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어망전
득어망전(得魚忘筌)을 직역하면 ‘물고기를 잡으면(得魚) 통발을 잊는다(忘筌).’는 뜻이다. 이 성어를 현실에서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면 그 목적을 위해 사용했던 사람이나 물건을 잊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서 ‘일단 목적이 이뤄지면 그 목적을 위해서 사용했던 수단이나 방법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잊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한편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하여 ‘사소한 것에 목을 매다가 큰 것을 그르치면 안 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런 이유에서 ‘목적을 이루면 그 과정에서 사용했던 수단이나 도구에 집착하지 말 것.’을 강조하며 ‘쓰임새가 끝난 것은 과감하게 잊으라는 함의(含意)’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성어에 대한 유래와 출전(出典)에 나오는 고사 내용을 토대로 의의와 철학을 살피는 나들이다.
이 성어가 나오는 고사를 담고 있는 출전은 ⟪장자(莊子)⟫의 ⟨외물편(外物篇)⟩이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이었던 요(堯)임금이 은자(隱者)인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맡기려고 했다던 허유소부(許由巢夫)* 일화를 소개한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서 득어망전을 위시해서 득토망제(得兎忘蹄)와 득의망언(得意忘言) 등을 얘기하고 있다. 출전을 바탕으로 고사의 줄거리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장자의 외물편에서 이 성어와 관련된 부분의 내용 중에 먼저 벼슬을 거부했던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허유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그 옛날 중국에서 요(堯)임금이 86세가 되어 선위(禪位) 대상자로서 자기 아들인 단(丹)을 고려했지만 불초하다고 판단하여 포기했다. 대신 현인(賢人)이었던 소부(巢夫)를 점찍었으나 완강하게 거부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차차선책(次次善策)으로 떠오른 대상자가 초야에 묻혀 지내던 허유였다.
요임금이 신하를 보내 뜻을 전하고 종국에는 직접 찾아가 청했으나 거절하고 홀연히 기산(箕山)의 영천(潁川) 부근으로 도망을 가서 은둔했다. 그래도 요임금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수소문하여 신하를 보내기도 하고 직접 찾아가 설득했음에도 거듭 거절했다. 그렇다면 작은 곳인 구주(九州)라도 맡아 다스려 달라고 했다. 그 제안마저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신하들과 요임금에게 그런 제안을 들어 귀가 더렵혀졌다고 생각한 허유는 영천(潁川)에 흐르는 깨끗한 물로 귀를 박박 씻고 있었다. 그 때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강가로 나왔던 소부가 그의 기이한 행동을 지켜보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유는 임금께서 자기에게 천하를 맡아 다스려 달라는 말씀을 듣고 귀가 더렵혀진 것 같아 씻어내는 중이라고 말했다.
허유의 답변을 듣고 소부가 말했다. “여태까지 공(公)께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명성을 얻었지 않소! 그러면서 귀를 씻는 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공연히 고상한 척 하지 마시오.”라는 가시 돋친 말을 남긴 채 소를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허유가 물었다. “소에게 물을 먹이지 않을거요?”라고. 소부가 고개를 돌려 힐끗 처다 보며 “공의 더러운 귀를 씻은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소.”라는 말을 내뱉고 강의 상류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런 허유소부에 관련된 얘기는 고려 때 추적(秋適)이 편찬했던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장자에서는 권력을 거부한 사례를 열거한 뒤에 이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 ...... / 통발(筌)은 물고기(魚)를 잡는 도구인데(筌者所以在魚 ; 전자소이재어) /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得魚而忘筌 : 득어이망전) / 올무(蹄)는 토끼(兎)를 잡는 도구인데(蹄者所以在兎 : 제자소이재토) / 토끼를 잡으면 올무를 잊는다(得兎而忘蹄 ; 득토이망제) / 말(言)이란 뜻을 전하는 도구인데(言者所以在意 ; 언자소이재의) / 뜻(意)을 얻으면 말(言)을 잊는다(得意而忘言 : 득의이망언) / 내가 어이하면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서(吾安得忘言之人 ; 오안득망언지인) / 그와 함께 얘기를 할 수 있을까(而與之言哉 : 이여지언재) / ....... /
위의 내용 중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得魚而忘筌 : 득어이망전).”에서 득어망전이 비롯되었다. 이렇게 장황하게 득어망전이나 득토망제를 위시해서 득의망언을 들먹이며 최종적으로 하려 했던 뜻은 “말을 잊은 사람(忘言之人)”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이들은 한결같이 시비선악(是非善惡)을 초월한 경지를 뜻하고 있다. 그러므로 달리 말하면 해탈의 경지나 진리에 이르면 거기에 이르기까지 사용했던 수단이나 방법은 버려야한다는 뜻이다. 결국 장자에서 이르는 망언지인은 세속적인 말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지칭하며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진정으로 염원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난날 고락을 함께 겪었던 이런저런 일이나 도구 또는 수단들을 선뜻 버리지 못해 계륵(鷄肋)같은 그것들을 끌어안고 애면글면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 특히 누군가에게 베풀거나 나누어 주었던 기억을 버리거나 잊지 못하다가는 부지불식간에 미움이나 증오의 불씨로 변해 마음의 병이 될 개연성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용도를 다한 것은 무엇이던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 한편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고루한 잣대는 세상과 담을 쌓고 소통을 제대로 못하게 작용할 개연성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이나 철학에 얽매이면 관견(管見)*으로 세상을 보는 꼴이 될 터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열린 사고는 현대를 사는데 필요충족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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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유(許由) : 고대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 ~ ?)이다. 자(字)는 무중(武仲)이고 요(堯)임금이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받지 않았다. 그런 정권 얘기를 듣고 도리어 자신의 귀가 더러워졌다고 하여 영수(潁水)에 씻고 기산산(箕山山)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고 한다.
* 허유소부(許由巢夫) : 부귀영화를 마다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성천자(聖天子)라고 추앙 받는 중국의 요(堯)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선위(禪位)하겠다고 하자 허유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하여 잉수이강(潁水江) 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한편 소부(巢夫)는 허유가 귀를 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 명심보감(明心寶鑑) : 조선시대에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을 위한 한문 교양서이다. 고려 충렬왕 때에 명신(名臣) 추적(秋適)이 중국 고전에서 보배로운 말이나 글 163 항목을 추려서 계선(繼善), 천명(天命), 권학(勸學), 치가(治家) 따위의 24개 부문으로 나누어 배열하고 편집한 책이다.
* 관견(管見) : 붓 대롱 구멍으로 사물을 본다는 뜻으로 좁은 소견이나 자기의 생각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수필과 비평, 2025년 3월호(통권 281호), 2025년 3월 1일
(2024년 5월 23일 목요일)
첫댓글 장자 책을 졸업하는 학생에게 꼭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진짜 명문이 많고 자기 성찰에 도움이 되는 책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_()_
소통이 불통이 되면
통증입니다..
요즘은 癌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혈관병이라는데
이 모든 것의 염증은
스트레스입니다.
소통을 끊임없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오늘도 경청입니다.
교수님의 좋은 말씀..
항상 귀감으로 간직합니다.
저는 상..賞중에 제일 좋은
봄나물을 저녁밥상으로..
3월을 힘차게 보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