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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봉인의 심판2
요한계시록 6:9-17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9-17 /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언에 충실한 탓으로 순교 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0) 그들은 모두 큰소리로 주님을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 거룩하시고 진실하시며 온 세상을 맡아 다스리시는 주님, 땅위에 있는 자들이 저희들에게 행한 악한 일을 심판하시기를 왜 그렇게 더디 하십니까? 저희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복수를 언제나 해주시렵니까?' 11) 그러자 그들에게 예복인 흰 두루마기가 한 벌씩 주어졌으며 이런 말이 그들에게 들려 왔습니다. '아직도 땅 위에 사는 너희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 순교를 당하여 너희들의 대열에 들어올 사람들이 있으니 그때까지 좀 더 쉬며 기다리라.' 12) 어린양이 여섯째 봉인을 떼셨을 때 나는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태양은 검은 천처럼 시커멓게 변하고 달은 핏빛으로 붉어졌습니다. 13) 그리고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마치 설익은 무화과 열매가 큰 바람에 흔들려 떨어질 때처럼 산산이 땅으로 흩어졌습니다. 14)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던 하늘은 두루마리를 말아서 걷어치운 것처럼 사라지고 산과 섬들이 다 흔들려 제자리에 놓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5) 그러자 땅 위의 모든 왕과 세상의 지도자들, 부자와 군대의 고위장성들,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들, 노예와 자유인들이 모두 뒤범벅이 되어 동굴과 산의 바위 밑에 몸을 숨긴 채 16) 산을 향하여 ㄱ)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에서 우리를 가리워 다오.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숨겨다오. (ㄱ. 호 10:8) 17) 하나님과 어린 양의 큰 진노의 날이 왔구나. 그 진노에서 살아 남을 자가 누구란 말인가?'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본문에서 네 개의 인이 순서대로 떼어지며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일곱 인중에 하나를 떼시는데(1) 하나님의 심판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이어집니다. 어린 양이 봉인을 떼시면서 감춰져 있던 비밀이 온 천하에 드러납니다. 어린양에게 뗄 자격이 있는 것은 그분이 역사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셔서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이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한 세상이 겪게 될 마지막이 어떤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이 직접 보고, 들은 것으로 묘사하기에 실제적입니다. 하지만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지킬 이유가 됩니다.
네 개의 봉인(2-8) 흰 말을 탄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신학자들의 의견이 나누어지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할 때, 흰 말을 탄 자는 승리와 정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만족하지 못하는 정복욕으로부터 수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습니다. 두 번째 인이 떼지자 붉은 말이 나와 큰 전쟁이 일어나 화평은 사라지고 서로 죽입니다. 세 번째 인이 떼어지자 검은 말이 나와 큰 흉년과 기근이 일어나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들은 양식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비싼 값으로 구매해야 하는 고통을 겪습니다. 넷째 인이 떼어지자 청황색 말이 나오고 그 탄 자의 이름이 사망으로 지칭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뒤에 수많은 죽음이 따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정복, 전쟁, 흉년과 기근, 죽음이 점진적으로 원인과 결과처럼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 말을 타는 네 기수들은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죽이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적용 : 하나님의 비밀은 하나님이 은혜로 보여 주실(깨닫게 하실) 때 개인에게 전달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신앙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습니까?
11/16
심판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피하고 싶을 만큼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지킨 성도만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어 이기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9-11) 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악인들을 향해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시길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두 가지로 위로해 주십니다. 첫째,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는 것으로 그들의 정결함을 인정해 주시고, 쉼을 누리게 하십니다. 둘째, 심판의 때는 하나님이 결정하시지만, 그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보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과 하나님의 선을 위하여 죽임 당한 영혼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인내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날 악인들로부터 고난을 겪는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진노의 큰 날(12-17) 첫째부터 다섯째까지 인이 떼어질 때와는 다른 심판의 규모가 나옵니다. 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땅에서는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하늘에서는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어두워질 것입니다. 달은 온통 피 같이 붉어집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를 떨어뜨리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집니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들과 같이 심판의 대상자들은 두려움에 떱니다. 요한은 심판의 징조가 얼마나 충격적인지, 심판에 대해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현실감 있게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처럼 땅과 하늘에서 보이는 심판의 징조는 세상의 권력자들과 일반인들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 어린 양을 대면하는 것보다 죽음을 원할 만큼 심판의 징조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받을 이들이 심판을 피해 숨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만이 심판에서 가려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바위이시며 환난 날에 만나는 산성 같은 분이십니다.
적용 : 신앙 때문에 겪는 고난이 신앙이 없어서 겪게 될 심판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삶이 지혜로운 삶일까요? 당신의 믿음은 어떤 삶을 살기를 요구하고 있습니까?
기도 중 담배를 피워도 되냐는 질문엔 “안된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담배를 피우는 중에도 기도할 수 있냐는 질문에 “언제든 기도할 수 있다”는 답이 있었습니다. 같은 상황도 어떤 마음과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겉모습보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의 동기와 태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세상의 시선보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을 지닌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질문이 바뀌면 답도 바뀝니다. 우리의 기도와 삶도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도 내 안의 프레임을 점검하며,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 설 교 >
호크마 주석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에 대한 묘사이다(1:9). 공관복음에서는 복음 증거로 인한 순교가 여로 모양으로 예고되었으나(마24:9,10; 막13:9-13; 눅21:12-18) 본문에서는 이미 성취되고 있다. 그 순교자들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13:15),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18:24)로서 일반적으로 역사상에 있는 순교 사건들 가운데 죽임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한 자들을 가리킴과 동시에 종말에 핍박을 당해서 죽게 될 순교자들을 암시한다. 한편 '영혼들'은 순교당한 '목숨'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그들이 비록 순교를 당했으나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여진 것을 의미한다(Johnson).
제단 아래 있어 - '제단'에 대하여는 몇몇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순수한 상징으로 해석한다(Alford). (2)혹자는 하늘에 있는 제단으로 해석한다(Jeremias, Delitzsach). 이 중에서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를 통해 하늘의 제단이 여러번 언급될 뿐 아니라(8:3,5; 9:13; 11:1; 14:18; 16:7) 땅의 제단은 하늘 제단의 모형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출25:9; 민8:4; 히9:23). 한편 '제단 아래 있어'라는 표현은 순교자들의 순교가 하나님께 드린 산 제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이런한 사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적대한 자들의 흉칙한 박해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종말에 교회가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갖도록 한다(Ladd, Morris).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 '거룩하고 참되신'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순교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시사한다(Morris). 한편 '대주재여'의 헬라어 '호 데스포테스'(* )는 원래 종이 주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용어로 절재적 권력과 소유권을 가진 자에 대한 호칭이다(딤전6:2; 딛2:9). 이러한 호칭은 신약성경에서 하나님과(눅2:29; 헹4:24) 그리스도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벧후2:1; 유1:4). 본문에 사용된 이 칭호는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하나님을 지칭한다(Johnson, Morris, Robertson).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다(3:10; 11:10; 요8:23, Burrows, Morris, Mounce). 한편 '신원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에크디케이스'(* )는 구약 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형벌과 보복과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개인적인 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보복의 권한은 인간에게 있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롬12:19). 본문에 나타난 신원 역시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에 대한 보응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심 사상 가운데 하나이다(눅23:34; 롬12:19).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 '흰 두루마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톨레 류케'(* )는 '비품을 마련하다'를 의미하는 헬라어 '스텔로'(* )에서 파생된 표현으로 '옷들을 차려 입는 것'을 의미한다(3:4; 4:4; 7:9,13; 19:14; 막12:38).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에게 흰 두르마기를 주시는 것은 영생과 승리를 보장하심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Walvoord).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 '잠시 동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티 크로논 미크론'(* )은 시간의 연속을 나타내는 목적격으로 동일한 사건의 연장 속에서의 휴식을 의미한다. 이는 복수를 신원하는 순교자들의 울부짖음으로부터의 휴식을 나타낸다(14:13). 한편 '쉬되'에 대하여 혹자들은 '잠시 동안'과 연결지어 '탄원하기를 쉬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며(Bengel, Bousset), 혹자는 천상계의 축복 가운데 쉼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Alford, Morris, Swtet, Plummer).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천상에서의 '잠시 동안'이란 시간의 개념이 인간들에게는 영원과 같은 긴 시간이 될 수 있으며(20:3), 의로운 자들의 쉼은 자연히 천상에서의 축복이기 때문이다(14:13, Johnson). 한편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 모두가 동일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순교한 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Mounce, Alford). (2)혹자는 순교치 않은 일반 성도들과 순교한 신자들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한 듯하다.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차기까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사본에 따라 차이가 있어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어떤 사본에는 '플레로도신'(* , '완성되었다')으로 되어 있어 미래부정을 의미하는 부정 과거 가정법으로 해석된다(* , P). 이는 '가득차게 될 것'이란 의미로 '가득 채워질 때까지', 혹은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기까지'를 의미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본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교자들의 수가 채워져야 종말이 온다는 숫적 개념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교회가 더 많은 순교를 각오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시사한다(7:14; 롬11:25, Ladd. Johnson).
