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 한 잔 드시고 가시게...
이외수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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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痛에 대한 짧은 생각
바람끝이 야물게 시린 무자년 정월 어느 날. 충북 음성에 업무차 내려왔다가 점심이나 하고 올라갈까 생각하니 일죽 부근의 서일농원이 생각났다. 그곳은 슬로우푸드 음식점으로 삭혀야만 제맛이 나는 우리나라의 전통 장과 장아찌류를 만들어 판매도 하고 또 그 재료로 한정식을 판매하는 곳이다. 맞은 편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엔 눈밭을 걸어간 발자국이 여여로운 그림이 걸려 있고, 옹기그릇에 담긴 음식이 맛깔스러워 간혹 입맛을 다시게 하는 집이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낯익은 장독대를 찾아 인사를 나누었다. 낮은 담장을 타고 오르는 늙은 담쟁이 사이로 세월은 흐르고,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은 기억은 눈부신데 1월의 햇살은 거침없이 쏟아져 중심잡기가 어렵다. 흔들리는 피사체에 집중을 해보려 하지만 더욱 어지러울 뿐이다. 가만히 담장을 짚고 서서 마음을 다잡는데 생각없던 눈물이 와락 흘러내린다.
갑자기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마음을 흔드는 것 중 요즘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고통에 대한 기억중 몇가지가 떠올랐다. 흘러내린 눈물은 1월의 찬바람 때문이겠지만, 물리적인 힘이 가해진것도 아닌데 지난 몇달간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밥맛까지 잃어버린데다, 잠 마저도 허락하지 않던 시간이 떠올랐다. 이유도 없이 마음을 어느곳에 두고 왔는지 아무리 뒤돌아가도 찾을수가 없었던 그 시간속에 나를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나만 챙기지도 못하면서 힘들어 했던 아픔들이 떠올랐다. 결혼하고,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온지 13년을 돌아보니 80 가까운 나이에 해남에 혼자 계신 친정어머니, 막내딸 이뻐하던 친정아버지의 빈자리 8년, 마흔에 얻은 늦은 자식과의 고군분투, 영업사원으로 살고있는 직장생활 10년의 후유증, 아스라한 젊음의 뒤안길에 있는 몇몇 그리운 사람들, 언제나 나를 지켜주겠다고 장담하던 약속, 한가지 기쁨을 위해 수만가지 고통을 선택하겠다던 뱉어버린 말 한마디 등등
특히 사람과의 인연은 기쁨과 슬픔을 동반하여 오는지라 더욱 특별하다. 최근 맺은 인연중 생각을 깊게하고 나를 돌아보게한 인연이 있다. 이분과의 인연은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졌고 나는 아직도 그분을 뵌 적이 없고 연락처도 메일 주소 밖에 모른다. 인연이 맺어지게 된데는 늦둥이 아들 녀석 때문인데 직장을 다니는 나로써는 마땅히 해줄게 없는지라 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올려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우리 아이 사진을 보고 사주를 알려줄 수 있겠느냐 물어온 것이다. 그분의 블러그에 가보니 몇년째 운영되는걸로 봐서 뜨내기는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돈을 달라는것도 아니고 밑져야 본전이겠다 싶어 알려드렸다. 며칠 있다가 메일이 왔는데 아이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주소를 알려주면 선물까지 주겠다고 했다. 어찌되었건 선물까지 받고 나서 너무 염치가 없는것 같아 밥이라도 한끼 사고 싶다 답장을 보냈더니 그분께서 밥은 되었고 생각했던 만큼의 금액으로 불우이웃돕기를 해달라 하는것이다. 일단은 그러마고 약속을 했고, 며칠 뒤 내가 나가는 절집에 들러 후원할 곳을 찾아달라하였더니 강북장애인단체를 소개 받았다. 종무소 직원은 전화까지 친절하게 연결시켜 주었는데, 그쪽 단체의 여직원은 아주 사무적으로 내 계좌번호와 후원할 금액 그리고 후원할 사람 이름을 묻더니 다음달부터 매달 금액이 빠져나갈것이라고 알려주곤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끊어진 전화의 기계음 소리에 난 그때 순간적으로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화가 났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친절하지 않은 사무적인 전화내용과 함께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뚝 끊어버린 행동에 아마 화가 났지 않았는가 싶다. 그렇다고 돌아보니 특별하게 불친절했던것도 아닌데 무엇이 이렇게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들여다 보니 결국은 내마음의 옹졸함에서 나온것이었다. 매월 작은 후원금을 내면서 그 직원한테라도 감사하다는 이야길 듣고 싶은 욕심이 내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후원금은 이미 값어치를 치뤄야할 당연한 금액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나는 고맙단 이야길 듣고 싶었던 것이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불가에서는 고통을,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요, 보기 싫은 사람을 보고 살아야 하는것도 고통이라 하였다. 어쩜 그리 정곡을 찌르는 말 한마디인가? 화가 났던것도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그 마음 깊은 곳엔 나의 욕심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스스로를 고통으로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고통스러웠던 내 마음에서 자유롭게 털고 나올수 있었다. 그리고 인연이 닿았던 그 분과 꼭 밥 한끼 나누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물론 내가 원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하여 그 질기다는 인연의 끝이 허물어지는것도 아닌것을 안다. 사람은 만나면 모두 헤어지게 된다 하였다. 그런데 그런 헤어짐으로 인해 당장의 아픔 그것만이 정답이고 진실인양 나는 스스로 가슴을 아프게 후벼파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눈이 멀고, 마음이 멀어 진실을 바라보아야 할 때 놓치지는 않았는지, 살아가는 일이 허무하다고 느껴질때도 돌아보면 마음이 여여롭질 못했고, 인생 최고의 기쁨을 가졌다고 느꼈을 때도 결국은 마음 한자락 어느 곳에 두느냐의 차이였다.
곰삭아야만 제 맛이 나는 이집의 음식처럼 시간이 흘러 깊은 향이 우러나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나는 또 얼마나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 단지 묵묵한 모습으로 제 길을 열심히 가는것 그것만 생각할 뿐이다. 힘들고 지쳐버려 쓰러진 마음 일으켜 세우기도 힘든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그 순간은 지나갔고 나는 다시 이자리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힘든 때는 반드시 또 올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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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아기부처님,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지요? 보고 싶답니다 가끔씩 사진좀 올려주셔요,,,,,
덕분에 잘크고 있습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香泉님구부처님은 잘 지내고 있지요이케웃음이 나올때까지,,2탄 기다려도 될까요 많이 보고싶네요,,,
감사드립니다. 기다려주시는지는 몰랐습니다. 자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향기님 강북장애인이라시면 울동네인데..혹 이 근처 사시나봐요..전 부처님께서 기대심리로부터 오는 고통을 느끼지 말라고 무주상을 말씀하셧다는 생각을 종종합니다....저도 사진 보면서 참 잘찍으시는구나 하면서 부러워했는데..언제 한수 배우고싶어요.()
다경님 저는 송파에 삽니다. 강북장애인 단체는 어딘지 모르고 후원금만 조금씩 내기로 한것이지요 혹 잠실쪽 오실 잇으시면 차나 한잔 나누시지요^^*
香泉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거사님이신 줄로 짐작하고 있었답니다. 우리들은 고향을 두고 왜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도 십 몇 년전에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혹시 제가 서울로 이사오지 않았다면 우리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을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오래 오래 괴로웠답니다.
수경심님 그래서 회자정리라 하엿겠지요 누구건 만나면헤어져야 하는것이 이치인것을요. 이제 마흔줄 넘으니 순응하며 사는것에 겨우 매리게 되었습니다. 좋은 인연일수록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