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내려오던 한북정맥이 백운산에서 화악지맥을 분가시킨 후 다시 강씨봉을 지나 귀목봉(1,036m)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뻗친 능선이 명지지맥이다. 명지지맥은 귀목고개를 지나 1,199m봉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북동쪽으로 향하는 능선은 명지산(1,253m)과 백둔봉(974m)을 이룬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명지지맥은 아재비고개를 지나 연인산(1,068m)~우정고개(전패고개)~매봉~깃대봉~약수봉~대금산~봉화산~수리재~불기산으로 이어지다 빗고개를 지나 주발봉(489.2m)을 들어올린 후 계속 남쪽으로 이어져 호명산(虎鳴山·632m)에서 마지막으로 솟구치고 난 후 북한강과 조종천의 합수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북한강으로 사그라지는 명지지맥 마지막 구간
명지지맥은 대개 가평군 조종면 하판리의 노채고개부터 시작해 3~4구간으로 나눠 종주한다. 어떻게 구간을 나누건 마지막 구간은 빗고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불기산에서 내려와 옛 빗고개 구도로를 만나기 때문이다. 이번엔 명지지맥 마지막 구간이라 할 수 있는 빗고개~주발봉~호명호~호명산~청평역까지를 걸었다.
산행을 함께한 이들은 아띠어린이산악회(cafe.daum.net/kidtrekking) 김종오 대장과 유병택씨다. 이들은 남양주 마석산악회 회원으로 명지지맥을 잘 알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청평면과 가평군 사이 46번국도 상에 있는 빗고개 구도로다. 지도상에서는 사이클테마공원 자리다.
빗고개는 지도에는 빚고개, 빛고개 등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빛고개를 한자로 쓰면 색현(色峴)이니 빛고개가 맞는 것도 같고 ‘높은 언덕을 빗겨 넘는 고개’라는 유래를 보면 빗고개가 맞는 것도 같다.
빗고개 공터 한쪽에 주발봉 등산로 이정표가 있다. 통나무 계단을 올라 산길로 접어든다. 송전탑을 지나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오솔길을 걷는다. 등산로가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어 마치 산책을 즐기는 기분이다. 오른쪽으로는 한 종교단체가 소유한 으리으리한 건물과 운동장이 보인다.
오솔길은 잠시 도로와 만나고 나무데크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 주발봉까지는 900m 남짓,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밧줄 난간을 잡고 올라서면 빗고개 출발 1시간 30여 분 만에 첫 번째 봉우리인 주발봉에 선다.
“놋쇠로 만든 그릇을 주발이라고 해요. 그 주발을 엎어 놓은 것 같이 생겼다고 해서 주발봉이라 불러요.”
불기산과 호명산 사이에 끼어 있는 주발봉은 호명산의 유명세에 밀려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0년에 경춘선 복선전철이 개통되고 남동쪽에 상천역이 생기면서 주발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개설하고 정상엔 나무데크 전망대로 만들었다. 덕분에 이제 전철을 타고 상천역으로 와 주발봉을 오르는 등산객이 꽤 많다.
주발봉 정상엔 잡목이 많아 사방으로 조망이 트이진 않지만 전망대에 서면 남이섬과 어우러진 북한강 풍광과 화악산 쪽을 조망할 수 있다. 우리가 걷는 명지지맥 구간 안내도도 있다. 이 안내도 상의 출발지는 가평역이다. 이 코스는 가평올레 6코스이기도 하다. 가평군이 올레길을 조성하면서 상당히 공을 들여 주발봉과 호명산 등산로를 이었다. 덕분에 지맥길 치고는 등산로가 매우 잘되어 있고 걷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주발봉을 지나 계속 지맥을 잇는다. 다음 목적지는 발전소고개다. 주발봉에서 2.2km 거리다. 헬기장을 지나고 숲길과 넓은 능선길이 나온다. 가끔 가평올레길 6코스 이정표도 보인다. 경사가 심하지 않는 그야말로 ‘올레길’ 수준의 한적한 숲길이다.
“여기 나무들 봐요. 거의 땅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자랐죠? 저절로 이렇게 된 게 아니고 옛날에 땔감 하느라 나무를 잘라서 이런 거예요. 옛날에 나무밖에 더 땔 것이 있었나. 산에 있는 나무를 다 베어 갔지.”
그러고 보니 나무가 밑에서부터 두세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다. 그것도 한두 그루가 아니다. 마치 고사리를 보는 듯하다. 과거 ‘벌거숭이 산’이었던 시절을 보지는 못했으나 지금 이곳의 나무들이 그때의 흔적을 고스란히 몸으로 남겨놓고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산은 얼마나 좋아진 것인지.
