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유람가
오늘 아침에 다음 포털에서 향산유람가를 쳐 보니 KBS의 12월 11일자 ‘동창이 밝았느냐’ 의 재방송 프로그램에 향산유람가가 떠 있어서 치고 들어가 들고 있는 향산록과 비교하면서 들어 보았습니다. 향산유람가는 향산록에 있는 몇몇 줄이 빠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향산록과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자유게시판 4086호에서 이택희님이 가사내용의 블로그를 소개해 주시고, 4096호에서 유근완선생님께서 그 백광홍의 관서별곡의 가사를 올려 주시고, 이 관서별곡과 기성별곡과 향산별곡 세가지를 ‘관서별곡’이라고 국문학계에서 분류하는 관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바람에 향산별곡이 포함되어 있는 분류의 ‘관서별곡’을 향산유람가로 오해해서 빚어진 사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필자도 자유게시판 4087호 - 향산 유람가의 '백두산이 동으로 흘러 묘향산이 되었다'의 백두산은 한텡그리산이고 묘향산은 여산폭포의 향로봉이다. - 백광홍의 관서별곡과 향산록(향산유람가)이 뒤섞인 채로 간단히 그 지명을 분석했습니다. 현상태님의 4090호 - 백두산의 본위치 - 와 이태수선생님의 4091호 - 묘향산 오로봉 향로봉의 위성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향산별곡을 정리하고 있으니 곧 자유게시판에 올릴 작정입니다. 아예 기성별곡도 번역 정리해서 ‘관서별곡’ 전체를 다 정리해 봅시다.
이 향산유람가(향산록)는 정말 많은 지명과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곧 분석과 해석을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향산(묘향산, 향로봉)과 향산유람가의 백두산의 지명을 하나라도 확실히 한다면, 역사 연구의 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인용한 자료는 기행가사자료선집 / 국학자료원, 최강현의 44장 향산록香山錄(향산유람가香山遊覽歌) / 실명씨失名氏입니다. 그 서두에 실려있는 해제도 같이 올립니다.
해제 : 이 작품도 지은이와 지어진 연대를 알 수 없는 목판인쇄 두루마리로 된 묘향산을 여행하고 지은 기행가사이다. 지은이는 이 작품의 내용으로 볼 때에 서울이 집이고 독실한 불교 신자이거나, 불교에 관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라는 것만을 추축할 수가 있고, 그 지어진 연대에 간하여서도 이 작품 속에 “ 수충사 들어가니/ 어제 어필 봉안처라”라고 한 데서 정조 18년(1794)에 왕명으로 수충사에 어필御筆로 사액하면서 수충사라고 한 이후임을 알 수가 있다.
천개지벽후에 / 산천이 삼겨시니
오악은 조종이요 / 사해는 근원이라.
백두산 일지맥이 / 동으로 흘러 내려
묘향산이 되었으니, / 북방의 제일이라.
일국지 명산이며 / 제불지대찰(諸佛之大刹)이라
평생에 먹은 뜻이 / 향산 보기 원일러니
춘삼월 호시절에 / 친구 벗과 기약하고
행장을 급히 차려 / 낙양성 뻗은 길로
청려장 둘러 짚고, / 북향산 찾아가니
백두산 내맥(來脈)이요, / 청천강 근원이라.
월림강 건너 서서 / 향산동 다다르니,
암상에 피는 꽃은 / 원객을 반겨 하고,
계변에 우는 새는 / 춘흥을 노래한다.
외사자목 너머 들 제 / 녹수는 잔잔이라.
심진정 놀던 집은 / 대소 행차 영송처라.
일행을 재촉하여 / 내사자목 돌아드니,
좌우에 거령신은 / 초패왕의 풍신이라.
홍살문 넘어 들어 / 조계문 다다르니,
좌우에 금강신은 / 인사 없이 축객한다.
영청각 표묘하고 / 사적비 규연하다.
명월당 해월당을 / 동서로 돌아보며,
해탈문 나서 들어 / 문수 보현 구경하고,
천왕문 넘어 들어 / 사방천왕 웅장하다.
진상전 내원당을 / 좌우로 살펴보며,
만세루 올라 앉아 / 원근을 바라보니,
남산에 웃는 꽃은 / 춘색을 띄어 있고,
전계에 가는 물은 / 경광을 아뢰는 듯,
취우단 백운간에 / 오작이 쌍비하니,
요지는 어딜런지? / 선경은 여기로다.
여래탑 십구층과 / 다보탑 십이층을
전후로 구경하고 / 대웅전 들어가니,
의의한 전탑상에 / 금불상이 거룩하다.
이층전 불각집은 / 반공에 솟았으니,
선인의 조작인지? / 인간 재주 아니로다.
