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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호세아 4:1-3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내용분해 : A.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 경청 촉구(1a절)
-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1a절)
B. 극심한 선민의 죄악상 지적(1b-2절)
1.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1b절)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2절)
C.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한 땅의 쇠잔 선언(3절)
-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3절)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시고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저주와 속임과 도둑질과 간음과 포악과 죄악뿐인 우리를 오늘도 인내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통해, 다시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며, 우리의 삶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신줄 믿습니다. 이제 오늘도 우리의 죄와 허물에서 건지시며,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십시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아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호세아 4:1-3절 말씀으로 하나님 말씀 경청 촉구와 선민의 땅의 쇠잔에 대한 서론적 선언에 대한 말씀입니다. 죄의식과 위기 의식이 결여된 선민을 향하여 그들의 가증하고도 전방위적인 범죄를 지적하고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선언함으로써 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여호와의 선민 회복 약속에 근거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전반부 1-3장은 부정한 여인과 결흔하고 그녀의 거듭된 불륜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용서하고 사랑한 호세아 개인의 가정사와 관련하여, 이와 유사한 죄를 범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 4-14장은 앞선 전반부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선민의 심각한 타락상을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며, 여호와께서 주신 용서와 회복의 약속에 근거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은 아홉 편의 예언 선집입니다. 그 가운데 1-8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영역 전체에 만연된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그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선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마지막 아홉번째 예언은 선민이 비록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되나,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을 선포하며, 이와 더불어 죄를 회개할 것과 선포된 말씀에 대하여 깨달음을 가지며 실천할 것을 촉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이 너무나 심각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비록 공의로운 심판을 베푸시나, 이는 선민의 멸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민으로서의 바른 정체성을 가진 회복을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 본서 후반부의 내용을 상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4:1-5:4는 1예언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첫번째 예언부터 여덟번째 예언까지는 모두 선민의 범죄를 지적하고 심판을 경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나, 각 예언은 모두 나름대로의 시각과 고유한 소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1예언은 첫번째 예언으로서의 특정을 지니고 있는데, 즉 여기에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촉구가 주어 지고, 땅의 피폐와 오염이 바로 이스라엘의 범죄와 타락으로 인하여 임할 것이란, 서론적 선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4:1-3).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격적인 예언은,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을 필두로 하여 모든 백성이 타락하였음을 지적하고, 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어리석고 가증한 우상 숭배에 있으며, 이러한 범죄가 이미 타성화되었음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5:5-6:3은 2예언으로서, 여기서는 북왕국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그나마 신앙적 면모를 보여왔던 남왕국 유다마저 동반 타락하였음과 이로 인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필연적인데, 그 심판이 급박하고 괴롭고 피할 길 없이, 임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5:5-14). 그러나 2 예언은 여호와께서 선민을 비록 징벌하시나, 그 이후에 선민의 신앙 갱신과 회개 운동이 있을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여, 암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구속사가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란 소망을 갖게 합니다(5:15-6:3).
이에 이어지는 6:4-7:7은 3예언입니다. 여기서는 선민 타락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이로 인하여 심판의 불가피함과 이에 대한 여호와의 개탄하심을 사중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선민의 타락상은 무정함과 영적 무지 (6:4-6) 언약 파기와 살육 (6:7-11a) 도적 질과 약탈(6:11b-7:2) 탐욕과 우상 숭배와 모반(7:3-7) 등으로 제시되는데, 이러한 죄악상의 열거는 선민이 전방위적으로 타락하였음을 밝혀, 심판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다음으로 7:8-8:14는 4 예언으로서 여기서는 여호와와 선민간의 관계 단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선택을 받고 역사상 큰 은혜를 체험하였지만, 여호와를 저버리고 사람의 길을 고수하였으므로 심판이 불가피하였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과 뒤섞여 여호와께 간구하지 않았고 강대국만 추종하였습니다(8-12절). 또한 여호와를 떠나 도우심을 뿌리쳤으며 거역을 고집하였습니다 (13-16절) . 또한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범한 채, 위기 모면만을 구하였고 (8:1-3) 여호와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우상 숭배를 자행하였으며 (8:4-7),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긍지와 의무를 버리고 강대국에 빌붙었고 (8:8-10) 문자로 규정된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자의적 제사를 감행하였으며 (8:11-13) 창조주요 구원 자이신 여호와를 망각한 채, 전각과 성읍만 의지하였습니다(8:14), 이러한 4예언도 앞선 3예언처럼 선민의 죄악상을 나열하여 여호와의 심판이 정당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9:1-17 은 5예언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숭배하는 우상 가운데 대표적 우상인 바알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여 우상 숭배의 타락상을 질책하는 동시에, 특히 지도자들의 죄악상과 그들에 대한 심판 선언에 초점을 맞춥니다.
