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재 :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산 85-2 성재골
병인박해 때 고귀한 목숨을 바친 무명 순교자들의 묘역
배티 성지가 지니고 있는 중요한 의미는 순교자들의 고향이라는 점이다.
현재 이곳 배티 골짜기에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으며, 그중에는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들이 섞여 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넓은 의미에서 1866년부터 시작하여 1873년경까지 8년간 지속된
병인박해에 포함됨) 때에 50여 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그 가운데 하느님의 종 오반지(吳盤池, 1813~1866, 바오로)를 비롯하여
이영준 아우구스티노, 김원중 스테파노, 김준기 안드레아, 손관보 베드로, 오사룡, 윤바르바라, 이종여, 김조이 막달레나,
이호준 요한 등 29명은 교회 역사에 기록돼 있고 나머지는 배티 일대에 이름 없는 묘소들로 산재해 있다.
배티 일대의 교우촌은 한국의 카타콤이며, 스스로 찾아온 복음의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간 신앙의 현장이며,
수많은 혈색(적색) 순교자와 백색 순교자를 배출한 순교의 땅이다.
고 윤의병(尹義炳, 1889~1950, 바오로) 신부의 소설 《은화》는 말 그대로 박해 시대에 피어난 “숨은 꽃(隱花)”들의 신앙과
고난을 그린 군난(窘難) 소설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골배 나무가 많았다던 배티와 그 일대의 교우촌들이다.
배티 성지를 지나 안성으로 가는 고개 방면으로 약 1km 가면 왼편으로 조그만 안내 비석이 하나가 나온다.
바로 6인의 무명 순교자 묘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지점인데 여기에서 산속 오솔길로 1km, 약 3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배티 성지 야외 성당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 길로 가면 2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배티 골짜기에 교우촌을 형성하여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은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안성 잿님골과 목천으로 피신하여 숨을 죽이며 살아가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박해자들에게 숨어살던 잿님골이 발각되어 포졸들이 몰려오자 허둥지둥 산속으로 피신하던 신자들은
이곳저곳에서 습격을 받아 창과 방망이, 쇠도리깨에 두들겨 맞으면서 고귀한 목숨을 하느님 대전에 바쳤다.
포졸들이 물러가자 살아남은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급하게 수습하여 이 성재 골짜기에 묘를 만들었다.
그리고 박해가 끝난 뒤에는 해마다 이곳을 찾아와 벌초를 하면서 그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으려했다.
이곳은 유서 깊은 우리 교회의 순례지이다.
신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1975년 당시에는 7인 묘였다.
1977년 순교자들의 후손이 나타나 2기를 백곡 공소로 모셨고, 그 후 조사과정에서 1기가 새로 발견되어 6인 묘가 되었다.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포졸들에게 쫓기던 교우들이 이 근처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순교자들의 무덤이 이 외진 곳에 줄줄이 놓여 있게 된 이유는 박해의 와중에서 급하게 시신들을 끌어 모아
순교한 장소에 안장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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