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강가에서
며칠 전 강수 이후 기온이 급전직하한 시월 중순이다. 설악에서 불붙은 단풍은 밤에도 쉬지 않고 남녘으로 내려오는 중이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중부 내륙은 첫얼음과 함께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가을이 이슥해지니 좁은 국토이지만 지역마다 다른 기상 정보에서 우리나라가 결코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고장에서 단풍이 절정을 이루려면 한 달은 지나야 할 듯하다.
시월 둘째 화요일은 예전 근무지 동료와 강변으로 트레킹을 나서기로 한 날이다. 내가 교직 말년 임지가 된 거제로 떠나기 전 창원의 여학교에서 근무했던 동료다. 이분은 나보다 연상으로 교육단지 여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정년을 맞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낸다. 우리 둘은 지난봄 서북산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제철에 돋아난 산나물을 뜯어온 바가 있다.
일전에 동료로부터 전화가 와 산행이나 산책을 함께 가자는 제의를 받고 둘이 떠날 행선지는 낙동강 강변으로 물색해 놓았다. 둘은 강가로 트레킹을 나서려고 이른 아침 창원중앙역에서 순천을 출발해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탔다. 우리가 탄 열차는 비음산 터널을 벗어나 진례 들판을 지나 진영역에서 한림정역을 거쳐 낙동강 철교를 건너 강변을 따라 미끄러져 물금역에서 내렸다.
물금은 신도시가 들어서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우리는 부산 시민의 상수원을 공급하는 취수장을 지나 철길 굴다리 밑에서 용화사를 찾아갔다. 보물 제491호 통일신라시대 석조여래좌상이 안치된 용화사는 김정한이 남긴 ‘수라도’ 배경이 되기도 하는 절이다. 이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책과 EBS 수능 특강 교재에 실려 나는 지난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작품을 분석해 준 바가 있었다.
용화사에서 황산강 베랑길 강변 참나무 숲이 우거진 경사진 비탈을 오르니 멀리 삼랑진에서 흘러온 유장한 물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당나라에서 문명을 떨치고 귀국한 신라 하대 최치원이 해운대와 함께 남긴 발자취로 ‘황산강 임경대’라는 칠언율시가 지어진 곳이었다.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오면서 여러 시인 묵객이 찾아와 고운의 한시를 본받아 빼어난 풍경을 예찬하기도 했다.
당시 임경대는 오봉산 정상에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1022호 지방도와 가까운 벼랑에 누각을 지어 옛 풍광을 재현해 놓았더랬다. 임경대에 올라 아득하게 멀리서 흘러오는 강줄기를 바라보면서 천 삼백 년 전 다녀간 시인의 마음을 일부라도 헤아려봤다. 임경대에서 지방도 갓길을 따라 걸었더니 김해 상동 매리에서 양산 화제로 낙동강 강심에 놓는 신설 교량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화제 들판을 굽어보면서 토교마을로 내려가 철길 밑에서 강변의 자전거 길로 나갔더니 라이딩을 나선 이들을 더러 볼 수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잘 정비된 둔치는 부산과 가까워 자전거 동호인 즐겨 찾는 곳이었다. 파란 하늘 아래 이삭이 팬 은빛 물억새가 바람에 일렁이니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둘은 강변 쉼터에서 간식으로 가져간 삶은 고구마와 포도를 꺼내 먹었다.
경부선 철길엔 간간이 열차가 지나고 강 건너 김해 상동은 부산대구간 민자 고속도로엔 차량이 질주했다. 우리는 쉼터에서 일어나 물억새와 갈대의 열병을 받으며 원동을 향해 올라갔다. 원동은 옛적 역참제 시절 영남대로에 원이 있었던 동네라고 ‘원동’이라 불리지 싶다. 근래는 광양의 청매실처럼 원동은 순매원을 비롯해 영포마을에 매실나무가 많아 이른 봄 상춘객이 많이 찾는다.
강변 자전거 길에서 면 소재지 원리로 가니 70년대 영화 세트장처럼 시간이 멈춰진 거리 풍경이었다. 우리는 어탕국수집에 들어 추어탕을 시켜 점심을 요기하고 나왔다. 참기름집 앞을 지나니 도토리를 빻아 전분을 낼 재료를 가득 마련해 놓고 있어 동료는 도토리묵을 샀다. 원동역으로 가서 부전을 출발해 순천을 가는 무궁화를 탔더니 금세 삼랑진에서 강심에 가로 놓인 철교를 건너왔다. 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