=====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자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자연의 질서가 대혼란에 빠지며 마지막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준다. '큰 지진'에 대한 경고는 종말의 현상 중 하나로 이미 예시되었고(8:5; 11:13,19; 16:18; 겔38:19; 욜2:10; 암8:8; 학2:6; 마24:7,8; 막13:8, Charles) 하나님의 형벌로도 나타난다(사2:19). 한편 여섯째 인을 뗀 이후의 자연의 혼란에 대한 해석의 방법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이들을 마24장과 관련하여 사실적으로 해석한다(Barclay, Wa- lvoord). (2)혹자는 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Clarke,Ironside,Mounce,Marshall). 이 두 견해 모두 타당성이 있다.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 '총담같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 샅코스 트리키노스'(* )에서 '샅코스'(* )는 '사코스'(* )에서 파생된 단어로 '물건을 담는 자루' 혹은 '머리에 쓰는 질 나쁜 옷감'을 의미한다. 이는 검정색 염소 털로 만든 옷으로 슬픔을 표시하는데 사용되곤 하였다(사50:3, Mounce). 해가 자신의 빛을 상실하고 슬픔을 상징하는 총담같이 검게 되었다는 것과 달이 핏빛으로 변하는 것은 종말의 현상을 묵시적으로 나타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을 우주적 대이변의 심판을 시사한다(사13:10; 렘4:23; 겔32:7,8; 욜2:31; 3:15; 람8:9; 미3:6; 마24:29).
=====6: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며 - 본문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겨울 바람에 흔들려 떨어지는 무화과로 비유된다. '선 과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스 올륀두스 아우테스'(* )는 잎이 나오기 전에 겨울에 맺히는 푸른 무화과로 약한 바람에도 모두 떨어지는 설익은 무화과를 가리킨다. 선 과실과 같이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종말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구약 성경에서도 비슷한 예가 제시되고 있다(사34:4; 나3:12, I Enoch 2:1; 41:5; IV Ezra 4:15).
=====6: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 '떠나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페코리스데'(* )는 '분리하다'는 의미를 지닌 '아포코리조'(* )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말지 않은 두루마리 종이를 반으로 자르면 한쪽으로 말리는 현상을 나타낸다(사34:4). 이는 종말에 있을 하늘의 대변동에 대한 비유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심판의 엄중성을 나타낸다.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 본무은 전혀 움직임이 없던 산과 섬들도 지각의 변동으로 요동하는 현상을 묘사한다(렘4:24; 나1:5). 이러한 종말의 양상은 상징적이든 축자적이든 큰 재앙과 고통을 나타낸다(Mounce, Johnson).
=====6:15
본절은 종말의 대변동을 맞아 각 계층의 사람들이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일곱 계급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은 예외없이 심판의 대상이 됨을 시사한다(Mounce, Johnson).
땅의 임금들과 - '땅의'라는 언급은 인간들이 처한 모습이 불신앙 상태였음을 묘사해 준다(Jub. 23:19; II Baruch 70:3,4,6; I Enich 62:3). 한편 '임금들'은 궁극적으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왕족들과 장군들과 - '왕족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메기스타네스'(* )는 최상급을 나타내는 헬라어 '메기스토스'(* , '가장 큰')에서 파생된 단어로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소유한 자를 가리킨다(18:23; 막6:21, Swete, Mounce). 한편 '장군들'의 헬라어 '호이 킬리아르코이'(* )는 보병 약 600명을 지휘하는 '군단의 지휘관'으로(막6:21; 19:18) 군대의 권력을 가진 자들을 지칭한다.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 본문은 앞서 언급된 권력을 지닌 지배층과는 달리 자기 만족적이며,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유력한 계층을 가리킨다(13:16; 19:18).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 '각 종과 자주자'는 사회적으로 자신의 인권이나 자유가 없는 계층과 대개 상업에 종사하는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 설사 이들이 지배 계급이나 경제적 부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의 종이라면 천지가 대변동하는 종말에는 동일하게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한편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는 종말에 나타날 고통과 심판을 피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심판의 괴로움을 암시한다(사2:10,19,21; 호10:8; 눅23:30; 히11:38).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우리를 가리우라 - '이르되'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구신'(* )은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극적이며 생동감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종말에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산과 바위에게 비참한 재앙을 가리워 달라고 하는 요구는 종말의 재앙이 얼마나 참혹한가를 시사해 준다(호10:8, Joh- nson, Mounce). 혹자는 본절이 수신자들을 경책하기 위한 요한의 삽입구라고 주장하나(Caird)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사실적이며(롬1:18), 동시에 종말적인 사건임을 볼 때 인정할 수 없다. 한편 '우리 위에 떨어져'로 번역된 헬라어 '페세테 에프 헤마스'(* )는 부정과거 명령문으로 '지금 당장 떨어져라'는 긴급함을 나타낸다. 이는 10절의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신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무생물들에게 호소하는 비참함을 보여준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는 심판의 날에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창3:8, Swete). 한편 '어린양의 진노'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본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된다. 어린양이 상징하는 온유와 진노가 역설적으로 결합되었다 하여 혹자는 '하나님의 진노'(11:18; 14:10,19; 15:7; 16:1,19; 19:15)를 대신해서 후대에 삽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Weiss, Spitta).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시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 어린양은 희생과 온유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더 깊고 영구적(永久的)인 분노를 나타내는 '오르게스'(* )와 연결시킨 것은 철저한 악의 종말을 극명하게 나타낸다(5:5; 마25:41).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 '그들의 진노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오르게스 아우톤'(* )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경 여러 곳에서 동격으로 언급된다(22:3,13; 살전3:11; 살후2:16). 이런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는 역사적 사실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심판으로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악에 대한 보응이다(Mounce). 한편 '큰 날이'의 헬라어 '헤 헤메라 헤 메갈레'(* )는 문자적으로 '그 큰 그날'이란 의미로 '큰'이 강조된 표현이다. 이는 악의 무리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공포로 인해서 외쳐진 용어로(Beckwith)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날임을 시사함과 동시에(욜2:11; 습1:14; 유1;6) 하나님의 진노의 범위가 전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Mounce, Johnson).
누가 능히 서리요 - 본문은 심판으로 인한 멸망이 너무 엄청나므로 그 어떤 죄인도 피할 길 없이 무력함을 나타낸다(나1:6; 말3:2).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 티스 뒤나타이 스타데나이'(* )는 부정과거 수동태 부정사 구문으로 수사의문문이다. 이는 본문을 말한 주체가 15절에 언급된 모든 계층을 대표한 인간들임을 나타낸다(Swete). 이것은 그들이 피할 길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여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음을 시사한다.
순교자들의 외침
계 6장 9~11절 / 김철한목사(오목천교회)
순교라는 말을 아는가? 영어로 martyr 인데, 그 어원은 헬라어 말투스에서 왔다. 행22:1~8에 ‘증인이 되리라.’는 말이 martyr란 말이다. 순교란 자신의 믿는 바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인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야 순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라도 염창교회, 야월리교회를 다녀오면서 돌멩이를 목에 걸고 뒷짐지어 묶인 채 물에 밀어넣어 순교를 당한 100여 명 이상의 순교 이야기를 목격했다. 제암리교회는 일제 시대에 저질러진 사건이라면 이 순교 사건은 6.25 당시 이루어진 사건이다. 한국 땅에 순교자가 이렇게 되는 줄 몰랐을 것이다. 감신대 출판부에서 발행한 「6.25와 감리교회 순교자」를 보면 136명의 사람들을 소개해 준다. 우리는 이 땅에 재앙이 왜 일어나는가 하는 의문도 갖지만 하나님이 전능하신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이렇게 피 흘리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계6:9 이하를 보면 순교자가 더 많아질 수 있다. 아직도 순교자의 수가 차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 6:9은 다섯 째 인을 떼실 대에 본 이야기이다. 요한이 본 것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음을 보았다. 또 “큰 소리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는 것이었다. 요한이 본 장면은 네 가지 기마자들의 연속되는 이야기와 전혀 다른 장면이다. 계6:12에 나오는 여섯 째 인을 떼실 대에 일어나는 재앙의 이야기하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순교자의 이야기를 빼면 첫째 인부터 여섯 째 인까지는 연속성 있는 재앙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전혀 다른 이야기가 여기 다섯 째 인을 뗄 때 나타나는가? 그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같으나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니고 재앙의 날이 될 때 순교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검과 흉년, 사망과 땅의 짐승, 즉 전쟁과 기근, 사망과 적 그리스도의 권세가 죽임으로써 나타날 때, 신앙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 몇 가지 질문이 생긴다.
1. 순교자들은 왜 죽게 되었는가? (계6:9)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생명을 주는 말씀이고 소망을 주는 말씀이다. 그리고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때문에 핍박과 억울함을 당하고 순교하는 것이다.
마24:9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미움이 증오가 되어 목숨을 빼앗는데 까지 이른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도 계1:9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순교자의 영혼을 보고 있는 요한 자신도 똑같은 이유로 밧모 섬에 귀향 가서 갇힌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박해가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산다고 돌멩이가 날아오는 것도 이상히 여겨서는 안된다. 지금 이 세상은 주님께 속하지 않았다. 사탄에 속한 세상은 하나님을 모독한다.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를 그냥 두고자 하겠는가? 선한 일을 해놓고도 미움을 받는다. 사람 살리는 일을 해놓고도 미움을 받는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목숨을 버린 순교자가 되지 못했어도 신앙이란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을 받고 빼앗기고 홀대 받고 손해를 본다. 우리는 아무나 순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생활의 순교를 받아들여야 한다.