10:1-15는 6예언으로서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삶 전반에 있어서 총체적으로 타락하였으므로, 이로 인하여 사회 전반에 혼란과 부패가 넘쳐남을 질책하고, 총체적 심판으로 만인이 불가항력적 멸망에 이를 것이란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심판 경고를 열거하는 중에서도 이스라엘 만인과 각 개인을 향한 회개 권고를 삽입하여(12절), 바른 회개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암시합니다.
11:1-12:14는 7예언입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부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가운데서 여호와의 사랑과 인도를 망각하고 계속하여 배은망덕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을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계속 반복되어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법정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뿌리 깊은 거짓과 포학을 선포하며, 이에 상응하는 징벌을 경고합니다.
또한 13:1-16은 8 예언으로서 여기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배은 행위들이 야기하는 허망한 결말을 소개하는데 초점을 맞추는데, 즉 그들은 허망하게 패망하며(1 -3절) 야수의 맹습과 같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되며 (4-8절) 지배 계층이 붕괴하게 되고 (9-11절), 총체적이고도 처절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12-16절).
마지막으로 14: 1-9는 아홉번째 예언입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범죄에 대한 질책과 심판 경고에 대한 예언을 마감하고 회개를 권고하는 내용과(1-3절) 여호와의 회복을 약속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4절), 그리고 예언에 대한 깨달음과 실천을 촉구하는 권면으로 끝맺습니다(9절) ,
이상과 같은 호세아의 아홉 편의 예언이 우리로 하여금 각성하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모든 범죄의 근원과 멸망의 원인은 여호와를 아는 바른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서에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음이 집중적으로 정죄되고(4:1. 6;5:4) 여호와를 힘써 알아야 한다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6:3,6). 그러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단순히 여호와에 대한 이론적인 앎이 아닙니다. 이러한 지식은 장차 멸망받을 사악한 귀신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에 게 요구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러한 분석적 지식을 넘어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서 우러나오는 여호와의 사랑에 대한 독특한 신뢰이며, 여호와 섭리에 대한 통찰과 순종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성도의 전인적인 삶 속에서 구현되는데, 당시 선민들은 이러한 점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받았고, 멸망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각가지 병리 현상과 도덕의 붕괴 역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적어지는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에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 역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의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범죄 행위는 우상 숭배란 사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멸망받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여러가지로 분석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우상 숭배란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따라서 본서에는 우상 숭배에 대한 정죄가 여러번 반복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상 숭배를 그토록 혐오하실까? 이는 우상 숭배가 하나님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근원적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른 범죄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도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가지고 있지만 순간적인 욕심이나 판단의 잘못으로 범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치 척도의 기 준으로 삼는 자는 비록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지만, 곧바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는 하나님 자리에 우상을 가져다 놓는 범죄이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의 모든 가치 판단과 행위는 거짓된 우상의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는 회개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현저하게 저하시키며, 결국 멸망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문제점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바알의 숭배자는 아니나, 하나님이 아닌 거짓된 신을 섬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나 물신주의와 같은 우상 숭배도 성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 있어서 제일의 위치에 두어야 할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이 바로 우상이란 점에서 보면, 현대인의 우상은 과거 선민들의 경우보다 더 다양해질 수 있으며, 우리 시대에 우상 숭배자들이 과거보다 더욱 많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혹여나, 나 자신은 영원한 멸망을 가져오는 하나님이 가장 질시하시는 죄인 우상 숭배의 올무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지도자의 잘못이 그 사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입니다. 북이스라엘이 타락하여 멸망받을 수밖에 없게 된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종교 지도자로서 모범이 되어야 할 제사장들이, 율법을 버리고 교만하게 행하며,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하나님의 제단을 더럽혔기 때문이니다. 