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절현
백아절현(伯牙絶絃)은 ‘백아(伯牙)가 거문고(琴) 줄을 끊었다(絶絃).’는 뜻으로 ‘절친한 벗 즉 지음(知音)*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의 유래와 생성 배경을 비롯한 의의와 조우이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고관대작이었던 유백아(兪伯牙)라는 거문고 명장이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악상(樂想)을 신통방통하게 끄집어내어 명료하게 얘기해 주는 나무꾼인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처럼 각별했던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다. 어느 날 백아는 묘소를 찾아가서 영혼을 위로할 요량으로 거문고를 타면서 이제는 자기의 거문고 연주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앞으로는 연주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거문고를 부수고 줄은 끊었다.’는 고사에서 ‘백아절현’이라는 성어가 탄생했다.
이에 대한 출전(出典)은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을 비롯해서 ⟪여씨춘추(呂氏春秋)⟫ ⟨효행람(孝行覽)⟩이나 ⟪한어사휘(漢語詞彙)⟫ 등으로 알려졌다. 유의어로서 절현(絶絃), 지음(知音), 백아파금(伯牙破琴), 지기지우(知己之友), 고산유수(高山流水), 송무백열(松茂栢悅), 막역지우(莫逆之友), 문경지교(刎頸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등을 비롯하여 수없이 많다.
열자의 탕문편에 나오는 내용을 근간으로 백아절현이 생겨난 배경의 줄거리를 요약 정리한다. 여기에 더해 여씨춘추 효행람과 한어사휘에 나오는 내용의 핵심을 살피련다.
백아(伯牙)는 득도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의 거문고 명 연주자였다. 한편 종자기(鍾子期)는 거문고 소리를 듣고 그 악상(樂想)을 귀신같이 꿰뚫는 신묘한 능력을 지녔었던가 보다. 백아가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은 심정으로 연주하면 종자기는 “얼시구(善哉!)! 높디높은 태산(泰山) 같구나.”라고 했다. 또한 마음을 도도히 흐르는 물에 두고 연주하면 “얼시구! 드넓은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것과 같구나.”라고 일갈해 놀라게 했다. 이처럼 그는 백아가 생각한 바를 신기할 정도로 족집게같이 지적해냈다.
어느 날인가 둘이서 태산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갑자기 폭우가 몰아쳐 할 수 없이 바위 밑으로 피신하여 비를 피하다가 느닷없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런 우울한 심정을 담아서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는 상황을 바탕으로 임우지곡(霖雨之曲)을, 그 다음에는 산이 무너지는 상상을 하며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했다. 그런데 종자기는 그 때마다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곡에 담겨있던 바를 매구처럼 정확히 집어내 얘기하곤 했다.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자기의 의중을 간파하는 종자기에게 감동해 백아는 연주하던 거문고를 한쪽으로 밀어놓으며 탄식하듯 말했다. 연주를 하며 마음속으로 상상했던 악상을 단 한 마디 말로 표현하는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자네 앞에서 어찌 내 음악을 감추겠는가라고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아꼈던 종자기의 무덤을 찾아가 거문고 연주를 한 뒤에 이제는 자기 연주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애지중지하던 거문고를 깨부수고 줄(絃)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백아절현’이 탄생했다는 전언이다.
한편 여씨춘추 효행람에서도 대동소이한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백아절현’이 나타나는 부분은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아래의 내용 중에 “백아(伯牙)가 거문고(琴)를 부수고(破) 줄을 끊고(絶絃)(伯牙破琴絶絃 : 백아파금절현)”에서 ‘백아절현’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고 한다.
/ ..... / 종자기가 죽고(鍾子期死) / 백아(伯牙)가 거문고(琴)를 부수고(破) 줄을 끊고(絶絃)(伯牙破琴絶絃 : 백아파금절현) / 죽을 때까지(終身) 다시(復)는 거문고를 타지 않으니(終身不復鼓琴 : 종신불부고금) / ...... /
그리고 한어사휘*에서 ‘백아절현’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 아래와 같은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이 내용 중에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고(破琴絶弦 : 파금절현)”에서 ‘백아절현’이 탄생했다는 얘기이다.
/ ......거문고를 부수고(破琴) 줄을 끊고(絶弦)(破琴絶弦 : 파금절현) ...... 종신(終生)토록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終生不再彈琴了 : 종생불재탄금료) ........ /
백아와 종자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신분적인 관점에서 백아는 고관대작이고 종자기는 한낱 나무꾼이었기 때문에 서로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완전히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온갖 사회 통념을 초월해 뜻을 함께하는 벗이 된 것이다. 그런 친구가 요절하자 이승에서 더 이상 연주는 무의미하다고 여겨 자기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는 마음을 헤아려본다. 하지만 도저히 따를 깜냥이 아닌 것 같다. 만일 내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처럼 단호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그렇지 못할 것 같은 게 나의 숨김없는 진면목이지 싶다. 세상에 그런 진정한 친구 하나만 있어도 교우관계는 결단코 오그랑장사를 한 게 아닐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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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음(知音) : ‘소리를 알아 듣는다.’는 뜻이다. 이는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로서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의미이다.
* 열자(列子) : 중국 도가(道家) 경전의 하나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도가 열자(列子)와 그 제자가 썼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전해지는 8편은 진(晉)나라 장담(張湛)이 쓴 것이다.
* 한어사휘(漢語詞彙) : https://leeza.tistory.com/19406
현대작가, 2025년 봄호(제23호), 2025년 3월 12일
(2024년 4월 19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