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여행의 첫걸음은 호숫가에서 뗀다. 2000년 횡성댐이 들어서며 물이 차오르자, 갑천면 다섯 마을이 물에 잠겼다. 고향을 떠난 주민들은 옛 화성초등학교 옆에 망향의동산을 만들었다. 횡성호수길 5구간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화성의 옛터 전시관과 중금리 삼층석탑
매표소 앞에는 화성의 옛터 전시관이 자리한다. 마을이 물에 잠기기 전 마을 사람들이 쓰던 살림살이와 농기구가 모여 있다. 앞뜰에는 수몰 마을 중금리에 있던 삼층석탑 두 기가 옮겨 세워져 있어, 돌아갈 곳을 잃은 이들의 그리움을 달래 준다.
호수를 배경으로 선 발바닥 모양 조형물
호수를 가까이 조망하는 전망대
횡성호수길은 호수를 두르는 여섯 구간을 합쳐 31.5km에 이른다. 그중 ‘5구간 가족길’을 가장 많이 찾는다. 유일하게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인 데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걷기 편하다. 무엇보다 호수를 가장 가까이 두고 걸을 수 있다. 이름은 가족길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여행자에게는 이만한 길이 없다.
오일장 가던 길을 새긴 '장터가는 가족' 조형물
매표소를 지나면 오누이와 강아지 동상이 서 있다. '장터 가는 가족'이라는 작품으로, 오일장으로 향하던 한 가족을 표현했다. 그들이 정답게 오가던 그 옛길은 이제 호수 아래에 잠겨 있다.
얼굴을 새겨 넣은 옹기 조형물
나무 그늘이 덮은 흙길을 혼자 걷는 여행객
전나무가 우거진 산림욕장의 쉼터
이후로는 흙길이 이어진다. 나무가 가지를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물가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서니 지루하지 않다. 곳곳에 조각 작품이 서 있고, 호수길 갤러리에는 사계절 호수 사진이 걸려 있다. 전나무가 빽빽한 산림욕장에는 정자와 의자가 있어 여유롭게 쉴 수 있다.
산의 그림자를 비추는 횡성호 수면
뱃머리처럼 호수로 뻗은 타이타닉 전망대
댐이 가둔 물은 흐르지 않아 수면이 잔잔하다. 하늘과 구름, 맞은편 산이 그대로 물 위에 내려앉는다. 조망이 좋은 곳에는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그중 뱃머리 모양으로 호수를 향해 뻗은 타이타닉 전망대가 특히 인기다.
횡성호수길 5구간의 B코스 오색꿈길로 들어서는 입구
횡성호수길 5구간은 A코스와 B코스 둘로 나뉜다. 조금 더 걷고 싶다면 '오색꿈길'이라고 적힌 B코스로 들어서면 된다. 오솔길을 지나 작은 목교 두 개를 건너면 호수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횡성호 쉼터에 닿는다. A코스만 걸으면 한 시간 반, 오색꿈길까지 더해 9km를 다 돌면 세 시간 내외가 걸린다. 어느 쪽이든 오전 일정으로 잡기 좋다.
- 운영 시간 [3월~10월] 09:00~18:00 (입장 마감 17:00) [11월~2월] 09:00~17:00 (입장 마감 16:00)
- 이용 요금: 일반 2,000원, 65세 이상·군민·장애인·국가유공자 1,000원 ※ 입장료 전액을 횡성사랑상품권으로 환급
- 문의: 033-343-3432
횡성성당
성모상 너머로 보이는 횡성성당
화강암을 쌓아 올린 횡성성당 외관
다음 걸음은 횡성읍으로 향한다. 횡성에서 성당이라 하면 서원면의 풍수원성당을 먼저 떠올리지만, 읍내 한복판 나지막한 언덕 위에도 눈여겨볼 성당이 있다. 이 자리에는 본래 풍수원성당의 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성당)가 있었다. 1930년 본당으로 올라서며 기와를 얹은 목조 건물을 새로 지었지만, 한국전쟁 중에 불탔다. 1953년 4월 다시 터를 닦아 3년 만인 1956년 지금의 모습으로 세웠다. 부속 건물은 여러 차례 손을 보았지만 본당은 창호와 제대를 제외하면 지을 당시 모습 그대로다. 지붕을 떠받치는 나무 뼈대까지 원형을 잃지 않았다. 전쟁 직후의 형편에 맞춰 서양 양식을 간소하게 옮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해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거친 결이 살아 있는 화강암 벽면
아치형 창이 줄지어 늘어선 측면 벽
돔을 얹은 팔각 종탑
성당 마당에 서면 종탑이 먼저 눈에 든다. 뾰족한 첨탑 대신 네모난 몸통 위로 팔각 종실과 둥근 돔을 차례로 올렸다. 종실 안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들여온 종을 걸었다. 창의 윗부분도 뾰족하지 않고 반원으로 둥글다. 벽을 두껍게 쌓고 아치를 둥글게 트는 10~12세기 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스며드는 성당 내부
읍내와 산자락을 배경으로 선 횡성성당
창의 폭이 좁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실내가 조금 어둑하다. 창마다 끼운 스테인드글라스로 자연광이 스며들며 벽과 바닥에도 색이 번진다. 두꺼운 돌벽이 바깥소리를 막아 안은 조용해, 횡성성당은 혼자 앉아 생각을 비우기 좋은 장소다. 성당을 나서면 뒤편 언덕으로 짧은 산책로가 나 있다. 몇 걸음 오르는 사이 종탑과 지붕 너머로 읍내가 내려다보인다. 횡성성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늑한 풍경이다.
