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영화가영화
ㅎㅇ 피겨 관심없어도 '카타리나 비트'는 뭔가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음?
우리에게, 21세기에 김연아가 있었다면 20세기엔 카타리나 비트가 있다고 함
그래서 오늘 비트 여사 얘기를 해보려고해
비트는 공산국가였던 동독 출신 선수로 5살때 처음 스케이팅을 시작해 국가 스포츠 영재 프로그램을 받았음
어릴때부터 엄청난 재능을 보였었던 비트는 피겨뿐만 아니라 발레나 연기도 배우며 덕분에 빙판위에서 남다른 예술성을 뽐냈지
아무튼 동독의 철저한 스포츠 영재교육을 받고 자라난 비트는 어린나이에 세계선수권 2등을 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음.
그리고 비트의 시대가 열린것은 그로부터 2년후
1984 사라예보 올림픽,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미국의 로살린 섬너스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음!!!!
19살의 피겨 금메달리스트, 바야흐로 비트의 시대가 개막함
비트의 인기는 자국을 넘어서 세계로 뻗어뻗어나감
그리고 그건 단지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음
일단 요정같은 비주얼과 체형도 한몫했고 임팩트 있는 프로그램, 돋보이는 예술성, 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당대 탑급이었음
또, 비트가 활동하던 냉전시대 당시는 정치적대립이 스포츠까지 이어졌었음. 스포츠 역시 한편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었던 거야 ㅎ(사라예보 올림픽 금메달 후에 북한에서 비트 사진이 들어간 우표가 발행됐었음 ㅋㅋ)
물론 비트를 꺾기위해 많은 자본주의 국가 선수들이 도전했지만 선수적인 역량면으로써나 스타성으로써나 그녀를 꺾을만한 선수는 없었음
그러니까 비트는 동독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의 자부심이자 간판, 서구권에서도 사랑받는 세계적인 스타☆였던거임ㅋㅋㅋ
'공산권에서 배출한 가장 자본주의적 상품'이란 말이 따라붙을 정도였음
그리고 동독이 붕괴된 훗날에서야 알려진거지만 이런 비트가 서방으로 망명할것을 우려해 국가 비밀경찰이 비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감시했었음
(연인관계는 물론이고 성생활 시간 뭐 이런 개인적인거까지 다 기록한 파일이 3000장 이상 나옴 ㅎ)
암튼간에 다시 돌아와서 ...84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뒤로 다음 88올림픽까지는 거의 비트의 원탑 독주체제에 가까웠음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가리지않고 1등만 해먹음 1등만 ㅎ
비트의 아성을 꺾을 선수는 아무도 없어보이는듯 했지만...
아니 이게 왠일?? 비트가 딱 한번 세계선수권에서 2등을 한적 있음
당시 비트의 세계선수권 3연패를 막은 선수는 미국의 '데비 토마스'
보다시피 흑인이고 미국은 난리난리가 남 ㅎ
(참고로 최초 흑인 월드 챔피언임 ㅎ)
무너질일 없어보였던 비트를 꺾은 선수가 바로 우리 '미국!!'선수라니!!!!!
정치와 스포츠가 어느정도 이어지던 시대라 더더욱 흥분했고 토마스에게 온 관심이 집중됐음
토마스는 파워 점프가 돋보이는 선수였고 굳이 따지자면 예술성의 비트 vs 기술력의 토마스 같은 느낌?
허지만 그 다음해 월드 챔피언은 다시 비트가 가져감 ㅎ
그렇게 토마스가 공공연하게 비트의 라이벌이 되고 중요한 시즌이 찾아왔음
바로 1988 캘거리 동계 올림픽....!!!
역시나 비트와 토마스의 금메달 싸움이 예상되는 가운데에서
비트와 토마스는 올림픽용 프리프로그램으로 똑같이 '카르멘'을 선택함
??????
생각해봐 당대 탑싱 라이벌이 똑같은 곡(편곡은 다르지만) 똑같은 캐릭터로 서로 다른 연기를 한다????
