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신문 3월호'에, 글이 실렸다.
최근 어머니 생신 그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짧은 기사 안에 담아봤다. 짧은 글 안에는 '우리 집 대문만 열면 문 앞이 선교지'가 된 현실도, 한국사회 내 이주민들이 겪는 어려움도, 나그네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섬김도, 한국교회 이주민사역에 대한 '일상성' 차원의 은근한 제안도 두루 스며 들어있다.
이론은 하나도 없고, 그냥 스토리텔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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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72세 권사님의 하루
얼마 전, 어머니의 72세 생신날 일어난 일이다. 아침 일찍 어머니를 뵈며 “저녁에 가족들 모여 함께 식사하지요” 청하려 할 즈음, 어머니께서 “난 오늘 점심식사 약속, 저녁식사 약속 모두 잡혔다. 괜찮으니, 다른 날 따로 모이자”하셨다. 누구와의 식사일까 했더니 “점심식사는 방글라데시 전도사 사모님과 하고 저녁식사는 탈북민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기로 했다” 하신다. 참으로 글로벌하신 어머니. 생일날 스케쥴을 들으며 뭔지 모를 뭉클함을 느낀다. 이 날 누구와 식사하는가 그 하나만으로 어머니의 최근 수십 년의 일상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니는 주중에 매우 바쁘시다. 70세가 넘어 거동에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마음과 생각은 여전히 ‘청년의 생기’로 한 가득이다. 그 생기로 매일 이 땅의 다양한 나그네들을 만나신다. 3년 전 예멘 난민들이 제주에 들어오던 때엔, 어머니께서 직접 제주에 내려가 제주 곳곳에 있는 난민들을 만나셨다. 꽤 능숙한 영어를 기반으로, 무슬림 난민 청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정착에 필요한 도움을 주며 틈틈이 그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셨다.
감사한 것은, 무슬림 난민 청년들 가운데 의미 있는 숫자가 예수님을 영접했고 세례를 받았으며, 이들 중 일부는 서울에 올라와 정착한 이후에도 여전히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당시 한국 정부의 무슬림난민 수용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던 나조차도, 어머니의 난민 지원과정을 보며 크나큰 관점의 전환이 있었다.
어머니는 수년째 방글라데시인 전도사 부부를 섬기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빈곤이 만연하고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극심한 나라다. 방글라데시 부부는 여러 어려운 상황 속에 한국에 온 뒤로, 남편은 주중엔 어렵게 신학공부를 하고 주말엔 서울소재 모 교회의 파트전도사로 사역해 왔고 사모 역시 함께 교회를 섬겨왔다. 이들 부부의 한국살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재정적 어려움은 그렇다 쳐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외국인 유학생-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매우 높은 문턱이며, 이런 어려움은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어머니는 이들 부부를 재정으로 섬김을 넘어, 자주 음식을 해 가지고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행정/제도 차원의 어려움이 생길 때 중간에서 이들을 돕고 변호했으며, 부부의 임신, 출산, 육아 과정을 계속 돕고 있다. 이들이 언제까지 한국 땅에 머물지 알 수 없으나, 어머니는 이들 세 식구에게 있어 ‘한국 땅의 친정엄마요 할머니’다. 어머니 생신날 점심 때, 방글라데시 사모가 그 부족한 형편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정성 가득담긴 식사와 섬김으로 어머니를 모셨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수년째 탈북민교회에 출석하고 계시다. 남한사람으로서 탈북민들로 이뤄진 교회에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분단 70년이라는 시간은, 남한과 북한 사이에 체제의 차이를 넘어 많은 사회문화와 사고방식라는 거대한 갭을 만들었고, 이는 통일목회 현장에서도 그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감사한 것은, 성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품고 이해하려 애쓰고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우려한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섬겨온 탈북민교회도 그런 교회다. 어머니께서는 매주일 탈북민들과 함께 예배하고, 탈북청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담임목회자인 젊은 탈북민 목회자를 정성껏 세워 드리고 있다. 어머니 생신날 저녁, 탈북민 목회자 부부와 교회 식구들이 어머니를 위해 요리상을 한 가득 준비하여 어머니를 즐겁게 해 드렸다고 들었다.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다.
내 어머니는, 어느 작은 동네교회를 섬기는 평범한 72세 어르신이다. 그럼에도 당신의 마음에는 늘 ‘열방’이 있다. 평생을 적잖은 해외 선교사님들을 후원하시며 그들을 섬겨오신 가운데, 이제는 250만 이주민 시대에 <우리 집 대문만 열면 그곳이 선교지>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시며 ‘당신에게 다가온 열방의 이웃들’과 더불어 매일 선교적 삶을 살고 계시다. 어머니의 하루를 보면,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사 55:5)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실감된다. 지금 우리는, 선교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다니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