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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정치를 위한 수단인가”
-현재로서의 역사, 동북공정
E.H 카, 크로체, 그리고 동북공정
E. H. 카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은 단 하나일지라도, 이에 수반되는 역사적 해석은 수없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리라. 지금까지도 E. H 카의 현재적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한다는 역사관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사가 자칫 정치에 악용될 수도 있음을 경고한 말이었다. 역사, 정치, 그리고 현재로서의 역사. 넓은 의미에서 동북공정 역시 이러한 ‘해석된 역사’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는 동북공정을 넘어, 신화·종교·철학 그리고 역사가 때로는 본래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악용될 수 있음을 독자에게 말하고자 한다.
인문학 - 명분의 제조자들
과거부터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의 것들, 소위 인문학이라 불리는 학문을 자의적으로 사용해 왔다. 인문학은 처음에 자연과학을 위한 사고의 도구로써 생겨났다. -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대표적인 예 - 인간은 인문학을 배움으로써 사고의 지경을 넓힐 수 있고, 동시에 인간다운 품격과 권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인문학을 하면서 비로소 동물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됐다고 보아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품격있는 사람으로 대우받아 왔고, 동시에 그런 인문학을 기초로 형성된 개인, 단체, 학설 등은 설득력을 얻음과 동시에 자기주장의 큰 명분을 얻게 된다.
신화, 종교 - 인문학의 원시적인 형태들
우선, 본격적인 인문학이(철학, 역사)가 악용된 경우에 앞서 신화와 종교가 곡해돼 사용된 경우에 대해서 알아보자. 굳이 이 부분에서 신화와 종교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신화와 종교가 역사적 사실의 기초 형태, 즉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철학적 의미 등을 담고 있는 원시 인문학적인 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구약성서가 현재 이스라엘 역사 연구의 제일 중요한 사료로 쓰이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아도 신화와 종교가 인문학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신화 악용의 사례는 아마도 플라톤이 이상 국가의 건설을 위해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신화의 유포’를 역설한 것일 것이다. 그는 이상적 국가를 만들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 허구적으로 만들어낸 신화의 유포를 주장했다. 인간이 땅에서 솟아난 하나의 형제라는 사실, 이러한 신화를 우매한 군중에 유포시킴으로써, 사람들은 서로 같은 형제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이상 국가의 건설은 한결 용이해 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플라톤도 인정했듯이, 이 신화는 전적으로 꾸며낸 허구였다. 그럼에도 이를 사실인양 포장하여 퍼뜨리는 것은 이상적 국가 건설에 이러한 신화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신화라는 정신적인 구심점을 마련함으로써, 이상 국가는 국민들의 충성을 요구할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시기, 중세에 들어서 교황은 구약성서 <여호수아서>의 한 구절을 이용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주장했다. 즉,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태양아 멈추어라’를 외치자 태양과 시간이 멈추었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가 적군을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는 내용 가운데, ‘태양이 멈추었다’라는 구절을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공전한다는 증거로 해석한 것이었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다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해석이었다. 그럼에도 교황은 이 구약성서의 구절을 이용함으로써 천동설에 그만한 명분과 권위를 부여할 수 있었고, 교황청에서는 이를 통해 교황과 로마교회의 권위를 강조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한낱 교황의 허구적인 논리에 이용돼 버린 꼴이 돼버렸다. - 과연 구약성서 <여호수아서>의 저자도 정말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이를 기록했는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니체와 나치즘
역사와 철학의 악용 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니체의 철학과 역사철학이 나치즘에 의해 악용된 사례일 것이다. 우선, 니체 자신이 다분히 악용될 소지를 남기기는 하였다. <도덕의 계보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양과 독수리의 경우를 들어, 힘없는 양이 강한 독수리에 대한 분노심에서 만들어 낸 것이 ‘노예의 종교’ 다시 말해 ‘유대의 종교’ ‘기독교’라는 말은 나치즘의 반유대주의에 끼워 맞추기에 손색없는 얘기이긴 하였다. 오죽하면 전쟁은 독일군이 하고, 전쟁철학은 니체가 만든다는 말이 떠돌았겠는가. - 독일 군사들은 짐꾸러미에 늘 니체의 철학서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 하지만, 니체 자신이 이러한 비극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주장한 것은 사상적 차원에서 위버멘쉬(초인)의 등장과, 새로운 가치 체계의 창조였다. 그가 독일민족을 제외한 인종 쓰레기를 쓸어버리자는 극단적인 주장을 편 것은 아니었다. 이는 분명, 철학이 나치즘이라는 정치사상에 악용된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인문학(역사)의 악용, - 중국의 동북공정
