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표류
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
⠀우리는 죽음뿐 아니라 망각, 시간, 혹은 단순히 현실이라는 지루한 이유로 소중한 많은 것들과 헤어지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경우 이별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애도의 기회는 당연히 가질 수 없다. 남을 해치지 않는 욕망을 위해 기꺼이 불멸을 희생하는 천선란의 주인공들은 그러나 최선을 다해 여행을 마치고 애틋하게 성장한다. | 작품 해설
김혜진 경청
⠀환한 낮에는 모든 게 쉽게 드러나고, 사람들은 드러난 것들에 대해 떠드는 걸 좋아하니까. 시야가 좁아지는 한밤에야 사람들의 무시무시한 호기심도 비로소 잠이 드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두운 쪽을 골라 디디며 공원을 한 바퀴 더 돈 다음 공원 입구 쓰레기통 앞에 멈춰 선다. 그런 뒤엔 반듯하게 접은 편지를 꺼내고 그것을 찢어 버린다. 거기 담긴 자신의 감정을 폐기하겠다는 듯이. 두 번 다시 그런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이.
이유리 아밀 송경아 이주란 김유진 이주혜 성해나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우리에겐 기록이 필요해.
이곳에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았던 것처럼,
자신과 같은 사람이 지금도, 전에도 존재했다는 걸.
허은실 회복기
쌀을 쏟아놓고
주저앉아
울던 아이야
모두 막막히 여기 왔구나
이 행성에 엎지른
뜻 없는 리듬을 살러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父生我身 母鞠吾身
부생아신 모국오신
슬아는 야무지게 따라 썼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였다.
할아버지는 종이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 내 몸을 기르셨느니라.”
먼 옛날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이렇게 가르치셨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한 그랬을 것이다.
슬아가 잠자코 듣더니 물었다.
“엄마가 저 낳았는데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빠 없었으면 너는 태어나지도 못했어.”
“하지만 직접 낳은 건 엄만데……”
그는 어린 손녀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생각해봐라. 땅만 있으면 거기에서 곡식이 자라겠니?
씨앗을 심어야 자라잖아.
씨앗이 없으면 땅에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야.”
“그치만 씨앗도 땅이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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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섯 권의 신작을
다섯 명의 여성 작가를 소개했어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인지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어떤 작가의 말을 봤었어
이 글 속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여시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기를 바라
마침내 책으로도 만나게 되기를 바라
제목은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 이주혜 작가의 말
첫댓글 책 너무좋다
가녀장의시대 끌린다…!
나도 읽어볼게 고마워~~
추천 고마워
자신의 글들이 조각조각 유명해져도 누구의 글읹도 모른 채 소비되고 손에 잡히는 건 없어서 슬프다는 말 왜케 아프냐...글 써줘서 고마워! 찾아읽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