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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북중고40 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月雲 백일천
코로나와 같이 살기로 작심한 유럽 종횡무진, 45일간 여행기! (上) “팬데믹으로 우울증세라고요? 의사가 처방한 약은 이탈리아랍니다.” 趙甲濟 *네덜란드에선 마스크를 쓰면 눈치가 보인다. *히틀러가 나폴레옹 석관을 내려다 본 곳에서 *왜 벨기에는 세계사의 결전장이 되었나?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통치했던 카를 5세의 숨결 *17세기 네덜란드의 해양정신과 만난 李承晩 45일 만의 귀국, 수동감시 대상으로 나는 지난 7월18일 출국,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작은딸 집을 캠프로 삼아 유럽 여기저기를 45일간 돌아다니다가 9월2일 핀에어 A350-900을 타고 오전 7시30분 인천공항에 내렸다. 출발 48시간 전에 브뤼셀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확인서(PCR)를 쥐었고, 출국 전 화이자 2차 접종을 끝낸 뒤 동사무소에서 발급받은 영문 예방접종증명서(질병관리청장 발행, Certificate of Immunization)을 갖고 있어 무사통과될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 전에 ‘국내예방접종완료자 대상 수동감시’를 통보 받았다. 공항직원이 휴대전화에 수동감시 앱을 깔아주곤 오늘 중에 구청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고 집에서 격리상태로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음성판정이 나면 그때 앱을 삭제하고, 자율적으로 활동하다가 입국일로부터 6~7일차에 한 번 더 검사받아야 하고(안 받으면 자가격리로 전환) 입국일로부터 14일이 지나야 수동감시 해제를 한다는 지침을 받았다. 나는 바로 보건소에 가서 검사했고 다음날 오전 음성판정을 통보받았다. 벨기에서 EU 소속인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스위스로 여행했지만 입국 검문 자체를 받은 적이 없었던 게 습관이 되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휩쓸고 있는 유럽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친구들은 나를 무슨 대항해 시절의 모험가처럼 부러워하기도 한다. 8개월 전에 떠난 외손자와 외손녀에 이끌려 모험적 여행을 한 셈인데, ‘희귀체험’이 되었으므로 여행기 겸 안내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시트 벨트를 매라’는 표시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브뤼셀로 가는 직항로는 없다. 나는 헬싱키를 경유하는 핀에어(Finnair)를 예약했다.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비행시간이 8시간30분, 여기서 약 2시간 쉰 다음 브뤼셀로 비행하는 데 2시간30분이 걸린다. 총 비행시간은 파리나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것과 비슷하지만 잘라서 가면 경유지 구경도 하고 덜 지루하다. 출발 며칠 전 항공사에서 휴대전화로 벨기에 연방정부에 제출하는 입국서류 양식(Public Health Passenger Locator Form)을 보내주었다. 인터넷으로 작성, 송신하면 되는데 백신접종증명서(Vaccination certificate)와 음성증명서(Negative test certificate)를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주어야 한다. 나는 출발 열이틀 전 동사무소에 가서 질병관리청장 명의의 영문 ‘예방접종증명서(Certificate of Immunization)’를 세 장 발급받았다(유럽에 가서 다른 나라를 여행할 경우에 대비). 출국 3일 전 강북삼성병원에서 검사, 다음날 영문 음성확인서를 발급받았다. 이 두 장의 서류는 여권에 늘 끼워 넣고 다녀야 한다. 7월18일 한산한 인천공항에서의 출국심사는 45일 뒤의 입국심사에 비교하면 간단했다. 오전 10시20분에 이륙한 핀에어 A350-900는 어림짐작으로 60% 정도의 좌석 점유율을 보였다(귀국 편은 20% 정도). 비행기는 중국-몽골-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 북쪽을 지나 헬싱키까지 날아갔다. 비행시간 동안 ‘좌석벨트를 매라’는 표시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귀국편도 그랬다). 더 놀라운 사실은 비행고도가 점점 상승하더니 4만 피트를 넘긴 점이었다. 보통 여객기의 순항고도가 3만 피트 정도인데.