이러한 범죄는 곧 백성들로 하여금 답습하여 죄의 길을 가게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수호하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종교 지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합니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세상의 유혹에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책임과 직임의 중요성이 큰 만큼, 유혹 역시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혹에 넘어갈 때는 자기 자신의 파멸은 물론, 그가 속한 집단과 사회와 나라까지 부패하게 하여, 혼란에 빠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막중한 책임에 대한 깊은 자각을 가지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영적 투쟁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힘을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은 택한 자의 멸망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본서에는 범죄한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들 사이에 패역한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끝없는 부성애의 표현과 이러한 부성애에 의한 이스라엘 회복의 약속 및 회복으로 나아가는 방편으로서, 회개하라는 촉구가 반복됩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예언인 아홉번째 예언에서는 회개한 자에게 임할 회복의 축복이 선언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선민을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의 길로 인도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합니다. 결국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회복을 도모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신약 선민인 성도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어지는데, 성도의 고난은 범죄에 대한 징계로서의 성격도 지닐 수 있으나, 영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한 방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도가 이러한 고난의 의미를 바로 깨닫게 될 때, 큰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절 상반절을 보시면,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여기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궁극적으로 모든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유대인들이 날마다 암송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쉐마’ 라고 칭합니다. 이 ‘쉐마’의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신6:4).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는 역으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말들을 들으면서 살아갑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집에서는 가족들의 말, 부모님과 자녀, 형제 자매의 말을, 교회에서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말을, 직장에서는 거래처 사람들과 상사들, 동료들의 말을 듣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볼 때, 이 모든 말들 중에서, 일부는 사탄의 말이며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운데서 누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셨고, 끝나는 시점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말로써 예수의 마음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마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마귀의 말에 반박하시면서 반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록된 바’ 라는 말입니다(마 4:4.7.10). 무슨 말입니까? 그 순간에 주님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 말씀을 듣고 있었기에,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었으며, 결국 그 것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을 듣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마귀의 말을 듣는다는 말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조차 마귀의 말을 듣는 자들은 얼마든 있을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이 만세대 교회의 모범이 된다는 초대 교회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졌음을 지적합니다. 곧 초대 교회가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경험할 때, 부부인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가 거짓망를 할 때,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였느나?"라고 정곡을 찔렀습니다(행5:3). 베드로는 이를 통해 아니니아의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받아 자신이 소유한 땅을 팔아 교회에 전액 헌금하리라고 큰 결단을 했지만, 사탄의 속삭임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도들과 성령을 속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그 아내와 더불어 즉사하고 말았습니다(행 5:1-11).
여러분, 참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요구되는 바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쫓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또 교회 안에 속하여 있다 해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다 면, 결국 과거 멸망을 자초한 북이스라엘과 같이, 생명과 은혜가 넘치며 거룩하고 순수한 초대 교회 안에서도 거짓을 고집하다 죽 음을 면치 못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비참한 결국을 맞이할 뿐입니다. 진정 여러분들은 마귀의 어떤 유혹까지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심으로 승리하신 만세대 성도들의 믿음의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면모를 본받아, 항상 어떤 순간에도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을 따라 살며, 항상 승리하는 복된 성도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