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넝쿨은 집을 에워싸고
온통 시퍼렇게 벽에 번지네. 피리 부는 자세로
역에 기대앉아 쉬네. 저 주름투성이 늙은 사내,
여차저차 꼬불꼬불한 길,
그 숱한 곡조로 만면을 덮네.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2024.05.26. -
시인은 집 외벽을 타고 오르는 푸른 담쟁이넝쿨을 바라본다. 두 눈이 찬물로 씻은 듯 시원했을 테다. 담쟁이넝쿨은 집을 빙 온통 둘러싸고 있다. 집은 머잖아 담쟁이창문, 담쟁이처마를 갖게 될 것이다. 이윽고 시인은 그 집에 기대앉아서 쉬고 있는 늙은 사내를 발견한다. 그리고 버들피리 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시인은 실제로 늙은 사내를 보았을까. 또 버들피리 소리는 왜 무슨 이유로 들려왔을까. 시인은 담쟁이넝쿨을 보면서 그렇게 상상했을 수도 있겠다. 담쟁이넝쿨이 이러하고 저러하게, 이쪽으로 저쪽으로 번지고 있는 외벽의 형세가 꼭 주름이 많은 늙은 사내의 온 얼굴 같았을 것이다. 넝쿨은 자주 고부라지며 나아가 외벽을 덮고 있으므로.
시상(詩想)이 참 절묘한 것이 번지는 담쟁이넝쿨에서 곡조를, 연속적인 음(音)을 시인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물이 오른 버들가지 껍질로 만들거나 버들잎을 접어 물어 불 때 생겨나는 버들피리 소리를 말이다. 늙은 사내가 아이였을 때에 불었을 법한 버들피리 소리를. 어쨌든 나울나울 흔들리며 퍼지는 버들피리 소리처럼 담쟁이넝쿨도, 주름도 우주의 만면(滿面)에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