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 산행
아침 가온이 부쩍 내려가 한낮과 일교차가 커진 시월 중순 목요일이다. 창원 근교 산자락을 누비며 가을의 서정을 느껴 보려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마산역으로 나가 동행하는 벗과 광장 모퉁이에서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기로 했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길목은 주말에만 반짝 노점이 형성되는데 가을에는 평일도 제철 과일과 푸성귀를 펼쳐 놓고 손님을 맞았다.
번개시장 들머리서 김밥을 마련해 진전 정곡으로 가는 77번 녹색버스를 탔다. 70번대 버스는 삼진의 각기 다른 골짜기로 운행하는 노선이다. 70번과 71번 진동 환승장까지고 72번은 대현이 종점이다. 73번은 서북동으로 가고 74번은 의림사로 간다. 75번은 상평이 종점이고 76번은 둔덕으로 간다, 우리는 당항포 입구 정곡이 종점인 77번을 타고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었다.
진동 환승장을 거친 버스는 진북면 소재지 지산을 지나 진전면 소재지 오서에서 탑동으로 들었을 때 내렸다. 탑동마을 안길에서 높이 자란 적송이 에워싼 산등선을 오르려니 외딴집을 거쳐 가야 했는데 줄에 묶인 두 견공이 컹컹 짖어댔다. 평소 그 고샅으로 드나드는 외부인이 없었을 터이니 두 녀석은 책임을 다했으나 개가 워낙 사나워 우리는 은근히 몸이 움짤 놀랄 정도였다.
탑곡산으로 가는 고갯마루에서 숲길을 지나니 지하로 터널이 통과하는 방말재로 향했다. 거제 남부 저구에서 시작된 14호 국도가 통영에서 고성을 거쳐 마산으로 가는 길목인데 지금은 고성터널이 뚫려 고갯길로는 차량이 다니질 않았다. 삼덕저수지 곁 옥수골로 내려서기 전 적석산 방향으로 뚫린 임도로 들었다. 호젓한 숲길을 쉬엄쉬엄 가면서 주변의 식생들을 눈여겨 살펴봤다.
오래전 임도를 개설하면서 깎아낸 비탈에 꽃은 시들고 잎사귀가 말라가는 덩굴이 보였다. 난 예감에 하수오인 줄 알고 벗에게 뿌리를 캐 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가져간 연장이 없어 등산지팡이로 조심스레 땅을 헤집으니 제법 굵은 뿌리의 실체가 드러났는데 하수오가 아닌 단풍마였다. 하수오가 약재로 좋다고 알려졌으나 단풍마도 하수오에 뒤지지 않을 훌륭한 약재임은 분명했다.
등산 초입에 예상하지 못한 약재를 캐서 배낭에 채우고는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당국에서는 길섶의 풀을 잘라 정비를 잘해두었으나 예초기 칼날에 용케도 살아남은 야생화들도 볼 수 있었다. 이 계절을 장식하는 연보라 쑥부쟁이와 하얀 구절초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선홍색 물봉선꽃은 거의 저물어 갔으나 노란 이고들빼기와 미역취꽃도 간간이 보였다.
해발고도를 점차 높여 올라가다 산중턱 V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갔다. 길섶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제피가 빨갛게 익어 껍질이 갈라지면서 까만 씨가 드러났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제피열매를 따 모았다. 햇김치나 추어탕의 향신료로 쓰는 제피열매는 벗에게 모두 건넸다. 끝이 어딘지 알 수가 없는 임도의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가져간 김밥을 나누어 먹었다.
소진된 열량을 벌충하고 비스듬히 내려가는 임도를 걸었더니 이른 봄 맛보는 전호나물이 보여 몇 줌 뜯어 모았다. 전호는 두해살이로 가을에 잎줄기가 자라 겨울을 넘긴 이른 봄날 식탁에 오를 산나물인데 가을에 뜯어도 효용 가치가 있었다. 전호를 뜯고 비탈길을 내려서니 창포 앞 바다가 호수처럼 바라보였다. 주변 산세와 함께 우리가 지나는 숲속 위치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송전탑에서 임도는 끝나고 등산로는 이어지지 않아 출구가 없는 막다른 길이었다. 우리는 개척 산행으로 경사가 가파를 숲을 헤집고 내려가니 자손이 성묘를 다녀간 무덤을 찾아내 마음이 놓였다. 또 다른 임도에서 국도 2호 동산교차로에서 진전천을 건너 동산마을에 닿았다. 벗과 해물칼국수를 시켜 나는 피부과 진료 관계로 잔을 받지 못하고 벗의 잔에만 맑은 술을 채워주었다. 2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