고전 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외친 바울처럼 말씀 때문에, 예수님 증거 때문에 양보하고 왕따가 되는 순교를 반복해야 한다. 예수쟁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우리가 생활의 순교를 웃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상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의 천국을 믿으라.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천국을 안내하는 것이다. 하늘을 믿고 하늘의 상을 믿어야 웃을 수 있다. 빼앗기면서도 웃을 수 있고 순교를 영광 중의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순교자의 믿음이 생긴다. “날마다 죽노라.” 이것이 구호가 아니고 우리의 영성이어야 한다.
2. 순교 당한 자들이 어디에 있는가? (계6:9下)
계6:9下을 보니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 이는 순교자들의 영혼이 하늘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 보좌 아래 있다는 위치적 장소를 특별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사라졌다. 로마의 티도 장군에 의해 주후 70년에 불타버렸다. 주후 90~100년경에 쓰여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제단은 지상 제단이 아니라 사실 땅에 있는 성전에 관계되는 것들은 모두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다. (히8:5) 제단에 드려지는 것은 제물인데 하늘의 제단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받으신 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엔 주 예수님이 제물로 드려졌다. 그리고 주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서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다. (계5:6) 그런데 제단 아래 순교 당한 영혼이 있으니 그 영혼은 얼마나 빛나는 영혼인가? 그리스도 바로 곁, 최고의 상좌에 위치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볼 때 순교자의 영혼은 거룩으로 빛난다. 순교자의 영혼은 귀하고 귀하다.
행7:54~60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을 보라. 스데반은 하늘이 열린 것을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 예수님이 스데반의 순교를 일어서서 보고 계신다. 그 영광의 순교를 하는 스데반은 이 열린 하늘의 장면을 보면서 잠들었다. 돌로 맞고 옷을 빼앗겼으나 스데반은 오히려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용서의 기도를 하고 잠이 든다. 순교의 고통이 평온한 잠이 되었다. 순교자의 위치는 특별하다. 제단 아래 머물러 있다. 얼마나 큰 영광인가? 순교 신앙 없음이 부끄럽다. 죽는 것을 두려워함이 부끄럽다.
3. 순교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계6:10)
계6: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순교자들은 제단 아래서 외치고 있다. “신원하여 주소서”
신원이란 무엇인가? 가씀에 맺힌 한이다. 자신들을 죽이고 박해한 이들을 심판하는 것이 어느 때인가? 왜 신원하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내가 고통 받고 흘린 피의 희생을 갚아 달라는 절규인 것 같다. 마치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의 되갚음의 웅변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보복 감정이라기보다 정의가 세워지지 않은 것, 이대로 죽인 자는 활보하고 죽임 당한 자의 신원은 묻히고 만다면 하나님의 의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순교자들은 핏소리를 내고 있으나 공의가 세워지기를 절규하고 있다.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신다. 왜 공의를 세우지 않는가? 공의를 세워달라는 부르짖음이다.
4. 순교자들이 받은 응답은 무엇인가? (계6:11)
① 하나님이 위로를 주셨다.
계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유대인에게 흰 옷의 의미는 축복과 순결이다.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 검은 옷은 하층민 남자와 여자에게 입혔다. 따라서 흰 옷, 흰 두루마리는 순교자의 위치가 높다는 것이다. 순교자는 축복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절규하는 순교자에게 하나님은 위로로 답하신다.
② 잠시 쉬도록 하였다.
계6:11中 “잠시 동안 쉬되” 하였으니 이 쉬는 기간은 부활과 재림 때까지를 말한다. 재림할 때 왕노릇 한다. 그 왕노릇 하는 이야기가 계20:4에 나온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 당한 자들의 영혼들, 즉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 왕노릇 할 때까지 쉬고 신원을 풀어주는 일은 멈춰있는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의 수,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쉬어야 한다. 순교자의 수, 그것은 하나님이 아시는 수다. 아직도 순교의 피를 흘릴 일이 있다는 것은 선교의 무장을 다시 하게 한다.
아!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인! 순교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더 많아야 한다. 우리는 부끄럽다. 그리스도인다운 용사의 모습이 없었다. 뭐 한 가지라도 잃어버릴까봐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는 것 때문에 명예를 잃어버리고 반장 선거에 떨어지고 취직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나를 위해 죽음을 향해 걸어가신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워지는 것이 영광이다. 마10:39에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였다. 하늘 나라의 법칙은 잃음으로써 얻는 것이다. 잃음으로써 얻는 것, 돈을 잃음으로 천국을 얻는다. 미모를 잃음으로써 믿음을 얻는다. 건강을 잃음으로써 생명의 소중함을 얻는다. 죽음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는다. 잃는다고 망하는 것이 아니다.
순교 신앙을 갖자. 초대교회는 280년간 무서운 박해의 시대를 겪었다. 수많은 순교자가 배출되었다. 그 시련이 지나고 325년에 사도신경을 제정한 니케야 회의가 열렸다. 이 때 대표로 참석한 318명 가운데 306명은 손발이 잘려나갔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불구자였다. 그들은 목숨을 바친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은 아니지만 모진 시련과 고통을 견디며 믿음을 지켜낸 살아있는 순교자들이었다.
이 시대 순교 신앙이 요구된다. 헌금, 전도, 기도도 순교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말의 때, 재앙의 때에 더욱 유혹과 미혹을 이겨내는 믿음의 용사들이 요구된다. 나를 무장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이다. 장래의 호기심 때문에 오늘 견고하게 자기를 세우지 않는 것은 무절제이다. 장차 될 일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순교자의 수를 채우기까지’라는 종말의 지연 이유도 알아차려야 한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계 6장 9~11절 / 박상훈목사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요한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하늘에서 요한은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요한은 예수님이 그 두루마리를 봉하고 있는 일곱 인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셨습니다. 그와 함께 보좌 가까이에 있는 네 생물 중 첫째 생물이 큰 음성으로 “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흰 말이 나왔습니다. 흰 말을 탄 자는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으며,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했습니다.
이어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둘째 인을 떼셨습니다. 그와 함께 둘째 생물이 “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붉은 말이 나왔습니다. 붉은 말을 탄 자는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셋째 인을 떼셨습니다. 셋째 생물이 “오라”고 외치자, 검은 말이 나왔습니다. 검은 말을 탄 자는 손에 저울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예수님이 넷째 인을 떼셨습니다. 넷째 생물의 “오라”고 하는 외침에 청황색 말이 나왔습니다.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며 음부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흰 말과 그 탄 자는 미혹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거짓 화평을 뜻합니다. 붉은 말과 그 탄 자는 전쟁을 상징합니다. 검은 말과 그 탄 자는 기근을 상징합니다.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는 전쟁과 기근 그리고 그 뒤에 나타나는 지진과 전염병에 의한 사망을 뜻합니다.
마24:8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러니까 미혹하는 자들이 내세우는 거짓 화평과 전쟁과 기근과 지진 이들 네 가지는 재난의 시작일 뿐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이 말씀한 대로, 마지막 한 이레의 전반부 삼년 반 동안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이어서 마24:9 말씀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이와 같이 세상 끝에 있을 여러 징조들 가운데, 다섯 번째로 일어날 징조는 믿는 이들이 받을 박해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의 광경입니다. 그 내용은 박해에 관한 말씀입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박해를 받더라도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요한은 하늘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계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셨습니다. 그 때의 광경은 예수님이 첫째 인부터 넷째 인을 떼실 때와는 전혀 양상이 달랐습니다. 더 이상 네 생물들은 나서지를 않았습니다. 또한 심판을 상징하던 어떤 말과 그 위에 탄 자도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셨을 때에, 요한은 하늘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아직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몸이 부활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육체가 없는 영혼으로 하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죽임을 당한 까닭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았습니다.
계1:9 말씀입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았습니다.
계20:4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성도들은 예수님을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요한은 하늘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한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았습니다. 계1:9과 계20:4을 통해서 보듯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그들이 가진 증거”란 그들이 예수님을 증언한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시면,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둘째 인을 떼시면, 온 땅에 전쟁이 발발합니다. 예수님이 셋째 인을 떼시면, 큰 기근이 발생합니다. 예수님이 넷째 인을 떼시면, 지진 등으로 인해 세계 인구의 사분의 일이 죽습니다.
성도들은 이 모든 징조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임을 밝히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도리어 성도들을 박해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도들은 불신자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심판을, 또한 예수님을 증언함으로는 구원을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이 되면,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거룩한 곳에 세울 것입니다. 그러면서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도들을 모두 죽이고자 할 것입니다.
그 때 많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한은 하늘에 많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있는 것을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의하면, 요한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8:3 말씀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던 제단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옛날 예루살렘 성전에는 두 개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성소 밖에는 번제단이 있었고, 성소 안에는 향단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때의 제단은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지성소 가까이에 있는 향단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계5:8 말씀처럼, 금 대접에 가득히 담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때의 제단은 향단을 가리킨다고 봄이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은 너무도 귀합니다. 그 때문에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온갖 희생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힘써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자도 역시 죽임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들이 걸어가야 할 믿음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 때문에 죽임을 당한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계6: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우리말 성경이 “부르다”로 번역한 동사가 본시 뜻하는 바는 “외치다, 부르짖다”입니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듯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도 하늘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했습니다.
이어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먼저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하나님을 가리켜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라고 불렀습니다.