백옥루 광한전을 / 말로만 들었더니,
오늘날 친견할 줄 / 이 어찌 알았으랴?
총회문 넘어 서서 / 명부전 들어가니,
지장보살 수자하고, / 시왕(十王)이 열좌(列座)로다.
참혹한 지옥고생 / 낱낱이 그려 있다.
응향각 들어가서 / 오동향로 구경하고,
심검당 수월당과 / 관음전 동림헌과
미타전 망월루를 / 차례로 구경하고,
유산(遊山)길을 차려 나서 / 안심사 돌아 드니,
무수한 부도비는 / 도승의 유적이라.
녹수청산 깊은 골로 / 상원암 찾아갈 제,
대하포 구경하니, / 정신이 쇄락하다.
이층철사 더위잡고, / 인호대 올라가니,
송풍은 거문고요, / 두견성은 노래로다.
동편에 산주포(散珠瀑)는 / 진주를 흩어 놓은 듯,
용연포 나린 물은 / 백룡이 섞어 노는 듯,
천신포 높은 물은 / 반공에서 내리는 듯,
십주는 어떠한지? / 삼산은 여기로다.
상원암 들어가니, / 별유천지 이곳이라.
칠성각 구경하고, / 용좌석 돌아가니,
관찰사 태수명을 / 면면이 새겼으니,
석전의 반조정은 / 옛말이 분명하다.
금강문 돌아 들어 / 축성전 들어가니,
우리 제왕 축수처(祝壽處)라, / 울울총총 만세로다.
화발한 산간으로 / 불영대 돌아가니
두견화 만발하고, / 접동새 슬피 운다.
빈발암 점심하고, / 단군대 올라가니
단군이 탄생처에 / 석굴만 남아 있다.
산천을 구경하고, / 만폭동 돌아가니
백석층층 천만대로 / 흐르나니 청계수라
유적대 올라서니, / 대소유적 분명하다.
강선대 올라가니, / 신선의 하강처라.
금강굴 내려오니, / 서산대사 수도처라.
사리각 들어가서, / 팔상당 구경하고,
내원암 내려가니, / 산중지 복장이라.
무릉포 넘어 오니, / 무릉도원 여기로다.
견불암, 화장암과, / 사봉암, 오봉암과,
불지암, 내보현을, / 력력히 구경하고,
극진굴 보윤암을, / 내릴 길에 잠깐 보고,
수충사 들어가니, / 어제어필 봉안처라
여시문 넘어 들어, / 영각에 들어가니,
서산사명 양대사의 / 영상이 거룩하다.
임진년 왜란 시에, / 검을 짚고 일어서서,
일본을 항복 받고, / 조선을 태평이라.
금란가사 죽비장삼 / 유리잔 패엽선과,
화광주 육환장은 / 양대사의 유적이라.
극락전, 영산전을, / 낱낱이 구경하고,
대장전 들어가니, / 팔만경판 쌓여 있다.
계조암, 백수암을 / 자세히 돌아보고,
남정암을 올라가니, / 모종이 쟁연하다.
비로봉과 석가봉과 / 관음봉, 나한봉과
향로봉, 법왕봉과 / 미륵봉, 칠성봉과
지장봉, 시왕봉(十王峰)과 / 가섭봉, 아란봉과
상비로 수미대와 / 중비로 백운대와
하비로 보련대와 / 삼성대, 설령대를
차례로 바라 보니, / 흉금이 쾌활하다.
태백산 유발승이 / 되고자 하건마는
진토에 걸린 몸이 / 세연(世緣)을 미진(未盡)하여
두견성 한 소리에 / 고향생각 자연 난다.
산수가 절승하니, / 명춘에 다시 보세.
갈 길을 재촉하여 / 명산을 하직이라.
첫댓글 먼저 죄송하다는 사과의 발씀부터 드려야 되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올려서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군요. 앞으로 정확한 정보를 올릴 수 있도록 더욱 조심을 하겟습니다.
그 글도 귀중한 역사자료 였습니다
향산가 고맙습니다 한선생님 ! 다 읽어 보았지만 미아 가 된거 같습니다
최선생님, 보물지도는 처음에는 미로지도로 보입니다. 미로에서 미아같이 느껴지지 않으면 그게 보물지도가 될 자격도 없지요. 낙양성에서 향산동으로 가는데, 그 북쪽의 향산(묘향산, 향로봉)이 백두산의 래맥이고 청천강의 근원이 됩니다. 청천강은 패수입니다. 패수는 패라하 혹은 위간하(위강)이고 쿠차(평양)를 끼고 타림강으로 흘러드는 강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의 낙양성은 평양성(쿠차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쿠차의 평양성을 숨긴다는 게 얼토당토 않은 낙양성으로 변조된 것입니다. 묘향산 옆에 웬 낙양성입니까? 당연히 묘향산 아래에는 평양이 있어야지요. 반도에서나 신강의 원 묘향산에서나 당연히 평양성이라야 합니다.