발전소고개로 내려온다. 도로 맞은편엔 사이클대회 기념탑과 오른쪽으로 2층짜리 정자쉼터가 있다. 상천역 부근부터 해발 410m에 이르기까지 가파르게 올라오는 도로는 한눈에 봐도 사이클 대회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인다. 이 도로는 복장리로 내려가 북한강 옆 75번국도와 만난다. 발전소고개는 예전엔 ‘큰골고개’로 불렸으나 복장리에 청평양수발전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바뀌었다.
정자에 앉아 간식을 먹은 후 기념탑 뒤 나무계단을 오르며 다시 길을 잇는다. 다음 목적지는 호명호수다. 가평올레길 이정표는 명지지맥 이정표 역할도 함께한다. 발전소고개부터 호명호수까지는 1.5km, 호명산 정상까지는 6.6km다.
호수까지는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잡목이 우거진 길에서 북한강이 언뜻 보인다. 하늘은 파랗지만 바람이 없는 탓에 가스가 껴 시야가 그다지 좋진 않다. 앞에 송신탑이 보이면 호명호에 거의 도착한 것이다.
597.4봉 헬기장을 지나면 호명호 건립희생자 위령탑이 보이고 바로 앞으로 호수로 내려가는 계단(안내소 방향)이 보인다. 직진해서 홍보관을 지나 길을 이어도 되지만 이왕이면 호수를 둘러보며 가는 편이 낫다. 어차피 지맥을 이으려면 장자터고개에서 만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식 발전소 호명호
호명호는 1980년 우리나라 최초이자 동양에서 두 번째로 건립한 양수식 발전소다. 호명산 자락에 내려앉은 호명호는 하늘에서 보면 백두산 천지를 꼭 닮았다고 한다. 덕분에 호명호는 가평8경 중 제2경으로 꼽힌다.
“심야전기로 아래쪽 저수지 물을 끌어 올려놓았다가 전력사용이 많은 시간에 물을 내려 보내 전기를 생산하지요. 아래쪽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올릴 때 물고기도 딸려 올라온다고 해요. 그래서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인데도 물고기가 살아요.”
호수 가운데에는 오리와 거북이 동상이 떠 있고 수변도로에는 각종 들꽃들이 피어 봄에는 꽃놀이하기 좋은 곳으로,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데이트 코스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호수를 반 바퀴 돌아 호명호 글씨가 새겨진 비석을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장자터고개 방향이고 직진하면 상천역으로 하산하는 길(3.8km)이다.
장자터고개 쉼터 맞은편 화장실 오른쪽에 지맥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 있다. 호명산 정상까지는 3.6km, 청평역까지는 6.2km 거리다. 이제 호명산 정상까지 꾸준히 올라선다.
가는 도중 철망 펜스가 있으나 문을 열어두어 진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이제부터 평범했던 육산엔 조금씩 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40분 정도 능선을 지나면 기차봉(619m)에 닿는다. 이정표가 없으면 그냥 지나쳐갈 만한 작은 봉우리다.
“주발봉은 주발을 닮아서 생긴 이름이지만 기차봉은 그렇지 않아요. 옛날에는 호랑이 아가리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아갈바위봉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서면 경춘선을 오가는 기차가 보인다고 해서 지금은 기차봉이라고 더 많이 부르죠.”
호랑이가 많아 그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려와서 호명산(범울산)이란 이름이 붙은 만큼 이 주변 바위나 마을에도 호랑이와 관련된 이름이 많다. 아갈바위봉도 마찬가지고 호명리에서 장자터고개까지의 계곡 이름은 ‘범울이계곡’이다. 호명리란 마을 이름도 원래는 ‘범우리’였다고 한다. 이제는 최신식 ITX청춘열차가 하루에 몇 번이고 오가는 흔한 풍경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꽤 쏠쏠한 볼거리였으리라.
기차봉에서 호명산 정상까지는 1.6km 거리다. 이제까지 11km가 넘는 거리를 걸었지만 의외로 힘이 들지 않았다. 명지지맥 마지막 구간은 간혹 가파른 경사가 있지만 대체로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지고 중간에 호명호수 같은 볼거리도 있어 지루하지 않은 덕분이다.
기차봉을 지나 나무계단을 내려오자 등산객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마침 점심시간 때라 길을 벗어난 공터에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다. 도시락 반찬에 싱싱한 봄나물들이 많이 보이는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보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 드디어 호명산 정상에 선다. 헬기장이기도 한 정상에 서 뒤돌아보니 그동안 빗고개에서 시작한 지맥뿐만 아니라 불기산까지도 시원스럽게 조망된다. 남쪽 아래로는 청평호반이 유유히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는 청평댐을 건너 화야산의 뾰루봉과 용문산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조종천이 흐르는 청평 시내의 모습이, 서북쪽으로는 깃대봉과 축령산, 서리산이 겹겹이 조망된다. 북쪽으로는 청우산과 대금산이 지척이고 그 뒤로는 명지산과 화악산 등 경기도의 고봉들이 펼쳐져 있다.
