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부산지방경찰청에 때아닌 삭풍(朔風)이 몰아쳤다. 치안정감급 경찰 고위직 인사를 앞두고 이금형(李錦炯·55) 경찰대학장이 부산에 부임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부터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근한다' '퇴근을 하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담당자 불러 업무 보고를 받는다' 등등 일을 '빡세게' 시킨다는 후문이 부산 경찰계에 어떤 형태의 현실로 다가올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였다. 고졸 순경으로 출발해 경찰 창설 68년 만에 여성으로는 처음 치안정감에 올랐으니 얼마나 독한 사람일까? 실제로 지난 10일 이금형 신임청장이 부산지방경찰청 현관으로 들어섰을 때 직원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영국의 대처 수상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머리 모양과 작지만 다부진 체형, 형형한 눈빛에 압도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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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부산지방경찰청에서 만난 이금형 신임 청장은 특유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일할 때 머리카락이 내려오는게 싫고 손질하기 편하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정작 24일 만난 이 청장은 "경찰청의 치안종합성과평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부산 경찰 아니냐"며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산경찰청 직원들이 내가 온다고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을 저도 안다"며 웃었다. 이 청장은 "부산 경찰은 김길태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이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정 시절 이후 변함없는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는 "일할 때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내려오는 게 싫고, 손질하기 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려와는 달리 이 청장 취임 후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청장이 부임 후 첫 현장 순시를 나간 곳이 김길태 사건이 발생한 부산 덕포동. 유명세 때문인지 동네 주민들 입에서 '팬이다' '예쁘시다'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청장의 얼굴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된 부산에 대해서는 "조폭이 설치던 어수선했던 시기에 부산이 그랬지 지금은 강력 사건이나 미제 사건이 많이 줄었다"면서 "부산 경찰이 그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는 "그렇지만 조폭이 나온 중·고등학교 등을 파악해 학교 폭력을 일삼으면서 조폭과 연결이 되는 '일진'을 근절하는 등 조폭의 싹을 초기 단계에서 자르기 위한 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청장은 현업에서 10년 이상 성폭력·가정 폭력·학교 폭력과 생활 안전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 청장은 "각종 폭력과 관련한 부서가 새로 생길 때마다 업무를 맡았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나?'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황무지 산을 곡괭이로 한 삽 한 삽 파내고 고르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금형에게 가면 다 해결된다는 소문이 났고, '진격의 이금형'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청장 부임 직후 해운대와 광안리 등 부산 지역의 고급 룸살롱과 유흥주점들이 성매매 알선을 하다 잇따라 적발됐다. 한 번에 업주, 성매매 여성, 손님 등 40여명이 무더기로 붙잡히기도 했다. 자영업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거나 술집에서 행패를 부린 폭력배 20명도 잡아들였다. 이 청장은 "범법 행위를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청장은 부산 시내 구석구석을 신속하게 누비며 교통과 학교·민생 치안을 챙길 스쿠터 기동 순찰대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치매 노인이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에 대비해 가족이 동의할 경우 위치 추적기를 부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청장은 "부산 시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