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에펨코리아 쌔빔
일단 트위터 영상을 보자
개막식에 참가한 알제리 선수단이 센강에서 뜬금없이 붉은 장미를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꽃을 던지며 알제리 만세라고 한다)
이들은 왜 이런 행위를 했던 걸까?
잠깐 시계를 1961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알제리는 프랑스에 식민지배를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알제리는 프랑스와 54년부터 7년째 전쟁 중이었다. (알제리 전쟁)
그리고 알제리에는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라는 정당이 있었는데
이들은 알제리 전쟁에서의 프랑스가 저지른 학살에 항의하며 경찰 1명을 사살하고 17명을 부상입혔다.
그러자 당시 파리 지역 경찰서장이었던 모리스 파퐁은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린다.
- 알제리계 이슬람 노동자
- 프랑스 이슬람계
- 알제리령 프랑스 이슬람계
위에 속하는 자들은 파리와 그 일대(교외) 지역에서 통금 시간을 갖는다.
시간은 20시 30분부터 05시 30분까지.
당시 파리에는 15만명의 알제리인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프랑스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이었다.
사학자 장 뤽 에이나우디에 따르면 이에 항의하여 15만명 중 3만에서 4만이나 되는(!) 알제리계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비폭력' 시위를 진행했다.
그러자 파리 경찰들은 시위대를
조지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평등하게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곤봉, 개머리판 등을 이용해 시위대의 머리를 구타했으며 권총, 기관총을 발포했으며 케이블로 목을 조르기도 했다.
약 11,000명 정도의 알제리 시민들이 경찰서, 파리돔, 농구 경기장 등에 구금되었다.
그리고 약 200에서 300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시위대들 중 몇십명은 센 강에 버려졌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손과 발이 묶인 채, 절단된채로 발견된다.
생미셸 다리에 써진 그래피티. Ici on noie les Algériens.
뜻은 '우리는 이곳에서 알제리 사람들을 익사시켰다.'
시위 '진압' 후 경찰에서는 2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 후 36년 후인 1997년, 프랑스 정부에서는 학살이 있었으며 40명이 사망했음을 시인했다.
(자료에 따라 최소 40, 최대 300명 사망으로 갈린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알제리 선수단은 본인들의 선조가 비참한 죽음을 당했던 그곳에서 억지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평화적으로, 선진적으로' 알제리 선수단은 그 장소에서 헌화를 했다.
알제리 선수단의 선전과 당시 학살에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아 마음아파...
마음아파..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