“백패킹 하는 사람들이 호명산을 자주 찾습니다. 전철역과 가깝고 조망도 볼만하고 공간도 넓으니까요. 아래쪽에 청평댐 전망대가 있으니 그리로 가 봅시다.”
김 대장의 말에 따라 정상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니 나무데크 전망대가 있다. 청평댐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다. 첩첩산중 사이를 이리저리 뚫고 내려온 강줄기를 막은 청평댐이 저 멀리 보인다. 강변을 내달리는 자동차는 장난감처럼 느껴진다. 날씨는 좋지만 다소 가스가 낀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청평역으로 하산하면 전철 이용 편리
전망대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이내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여기서 하산길은 두 갈래로 갈린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청평공고 쪽으로 내려가고, 오른쪽은 청평역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맥을 조금이라도 더 이으려면 청평공고 쪽으로 하산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지맥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교통이 편리한 청평역으로 하산하는 것이 편하다. 더구나 조종천을 만나는 명지지맥의 끄트머리는 현재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어서 출입할 수 없다. 청평역으로 내려가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고 판단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을 다 내려와 조종천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명지지맥 마지막 구간 답사를 마친다. GPS상 거리는 14.72km, 다소 긴 거리 치고는 상당히 수월하게 산행을 마친 기분이다. 호명산의 호랑이 기운을 받아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평올레로 조성해 많은 사람이 다니는 지맥길이 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걷기 좋고 볼거리 많은 지맥길을 산꾼들만 알고 있었더라면 많이 섭섭할 뻔했다.
명지지맥
빗고개~주발봉~호명호~호명산~청평역 경기 가평군
산행 거리
약 14.7km 산행 시간
약 6시간 20분 산행 난이도
중하(주발봉, 호명산 직전이 조금 힘듦)
산행길잡이
들머리인 먹치고개에서는 우선 ‘맨윗집, 들머리인 빗고개는 46번국도 상천1리 마을회관에서 구도로로 가야 한다. 잘 모르겠으면 내비게이션에 ‘사이클테마공원(가평읍 상색리)’으로 검색하면 된다. 공터가 넓어 주차하기 편하다. 공터에 설치된 주발봉 등산로 이정표를 따르면 오른쪽에 종교단체 시설을 두고 계속 올라가 주발봉에 닿는다. 주발봉부터 시작되는 능선도 가평올레인 만큼 길이 매우 좋다. 길이 복잡하지 않고 이정표도 잘 되어 있다.
발전소고개에서 도로를 건너 기념탑 뒤 나무계단으로 길을 잇는다. 호명호에서는 직진해서 홍보관 쪽으로 능선을 이어도 되지만 이왕이면 오른쪽 안내소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서서 호수를 둘러보기를 권한다. 호수 둘레에 화장실과 매점이 있다.
호명호 장자터고개에서 능선을 이으면 호명산 정상이다. 호명산 정상에서 청평역 쪽으로 하산하다 보면 운동기구가 있는 곳에서 길이 갈린다. 왼쪽은 청평공고 방향이고 오른쪽은 청평역 방향이다. 청평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조종천 징검다리를 건너 청평유원지로 하산한다. 청평역이 지척이다.
교통
상봉역에서 상천역까지 오전 5시 10분부터 오후 11시 8분까지 20분 간격으로 경춘선 고속전철이 운행한다. 단, 급행열차는 청평역이나 상천역에 정차하지 않으니 주의할 것. 상천역에서 빗고개까지는 1330-2번 버스와 33-3번 버스를 이용하면 되지만 환승 후 제법 긴 거리를 걸어야 하는 등 상당히 번거롭다. 상천역에서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약 7분 거리에 5,000원 안팎의 요금이 나온다. 청평택시 031-584-1183, 개인택시영업소 031-584-1265.
자가용으로는 서울춘천고속도로 화도나들목으로 나와 창현교차로에서 ‘덕소, 월문, 수동, 마석’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46번국도를 타고 직진, 상천에덴유스호스텔까지 간다. 웨딩홀을 지나 곧바로 오른쪽 구도로로 올라가면 펜션을 지나 왼쪽에 넓은 공터가 보인다. 이곳이 사이클테마공원이다.
숙식(지역번호 031)
청평역과 상천리 일대에 숙소와 식당이 많다. 청평역 부근에 청평호반닭갈비(585-5921), 쌈밥정식 전문 밤나무집(585-9966), 한식 전문 옹기마을(584-8963), 양념 소갈비살 화로구이 전문점 사랑채소갈비살(584-2378) 등이 있다. 상천역 부근에는 두부전골, 청국장, 백숙 등의 메뉴가 있는 함지박식당(584-9767), 닭갈비 전문 가온길식당(584-949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