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기마 민족, 고구려
고구려가 ‘최고의 고을’임을 증명
산간 계곡이 많은 지역에 살았던 ‘기마 수렵 민족’의 사냥 묘사
뒤돌아 활 쏘는 그림 통해 말에 발 거는 ‘등자’의 최초 개발 알려
말의 핸들 재갈·말굽 보호하는 편자·발 거는 등자로 기마병 전력 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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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의 옛 수도 카라호름에서 1시간 남짓 가면 몽골 평원을 흐르는 오르혼 강 강변에 돌궐 시대의 옛 비석이 있다. 제정 러시아 시기에 발견된 이 비석은 돌궐 제2제국의 카간 즉, 황제인 빌게카간과 그의 동생 쿨테긴의 비석이다. 당 현종이 당시 강력했던 돌궐 제국에 화친의 의미로 보내 준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이름이 하나 나온다.
바로 돌궐 제1제국 카간의 장례식에 찾아온 나라들 중 동쪽 해 뜨는 곳으로부터 온 ‘뵈클리’란 이름이다. 신라·백제와 함께 삼국의 기상을 떨치던 고구려를 뜻하는 뵈클리의 의미를 알아본다.
고구려의 뜻? 고=최고, 구려=골짜기·고을
먼저 ‘고구려(高句麗)’를 ‘고(高)’와 ‘구려(句麗)’로 구분해 보자. 각종 사료에 나타나는 고구려의 이름을 보면 구려라는 단어에 높을 고(高)자가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 구려는 무엇일까? 삼국지 고구려전을 보면 고구려말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 즉, 성·읍·동을 의미하는 단어가 ‘홀(忽: Khor)’, ‘골(Kor)’, ‘구루(溝婁: Kuru)’였다. 구려는 이 고구려말의 한자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여기에 고(高)를 붙여 최고의 고을, 혹은 최고의 골짜기라는 의미로 ‘고구려’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전한 말의 왕망이 흉노 토벌을 위해 고구려 병사를 징발하려 하자 고구려는 이를 거부하고 중국을 침공했다. 이에 왕망은 고구려에 대한 보복을 명했다. 한 신하가 고구려 하급 장수를 잡아 고구려왕을 잡았다고 거짓 보고를 하자 왕망은 기뻐하며 “앞으로는 고구려를 ‘하구려’라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름들로 유추해보면 고구려는 가장 으뜸이 되는 산간 계곡의 고을에서 시작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럼, 서두에 이야기한 뵈클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학자들은 여기서 뵈클리가 곧 ‘뫼클리’이며 이는 ‘맥족의 구려’를 지칭한 ‘맥구려(貊句麗)’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앞서 말했던 골짜기나 고을을 뜻하는 ‘구려’에 우리 민족을 표현하는 오래된 종족명 ‘예맥’의 맥을 붙여 맥구려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맥(貊)은 치(짐승 치)+百( 백, 박)의 결합어로 기마 수렵적 성격을 표현하고 있다. 즉 고구려도, 뵈클리로 표현된 맥구려도 모두 골짜기에 사는 기마 수렵 민족을 나타내고 있다.
기마 민족의 우수성을 묘사한 벽화
고구려의 시작이 산간 계곡이 많은 지역이었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타난 수렵도다. 이 수렵도는 5세기경 고분 벽화로 고구려 사람들이 산간 계곡 사이를 말을 타고 다니며 사슴과 호랑이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기록했다. 이 그림에는 기마 민족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도구들이 묘사되고 있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말을 타는 과정에서 필요한 도구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말을 타고 조정하는 데 사용하는 재갈이다. 이는 마치 차의 핸들과 같은 것으로 가장 먼저 발명된 도구다. 두 번째로 필요한 도구는 편자다. 인간이 말을 타면 인간의 몸무게에 의해 말발굽이 닳고, 말은 발에 상처가 나 잘 달릴 수 없게 된다. 말발굽이 닳는 것을 방지하는 장비가 바로 편자다.
마지막으로 개발된 도구는 말을 탈 때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발걸이, 등자다. 수렵도 속에 그려진 달리는 말에서 뒤로 돌아 활을 쏘는 걸 파르티안 샷이라고 하는데 이 같은 활쏘기는 아주 능숙한 기마병이 아니면 하기 힘든 행동이다. 그런데 등자가 있으면 말에서 추락하지 않을 뿐더러 안정적인 활쏘기가 가능해 기마병의 전력 증대에 엄청난 효과를 준다.
앞서 재갈과 편자는 중·근동과 유럽 세계의 발명품이지만, 등자는 2∼3세기경 동아시아 특히 고구려와 선비족이 자웅을 겨뤘던 일대가 최초의 개발 지역으로 파악되고 있다. 바로 무용총 등 고구려 벽화에도 그 실체가 잘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아우른 고구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고이족이라고 하며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하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고구려가 명칭부터 중원 농경 민족과는 판이한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는 만주 동북부의 산간에서 성장해 한반도 지역과 중국 대륙을 아우른 기마민족의 전통을 갖는 고유한 나라였다.
지금까지 백제, 신라, 고구려의 국호와 그에 숨은 우리 민족의 특징을 소개했다,
고구려에선 대륙-기마민족의 DNA를, 백제에선 해양민족의 DNA를, 그리고 신라에선 농경민족의 DNA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는 동아시아의 4가지 생업 경제인 유목, 수렵, 농경 그리고 해양문화까지 모두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이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또 그 역량을 융합시켜 어느 민족에게도 뒤지지 않는 창조력과 적응력을 응축해왔다. 이제 이러한 민족 DNA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나아가 지구촌의 비전을 제시하고 함께 나누는 역사를 우리가 써 나가야 하겠다.
<조 법 종 교수 우석대학교 역사교육과
추억의 영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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