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가을
시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수요일이다. 올가을에 들어 몇 차례 태풍의 간접 영향과 기압골 통과로 우리나라 하늘은 흐리고 비가 잦았다. 그런 날씨치고는 우리 지역 강수량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엊그제부터 일교차가 커지고 높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주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녘 벼들을 바라보니 추수를 앞둔 농부들의 일손이 바빠질 듯하다.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을 몇 줄 읽으면서 평소 음용하는 약차를 끓였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려 아침밥을 먹으면서 강변으로 산책을 나서려고 도시락을 챙겼다. 이른 아침 배낭을 둘러메고 현관을 나서 자연학교로 향했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갔다.
주남저수지를 지날 때 엷은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다. 근래 대산 들녘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입주 기업이 가동에 들어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있는 듯했다. 면 소재지 가술을 지나니 남은 승객은 한 사내와 나뿐이었다. 모산을 지난 제1 수산교에 내가 내리려니 기사가 의아하게 생각하고 다리를 건너갈 거냐고 물어와 강둑 산책을 나설 요량이라 했더니 나를 부러워하는 기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강둑으로 나가니 물억새와 갈대가 엉켜 자라는 드넓은 둔치는 가을빛이 완연했다. 강 건너 수산은 엷은 안개가 걷혀 가면서 높은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대산정수장과 본포교를 항해 강둑을 따라 올라갔다. 대산 들녘 일대는 벼농사와 특용작물을 가꾸는 비닐하우스가 섞인 농지였다. 둑 바깥은 창원 시민들의 식수원이 될 강변 여과수를 퍼 올리는 둔치였다.
길섶에는 제철에 피어난 연보라 쑥부쟁이꽃이 화사했다. 검불 속에 돌동부의 깍지가 여물어 몇 줌 따 모아봤다. 돌동부는 넝쿨로 뻗어 자라는 콩과 식물로 콩알은 밥에 넣어 먹으면 잡곡밥으로 좋다. 신전마을 뒤는 강변 여과수를 퍼 올려 상수원으로 공급하는 정수장이 나왔다. 둔치 너머로 유장한 강물이 벼랑을 휘감아 흐르고 밀양 초동 곡강 언덕에는 전원주택이 몇 채 보였다.
대산면과 북면의 경계 상옥정에 이르니 북면에서 한림으로 통하는 신설 도로가 시원스레 뚫려 있었다. 본포 수변공원으로 내려서니 이삭이 팬 물억새가 은빛을 드러내며 바람에 일렁거려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강심을 가로질러 학포로 건너가는 본포교는 상판을 기준으로 하늘과 강물이 쪽빛 대칭으로 데칼코마니를 이루었다. 하늘과 강물은 가을이 빚어낸 순수의 색상이었다.
본포 수변공원에서 다리 밑을 지나니 바위 벼랑엔 취수장이 드러났다. 아까 대산 일동 둔치는 모래밭에서 여과수를 뽑아 올렸고 본포 벼랑 취수장엔 강물을 바로 퍼 올렸다. 본포 취수장은 고온의 여름 가뭄에 녹조가 발생하면 당국은 긴장한다만 강수량이 늘고 기온이 내려가니 한시름 놓아도 될 듯했다. 자전거가 다니도록 해둔 생태 보도교를 따라 북면 수변공원으로 건너갔다.
북면 수변생태공원의 자전거길을 겸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쉼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색에 잠겼다. 인적이 전혀 없고 길짐승도 날짐승도 한 마리 볼 수 없는 무인도 같이 고립된 곳이었다. 쉼터에서 멍하게 앉았다가 벗어둔 배낭의 도시락을 꺼내 비우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둔치에서 바깥신천으로 나가다 장끼 한 마리가 내 발걸음 소리에 퍼드덕 날아올라 내가 더 놀랐다.
찻길에서 명촌을 둘러오는 15번 마을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시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곧장 집으로 가질 않고 사파동 여산농장으로 올라가 고구마를 한 이랑 캤더니 이제 한 이랑만 남겨두었다. 며칠 전 적은 양이긴 해도 비가 왔는데 채소밭은 메말라 웅덩이의 물을 길어와 무와 배추에 뿌려주었다. 이렇게라도 정성을 보내 길러야 나중 뽑을 때 미안함이 덜 하지 싶다. 22.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