“대주재”라는 칭호는 흔히 사용되는 “주”라는 칭호보다는 훨씬 더 강한 표현입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대주재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대주재이시기 때문에, 모든 역사를 홀로 주관하십니다.
아울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참되심을 밝혔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악을 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과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참고로 계3:7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 자신을 거룩하고 진실하신 이로 나타내셨습니다. 진실함과 참되심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거룩하시고 참되신 분이시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밝히 드러냅니다.
아무튼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의도는 이러합니다. “대주재이신 하나님에게는 심판하실 권세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우리를 죽인 자들 곧 악인들을 심판하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참되시므로, 악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지키셔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후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그들의 간구를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이 말씀을 보다 알기 쉽게 번역하면 이와 같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언제까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피를 갚아주지 않으시렵니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이시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피를 갚아주실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때를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계13:12 말씀과 계17:2 말씀에서 보듯이, 요한계시록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불신자들, 곧 불경건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들에 의해서 성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야 마땅했습니다.
행7:59∼60 말씀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할 때의 광경이 나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주께서 유대인들을 심판하시고 자기의 피를 갚아달라고 간구하지 아니했습니다. 도리어 스데반은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러면 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스데반처럼 간구하지 않았을까요? 까닭이 있었습니다. 스데반은 은혜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셨을 때는, 이미 은혜의 시대가 끝이 나고 하나님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때였습니다.
더군다나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간구한 바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간구한 바는 사탄의 멸망과 사탄이 주장하는 죄의 종식이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주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피를 갚아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참되심이 밝히 드러나면서,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이 돌려질 것입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매우 클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히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며 그들의 피를 갚아주실 것입니다.
살후1:6∼7 말씀입니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십니다.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환난을 받는 우리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한 롬12:19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기를 바랍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원수를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늘 기도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죽임을 당한 자들의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계6:11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큰 소리로 거룩하시고 참되신 대주재 곧 하나님께 두 가지를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해주실 것과 또한 그들의 피를 갚아주실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은 그들의 간구를 두 가지로 응답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습니다. 이미 죽임을 당한 영혼들도 많았지만, 그 수는 갈수록 많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임을 당한 자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은 각각 그 영혼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습니다.
두루마기는 몸에 걸쳐 입는 겉옷입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에게는 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는 말씀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게 여기시며,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의로운 일을 한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들의 불의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께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해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하나님은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죽인 불의한 자들, 곧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께 그들의 피를 갚아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들의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잠시 동안입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피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들은 부르짖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피를 곧 갚아 주실 것이니까, 그들은 영화로운 천국에서 안식하며 영광을 누리면 됩니다.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시면서, 때는 마지막 한 이레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부가 되면,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 곧 땅에 거하는 자들은 더 많은 성도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기껏 삼년 반입니다.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부 삼년 반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정하신 순교자들의 수가 차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동무 종들과 형제들을 굳이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종들입니다. 사람 편에서 보면,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들입니다.
아무튼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간구는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시면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큰 환난이 임했습니다. 곧 이어 일곱째 인이 떼이고,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심판이 연속적으로 신속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심판이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부 곧 삼년 반 안에 다 일어납니다. 그 동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순교자의 수도 차게 됩니다. 그 때 자연히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피는 갚음을 받게 됩니다.
계19:2 말씀입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던 간구가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응답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의 광경을 세 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요한은 하늘에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을 보았습니다. 둘째로, 죽임을 당한 영혼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죽임을 당한 자들의 간구에 응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삽니다. 아직은 은혜의 때이며, 구원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恨) 맺힌 성도의 기도
계 6장 9~11절 / 손상률목사
가슴에 한을 품고도 이를 풀지 못할 때 병이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한 맺힌 사연을 안고 죽으면 원혼(冤魂)이 되어 구천(九天)을 떠돈다는 미신(迷信)적인 말을 하곤 합니다. 개인적인 원한도 문제이지만 한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서 한꺼번에 결집될 경우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고 맙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유사한 증후군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인데도 어떤 이슈나 빌미가 생기게 되면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며 군중의 힘으로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먼저 개인이나 집단에 한을 가지게 해서는 안 되고, 또 그런 일이 발생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지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됩니다. 성경에도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그 원통함을 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 한이 맺히는 이유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사로운 원한도 있지만 사회적 통념이나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불가피하게 당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1) 억울함을 당했을 때입니다.
세상에 억울함을 당하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힘이 없는 자가 힘 있는 자에게 억눌리고 권리를 유린당하는 경우는 어느 사회에나 흔하게 있는 일입니다. 권력자가 전횡을 일삼으며 민초들에게 무자비한 박해를 가하게 될 때, 거기 희생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억울함과 분노로 한을 품게 됩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못다 푼 한은 죽어서까지 원한이 된다고 말합니다. 본문 말씀에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자기들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부르짖는 기도가 있습니다.
2) 원통한 일을 당했을 경우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당해야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가슴에 한으로 남게 됩니다.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잃고 혼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습니다. 자식의 죽음이나 불행을 겪은 사람도 그 안타까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이런 일을 겪는 동안 인간의 무력함과 한계를 실감하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와 맺힌 한이 병이 되어 남게 됩니다.
3) 꿈이 좌절되거나 믿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이를 이루고자 거기에 전력투구 하게 됩니다. 그러다 희망이 무산될 때 좌절과 낙망을 하게 되며 그것이 한으로 남게 됩니다. 또 가족 간에 갈등과 반목이 빚어지거나 태산같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을 때도 그 충격의 여파로 많은 후유증을 앓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 신체적인 장애까지 앓곤 합니다.
2. 한을 푸는 방법
이교 사회에서는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거나 원혼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진혼(鎭魂)굿을 하는 등 무속(巫俗)적인 방법을 동원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에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한(解恨)을 시도하였습니다.
1)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전과정을 보면 어디에서나 원한과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져 왔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세계에서 칼잡이들이 벌이는 활극들은 대부분 한 맺힌 복수의 장면을 연출하였고, 중국의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복수를 위하여 태어나서 원수 갚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신화는 죽은 다음에 원귀(寃鬼)가 되어 생전의 한을 푼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2) 체념하고 도피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타오르는 분노나 원통한 사연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를 쏟아 내거나 풀지 못하면 병이 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면서 자신을 학대하기에 이릅니다. 옛날에는 결혼하자마자 소박을 맞거나 청상과부가 되는 경우, 여인의 팔자 탓을 하면서 소복을 입고 수절을 해야 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흐트러질 경우 스스로 목을 매거나 은장도로 자결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명망 있는 가문이 자랑으로 여기는 홍살문의 내역도 따지고 보면 여인의 한을 미화시키는 잘못된 풍습의 유적들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살 증후군이 만연하는 것도 체념과 도피의 현상일 것입니다.
3) 예술이나 작품으로 미화시킵니다.
비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불행과 한을 발판으로 하여 예술과 문학작품으로 발전시킨 예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마다 특정인의 한 맺힌 설화나 전설을 형상화하여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기도 합니다. 90년대 초,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대종상 6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대단한 흥행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소리꾼 주인공은 딸의 멀쩡한 눈을 실명시키고 그로 하여금 평생 동안 앞을 못 보는 장님의 한을 소리에 담아 최고의 경지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비록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것은 매우 비인간적이고 현실성이 없는 내용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이를 이용하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
3. 한에 대한 성경적 교훈
성경에는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생래적으로 기독교인은 의를 추구하다가 핍박을 당하거나 죄가 없어도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마 5:10-12). 그렇지만 하나님 백성들은 이를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신앙적인 방법으로 다스려야 됩니다.
1) 보복(報復)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중 대제사장이 보낸 하속들에게 잡혀갔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내려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6:52). 보복은 다른 보복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를 죽이려고 날뛰는 사울왕을 목전에 두고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직접 보복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보복하지 아니해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무엘상 26:10에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 죽을 날이 이르거나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재판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여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원한을 가진 사람이 밤낮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눅 18:7-9).
2)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의 핵심인 무한한 박애(博愛)사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에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마 5:43-44). 로마서 12:20-21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은 요셉입니다. 그는 형들에 의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감옥 생활을 하였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보복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총리가 되었을 때, 자기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형들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해 주었습니다(창 50:21).
3)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에 나온 여인은 다섯 번이나 남의 남자를 가로챈 사람입니다. 그 여인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그대로 안고 있으면서 오직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순식간에 모든 한이 다 풀어졌습니다(요 4:25-26). 유대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나왔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빙자하여 모두가 돌로 여인을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모인 사람들은 하나, 둘 돌을 내려놓고 자리를 떠났습니다(요 8:1-9). 그들도 그 여인이상으로 한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애꿎은 여인 한 사람을 돌로 친다고 그 한이 풀릴 것은 아닙니다.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돌을 던지는 악순환만 거듭되었을 것입니다. 모압으로 이사 갔던 엘리멜렉의 가정이 몰락한 후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은 한 많은 인간의 표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 묘사되는 보아스를 만남으로서 축복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룻 4:13-22). 이것이 기독교 복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알고 나서 인생관이 새로워 졌습니다. 그것은 최상의 가치인 그리스도를 소유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도 그 마음에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빌 3:5-9).
