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새재 교귀정(交龜亭)
조선시대 성종 초기에 지어졌다 조선후기때 소실됐던 문경새재 교귀정.
지난 1999년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해 복원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옛길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문경새재는 그 명성에 걸맞게 지난 2007년 12월 국가지정 명승으로 지정됐다.
이 외에도 문경새재 1·2·3관문이 국가지정 사적 147호로 지정돼 있으며, 문경새재 일원 전체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됐다.
이렇게 문화재가 많다는 것은 문경새재가 역사적 가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경관적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이 중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교귀정은 그 의미에 있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경상감사 도임행차 재현행사.
비록 중창된 지 11년 밖에 되질 않지만 감사의 임무를 교대하는 전용 건물로서는 국내에서 하나 밖에 없는 건물이다.
원래 교귀정은 조선 성종 초기(1470년경) 당시 문경현감이던 신승명(愼承命)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옛 그림을 통해 보면 정면 4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형태로 건립이 됐으며, 높은 축대 위에 정자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당시에는 용추폭포 주변과 길과의 높이 차이가 많이 났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소실돼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해 1관문 뒤편에 경북의 역사를 담은 타임캡슐을 제작했고, 행사의 일환으로 경상감사의 임무 교대식을 치러온 교귀정을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교귀정이 복원된 곳은 경관이 아름답고 용이 하늘로 올랐다는 전설을 지닌 용연(龍淵)이 잘 바라다 보이는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석으로 높지막하게 축대를 쌓아 터를 높이고 길과 나란하게 정자 한 동(棟)을 앉힌 다음 앞마당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을 좌우 양쪽으로 냈다.
길에서 계단을 오르면 정자의 옆으로 널찍하고 길다란 대지가 2단으로 나뉘어 상승감을 느끼며 정자에 접근하도록 계획돼 있다.
정자는 비교적 윗면이 평평한 자연석을 초석으로 깔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축조하였는데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겹처마 2익공의 팔작 지붕집 구조로 5량가로 결구된 부재(部材)들이 매우 튼실해 보인다.
건물 간살을 살펴보면 정면은 어칸이 270㎝이며, 양 퇴칸은 240㎝으로 어칸이 퇴칸보다 30㎝ 넓으나 측면은 210㎝로 동일하다.
지면에서 바닥을 높여 우물마루를 깔고 건물의 정면 어칸쪽에 자연석 장대석을 층층이 깔아 4단의 계단을 만들고 정자에 오르내릴 수 있게 했다.
건물의 사면(四面)이 개방되어 있고 계자 난간이 설치돼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에 결구된 창방 위에는 화반이 놓여져 있고 화반은 다시 주심도리와 주심도리 장혀를 받치게 된 구조이다. 주두 밑에서부터 끝이 뾰족하게 치목한 쇠서 두 개가 겹쳐 올려져 2익공의 포작이 형성되었고 그 위로는 안으로부터 들보 머리가 튀어 나와 올려져 있다.
내부 천장은 상부 가구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다. 가구는 앞·뒤 기둥 위로 모서리를 궁글려 귀를 접은 방형 단면의 대들보를 걸치고 그 위로 짧은 동자주를 받친 다음 종보를 겹쳐 올려 5량가 구조로 만들었다.
종보 위에는 파련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받쳤다.
측면 가운데 기둥 위에서부터 대들보와 직각 방향으로 충량을 걸었는데 휘어진 곡재로 대들보 상부에 걸쳐 올리지 않고 턱을 내어 대들보에 끼워 맞췄다.
현재 건물은 단청이 생략돼 있어 건물을 이루는 모든 목부재(木部材)가 풍우한설(風雨寒雪)에 노출된 채로 방치된 상황이다.
건물의 어칸 처마 밑에는 교귀정 편액이 걸려 있다.
교귀정은 신임 경상감사와 이임 경상감사의 임무를 교대하는 장소이다.
이러한 장소는 충청도와 전라도에도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6 충청도 진천현 역원 및 동서 권34 전라도 여산군 누정조를 보면 신임감사의 인수인계는 수령처럼 관아에서 거행하지 않고 도계지점에서 실시된다.