이제는 조금 더 깊은 자연으로 들어간다. 횡성과 평창의 경계에 태기산과 청태산이 솟았다. 태기산 자락의 봉복사는 647년 자장율사가 열었다고 전하는 절로, 횡성에 남은 사찰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돌계단 좌우를 지키는 금강역사상
숲 그늘에 들어앉은 국사단
절 초입의 돌계단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서 있다. 계단을 오르면 절터를 지키는 땅의 신을 모신 전각인 국사단이 나온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와 자리 잡기 전부터 사람들은 산과 땅에 신이 산다고 믿었다. 절은 그 믿음을 밀어내지 않고 한쪽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산신을 모신 삼성각도 마찬가지다.
단청 처마 사이로 바라본 석탑
대웅전 뒤에 자리한 삼성각
경내로 들어서면 석탑과 대웅전이 나란히 서 있다. 봉복사는 한때 천진암과 반야암을 비롯해 산내 암자만 아홉을 거느릴 만큼 번성했다. 여러 차례 불타고 다시 짓기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대웅전과 삼성각, 국사단 정도가 남았다.
봉복사는 의병이 머물던 절이기도 하다. 1907년 원주진위대의 봉기로 일어선 강원도 의병들은 산을 무대로 싸웠고, 끼니와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 봉복사를 근거지로 삼았다. 그해 가을 이곳에서도 큰 싸움이 벌어졌다. 의병 350여 명이 일본군과 맞붙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절도 이 무렵 불탔다고 전한다.
연꽃을 촘촘히 새긴 대웅전 꽃살문
고요히 흔들리는 연등과 유리 풍경
대웅전 앞에 서면 꽃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청록빛 문짝에 연꽃을 한 송이씩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석탑을 두른 줄에는 연등 사이로 유리 풍경을 매달았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맑은 소리가 마당에 퍼진다. 절을 나서는 길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꽃이 막 피기 시작해 물가에 옅은 향이 번진다.
태기산 자락을 돌아 둔내면으로 넘어가면 청태산이다. 해발고도가 높고 숲이 울창해 여름에도 공기가 시원하다. 휴양림 입구에는 국유림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국유림은 나라가 소유하고 산림청이 관리하는 숲이다. 청태산은 본래 있던 자연림에 새로 심은 나무가 더해져 지금의 우거진 숲을 이루었다.
잣나무 사이를 잇는 산책로
여러 수종이 그늘을 드리운 산책로
청태산자연휴양림은 숲길을 따라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 맨발로 황톳길을 밟아도 되고, 곧게 뻗어 올라간 잣나무 사이로 낸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계단이 없고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걷기 좋다.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데 40~50분이면 넉넉하다. 청태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와도 이어진다.
이끼 덮인 바위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잣나무 숲에 마련된 야영장
이끼 낀 바위틈으로 작은 계곡이 흐른다. 몸을 담그는 물놀이터는 아니지만 청량한 물소리가 걷는 내내 따라온다. 물기를 머금은 숲은 촉촉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에서 올라오는 향이 짙다. 크게 숨을 들이쉬면 그것만으로 개운하다.
하룻밤 묵어가는 숲속의 집
비탈을 따라 늘어선 청태산자연휴양림의 숙소
휴양림을 즐기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가볍게 한 바퀴 걷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숲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숲속의 집과 야영장을 갖추고 있어 인원과 취향에 맞춰 고를 수 있다.
여행 TIP
2026년 11월 30일까지 연립동 공사로 인해 산책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어 휠체어 진입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