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 위 형제는
용감했다.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한 김영주,김찬주 형제를 찾아서
글<성기애(여성시대 작가)>
(mbc라디오 양희은.강석우가 진행하는 월간여성시대에서 옮겨습니다.)
온몬으로 자전거 바퀴를 굴려 대한민국 국토종주를 감행한 형제가 있다.
형은 이제 중학교 3학년,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인천서해갑문에서 출발하여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총633km를 7박8일 동안 완주했다. 이 용감한 형제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등에 지고 바람을 가르고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우리 강산을 품에 안았다.
김영주,김찬주“용감한”형제가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하게 된 건 아빠 김문영 씨의 권유였다.
경기도 안양에서‘192cm'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평소 귀가 시간이 늦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니 아이들에게 늘 미안했다.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주말 미션을 내주기 시작했다.
살고 있는 경기도 안양을 출발해 서울이나 수도권에 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서울 광화문에 가서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사진 찍고 오기,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 다녀오기 등등 매주 미션을 달리했다. 처음엔 일정한 장소에 가서 사진만 찍어왔는데, 요즘은 가기 전에 그곳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현장에 거서 알아낸 것들과 다녀와서의 느낌을 공책에 적고 있다. 차근차근 주말미션을 수행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빠는 올해부터 방학미션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방학미션으로 자전거 국토종주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아빠의 말에 형제는 손사래를 치며 한목소리로“싫어요”를 외쳤다. 힘들고 고단한 생고생을 굳이 사서 하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아이들이 싫다고 해서 물러날 아빠가 아니었다. 적절히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 아이들과의 협상을 이끌어냈다. 협상의 조건은 아빠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큰아들에게 물러주고, 큰아들이 쓰는 휴대폰을 작은 아들에게 물려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7월27일 인천서해갑문을 시작으로 종주 길에 나섰다. 한강을 거쳐 팔당대교를 지나 충주탄금대에 이어 문경새재
이화령을 넘어 대구 달성보를 지나 부산 낙동강 하굿둑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갈아입을 옷 한 벌씩과 지도를 챙긴 아이들은 신밧드처럼 자전거를 나는 양탄자 삼아 바람을 가르며 여린 종아리를 끌고 길을 나섰다.
엄마 권상미 씨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어린 아이들이 정말 잘해낼 수 있을까, 더운 여름날 더위를 먹지나 않을지, 옷은 제대로 갈아입을지, 돈이나 카드 관리를 잘할지,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지...
아이들은 하루 평균 80km를 달렸다. 지도를 꼼꼼히 보며 길을 찾고, 중간 중간 사진을 찍어 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인증샷도 보냈다. 허벅지가 터질 듯 아팠지만 길위에 달랑 형제뿐이었으니 마음을 합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형 영주는 동생 찬주의 상태를 찬찬히 살피며 달린 거리를 조절하고 음식점을 찾아내고, 저녁이면 적당한 숙방업소를 찾는 일을 했다. 동생은 자전거의 상태를 살피는 역할을 도맡아했다.
여행이 시작이 되자 둘은 집에서 보던 형제가 아니었다. 어린 동생을 살뜰하게 살피는 형은 집에서의 형보다 친절했다. 또 길을 나서며 형의 말을 유순하게 따르는 동생은 집에서의 그 떼쟁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마음을 잘 맞추어 앞으로 나아가던 형제에게 고비도 있었다. 이화령을 넘으면서였다. 자전거 길이 강을 타고 수굿하게 나아가던 지형에서 이화령의 험준한 고개를 지나 산을 넘어야 하는 구간이었다. 한순간이었다. 힘들게 산을 넘던 동생이 내려 자전거를 던져버렸다. 형은 눈앞에 일어난 일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너무 힘들고 지친 동생은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허벅지는 터질 듯 아팠다. 심장에서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그렇게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한동안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보니 제대로 생각이 돌아왔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호흡이 가라앉으니 날카롭게 곤두서있던 신경도 가라앉았다. 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전거 여행이 무산 위기를 넘기고 국토종주가 이어졌다.
이화령을 지나 부리나케 전진하는 도중 목적지인 부산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예보가 들려왔다. 걱정이 된 엄마 아빠는 부산 일정을 조절하고 하루 정도 쉬었다가 마무리를 하라고 일렀다. 하지만“해보겠다”는 아이들의 의지가 더 강했다. 그들은 우비를 입고 비바람을 뚫고 목적지인 낙동강 하굿둑에 예정대로 닿았다.
하굿둑에 도착한 아이들이 전화로 엄마 아빠에게 완주 소식을 알려왔다. 부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하게 맺혔다.“우리 아이들이 해냈다.”는 자랑스러운 눈물이었다. 모든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안양에 도착한 아이들은 대견하고 고마웠다. 마음의 키가 한 뼘은 자랐을 아이들 보며 뿌듯했다.
그리고 앞으로‘형제여행’을 자주 시켜야겠다고 부부는 속다짐을 했다. 이번 겨울방학엔 또 어떤 미션을 주어야 하나, 부부는 마음분주하게 이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을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는 이렇게 힘든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입으로는 말을 하지만 벌써부터 겨울방학 미션응은근히 기다리는 눈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시해진다는 뜻이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는데 아빠 김문영 씨는 아이들이 시시해지기 전에 더 많은 세상을 보여 주고 경험하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가족 평균키가 180cm가 넘는 이 가족들의 키는 앞으로 얼마나 더 무럭무럭 클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