수가 차기까지 쉬어라
계 6장 9~11절 / 백장흠목사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나라를 위하여 살았으면“애국자”로 예수님을 위하여 살았으면“순교자”로 부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다섯째 인을 떼자 ‘순교자’가 등장을 합니다. 이는 곧 마지막 시기에 환란이 오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순교를 해야 함을 예언해 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잘 믿으려면 이 같이 순교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세라는 말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 하신 후 부터 다시 오시는 재림의 시간까지를 말세라고 합니다. 말세에도 초기, 중기, 말기 말세로 나뉘는데 오늘날은 말기 말세라고 합니다.
1. 말세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에게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순교자의 정신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의 신앙고백은 곧‘나는 예수를 믿으면서 죽어도 좋습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이런 순교자의 정신으로 주님을 고백하고 살아가면 주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2) 순교자의 피가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제단의 피는 놀라운 역사를 가져옵니다. 피는 생명이며 희생입니다. 그러므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순교자의 피로 부흥하였습니다.
3) 사명을 위하여 순교할 각오를 하라는 교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인가요? 죽음을 각오한 사람입니다. 예수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우리는 무엇을 각오하고 있는가요? 사명을 위하여 목숨도 걸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순교를 당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국가에서 제일 귀한 사람은 부와 명예, 권력이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들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복된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2) 복음을 증거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순교자란 교회 다니다가 죽은 사람이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와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사람입니다. 지금은 천국 가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인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 충성하고 헌신할 때 받는 핍박이 하나님의 복과 위로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 순교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9절, 제단 아래에 있었다고 합니다. 제단은 기도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우리가 거해야 할 곳이 바로 제단이고 기도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 제단은 하나님을 섬기는 장소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제단을 지키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4. 순교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이 있습니다.
1) 흰 두루마리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자들에게 상으로 흰 두루마리를 주십니다. 성경에서는 면류관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흰두루마리는 승리자에게 주시는 옷이며 보상입니다. 곧 하늘 상급인 것입니다.
2) 쉬어라 안식입니다.
일한 사람에게 안식은 중요합니다.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 이들의 죽음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불신자의 죽음 영원한 고생으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순교자의 신앙을 따라 차원 높게 살아가는 말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죽기까지 말씀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의 지조, 영적인 지조를 지킵시다. 세상 것을 좀 더 멀리하고 죽기까지 순교정신으로 충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만 위하여 살다가 주님 앞에 순교정신으로 살아서 이후에 면류관 받는 복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어린 양의 진노
계 6장 12~17절 / 김철한목사
어린 양이 봉인된 일곱 인 중 첫째 인, 둘 째 인, 셋째 인, 넷째 인을 떼면서 시작되는 각종 재앙은 순교자의 신원이 나타나는 다섯째 인을 떼는 이야기로 전개되었다. 계6:12~17에서 요한은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을 본다. 사실 요한은 예수님을 인을 뗄 때마다 그 장면을 다 보고 들었다. 계6:3에서만 “내가 들으니”로 되어 있고 계6:2 “내가 보니”, 계6:5 “내가 보니”, 계6:8 “내가 보매”, 계6:9 “내가 보니”이다.
여기 “내가 본다”, ‘I Saw’에 해당되는 헬라어 에이돈(ε?δον)이란 단어는 헬라어 호라오(?ρ?ω)와 함께 선지자의 환상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영적인 지각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음성을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복음서, 사도행전까지 합하여 350회나 나온다. 에이돈의 ‘보다’라는 동사는 경험하다, 주목하다, 즉 확실히 듣고 보았다는 것이다. 신앙은 이만큼 듣는 것, 보는 것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 인을 떼실 때 나타난 재앙은 ‘그럴까, 그런 것이 있나보다’로 받아서는 안된다. ‘I Saw’ 즉 목격한 Fact인 것이다.
오늘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장면은 무엇인가? 천체계의 이상이다. 질서의 흔들림과 파괴다.
계 6:12~14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진다. 사람들은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허구, 지어낸 이야기로 들으려 한다. 그리고 많은 신령한 이들이 이것을 “영적으로”라는 말을 앞세워 영으로 풀려고 한다. 어떤 이단의 괴수는 “해가 검을 털로 깐 상복 같이 검어지고”를 ‘해’를 예수로 본다. 또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에서 ‘달’은 성령으로 본다.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지고”의 ‘별’은 주의 종으로 본다. 두루마리 말리는 것 같이 되는 하늘을 영적 질서라고 본다. 각 산과 섬은 교회의 은혜라고 본다.
그러면 무슨 뜻인가? 여섯 째 인을 떼는 재앙은 진리이신 예수가 그 빛을 잃어 쓸모없게 되는 것이고 성령도 무력화되고 주의 종들이 타락하고 영적 질서가 다 파괴되며 결국 교회가 은혜의 처소가 되지 못하고 교회의 구실을 못한다는 것으로 설명도 한다. 이 시대, 마지막 때에 참 목자가 없다. 이 요한계시록을 푸는 나만이 옳다고 가르친다. 이 말씀은 이런 식으로 영으로 푼다고 억지로 말할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 성도는 너무도 억지로 푸는 것에 감염되어 있다. 가령 예언적인 것, 시대적인 것, 날짜로 알아맞히는 것, 장소와 징조를 일치시키는 것, 성경을 해석해도 꼭 무당이 과거사를 맞추는 것에 관심을 가지듯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되는 것으로 수용하려 한다.
요한계시록은 이상과 같이 영을 앞세워 억지로 맞춰 놓은 것이 아니다.
여섯 번째 재앙 이야기는 이렇게 정리된다.
첫째, 사실 그대로 일어날 천체계의 흔들림이다. (계6:12~14)
이미 이사야는 사13:9~10에서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라고 하였다. 사34:4에서도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라고 하였다. 문자적으로 매달리는 해석이라고 거절해서는 안된다. 사실이다. 예수님도 종말과 재림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마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주님의 예언이 어찌 유치한 예언인가? 천체계의 흔들림이 어찌 ‘영적으로’라는 해석으로 피해만 가야 하는가?
여기 본문은 무섭고 심각한 것이다. 해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빛과 열, 광합성의 에너지원이다. 해가 검어져서 그 빛을 잃고 달도 피 같이 되면 지구 상에 중력과 인력에 문제가 생긴다. 태양에 흑점이 생기는 현상, 일식의 현상이 한순간에 지나가는데도 인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가? 태양이 검어지는 것은 혹성이 직렬이 될 때 일어난다. 태양계의 혹성 9개가 다 일치하게 되면 지구가 어느 정도 타원형이 된다. 이것은 과학적인 것이다. 그러면 지각이 약한 지역은 대지진이 일어나고 태양의 자전과 공전에 의해 산도 섬들도 옮겨지는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운석은 지구에 떨어질 때 공기의 마찰로 연소되지만 지구 반대편의 공기가 다른 반대편으로 끌려오는 현상에 의해 공기가 희박한 곳에는 운석들이 별들의 땅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실로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열매가 떨어지듯 하늘의 별이 떨어지는 엄청난 재앙은 천문학의 발전으로 인해 가능하고 또 가능한 미래의 가능성이다. 지각판만 조금 움직여도 쓰촨성 지진에 수 만명이 매몰되는데 일본이 일본의 멸망을 영화로 만든 것만 보아도 나라에서는 지각판의 변동을 인위적으로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만 되지 않는다.
여섯째 인을 떼는 날 나타나는 재앙은 천체계의 질서가 무너지는 환난이다. 사람이 만든 차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인사 사고를 내고 충돌하는데 수 억개의 은하로 이루어진 별들의 군단이 질서 속에서 부딪힘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손을 놓으면 어찌 끝장이 아니겠는가?
둘째, 천체 흔들림의 재앙은 온 인류에 대한 것이다. (계6:15)
계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사람들은 고개를 내밀만큼 담대할 수 없다. 모두 숨게 되는 재앙이다. 여기 사람들은 일곱 가지 지위를 지닌 사람들이다. 7은 언제나 완전수, 이 일곱 사람들의 유형은 각종 입장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를 망라한 것이다.
땅의 임금: 불신앙의 최고 권력자,
왕족: 상류층의 패밀리로 사는 자,
장군: 군대를 움직이고 전쟁을 지휘하는 자,
부자: 돈을 의지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
강한 자: 약자를 괴롭히고 업신여기는 자,
모든 종: 사람을 믿고 신념을 믿고 헛된 것을 믿고 거기에 노예가 되어 사는 자,
자유인: 아무 것도 속박될 것 없는 일반인
이들은 인류의 대표들로서 하나님 없이 자신의 육신대로 살고 하나님과 원수되는(롬8:7) 삶을 즐기던 자들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던(롬8:8) 자들이다. 재앙의 인이 떼어지면 너무도 무서워 오히려 산들과 바위에게 대하여 우리에게 떨어져 가리워 달라고 외치게 된다. 단숨에 묻혀서 죽는 것이 나을만큼 지진이 무섭고 산과 섬이 요동치는 것이 무섭기에, 천체계가 흔들리는 것이 무섭기에 “가리워다오 가리워다오” 외치게 된다.
예수님도 눅23:27 이하에서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푸른 나무인 택한 자도 가리워 달라고 하는데 마른 나무인 이방인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아! 두려움의 날이 다가온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천체계의 흔들림이 일어난다. 이 두려움을 통과할 수 있는가? 이 마지막 때를 이겨낼 수 있는가?