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기장이 난기류를 피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면서 비행기 동체가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에어버스가 주력기종으로 2013년부터 팔고 있는 A350-900은 대당 가격이 3억1120만 달러이다. 약 3500억 원, 큰 공장 값이다. 취항한 세계 여객기 중 항속거리(최장 1만8000km), 체공시간(최장 20시간)이 가장 길다. 길이 67m, 날개폭 65m에 최대이륙무게가 280t이고 325명까지 태운다. 비행기는 뜰 때 가장 무겁다. 이륙 직후 사고가 생겨 다시 착륙하려면 기름을 버려 착륙가능무게(A350의 경우 207t)까지 줄여야 한다. 에어버스는 A350을 915대 주문받아 438대를 인도했다. 판매가격 누계가 1200억 달러를 넘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비행기의 장점은 고도를 4만3100피트까지 올릴 수 있어 난기류를 피한다는 점이다. 구름은 3만6000피트 이상에선 형성되지 않아 비행기가 흔들릴 가능성이 줄어든다. 4만 피트 이상까지 올라가도 기체 내의 기압은 5000~6000피트의 상태로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 핀에어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오래된 항공사 중 하나이다. 전투기는 보통 5만 피트까지 올라간다. 지금은 퇴역한 콩코드는 순항고도 6만 피트에서 음속의 두 배로 비행했었다. ‘검은 새’로 불렸던 스파이 비행기 SR 71은 9만 피트에서 음속 세 배로 날았다. 북한지역 상공을 종횡무진으로 누비기도 했다. 고도를 높이면 대체로 기름도 적게 든다. 코로나와 같이 살기로 작심한 나라들 헬싱키 공항은 유럽의 대표적인 허브공항 중 하나인데 7월18일은 떠나온 인천공항처럼 한산했다. 문을 닫은 상점이 많았다. EU로 들어가는 첫 공항이므로 여기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체온 측정도 없이 음성확인서, 접종증명서, 여권을 확인하고 입국허가를 해주었다. 두 시간 반을 더 날아 브뤼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입국심사를 할 필요가 없어 바로 짐을 찾아 나왔다. 브뤼셀 공항은 인천, 헬싱키와는 딴판으로 북적댔다. 이 공항은 짐을 찾는 곳이 별도 건물에 있어 많이 걸어야 한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베네룩스라고 약칭(略稱)하는데 영어권에선 ‘저지대 국가(Low countries)’라고 불렀다. 이 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은 벨기에 남쪽 아르덴느 지방에 있는데 해발 694m이다. 산 같은 산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이들 나라 출신 유명 등반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브뤼셀엔 EU 집행부와 NATO 사령부가 있어 EU의 사실상 수도 역할을 한다. 16세기 ‘해가 지지 않은 제국’을 다스렸던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가 브뤼셀에 왕궁을 정하고 사실상 수도로 삼았던 적이 있다. 브뤼셀은 숲의 도시이다. 울창한 숲길과 공원이 도심 이곳저곳에 있다. 벨기에 북부는 플랑더르 지역으로 네덜란드어권, 남부는 프랑스어권인데 여기에 유명한 아르덴느 숲지대가 펼쳐져 있다. 1940년 프랑스군은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좋은 탱크 방어선이라고 오판, 약한 군대를 배치했었다. 나치 독일군은 1800대에 이르는 전차군단으로 아르덴느 숲지대를 50여 시간 만에 돌파, 프랑스의 스당을 기습, 뮤즈강을 건너 영불(英佛)연합군의 배후를 차단, 포위, 섬멸go 6주만에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때 독일군 장병은 필로폰을 먹고 흥분상태에서 잠도 안 자고 야수처럼 싸웠다. 벨기에는 인구(약 1100만)의 약 10%가 코로나 확진자이고 2만5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인구비율로는 한국 사망률의 50배이다. 백신접종 완료율은 한국의 세 배가 넘는 71%. 이걸 믿고 코로나와 같이 살아가기로 결심한 나라이다. 상점과 음식점의 영업은 인원제한 없이 자유롭다. 실외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다. 우버 택시를 탔더니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고 과잉 친절을 베푸는 운전자도 만났다. 학교, 버스, 기차 같은 공공장소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 미술관, 왕궁, 성당 등도 열려 관람객을 받는다. 정부는 신규 확진자 수(하루에 수만 명을 기록하기도)를 매일 발표하지 않은 것 같았으며 국민의 관심도 별로였다. 