조금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난 중국의 동북공정이 역사를 악용한 것이 독일의 나치즘이 니체의 철학을 악용한 것과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구려의 역사’, ‘니체의 사상’ 그 자체로서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이것들은 목적(패권주의)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할 뿐이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칸트가 ‘인간은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오로지 목적으로 대하라’라는 대목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동북공정은 한마디로 정치적인 사안이다. 이는 학문적인 사안도 아니고, 오로지 당과 국가를 위해 필요한 논리를 계발하는 일일 뿐이다. 인문학의 악용, 동북공정은 아마도 인문학의 악용 역사에,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인문학의 악용들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럼, 좀 더 근본적으로 인문학 악용의 원인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인문학 악용에 대한 원인은 대략 2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인간은 본래 선한 것을 악한 것으로, 중립적인 것을 악으로 이용할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구약성서나 홉스의 원죄설을 떠올려 보면 좋을 듯 - 예를 들어, ‘칼’을 보자. ‘칼’, 그 자체는 결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이를 살인의 도구로 다시 말해서 악행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성性’, 그 자체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이는 사랑으로 승화할 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성을 방탕함과 타락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악용들은 굳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철학, 역사, 문학 등,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것조차도 인간은 악용한다. 과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히틀러가 니체의 초인 사상을 끌어들여 나치즘에 악용한 것도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둘째로 인문학, 특히 역사는 본질적으로 정치와 밀접히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민족의 자존감, 국가의 정통성과 직결된다. - 왜 북한에서 무리하면서까지 단군릉을 복원하고 허구적인 환단고기를 강조하겠는가. 왜 일본인들이 천황의 신성성을 강조하겠는가. - 따지고 보면, 역사란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이 조선을 지배할 때에, 조선민족의 역사를 철저히 상식 이하로 깎아 낮추었던 것을 생각해보라. 일본인들은 조선의 역사를 파괴할 때, 조선인들의 자존감 역시 소멸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역사를 악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들
첫째로, 이러한 역사적 악용은 침략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적 논리에 애국심이라는 사탕발림을 해줄 수 있다. 일본인들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훼손시켜가면서까지 역사왜곡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세일계萬世一界 천황 폐하의 대일본 제국’, 이러한 과거의 업적들이 한낱 범죄행위로 추락하는 것을 철저히 막기 위함이다. 일본은 과거의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들을 만인이 알게 될 시에 젊은이들의 애국심에 지대한 타격이 가해질 것을 알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북공정은 만주(동북)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들에게 중화민족에 소속되겠다는 심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설령, 피는 조선민족의 피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역사관이 중국화 돼 버리면, 그는 더 이상 한국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역사적 사실의 정지척 악용은 역사철학에 결과주의적 역사관을 난무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 우리나라만 잘 됐으면 그걸로 끝이다. 역사는 그러한 우리의 결과와 목적, 오로지 그걸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난무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이기주의적인가. 모든 역사학자들이 이런 결과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 연구를 한다면 세상은 홉스의 말대로 만인과 만인의 투쟁 상태가 돼버리고 만다. 과거, 소크라테스가 이런 결과주의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소피스트들을 비판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만큼 극단적인 결과주의와 상대주의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중화주의, 일본의 제국주의, 그리고 이에 더불어서 한국의 극단적 민족주의까지. 동아시아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이 이런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하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고 말이다.
셋째, 역사와 신화, 그리고 종교의 구분이 모호해 진다. 과거에 칸트가 종교를 물 자체의 영역으로서, 철학과 철저히 구분 지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이 두 학문의 범주 자체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철학은 오로지 인간의 이성과 연관된 ‘사유의 영역’이고, 종교는 믿는 자의 신앙과 관련된 ‘믿음의 영역’이다. 이 둘을 혼동하여, 비교·적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 민간 신앙과 전설에 등장하는 ‘황제’와 ‘신농’이 역사적 실존 인물로 규정지어지고, 환단고기의 내용들조차 무비판적으로 한국사의 일부로 포함시킨다고 상상해보라. 이건 ‘역사’가 아니다. 이건 근거 없는 소설 창작이나 다름없다. 역사는 존재규명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사실들로 가득 차게 되고, ‘역사’는 신화라는 내용의 겉 포장지에 불과하게 돼버린다. - 실제로 동북공정에서는 그런 기미가 보인다. 고이高夷라는 중국 전설상의 인물을 고구려의 시조로 넣으려는 움직임. 역사와 신화, 그리고 종교를 혼합시켜 고구려사를 역사에서 신화로 전락시키지 말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대책은?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철저한 고증에 근거한 역사학의 전개이다. 역사는 다른 인문학(특히 철학)과는 달리 학문의 성격 자체가 실제적이다. 철학이 볼 수 없는 형이상학을, 신학이 보이지 않는 신을, 그리고 예술이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원리들을 다루는 것과는 달리 역사는 실질적인 사료가 있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있다. 역사는 이러한 근거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고, 이런 사조가 역사학의 주류가 돼야 한다.