셋째, 이 여섯 번째 재앙 이야기는 어린 양의 진노다. (계6:16~17)
계6:16中下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어린 양의 진노라고 말한다. 어린 양이라면 온유를 상징한다. 부드럽고 공격의 뿔도 없는 약함을 뜻한다. 그런데 어린 양의 진노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죽는 날에도 소리조차 내지 않고 죽어가는 어린 양처럼 예수가 맞고 모욕을 당하고 묵묵히 죽음의 십자가로 나갔기에 진노라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허나 재림의 예수는 권세를 지니셨다. 다스리는 왕의 권세를 가지셨다. 유대 지파의 사자, 왕 중의 왕같은 사자의 모습이다. 먹이를 물고 찢어버리는 강한 사자의 모습이 다시 오실 주님의 이미지다. 어린 양만 생각하지 말라. 완악한 인간들에게 기회를 주고 경고를 주고 돌아올 회개의 때를 무한정 기다린 주님, 관용으로 시작하고 심판의 날에도 관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양은 진노하실 때 그 진노는 너무도 크시다. 계6:17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는 것처럼 아무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히10:29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우리는 사랑만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 어린 양의 진노가 얼마나 중할 것인지를 생각하자. 돌이켜 생각해야 한다. 무서운 진노, 죄와 불신, 불경건, 육신의 삶, 하나님을 기쁘게 못한 삶에 대해 다루실 진노의 두려움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분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 성경 곳곳에 진노, 분노라는 말이 쉴틈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앞으로 계속되는 일곱 번째 인을 뗄 때 나오는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다시 전개되는 일곱 대접 재앙을 보면서 재앙과 환난이 점점 점진적으로 커져가고 병행하여 나아가는 것을 보면서 진노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어리석은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가?
진노의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 얼마만큼 있는가?
진노하심이 옳은 것인가?
성경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다. 다만 오늘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두려움의 재앙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돌이켜 보자. 심판주이신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절규하고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자인가? 당당히 아멘 주 예수여 오서 오시옵소서 하고 말할 수 있는 자인가? 환난 가운데 연단을 받으며 이겨내는 자가 될지언정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말라. 불신앙으로 사는 것, 적당히 신앙 생활을 하며 세상 가치관대로 사는 것을 자랑치 말라. 세상 일에 마음과 정신을 다 빼앗기고 살다가 예수님이 오실 때 후회하지 말라. 지금 늦지 않았다.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더 중하고 더 긴급한 일은 없다. 오늘 일곱 인을 떼는 재앙에서는 1/4만 심판을 받으니(계6:8) 이 무서운 심판에서 3/4는 재앙을 보고 살아남는다. 다음의 재앙 심판이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따라나오지만 기회가 다한 것이 아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다.
오늘 이 시간, 이 쉬고 있는 안식의 시간도 정돈하는 기회다. 주님 앞에 무서움과 떨림으로 서지 않을 기회다. 기회를 잘못 낭비하지 말자. 요한계시록을 듣는 이 시간이 당신 영혼을 위한 기회이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계 6장 12~17절 / 박상훈목사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두루마리를 취하셨습니다. 그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일곱 인을 하나씩 차례대로 떼셨습니다. 그 때마다 두루마리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각양 심판이 그대로 땅에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실 때부터 넷째 인을 떼실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심판은 이른 바 재난의 시작입니다. 미혹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곧 이어 온 세상에 전쟁이 터집니다. 큰 기근이 있습니다. 또한 지진 등으로 세상 인구의 사분의 일이 죽습니다.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외치며, 또한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구원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성경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복음을 받아드리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24:38∼39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의 모습을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했습니다. 마지막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해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도, 불신자들은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결국은 다 멸하고 말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적그리스도는 멸망의 가증한 것을 거룩한 곳에 세웁니다.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적그리스도는 자기를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박해하여 죽입니다.
그 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셨을 때입니다. 요한은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속히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며 자신들의 피를 갚아달라고 부르짖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순교자들의 수가 차기까지 아직 잠시 동안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안식하며 영광을 누리다보면, 그들의 간구도 곧 응답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 양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의 광경입니다. 그와 동시에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부 삼년 반에 들어섭니다. 그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큰 환난이 임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심판의 양상입니다.
계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셨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첫째 인을 떼실 때부터 넷째 인을 떼실 때까지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재난의 시작에 속합니다. 마지막 한 이레의 전반부 삼년 반 동안 하나님이 온 세상에 내리실 심판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다섯째 인을 떼시면서, 마지막 한 이레의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갑니다. 그 때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히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피를 갚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시면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큰 환난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합니다. 오늘 본문 12절부터 14절까지 하나님의 심판으로 큰 환난이 여섯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계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1) 큰 지진이 나며 (2)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3)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계6:13 (4)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계6:14 (5)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6)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첫째, “큰 지진이 나며”입니다. 죽임을 당한 영혼들의 큰 소리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먼저 큰 지진이 나게 하셨습니다. 물론 지진은 늘 있어 왔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또한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도 지진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큰 환난 때에는 사람들이 여태껏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 큰 지진은 이전에 있었던 모든 지진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고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그 큰 지진은 땅만 흔들지 않고 온 우주를 흔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둘째,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입니다. 해가 어두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검은 털은 흑염소의 털을 가리킵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흑염소의 검은 털로 그들이 거주하는 장막을 만들기도 하고, 장례식에 입을 상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세 시간 동안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큰 환난 때에도 하나님은 해가 그 빛을 내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 결과 해는 어두워져서, 마치 흑염소의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집니다.
셋째,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습니다. 단지 달은 햇빛을 받아서 그것을 그대로 반사할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졌습니다. 자연히 달도 온통 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달이 온통 피 같이 되었다고 해서, 보름달처럼 달이 붉고도 환하게 떠오르는 것을 연상하면 안 됩니다. 본시 피는 검붉은 색깔입니다. 피가 뭉치면 붉은 색보다는 검은 색이 더 진하게 나타납니다. 큰 환난 때에, 달은 빛을 읽고 온통 피 같이 검어집니다.
넷째,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집니다. 계8:12 말씀을 보면, 넷째 나팔이 불릴 때까지는 하늘의 별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는 말씀은 소행성들이나 유성들이 지구 궤도에 들어오는 것을 뜻합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을 내기 전에 열매부터 냅니다. 그 때의 설익은 열매는 잎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바람에 쉽게 떨어집니다. 대풍에는 다 떨어집니다.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처럼, 하늘의 별들도 무수하게 땅에 떨어집니다.
다섯째,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입니다. 평소에 두루마리는 늘 말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그 안에 적힌 글을 읽을 때만 두루마리를 폅니다. 그러다 보니까 두루마리를 펴더라도, 두루마리는 절로 다시금 말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시면,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벧후3:10 말씀처럼, 주의 날이 이르면 하늘이 큰 소리로 다 떠나갑니다. 그러면서 처음 하늘은 완전히 없어지고, 그 대신 새 하늘이 나타납니다.
여섯째,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입니다.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시면, 큰 지진이 납니다. 또한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집니다. 소행성이나 유성의 파편들이 쉴 새 없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결과 지각의 대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육지에 있는 산들이나 바다에 있는 섬들이 제 자리에서 옮겨질 것입니다. 그러다가 계16:20 말씀처럼, 일곱째 대접의 심판이 있은 후에는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일어날 심판의 양상 여섯 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마24:21 말씀대로, 드디어 이 땅에 큰 환난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큰 환난은 마지막 한 이레의 후반부 삼년 반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장차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유를 무로 바꾸어버리십니다. 천지가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오염된 천지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롬2:6∼8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이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가 쏟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힘쓰는 자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심판의 대상입니다.
계6:15 (1) 땅의 임금들과 (2) 왕족들과 (3) 장군들과 (4) 부자들과 (5) 강한 자들과 (6) 모든 종과 (7)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큰 환난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큰 지진이 납니다. 해와 달이 빛을 잃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떨어집니다. 하늘이 떠나갑니다.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재난이 시작될 때부터,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칩니다. 또한 성도들은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전합니다. 그러나 땅에 거하는 자들은 성도들이 전하는 복음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땅에 거하는 자들은 성도들을 몹시도 박해하며 많은 성도들을 죽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큰 환난이 임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줄 압니다. 그들은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인 땅에 거하는 자들이 일곱 부류로 나누어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까 땅에 거하는 자들은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땅의 임금들입니다. 옛날에는 땅의 임금들이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둘째, 왕족들입니다. 땅의 임금들 곁에서 큰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입니다. 땅의 임금들이든지 또는 왕족들이든지, 그들의 권력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장군들입니다. 군대 지휘관을 일컫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결박한 이도 천부장이었고, 바울을 잡아 결박한 이도 천부장이었습니다.
넷째, 부자들입니다. 경제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장군들도 부자들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강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살펴본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 이외에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학자나 현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다섯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사회의 지도층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마지막에 나오는 여섯째 부류인 종과 일곱째 부류인 자유인은 서민층에 해당합니다. 서민들 중에는 종들도 있지만, 사회의 밑바닥에서 힘들게 사는 자유인들도 있습니다.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하며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층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서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나지 못함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단 한 사람의 예외가 없이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눅21:25∼26 말씀입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십니다. 그와 동시에 세상에는 큰 환난이 임합니다. 그 때에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습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집니다. 하늘의 별들이 무수히 땅에 떨어집니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갑니다.
또한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집니다.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람들은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할 것입니다.
무서워서 기절할 정도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으려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야 비로소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무섭게 임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10:31 말씀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도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눅12:5에서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할 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마땅히 두려워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심판에 대한 반응입니다.