나는 브뤼셀을 근거지로 삼아 벨기에의 겐트, 안트워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프랑스의 파리, 스당, 샤를르빌-메지에르, 스트라스부르그, 룩셈부르크, 스위스의 루체른, 융프라우 지역을 여행했다. 보통 때 같으면 여행객으로 붐빌 터인데 한산했다. 특히 파리가 그랬다. 번화가의 상점이 문을 닫고 콩코드 광장과 앵발리드 앞 정원이 텅 비어 있는 장면은 초현실적이기도 했다.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좋기는 했다. 브뤼셀 공항의 전광판 광고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팬데믹으로 우울증세라고요? 의사가 처방한 약은 이탈리아랍니다.” 그래도 스위스가 마스크 칙용율이 가장 높았고 네덜란드가 가장 낮았다(거의 全無). 한국 관광객을 환영하는 네덜란드 네덜란드 정부의 입국 안내 홈페이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코로나 전염 상태가 네덜란드와 비슷하거나 낮은 나라 사람들은 음성확인서와 백신접종증명서를 가지면 입국할 수 있습니다. 상점, 식당, 위락시설, 문화시설 등 거의 모든 장소는 개방되어 있습니다. 공공교통 수단, 기차역, 버스 정류장, 공항, 비행기 안에선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네덜란드로 오세요. 평화롭게 휴식하고 아름다운 해변과 자연 속에서 여름 햇살을 즐기고, 도시에선 역동적 예술과 문화의 영감을 맛보세요.> 홈페이지엔 EU 및 솅겐조약 국가가 아니지만 아래 33개국은 코로나 대응을 잘하므로 입국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 일본, 우크라이나, 싱가포르, 뉴질란드, 호주, 이스라엘, 대만, 홍콩, 마카오, 세르비아, 레바논, 요르단, 사우디, 캐나다 등이다. 인구 약 1800만 명인 네덜란드는 국민의 약 10%가 확진자였고, 사망자는 약 1만8000명으로 인구대비 한국의 스무 배가 넘는데도 그렇게 여유로웠다. 네덜란드에선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호텔과 식당의 종업원 정도였다. 저녁에 들린 음식점은 손님으로 바글바글했는데 한 식탁에선 10여 명이 마스크 없이 붙어 앉아 떠들어댔다. 해양박물관, 고흐미술관도 붐볐지만 마스크 착용 여부나 발열검사를 하지 않았다. 안락사, 매춘, 마리화나까지 합법화하는 등 개인의 자유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나라다웠다. 코로나도 건강 문제이므로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율과 책임하에 행동해야 한다는 자세로 느껴졌다. 마스크를 쓰면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프랑스군 대대 한국전 참전 기념비 나는 고속열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가서 신용석(愼鏞碩) 조선일보 전 주불(駐佛)특파원과 만나 3일간 돌아다녔다. 브뤼셀~파리(北驛)는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서울~대전 거리이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전원(田園), 목장, 들판이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격전장들을 지나갔다. 브뤼셀에서 파리 방향의 이 평지는 두 차례 독일군이 프랑스군을 치기 위한 진격통로로 이용되었다. 공격군을 막을 큰 강도 산도 없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참호를 파서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기관총, 대포, 독가스, 나중엔 탱크로 서로를 도륙했다. 벨기에는 세계사적인 격전장(激戰場)으로 유명하다. 1815년 6월, 나폴레옹의 종말을 가져온 워털루 전투의 그 워털루도 브뤼셀 근교에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벨기에의 이에페르(Ypres)를 둘러싼 공방전이 세 차례 있었다. 두 번째인 1915년 4월 독일군은 처음으로 독가스를 사용했다. 세 번째 전투는 1917년 6월부터 11월까지였다. 연합군과 독일군 쌍방이 약 50만 명의 전사상자(戰死傷者)를 냈다. 그 대가로 연합군이 얻은 땅은 불과 수km였다. 독일 기갑군단이 아르덴느 숲을 지나 프랑스군을 기습한 전투는 세계전사상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우회(迂廻) 전술로 꼽힌다. 그 4년 뒤 히틀러는 같은 장소에서 또 도박을 한다. 1944년 12월, 히틀러는 40만 병력으로 아르덴느에서 연합군을 기습했으나 실패, 그 5개월 뒤 자살한다.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나오는 바스토뉴 전투가 이때인데, 전쟁기념관이 근사하다. 당시 포위된 제101 공수사단장(대리) 앤서니 맥컬리프 장군은 항복을 권하는 독일군 사령관에게 ‘Nuts(엿먹어라)’라고 답신, 전설이 되었다. (계속) |
[ 2021-09-16, 14:22 ] |
첫댓글 감사합니다. 전윤규
감사합니다. 전윤규
감사합니다. 전윤규