둘째로, 제각기 역사학자들이 자기와는 다른 학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 같지만,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악용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기본적으로 가져할 자세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학문적 악용이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상대방 학설에 대한 인정이야말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자세임을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고구려사=중국사? 틀렸어. 그건 아니야’ 라고 단정함과 동시에 한국인들은 역사전쟁에서 져버리는 것이다.
‘네 생각도 맞을 수 있어. 대신 그에 합당한 근거와 주장들을 펴지 못하면 너의 주장은 내게 먹혀들지 않아’ 이것이야말로 인문학의 기초요. 역사철학의 바른 자세이다. 대낮에 사막을 거닐던 낙타가 모레에 머리를 파묻고는 지금은 낮이 아니고 저녁이야라고 말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하지 않겠는가.
셋째로, 공통된 역사관 수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동시에 너무도 이상적인 말이다. 그래도 시도는 해야 한다. 극한이 수렴점에 도달해서, 수렴값이 나오는 건 아니다. 극한은 수렴점에 무한히 다가가기에 수렴값이 나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 사이에 패인 역사관의 골을 완전히 메우지는 못할지라도 타협의 노력이 진행될 때, 그만큼 공통된 역사관 수립이라는 수렴점은 인류에게 점점 다가올 수 있다. - 최근 ‘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 공동 집필 근대사’와 ‘한·일 공동역사교과서 편찬’ 노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넷째로, 정치와 역사의 분리를 학자들 스스로가 의식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두 번째 논리와도 연결되는 것인데, 그만큼 역사가 정치에 종속될 때, 역사가는 학문적 양심에서 다른 학설들을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자들이 조금이나마 일본 사학을 중국 사학보다 신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만큼 일본 사학이 중국 사학에 비해 정치와의 독립이 더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일본에는 극소수임에도 역사적 양심에 따라 연구하는 학자가 있는 반면, 중국은 전무全無하다. - 역사가 정치에 예속될 때, 역사학은 더 이상 학문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다. - 막스 베버가 강단에서 정치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다섯째로 역사학자들은 21세기와 미래에 필요한 새로운 역사철학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다. 랑케, E. H 카, 크로체, 콜링우드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진화론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역사철학들은 근본적으로 다시 재검토 돼어야 한다. ‘역사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역사학자는 이 근본적인 물음에 명쾌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새롭고 바른 역사철학의 재정립이야말로 미래 인류와 미래 역사학에 역사학의 현실의 악용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이 글이 언제 쓰여 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철학의 사조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폭 넓게 논의 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순서가 엉켜있는 것 같은데 독일의 실증주의 역사철학(칸트)로부터 관념주의 역사철학, 마르크시즘 역사철학 등이 19세기 이전의 사조 였으나 역사 철학이 가지는 모순점 즉, 역사를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으로 바라보는 점과 과학적 방법론에 인간의 삶을 대입할 수 없고 역사를 역사철학이 실재 역사(현실)를 재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19, 20세기 드로이젠, 딜타이, 마이네케 드의 역사주의 역사 철학과 함께 이전까지 설명되던 역사철학과는 다른 입장(관념적, 비판적)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되었고 2차대전 이후 인류의 눈부신 성장을 바라본 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인류문명의 종말(긍정적 측면에서)을 말하였으나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와 문화적 갈등과 충돌이 확산되면서 새뮤엘 헌팅턴, 뮐러, 월러스타인, 버먼 등에 의해 문명과 문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인류전체의 긍정적 지향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위 글에서 논의된 것처럼 근대'역사학'은 가장 정치적인 학문입니다. 그 출발이 독일에서 시작되어 특정 문명이나 민족에 대해 역사적 우수성과 우월적인 관념을 형성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학중심의 '지식의 권력화'가 진행되어온 이상 이런 인문학의
정치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 입니다. 문제는 이런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정치화된 지식(역사이든 인문학이든)을 일반인들이 '그 뒷면까지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입니다. '임희완 [20세기 역사철학자들] 건국대출판부'(제가 읽은책이 적어서 다른분들께서 좋은 책을 소개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를 통해 역사철학의 논의과정을 살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제 공부가 짧아서 그런지 위글은 논리가 상당히 모호한 것 같습니다. 사료의 '과학적 검증'과 '역사철학' 등을 통해 전개된 대책에 많은 논리가 뒤엉켜 필자의 논지를 집작하기가 어렵네요..