계6:16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여섯째 인을 떼셨습니다. 온 세상에는 큰 환난이 임합니다. 그 때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집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를 피하려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는 큰 지진이 나서 온천지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산들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또한 바위들도 터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이 때 땅에 거하는 자들은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합니다.” 이처럼 그들은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도리어 어리석게도 그들이 숨어 있는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와 같이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땅에 거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임한 큰 환난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심판이며 그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하심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 용서를 구해야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큰 지진으로 그들이 숨어 있는 산들과 바위들이 그들 위에 떨어져 죽기를 바랍니다. 자신들이 죽기만 하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그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계20:12 말씀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처럼 죽더라도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어서 계20:15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은 하늘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땅에 거하는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불못에 던져져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계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기에 나오는 대명사 “그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진노하시는 큰 날이 자신들에게 이르렀음을 깨닫고서 두려워합니다.
그 날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씀한 “여호와의 날”입니다. 또한 그 날은 신약의 사도들이 말씀한 “주의 날”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날이며,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유대 지파의 사자로 그들에게 진노하시는 날입니다.
그 날이 이르자,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이와 같이 묻습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 대답은 자명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 중에는 아무도 서지 못합니다. 땅의 임금들도 왕족들도 장군들도 부자들도 강한 자들도 모든 종과 자유인도 능히 서지를 못합니다.
성도들은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또한 예수님을 증언함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지도 않았고, 구원의 유일한 길인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진노에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태울 맹렬한 불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능히 서리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늘 본문 다음 장인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옵니다. 계7:9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 양이신 예수님 앞에 서 있는 큰 무리가 나옵니다. 장차 우리들도 그들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랍니다. 아울러 장차 될 일을 알았으면, 그 일을 모르는 이들에게 경고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임할 진노를 쌓는 자들에게 힘써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계 6장 12~17절 / 스테반황목사
우리는 죽임 당하신 어린양께서 네 개의 인을 떼시는 장면을 보았고 이에 보좌 곁에 있던 네 생물이 오라고 명령하니 네 천사가 각각 나아와 이 땅의 역사 가운데 등장하여 활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네 천사의 활동은 각각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상징되었는데 이는 이 땅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나타내는 구속사적인 활동이 주의 재림 때까지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첫번째 등장한 흰말은 온 세상을 향하여 전진하는 끊임없는 복음의 승리를 위해 만국 가운데서 택한 백성을 돕는 천사의 활동을 말합니다. 두번째 등장한 붉은 말은 이 땅에서 불신자들 가운데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한 큰 전쟁을 일으키는 활동을 합니다. 세번째로 등장하는 검은 말은 전 세계에 미칠 큰 기근의 심판을 집행하며, 네번째 등장한 청황색 말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가지고 그 땅을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합니다. 이에 폐허가 된 땅에서는 짐승들이 맘껏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여 죽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깨어 있는 자들은 네 생물에 의해 명령을 받은 네 천사의 활동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이 땅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깨어 복음을 붙들고 증거하면서 주의 재림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는 천상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천상의 모습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다가 죽은 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보인 이 장면으로 인해 이 땅의 신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정절을 지킬 것입니다. 언제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죽도록 충성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은 신자들에게 더 이상 죄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섯째 인을 떼십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현상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뚜렷한 징조들입니다. 넷째 인까지는 천사의 사역에 의해 나타난 구속사적 사건들로서 단지 이 땅의 사람들과 관련하였지만, 여섯 째 인을 뗄 때는 하늘과 땅 전체에 나타나는 우주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거하는 모든 거민들은 그 징조를 보고 극도의 두려움과 극한 공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일곱 인에 해당하는 사건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0-11).
여기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여섯째 인을 때는 사건은 아직 어린양의 재림을 포함하지 않는 것입니다. 종종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주장이 있지만, 어린양이 친히 재림하시는 때는 일곱째 인 중에 일곱 나팔이 부는 때입니다. 주의 재림 장면에 대해 계시록 19장이 증언합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계 19:11-16).
그러므로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는 것은 ‘주의 진노의 큰 날’이 확정되어 이제 곧바로 임할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까지는 아직 시간이 약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심으로 인해 하늘과 땅에 분명한 현상들이 나타나면서 ‘주의 진노의 큰 날’이 분명하게 이른 것을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땅의 거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제일 먼저 나타나는 사건은 12절을 보니 큰 지진과 함께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사건은 13절을 보니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세번째 사건은 1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늘이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는 것입니다.
즉, 어린양께서 여섯째 인을 떼시면 큰 지진과 함께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수도없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면서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는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늘과 땅에 대이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변은 인류역사 가운데 없었던 특이한 현상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의 마지막 사건들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이 세가지 현상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큰 지진과 함께 해가 검어지고 달이 온통 피같이 되는 현상을 살펴봅시다. 사실 어린양이 여섯째 인을 떼시기 이전에도 인류 역사 가운데는 많은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섯째 인을 떼실 때의 큰 지진은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 같이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일무이한 큰 지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큰 지진이 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진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발생하면서 각 지진마다 특별한 사건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지진은 마지막 재앙이라고 불리는 일곱 대접 재앙 중에 마지막 일곱번째 대접이 부어질 때 발생합니다.
“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계 16:17-18, 20).
그 외, 일곱째 인을 떼실 때 발생하는 큰 지진이 있고(계 8;5), 여섯번째 나팔을 불 때 발생하는 큰 지진(계 11:13), 그리고 일곱번째 나팔을 불 때 큰 우박을 동반하는 큰 지진이 있습니다(계 11:19).
우리는 계시록에 기록된 다섯 번의 큰 지진에 대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각각의 지진과 관련한 대형 사건들이 모두 구속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계시록에 기록된 다섯 차례의 큰 지진들은 인류 역사 가운데 없었던 특이한 큰 지진들입니다. 그 넓이와 강도에 있어서 뚜렷하며 각 지진마다 분명한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을 이룬다는 점에서 역사 속의 일반 지진들과 뚜렷하게 구별됩니다.
자, 오늘 주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한 일곱 인 중에서 어린 양이 여섯번 째 인을 떼시자 큰 지진이 발생합니다. 매우 특이한 지진입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그 이전에는 없었던 큰 지진입니다. 그 지진이 얼마나 크고 광대하고 대단한지 그 지진으로 인해 해가 검어지고 달이 온통 피처럼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현상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자명하게 증거하는 현상들인 것입니다.
구약은 큰 지진과 함께 태양이 어두워지고 달이 온통 피처럼 되는 현상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의 바로 직전의 현상이라고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욜 2:31).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19-22).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욜 3:14-16).
이처럼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임하는 심판으로써 큰 지진과 함께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현상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의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의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이라”(마 24:29-30).
이처럼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발생하는 사건들은 인자의 징조, 즉 이제 확정된 주의 재림을 뚜렷하게 알려주는 전세계적이며 전우주적인 천재지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는 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볼 때의 광경입니다. 이는 큰 지진과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검고 짙은 연기들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 태양이 뿌옇게 검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달 역시 심한 연기와 습기로 인해 빛의 반사가 왜곡되어 온통 피 같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의 분노와 어린양의 진노를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근거는 계시록 9장을 보면 다섯째 나팔 심판이 이를 때에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로 인해 무저갱이 열리고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질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참조, 계 9:2). 즉, 여섯째 인을 뗴는 사건과 일곱 째 인을 뗀 때에 일곱 나팔이 부는 사건 중 다섯 번째 나팔을 불 때 사건이 맞물립니다.
그러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나타난 두번째 사건, 즉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는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칼이 나타날 때의 하늘 현상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늘의 만상(별들)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사 34:4).
한편, 일곱째 인을 뗀 때의 세번째 나팔 심판에서는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계 8:10-11)고 합니다.
이로 보건대,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의 설익은 열매가 대풍에 흔들려 떨어지듯 떨어지는 사건은 하늘에서 많은 운석들이 세계 곳곳에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사건 역시 인류 역사 가운데 한번도 없었던 사건일 것입니다. 온 세상 곳곳에서 상당한 운석들이 쉬지 않고 떨어질 것입니다. 건물과 도시, 바다와 산 등 어디에서나 불덩이 같은 운석들이 하늘에서 셀 수 없이 떨어질 것입니다.
이 처럼 온 세상 곳곳에 큰 지진이 일어나고 그와 함께 태양은 어두워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고 하늘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운석들이 세상 이곳 저곳에 떨어질 때, 인자가 임할 징조가 생생하고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때 이 땅의 거민들 전체가 거룩한 하나님의 분노를 처음으로 직접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나타나는 세번째 사건은 하늘이 두루마리 말리듯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도 같은 표현을 하였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이르러 땅을 황폐하게 하며 그 중에서 죄인들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라.”(사 13:9-10, 13).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진다”는 것은 하늘이 진동하여 우주에 큰 변동이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지구의 대기층에도 어떤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땅은 큰 지각 변동이 발생하여 각 산과 섬이 제 자리를 옮겨 세계 지도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과거에 노아의 홍수 때에 하늘이 흔들리고 지형이 바뀐 것처럼, 여섯째 인과 함께 하늘이 흔들리고 이 세상의 모든 지반과 지형이 뒤죽박죽 바뀔 것입니다. 이는 바다에서 산이 오르고 산은 바다 및 호수로 침수하고, 어떤 나라들은 물 속으로 잠기고 어떤 호수나 바다에서는 뭍이 오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 발생하는 사건들로 인하여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둘 수 없게 됩니다. 회사와 학교도 문을 닫을 것이며, 공장도 가동할 수 없고 상가들과 백화점, 영화관과 에어로빅, 휘트니스 센터도 문을 닫을 것입니다. 온 세상은 사재기를 하고 밀치고 아수랑장이 될 것이며, 또한 전쟁 통에 가족들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은 미아들이 되거나 서로 연락이 두절될 것입니다. 인터넷이나 병원 등도 전혀 동작하지 않을 것이며, 온 세상이 소요와 혼란 가운데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인공위성들도 궤도에서 벗어나 우주에서 미아가 될 것이며, 여러 전파로 교신하던 모든 것들이 엉망이 될 것입니다. 길을 가르쳐주던 GPS 시스템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을 것이며 지형 변동으로 인해 오동작을 할 것입니다.