결국 비교가 될수밖에 없고 최후의 카르멘은 한명밖에 남지 않을 싸움인게 틀림없었음...
암튼 그렇게 시작된 올림픽, 쇼트 프로그램에서 비트는 파란 의상을 입고 연기를 했었는데
미국 대표팀 코치가 비트의 의상을 보고 "꼭 서커스단 복장같다"고 해서 때아닌 의상 논란에 올랐음
그리고 비트는
"내 아름다운 몸매의 매력을 부각하려는건데 뭐 큰 잘못인가?"라고 받아침 ㅋㅋㅋㅋ
아무튼 비트의 뒤를 이어 연기한 토마스도 성공적으로 프로그램을 마침.
본인도 경기에 만족한듯한 표정도 지었음!
쇼트 프로그램은 비트가 1위, 토마스가 2위였지만 취향에 따라 토마스가 이겼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음
여튼 그 당시엔 컴펄서리라는 종목도 있었는데 거기선 토마스가 1위였음 그래서 프리 프로그램을 앞둔 총점은 토마스가 1위, 비트가 2위...!!!
그니까 프리 프로그램에서 모든게 결정나는거였음
그리고 운명의 카르멘 전쟁..!!!
여기서 잠깐 선수들이 느끼는 압박감을 말해보겠음...
일단 둘의 카르멘 전쟁자체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었고
토마스는 세계 최초 피겨 흑인 올림픽 챔피언이 될것인지, 그리고 미국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 부담감 역시 크게 가졌음
(그 전 올림픽역시 미국 선수가 비트에게 져서 은메달에 그쳤기 때문)
부담감을 가진건 비트도 마찬가지.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할수있을지가 주목됐고 당시 동독으로부터 무조건 금메달을 따오라는 협박아닌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ㅎ
그렇게 각자의 부담감을 지니고 결전의 프리 스케이팅 날
먼저 연기를 펼친 비트는 모든 점프를 깔끔히 소화하고 그 뿐만 아니라 연기로도 전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음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비트가 전설로 불리는 결정적 프로그램인거임.
피겨팬에게 카르멘이라고 하면 98퍼센트는 카타리나 비트가 카르멘의 죽음을 표현한 엔딩을 떠올릴거임
비트의 카르멘이 지나가고 다음차례의 토마스
역시나 똑같은 카르멘을 연기하게 되었음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짤은 다 가져올수 없지만 여튼 대차게 말아먹어벌임...
경기 후 토마스는 '그떄는 쓸데없이 긴장했고 그래서 불안했다.''라고 한걸 보아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한듯
카르멘 전쟁은 어떻게 보면 정신력 싸움도 있었던것
그렇게 올림픽 금메달은 2연속 카타리나 비트가 가져감. (토마스는 동메달)
그리고 비트는 이 해에 은퇴를 선언함
은퇴후 비트는 영화와 티비쇼에도 출연하며 에미상도 받음 ㅋㅋㅋㅋ
치솟던 인기속에서 비트는 94년도 올림픽에 잠시 복귀하기도 했음 ㅎ
비트는 현역일때부터 은퇴 하고나서까지 많은 남자들과 염문설이 돌았는데 결혼은 안함ㅋㅋㅋㅋ
공개 구애를 한 남자들도 꽤 있었는데 비트는 현역당시부터 "결혼할 생각 없음" 땅땅 하셨고 ㄹㅇ 안했음
그리고 비트는 소치때 김연아 금메달 땅땅하고 판정 나온 이후 굉장히 불같이 화낸걸로도 한국에서 유명 ㅋㅋㅋㅋㅋ
어우 속시원
여튼간에 피겨레전드 하면 빠질수없는 이런 불멸의 카르멘도 있다,..
끝!
첫댓글 흥미돋이고 멋지다 글잘봤어!!
아유 멋있는 분이네
비트성님 너무 멋있어요...
헐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