이 지점을 교귀라 하는데, 경상도 감사의 그곳은 충청도와 경사도의 경계인 조령의 중간지점에 있었던 것이며, 충청도 감사의 교인소는 경기도에서 충청도계에 접어드는 진천현 북쪽 38리 광혜원방에 있었고, 전라도 감사의 교대소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여산군 소재 황화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충청도와 전라도의 도계 감사 인수인계 장소는 모두 사라져버려 현재는 문경의 교귀정만 남아 있으며, 여기에서는 매년 교인식 및 도임행차를 재현하고 있다.
경상감영은 1392년(태조 원년)에 상주목에 개영했다가 1593년(선조 26년)에 성주로 옮겼으며 1596년(선조 29년)에는 달성으로 1599년(선조 32년)에는 안동으로 옮기게 되고 1601년(선조 34년)에 다시 현재의 대구로 옮겨와 한말까지 존속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상주와 대구 등에서 경상감사 도임행차를 몇 년에 한 번씩 재현하고 있지만, 결국 교귀정이 문경에 있는 관계로 교인식 행사만은 문경만이 가지고 있는 국내 유일의 전통행사라 할 수 있다.
관찰사 도임행차, 민초들의 으뜸 구경거리
엄원식 문경시 학예연구사의 견해
문경새재 교귀정이 복원된 지 10여년이 넘었다.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교귀정에서 쉬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도 하고, 도시락도 먹고,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귀정을 두고 단순히 경치 좋은 곳에 세워진 정자이거니 생각할 것이다.
교귀정 건물을 복원하면서부터 문경시에서는 교귀정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본래 건물의 의미에 맞게 활용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건물 복원과 함께 시작된 경상감사 교인식 및 도임행차 재현행사는 벌써 올해로 열 번째 행사를 마쳤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계승할 계획이다.
신임감사가 서울을 출발해 도계(道界)까지 도착하면, 이 때 전임감사를 비롯한 감영 소속 관원과 이속 및 도계에 있는 수령들이 출영해 신감사를 환영했다.
신구 감사의 사무 인계 인수는 감영시설이 갖추어진 양계(兩界)와 그렇지 못한 이남 6도 및 6도의 감영이 양계의 감영과 동일한 시설과 체제를 갖춘 영조 30년대 이후에 따라 사정이 달랐다.
즉, 감영체제가 갖춰진 경우는 도계지점에 위치한 '교귀소(交龜所)'에서 하거나 감영에서 했지만, 조선 전기 이남 6도처럼 감영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는 예외 없이 도계지점의 교귀소에서 거행했던 것이다.
경상도 신구감사의 교대 실례를 살펴보면, 조선전기에는 교귀소가 위치한 문경현 조령에서 신구감사의 인계 인수가 이뤄진데 반해, 조선후기에는 감영 소재지인 대구부의 객해(달성관)나 관덕당(觀德堂)에서 거행하기도 했다.
요즈음 도지사 이·취임식을 생각하면 조선시대 관찰사 임무교대식이 어느 정도 였는지 가히 짐작은 할 것이다.
또한 관찰사가 교인식을 마치고 도임행차 퍼레이드를 하게 되면 지나가는 길목마다 많은 백성들이 나와 구경도 하고, 관찰사가 어떤 분인지 살펴보기도 하고 구경거리 중 으뜸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교인식과 도임행차는 현재 문경시에서만 전통행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상주시에서 경상감사 도임행차를, 대구시에서는 경상감사 순력행차를 재현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똑 같은 행사를 지역별로 나누어서눠 한다고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경시의 경우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과 2004년을 제외하곤 매해 개최 했으며 올해로 10번째 맞이한 행사가 되었다.
이는 교귀정을 복원하고 교귀행사 전통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문경시의 모습이 결국 10여년 동안 꾸준히 계승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비록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지만, 전통은 전통대로 살려가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 발전하는 행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교귀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황진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