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농부의 딸로 태어나 서울로 올라와 가발공장에 다니던 여인이 검정고시를 치러 국어 교사가 되려고 학원에 나갔다가 총각 선생과 사람에 빠졌는데 연인에게 배신 당하자 복수를 결심하고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가 살인미수가 되었다는 슬픈 사연을 실어봅니다.
"사랑의 생활수기"가 여성 주간지에 실려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사건이 영화가 되고 문주란의 데뷔곡이 되었답니다. 참 순진한 여인들을 농락하는 사내들이 많죠. 동숙의 노래 같은 아픈 사연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동숙의 노래' 사연을 알고 계십니까?
반세기(半世紀)도 훨씬 더 지나버린 1960년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가 무척 어려웠던 그 시절, 그녀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국민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서울에 올라와 구로동에 있던 구로공단 가발공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공장에서 받은 월급은 최소한의 내 생활비만 남기고 시골 부모님에게 모두 내려 보냈습니다. 동생들 학비와 가사(家事)에 보탬이 되라고. 그러기를 십여 년이 지나면서, 찌들게 가난했던 시골집 생활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서른이 가까운 노처녀 나이가 되어 있었고 지나간 세월이 너무도 아쉬웠습니다. 이제라도 자신을 위해 투자(投資) 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검정고시 준비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글을 쓰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로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 중학교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든 그에게 변화가 생깁니다. 다니던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모(思慕)하게 됩니다.
착하고 순진한 동숙은 총각 선생 자취방까지 찾아가 선생님 밥도 해주고 옷을 빨아 주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두 남녀는 장래를 약속하며 몸과 마음을 그리고 가진 금전까지도 그에게 모두 바치게 됩니다.
그런데 가발공장은 세월이 지나면서 전자산업에 밀려서 그녀가 다니던 가발공장도 감원(減員)과 부도(不渡)로 직장을 잃은 그녀는 학원비 때문에 학원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할 수 없이 동숙은 부모님 도움을 얻으려고 시골에 내려와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부모님에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야 아~ 여자가 공부는 무신 공부냐? 며 있다가 시집이나 가그라"며 냉대(冷待)합니다. 10년 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동숙은 너무나 서운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원망하며 울면서 서울로 다시 돌아옵니다.
동숙이가 만난 친구들은 모두가 "너가 사귀던 박 선생 그분은 알고 보니 약혼자도 있고 이번에 결혼한다더라. 너를 등처 먹은 거나 다름없는 기라, 가시나야!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동숙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랬고 그를 만나서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마음이 이미 싸늘했고 "너와 난 학생과 제자 사이 아니냐. 내가 어떻게 너를 내 아내로...... 그리고 니가 좋아서 날 따라 다녔지. 고등학교 검정고시나 잘 보라구......." "알았씸더 샌님예~........." 더 이상 긴 이야기가 필요 없었습니다.
이미 농락당한 여자임을 알게 된 동숙은 복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동생들과 부모님에게 희생만 당하고 그리고 또 한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그렇게 살아 온 동숙은 과연 어떤 심정이겠습니까! "어차피 내 인생은 이런거야 하며 동숙은 처절하게 비관을 합니다.
그녀는 동대문 시장에서 비수(匕首)를 하나 구입해서 가슴에 품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업시간 그 선생이 칠판에 필기를 마악 쓰고 돌아 서려는 찰나 원한에 찬 동숙은 선생님 가슴에 복수의 비수를 꼽습니다. "야, 이놈아! 짐승보다 못한 나쁜 놈~" 순간적인 사건입니다.
비명 소리에 남자는 쓰러 졌고 동숙은 경찰조사를 받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남자 어떻게 되었어요? 제가 잘못 했어요. 형사님! 제발 그 선생님만 살아나게 해 주세요" 자신을 탓하면서 사랑했던 남자의 안부를 더 걱정하는 여지지만 동숙은 결국 살인 미수죄로 복역을 하게 됩니다.
가난 때문에 자신을 전혀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오직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그녀가 뒤늦게 얻은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살인미수자(殺人未遂者)라는 비극으로 마무리한 "사랑의 생활수기"가 여성 주간지에 실려서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를 모델로 하여 '영화도 만들어졌고 그 이름도 유명한 ''동숙의 노래''도 만들어 졌습니다. 한산도 선생이 이 동숙의 사연을 노랫말로, 백영호 선생이 작곡을 하여 1966년 신인가수 문주란이 동숙의 노래로 가수 데뷰를 합니다.
그때 문주란의 나이는 10대를 벗어나지 않은 앳된 소녀였다고 신문과 방송에서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결국 이 사연은 히트! 대히트였습니다. 그래서 문주란은 가수의 길로 들어섰고 낙조, 타인들, 돌지 않는 풍차 등의 힛트곡을 내기도 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문주란이 부른 <동숙의 노래> 가사입니다
1절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마음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어리 때는 늦어리~''
2절 ''님을 따라 가고픈 마음이건만 그대 따라 못가는 서러운 마음
저주 받은 운명에 끝나는 순간 님의 품에 안기운 짧은 행복에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 뜨거운 눈물~.'
찢어지게 가난했든 우리의 1960년대 그 당시 우리의 많은 10대 여공들은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냉대 속에 동숙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만 했든 숙명이었습니다. 동숙의 일생이 잘 표현된 이 노래를 듣고 또 다시 들어 보세요.
60~80년대 우리는 그때에 남자들은 독일 광부로, 월남전 파견과 중동건설 현장 파견 등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여자들은 독일간호사 파견과 전국의 각종공단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여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이나 동생들 공부시켜가며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루는데 공헌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들은 지금 70대 80대 90대 노년, 피땀흘리며 일하고 벌어서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세계 최빈국(最貧國)으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목숨을 연명(延命)하며 살아가던 우리나라를 세계10대 경제대국으로 만든 동력들인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피땀 흘려 일하기보다는 정부에서 나눠주는 몇푼의 공짜 돈에 현혹되어 눈이 멀어있다는 말이 풍설이기를 믿고 싶을 뿐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양 착각을 하면서 이들 경제 개발세대를 가르켜 꼴통, 들딱이라 하며 폄훼하는 현실이 정말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따라서 경제개발 주역들이 제대로 평가받는 교육과 인식이 절대 필요합니다. 한가한 휴식시간 때 동숙의 노래 한곡 들으시면서 그 내력(內歷)을 새겨 보는 시간 가져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https://youtu.be/GYZ4BNs8Wp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