼마 이재하 목사님의 요한계시록은 그냥 학자로서의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헬라어를 깍아내리고
자신이 아는 아람어를 높이기 위한 술법사입니다.
공부같은 것 없습니다.
그런자의 지식이라면 말입니다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알아서 판단하세요.ㅎㅎ
@여호와 삼마 그런자의 글이라면 뻔한 것이니까요!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계속 공부하면서 비판글 올려보세요.
공부하다 보면 깨달음이 있을겁니다
@여호와 삼마 불필요한 이재하 목사님 글인데
뭐하려
귀한시간 쪼개서
그자의 글을 읽고 비판해 달라는 말인가요!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ㅋㅋㅋ
왜 남과 자신을 비교 하려하시나요?
본인도 없는데..
쓸데없는 짓입니다
내가 이재하목사님 대변인도 아닌데...
알아서 하세요
공부를 하시던지....비난을 하시던지...
ㅎㅎㅎ
@여호와 삼마 님이 먼저 비교했습니다.
이재하 목사님의 아람어 성경을 들이대며
헬라어 성경과 어쩌고 저쩌고
요한 계시록 해설을 들이대면서
어쩌고 저쩌고~~
먼저 하시더니
후퇴하시나 봅니다?
@τὸ φῶς τὸ δώσουσιν 나는 무천년 상징주의와는 계시록 토론 안합니다.
토론 자체가 성립할수 없기 때문이지요.
알아서 본인의 주장이나 하세요.
관심 없습니다.
깨끗한 인정이 성도의 자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