김태환님이 지적하신 후쿠야마의 인류문명의 종말(?)이라는 것을 약간 부연하자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말하는 '역사의 종언' 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가 최종단계에 진입했다는 의미로서 헤겔이나 칼 마르크스가 말하던 최종적 이상국가 개념과 오히려 유사합니다. 요컨대 인간역사를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갈등의 역사라 본다면, '예나 전투' 이후로 자유주의가 타 체제, 이념을 이기기 시작하여 냉전이 끝난 순간 자유주의가 유일한 승리자로 남아 더 이상 이에 대항할 만한 상대자가 없는 상태에서 미래는 자유주의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유주의가 대혁명의 시대에 보수주의와 싸워 이기고, 2차대전 무렵에 국가주의적
파시즘과 싸워 이긴 뒤, 50년대 이후에 공산주의와 싸워(냉전)서 결국 90년대에 그조차 이김으로써, 이제 자유주의에 대항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자유주의-자본주의의 자축적인 승리선언문이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인 셈입니다.
그건 그렇고.... 믈사리님의 글에 대해서 말한다면, 첫째 역사학에 대한 이용과 악용을 구분하지 않고 있고, 둘째 역사가 본질적으로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측면에 대한 검토가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에 대한 이용과 악용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은, 역사학에 대한 올바른 활용과 부당한 활용을 구분하지 않은 채 마치 '역사를 활용하면 곧 악용' 이라는 느낌이 들게끔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활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역사학이라면 그것은 그저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학문 아닐까요?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위해 유포한(?) 거짓말들, 신화들조차 '악용' 으로 매도되는 상황이라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만들기 위해 근
대 사상가들이 제시한 '천부인권설', '(가상적인) 자연상태로부터 도출한 사회계약론' 등도 '악용' 으로 매도되어야 할 것입니다. (뭐... 실제로 그런 평가도 있기는 하군요) 역사학에 속하지 못할 이런 범주의 이야기의 활용에 대해서까지 악용이라 말하기 시작하면 역사학은 처음부터 활용은 아예 고려하지 않은 순수학문으로 다시 자리매김되어야 하겠지요. 글쓴이의 주장은 그러한 쪽으로 해석 가능합니다. 하지만 활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왜 역사를 연구해야 하는지(역사학의 존재의의)부터가 문제됩니다. 역사 연구는 지식인의 취미생활이나 교양 활동에 불과한 것일까요? 나아가 역사가 본질적으로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은
역사해석에 있어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남깁니다. 역사학에서 역사에 관한 판단들은 자연과학에서의 판단과 같은 수준으로 높은 객관성을 유지한다거나 거의 유일무이한 판단결과가 도출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는 역사해석에 항상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의 영향이 과연 배제되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배제한다면 어떤 수준의 해석이 '객관적' 이고 '중립적' 일까요? 역사가가 현실정치에 매몰되어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주장을 한다면 문제이지만, 현실정치를 반영하여 논리적 근거가 있는 해석을 하는 것도 문제일까요?
따라서 역사와 정치의 분리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생각입니다. 대신 역사와 정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바람직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왜곡하는 것, 왜곡은 없지만 역사를 부당한 정치적 목적에 연계시키는 것 모두를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와 멋지다! 주제를 올리신 물사리님! 그리고 댓글로 의견을 피력하신 김태환님, 안양사랑님! 참으로 좋은 글 읽었습니다. 많이 공부됩니다. 더운 여름철 건강들 하시고. 틈틈히 태극전사 응원도 하시고 모두들 좋은 하루 되십시요!
김태환님, 안양사랑님 성의있는 대답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 두 분의 지적을 토대로 시정본을 다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김태환님 답변에 나온 드로이젠, 딜타이, 마이네케, 새뮤엘 헌팅턴, 뮐러, 월러스타인, 버먼 등의 주장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답변으로 달아주실 수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처음보는 이름이 많은지라 공부해보고 싶은 의욕이 드네요.
문명의 '종말'은 역사철학에서 변화 다함은 곧 끝이기에 자유주의를 결말로 본 후쿠야마에 대한 비난(?)이라 할까요; 믈사리님 공부를 게으르게 한 변명입니다만 하나의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오해없이 쉽게 전달할만큼 요약하기가 어렵네요.. 제가 읽은 책을 추천해드림으로서 제 생각의 기저를 알려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짧은 저의 지식이 각각의 사상을 설명함에 있어 지나친 단순화로 잘못된 선입견이나 오해를 심어드릴까 두렵습니다. 각 사상가의 독립된 서적이나 역사철학의 개론서적을 통해 나름의 논리를 형성하시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