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망각 증후군
나이 때문인지 모릅니다. 또는 길어진 술자리 덕에 부실해진 해마가 원인인지도 모릅니다. 가끔 너무 친숙했던 단어가, 사람 이름이 까마득하게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단어 망각 증후군, 또는 설단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인데 가끔 그 집의 문고리를 잃어버린 채 문 앞에 서 있곤 합니다. 분명 방금까지 혀끝에서 굴러다니던 단어가 돌연 투명한 안개처럼 잊힌 순간 우린 당황과 마주하게 됩니다.
언어는 마음의 심연에서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은 존재입니다. 우린 매일 감정의 우물에서 적절한 단어를 길어 올려 서로의 목을 축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기억의 저편에 늘 사용하던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때 세월을 건너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 우린 가끔 나이 듦의 현상과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허공에 손짓하며 "그거 있잖아, 왜…."라는 부사어들로 흩어진 조각을 모아보지만, 문장은 주인을 잃고, 미아처럼 사라진 글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망각의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침묵이 주는 휴식일지도 모르지요. 단어를 잊고 대상의 본질을 이름이라는 편견 없이 마주하라는 신의 섭리….
단어 망각 증후군이 일어나는 지점은 대개 감정과 이성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너무 반가운 사람의 이름이, 너무나 사무치는 풍경의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머리보다 앞서 나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혀끝에서 맴도는 단어를 찾지 못해 서성이게 될 때, 너무 조급해하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잊힌 단어는 영영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의식 밑바닥에서 숨을 고르는 중일 수 있으니 기억나지 않는 그 단어의 빈자리를 잠깐의 아름다운 공백으로 두어도 좋습니다.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사는 삶이 행복에 가까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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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님의 글입니다.
충분히 공감가는 글입니다. 그래도 이 분은 "조급해 하지 마라.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의식 밑바닥에서 숨고르는 중일 수도...." 라 긍정적으로 말하지만, 이젠 그러려니, 어쩔 수 없거니 하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가는 세월 누가 잡을 수 있으며 오는 세월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