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이 나왔습니다.
<동학사상의 원형을 찾아서>
<동학은 경북이다.>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이 해월과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져
증산강일순의 화엄적 후천개벽사상과 보천교로로
이어지는 그 진ㄴ한과정과 동학사상을 담았습니다.
최제우의 동학사상은 어떻게 생성되고 이어졌는가?
몇 년 전에 일제로부터 강제 합방을 당한 지 106년째 되던 경술국치 무렵, 모 방송국과 동학을 주제로 촬영했다. 친일파의 행적과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방송이었다. 고창과 부안 일대를 돌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에 있는 김개남 장군의 묘에서 방송을 마무리할 때, 오중호 기자가 나를 향해 물었다.
“왜 친일파 자손들은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고, 동학군의 후손들은 어렵게 살고 있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친일파 대부분은 세도가였거나 잘사는 집안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부의 세습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일제강점기에도 일제에 협력하며 잘살았습니다. 그러나 동학군의 후손은 삼족이 멸하는 관례에 의해 성까지 바꿔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일례로, 김개남 장군은 도강 김씨 족보에서도 지워졌을 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 역시 성을 박씨로 바꾼 채 살아남아 1955년에야 성(姓)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손화중 장군의 아들 역시 성을 이씨로 바꿔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배움의 끈이 길지 못했고, 제대로 된 직장 역시 갖지 못한 채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선(善)한 자는 흥(興)하고, 악(惡)한 자는 망(亡)한다’라는 말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이 민중들에게 즐겨 쓰는 말이지요. 하지만 ‘선한 자는 망하고, 악한 자는 흥한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혁명의 아들이다’라고 말했던 하이네가 이런 시를 썼지요. ‘어째서 올바른 자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피를 흘리며 골고다의 언덕을 넘어가고, 나쁜 놈들이 승리자로써 날쌘 말을 타고 횡행하는가?’ 혁명은 고독하고 쓸쓸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터뷰가 끝났다. 그러자 기자가 나를 향해 다시 말했다.
“너무 센데요? 하지만 될 수 있으면 그대로 방송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이라면 불가능지만, 지금은 가능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행히 방송을 보니 무삭제 그대로 방송이 나왔다. 정의를 부르짖다가 역적이라는 오명 아래 죽어간 사람들 역사를 두고 ‘정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의와 부패, 부조리와 싸웠던 이들 역시 권력을 잡게 되면 부패한 독재자가 된 나머지 불의를 신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중에는 목숨을 바쳐 끝까지 정의를 부르짖었던 이들도 있었다.
고려 때의 묘청이 그러했고, 만적, 그리고 신돈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 조광조가 그러했다. 조선 중기 올리버 크롬웰보다 60년 앞선 1589년에 세계 최초로 공화주의를 주창한 정여립은 “천하는 공공한 물건이지 어디 일정한 주인이 있는가?” 하면서 나라의 주인이 군주가 아니고 민중이라고 주창했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천하에 두려워 할만한 자는 오직 백성 뿐이라 설)을, 그리고 다산 정약용은 탕무혁명론(중국의 탕왕과 무왕이 왕조를 교체한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역적이라는 오명 아래 죽거나 유배길에 올랐다. 나아가 그들의 불꽃같은 사상과 신산했던 삶을 기록한 글 역시 모두 불태워져 사라지고 말았다. 불의와 부정, 부조리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들은 변혁이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인 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말았다. 그 결과, 그들은 역사와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가 되어 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실패한 것일까. 역사라는 이름 속에서 영원히 지워진 존재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질곡 많았던 우리 역사의 진정한 승자이기 때문이고, 그들의 사상이 결국 동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옛사람들이 자연을 섬기고 모든 사물을 섬겼다면, 수운이나 해월 그리고 1894 갑오년 이 땅의 민중들이 그토록 목숨 걸고 전 생애를 바쳐 섬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기들 자신이었을까? 나라였을까? 아니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무엇!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섬기는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명예일까? 건강일까? 권력일까? 잘은 몰라도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 우리들은 길을 잃고 있고, 길을 잃은 우리들에게 머지않아 또 다른 길이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처나 예수 그리고 소크라테스나 공자, 최제우의 동학사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우리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그 섬김은 모심이다. 사람이 사람을 아니 온갖 사물을 한울님처럼 섬긴다면 어떻게 다툼이 일어나며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김지하 시인이 <두타산>이라는 시에서 갈파했던 것과 같이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 한다.’ 는 그 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목소리 듣고 싶고, 달려 가고 싶고, 그리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 그런 사물들이 많은 사회, 그런 세상이 우리가 꿈꾸는 대동 세상이 아닐까?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건강, 두 번째 좋은 것은 매력적인 아름다움, 세 번째는 남을 속이지 않고 모은 재산, 네 번 째는 친구들 사이에서 젊음을 유지하는 것,:
그리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면서 인생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건강하게 살며, 아름다움을 견지하고, 진실되고, 성실하게 살면서 모두가 행복한 사회, 그것이 바로 수운과 해월, 그리고 동학농민군들이 오매불망 꿈꾸었던 사회가 아닐까?
사람을 섬기고, 자연을 섬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섬기는 그 섬김과 모심을 통해서만 세상은 밝고 건강하게 존재할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상도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로부터 태동하여 최시형,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의 혁명을 거쳐서 민족사상인 증산 강일순, 보천교의 차경석 그리고 원불교의 박중빈으로 이어지면서 조선이라는 나라에 들불처럼 번져간 사상을 찾아서 크고도 높은 옛 사람들의 생애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오래고 오랜 세월 수많은 동학 답사길에 깨달은 화두는 ‘깨달음’이었고 또한 ‘섬김’과 ‘모심’이었다.
(동학사상의 원형을 찾아서, 동학은 경북이다.)의 마무리 글에서
2021년 1월 21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