기름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차들은 쳐박혀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온 세상에 재난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다니며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을 것입니다. 모든 식품들은 동이 나고 공급과 유통에 큰 차질을 빚을 것입니다.
인간이 쌓아놓은 기술과 문명은 크게 무너질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장사 지내는 것은 몇몇 극소수를 위한 특이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인간들의 시체는 마치 전쟁터처럼 이곳저곳에 즐비할 것이며 온 세상이 시체 썩은 냄새로 가득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리지르며 절규하고, 가정마다 비명 소리로 가득할 것이며, 온 세상이 아비규환에 빠질 것입니다. 낮인데도 어둡고 밤은 붉은 달로 인해 음산할 것이며 맑고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태양은 비정상적일 것이며 이곳저곳에 계속 운석이 떨어져 땅이 흔들리고 큰 파괴와 진동이 있을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릴 것입니다. 탐욕으로 인한 싸움과 살인은 도처에서 욕심과 살인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도처에서 괴한들과 깡패들이 집단 폭행과 노략질을 일삼을 것입니다. 행여 어떻게 하여 권력을 유지하는 자들은 모든 음식들을 사재기하여 음식물이 함없이 비싸질 것입니다.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불가능하고, 도처에서 살겠다며 높은 산으로 다들 도망칠 것입니다. 그때는 형제 부모 자녀도 다 필요없이 혼자 살겠다고 먹을 것을 챙겨서 도망다닐 것입니다.
스바냐가 그 날에 대해 외칩니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라”(습 1:14-16).
예수께서도 이 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눅 21:25-26).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여섯 째 인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늘과 땅의 엄청난 대혼란과 연관되지만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마지막 재앙의 날을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 마지막 날이 어떠할지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완전한 끝은 아닙니다.
이러한 엄청난 무서운 일들이 발생하자 이 지구 땅에 거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15-17).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다같이 철저하게 망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나 왕들이나 대통령들이나 장관들이나 또는 가난한 자나 서민이나 병든 자나 나이든 사람이나 어린 아이나 상관없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땅의 거민은 누구든지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죽는 것이 차리리 낫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 무서운 일들을 보기 전에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외치는 장면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라”라고 말하는 모습입니다. 원어로 보면, 당장 내 머리에 돌이 떨어져서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할 것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빨리 죽기를 바라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땅의 거민들이 당장 죽고 싶어하는 또 다른 이유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하늘과 땅의 무서운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를 봅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죄악을 이제 곧 영원히 심판하실 하나님의 거룩과 어린 양의 공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자신들의 모든 죄악들을 다 기억해 낼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의 심판의 날이 코앞에 다가온 것을 의식하면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원수로 서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십니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우리 주 영광의 그리스도께서 여섯째 인을 떼실 때 불신자들은 죽기를 구합니다. 그들은 기도할 대상이 없기에 산과 바위와 같은 무생물들에게 기도합니다. 이는 계시록 6장 10절에서 신자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과 대조됩니다.
그들 중에는 자살하여 죽는 자들이 엄청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살하여 죽는다고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과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무서운 죄를 한 가지 더함으로 더 큰 공의로운 판결을 받고 지옥에 갇혀있다가 거기서 영원한 불못으로 떨어지게 될 뿐입니다. 그리고 불못은 이 땅의 그 어떤 무서운 사건들보다 수억만배 무서울 것이며 더 무서운 것은 ‘영원토록’ 공포와 두려움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참된 신자들은 이 땅에서 고난 받으며 죽게 될 때 스데반에게 나타난 현상처럼 하늘이 열리고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어린양를 보며 기쁨과 위로와 능력과 영광을 감출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하늘이 열리고 그 틈으로 보이는 거룩한 보좌와 심판의 공의를 조금이라도 직접 맛볼 때 감당할 수 없는 한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불신자들이 외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분노와 어린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다.”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누가 능히 서겠는가” 라고 절규합니다.
여섯째 인이 떼어짐과 관련한 천재지변이 발생할 때 이 땅의 거민들은 멸망의 날이 임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완전히 망했다’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처럼 여섯째 인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나님의 분노와 어린양의 진노를 온 세상이 미리 보면서 이제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의 ‘그 날’이 확정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제 주의 재림의 날이 확정되었습니다. 주께서 여섯 째 인을 떼실 때 온 세상 사람들은 이 땅과 하늘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 주의 재림의 날을 미리 분명하게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17절을 보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합니다. 이 땅의 거민들은 피할 길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가 너무나 커서 이 땅에서 도망하고 싶은 충동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어린양의 진노 앞에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때 인간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살아날 방법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 친히 붙들어주시는 것인데, 이미 늦었습니다. 따라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영원한 진노,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비참과 괴로움,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만이 영원한 상태로 남아있을 것이니, 그 노이로제와 스트레스는 무궁할 것이며 그 강도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죽어서 해결되면 모를까, 목숨을 끊고 자살해도 그 비참과 고통은 더욱 커질 뿐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분노와 어린양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가 능히 서리요!”
마지막으로 여섯째 인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진노는 어린양의 진노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16절과 17절에 걸쳐 ‘어린양의 진노’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덧입힌 자는 애굽에서의 고센 땅처럼 여섯번째 인과 관련한 심판에서 예외가 될 것입니다. 즉, 애굽의 유월절 심판은 어린양의 심판이었는데, 이때 문지방과 좌우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가정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고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섯째 인과 관련한 사건은 어린양의 진노이기에 주의 보배로운 피를 믿는 신자들에게는 신기하게 그 심판이 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 이상 늦기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 얻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소식 역시 복음입니다. 복음은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고후 2:15-16)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사망에 이르는 냄새로 느껴진다면 더 늦기 전에 회개하고 우리 주 어린 양 예수께로 나아오기 바랍니다. 어린양 예수께 나아오지 못하는 이유는 마귀에게 속아서 마음이 혼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4-5).
오늘도 구원을 위하여 목이 터지도록 외치는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이 좋은 소식을 거절하는 자들은 주 앞에 서게 될 때 아무런 핑계를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모든 분들이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어린양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환난의 날이 온답니다
계 6장 12~17절 / 백장흠목사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인간은“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게 인생을 살아도‘나는 죽는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말은 내가 세상을 떠나는 날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종말입니다. 따라서 그날을 준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주님이 오시기 전 환란이 일어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환란이 일어나는가요?
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알리는 소식입니다.
2) 죄악을 끝내기 위함입니다.
3) 그날을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라는 신호입니다.
우리 모두는 본문에 나타난 여섯 번째 인봉을 열어서 영적인 방향으로 조명하고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12절)
지진은 땅이 흔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안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적인 지진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본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왜인가요?
1) 자기중심적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2) 완전주의자들에게는 불안이 찾아오게 됩니다. 3)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은 불안합니다. 4) 상실에서 불안이 옵니다. 나는 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파도가 치고 흔들려도 큰 배 안에 있으면 안전한 것과 같이 주님 앞에 있으면 안전해야 합니다.
2. 해가 어두워진다고 하였습니다.
해는 무엇인가요? 진리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진리되시는 그리스도가 가리워진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대신 그 자리에 인간이 앉게 됩니다. 인본주의가 진리인 예수님을 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중심에 누가 있어야 하는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같이 예수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만 바라보고 주님의 믿음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어둠이 사라지게 됩니다. 환란의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오진 예수 중심으로 살아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달은 피같이 되더라 하였습니다.
달은 성도를 의미합니다. 달이 피같이 된다는 것은 성도의 신앙이 변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신앙은 초대교회의 순수한 믿음이 아닌 다르게 변질되고 있습니다. 세상 안에서도 이권 앞에서 진실한 사람을 인격자라고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실해야 하고 말하는대로 실천하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해야 하고 이제는 처음 사랑을 되찾아 가족과 믿지 않는 영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4. 하늘의 별들이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13절)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들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주의 종들이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학이나 신앙이 자유주의에 물들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목회 잡지인 “리더십”에 나타난 결과를 보면 영적 지도자의 권위가 떨어지는 이유가 교만, 질투, 분노, 나태, 욕심, 무절제, 그리고 정욕이라고 하였습니다.
5. 하늘의 종이 축이 말리듯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환란의 시대에는 은혜의 역사, 축복의 역사를 거두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세대를 바라보세요. 환란시기입니다. 이런 때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변질되지 않은 신앙을 간직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바로 서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은혜의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은혜생활을 깊이 하여 환란과 관계없이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