마지막에 나오는 산과 관련된 지명을 보십시요. 비로봉과 석가봉과 관음봉, 나한봉과 향로봉, 법왕봉과 미륵봉, 칠성봉과 지장봉, 시왕봉(十王峰)과 가섭봉, 아란봉과 상비로 수미대와 중비로 백운대와 하비로 보련대와 삼성대 등 그리고 다른 지명 혹은 고유명사는 거의 전체가 불교와 관련된 곳입니다. 여기는 불교의 성지입니다. 단군과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등장합니다.
끝에서 다섯번째 구절 '태백산 유발승이 / 되고자 하건마는' - 1, 여기를 또한 태백산이라고도 부르고 있읍니다. 백두산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2, 유발승이 나옵니다. 머리 기르는 스님입니다. 19세기의 조선 불교의 모습이 결코 우리가 알고 있던 불교 같이 단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삼위태백=백두산=한텡그리산=장백산=천산산맥
위 향산록 18째 줄에서부터 42째 줄까지의 '홍살문 조계문 금강신 영청각 사적비 명월당 해월당 해탈문 문수 보현 천왕문 사방천왕 진상전 내원당 만세루 취우단 요지 여래탑 다보탑 대웅전 전탑상 불각집 백옥루 광한전 총회문 명부전 지장보살 응향각 오동향로 심검당 수월당 관음전 동림헌 미타전 망월루'는 한 절의 여러 시설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절 이름은 무엇일까?
보현사普賢寺가 아닐런지요
보현사로 보는 근거를 좀 올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읍니다.
향산에서 제일 사찰이라면, 보현사이지요..
그 출처를 좀 밝혀서 인용해 주시면 안 될른지요?
이 당시에 있던 당우로는 대웅전·명부전·심검당(尋劒堂)·극락전·수월당(水月堂)·관음전·영산전·수충사(酬忠祠:휴정의 사당) 등이 있다. 이밖에 대웅전 앞에는 보현사팔각13층석탑(일명 석가탑), 만세루 앞에 있는 보현사9층석탑, 보현사비, 석가여래사리부도비, 휴정의 사리부도, 이경석(李景奭)이 지은 휴정의 청허대사비(淸虛大師碑), 원준(圓俊)과 언기(彦機)의 석종, 풍담(楓潭) 대사비, 월저(月渚) 대사비, 영암(靈巖) 대사석종비 등이 있다.
보현사[普賢寺] 출처: 브리태니커
또 있습니다. 박제가가 쓴 묘향산소기가 있습니다.
대하포(瀑) 산주포(瀑) 용연포(瀑) 천신포(瀑) 만폭동 무릉포(瀑) - 폭포가 참 많이도 나온다. 만폭(萬瀑)도 있다.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산주포(瀑) 용연포(瀑) 천신포(瀑)는 특이하다. '동편에 산주포는'이라고 했으니 이 세 폭포는 붙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셋 중에 산주포가 동쪽에 있다는 말인 모양이다. 쳐다 보는 사람이 이 세 폭포가 있는 북쪽으로 쳐다 볼 때 오른 쪽의 폭포가 산주포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폭포는 남쪽을 향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참 특이한 폭포다. 어딜까?
이 폭포들은 모두 묘향산의 절경들입니다. 묘향산에 검색하다보니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안심사에서 상원암 가는 길목에 대하포 이층 철사의 절벽 인호대 산주포 용연포 천신포를 지나서 상원암이 나온다. 그러니까 안심사 뒤로 대하포의 절벽, 인호대 아래의 이층 철사가 있는 절벽, 산주포 용연포 천신포의 절벽 즉 세 절벽을 지나서 상원암이 나온다. 그런 지형이 어디에 있을까?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박제가의 묘향산 소기를 분석해 보면 나올것 같습니다.
http://blog.paran.com/san2000/24917105 이 블로그에 가시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눈이 번쩍 뜨입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국 5대 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보현사에는 대웅전·조계문·해탈문·천왕문·만세루·관음전과 보현사 9층탑, 보현사 8각13층석탑, 묘향산 보현사비 등이 있으며 상원암과 능인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다 출처: http://jhdae.com.ne.kr/myohang1.htm
대단 들 하십니다 깔끔한 마무리 부탁드려도 되지요? 저는 지금 반야공교가 단제불교 (소도교) 와 중앙아시아 의 카필라 출신 고타마 의 소승유교를 파괴 했다는 글 을 쓰느라 정신적 여유가 없습니다
[묘향산소기]를 잘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 자료를 찾아 소개해 주시는 현상태님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